2. 범죄자가 남긴 증거
우크라이나의 전쟁 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비엘로우소프를 만나기 며칠 전에는 50대 중반의 간호사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스비틀라나 마주르코(Svitlana Mazurko)라고 부르겠다. 마주르코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그린 천사와 파워퍼프 걸(Powerpuff Girls)이 섞인 것 같은 무늬의 반팔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전쟁 초기에 점령당했던 키이우 북서부 외곽의 부차(Bucha)에서 살아남았다.
2월 24일 아침, 마주르코는 부차의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면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인근 호스토멜(Hostomel)의 안토노프 공항(Antonov airport)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근무 중이었다. 정확히 오전 11시 5분, 그녀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발코니로 나갔다. 그녀는 헬리콥터가 낮게 비행하는 소리를 들었다. 건물의 2-3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두 대의 제트기가 급강하하는 걸 지켜봤다. 헬리콥터 40대 정도가 공항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제트기가 몇 차례 선회하면서 교외의 길거리에 폭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피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는 떨리는 손으로 무릎을 쓰다듬었다. 마주르코는 키이우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오가 되자 남편이 마침내 전화를 걸어 왔다.
그가 말했다. “붙잡혀 있었어.”
그가 출근한 뒤, 러시아 군인들이 헬리콥터에서 지상으로 착륙해 공항의 직원들을 불러 모았고, 이제부터 그들은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붙잡힌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군인들이 그 공격에서 뭘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걸 지켜봤다.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기 위해 러시아의 머나먼 곳에서 끌려온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렸고 일부는 술에 취해 있었으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주르코의 남편은 그날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그들과 협상을 벌였고, 덕분에 그를 비롯해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 약 150명이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지만, 총격과 폭격은 멈추지 않았다. 마주르코와 그녀의 남편은 몇 명의 이웃들과 함께 주택 건물의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그 이후, 2월 28일이었다. 마주르코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방문객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몇 대의 차량과 무장 병력 수송 차량이 도착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때부터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다”고 한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티슈를 사용할 수 없을 지경까지 주물럭거렸고, 그러다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리 건물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지렛대를 사용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소리치는 게 들렸습니다.”
부차 주변 지역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이 지역에서는 사냥 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총기를 소유한 집이 많다. 러시아 군인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소총을 훔쳤고, 그뿐만 아니라 금붙이나 육류 통조림, 전자 제품, 심지어 낚싯대까지 가져갔다. 그렇게 러시아의 점령하에서 몇 주를 지냈다. 마주르코는 원래 닭고기를 수송하던 거대한 냉동 트럭이 마을에서 약탈한 물품들로 채워지는 걸 지켜봤다.
마주르코를 비롯한 가족과 이웃들은 여전히 지하층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 군인들이 소리치는 걸 들었다. “거기 누구야? 손들어!”
군인 30명 정도가 여성들에게 두 손을 들게 하고 벽에 세웠다. “그들은 우리의 몸을 구석구석 손으로 만졌습니다.” 마주르코의 말이다. 남성들은 속옷만 남기고 발가벗게 했다. 그들은 몸에 군대의 문신이나 소총의 반동으로 인해 어깨에 생기는 자국이 있는지 확인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런 흔적이 있는 남성들은 ‘여과 캠프(filtration camp)’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그들은 러시아로 이동해 구타당하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하층에서 몇 주 동안 보낸 마주르코는 얼굴 혈관 일부가 파열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하층에 머무는 동안 그녀와 이웃들은 죽은 남성 한 명을 묻어 줬다.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 같았다.
대략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뒤, 마주르코는 잠시 방을 나갔다가 구겨진 비닐봉투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손잡이 부분이 튼튼한 종류였다. 그런데 비닐봉투가 무거워 보였다. 그녀가 소파로 다가와서는 종이 뭉치와 함께 청바지 색상의 하드커버 책 한 권을 꺼냈다. 그 위에는 직인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군이 떠난 뒤에 남편이 공항에서 그것들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것은 다량의 러시아 문서였는데, 벨라루스로 향하는 탈출 지도와 경유하는 지점의 좌표, 장교들의 코드명이 있었고, 파란 책에는 안토노프 공항에 착륙했던 대전차 유도 미사일 부대 병력의 이름과 주소, 부모님 성함, 심지어 다녔던 학교명까지 적혀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안토노프 공항을 키이우를 함락시키기 위한 기지로 활용하려고 했다.
나는 마주르코에게 물었다. “이전에 누구에게든 이걸 보여준 적이 있나요?”
마주르코는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전쟁 범죄 조사관들은 그런 종류의 원본 문서를 확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그 문서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 그 내용이 변경될 위험이 없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걸 집에 잘 보관했다가, 검찰 관계자에게 직접 전달하기 전까지는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마세요.”
그 문서의 사진들을 비엘로우소프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기뻐했다. “그렇지, 러시아 문서, 고마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 문서들에는 잠재적 용도가 많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그 문서의 원본을 자신의 사무실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주르코의 남편과 이야기해 볼 필요도 있었다. 나는 2주의 시간을 더 보내는 동안 이 귀중한 자료들이 올바른 곳에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내가 입수한 문서 중에는 여러 대대전술그룹(BTG)에 배속된 모든 의무병 목록과 각 의무부대 지휘관들의 호출 신호도 있었다. 이 정보를 무선 감청 데이터와 비교하면 각 부대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한 러시아산 마취제를 다량으로 주문하는 문서도 있었는데, 의사와 조사관들에 의하면 이 약은 숙취 완화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나는 트루스 하운즈의 마리나 슬로보디아뉴크에게 이 문서를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들을 잠시 넘겨본 후, 그녀는 머리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걸 찾았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중 개인 정보가 적혀 있는 하드커버 책이 특히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각각의 병사들에 대한 계약 조건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침공 전에 이미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제 징집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 전쟁 기간에 해당 부대에 소속되어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왔던 사람 중에서 그들을 제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 한 달 뒤에 슬로보디아뉴크와 다시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내가 전달한 모든 정보를 트루스 하운즈의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했으며, 이로써 기록에 있는 러시아 병사들 각각의 신원을 좀 더 확실히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정한 범죄와 가해자를 연결할 때, 데이터베이스에 이미 가해자의 자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회복성센터(CIR)의 피에르 보(Pierre Vaux) 조사관은 ‘참전 병사’의 명단을 적어 놓은 하드커버의 책을 봤을 때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상에, 이건 진짜 금이잖아요!”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는 이 책이 (러시아의) 기본적인 기록 장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날짜와 시간이 함께 기록된 (구름이 걷혔을 때의) 위성 사진과 페인트로 표시된 차량의 번호를 살펴봄으로써 어떤 병력이 어디에서 어떤 유형의 차량을 이용했는지를 확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문서를 활용했다.
러시아가 서둘러 철수하는 과정에서 남긴 가장 사소하고 이상한 것조차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AP 소속의 한 저널리스트는 어떤 병사가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확인했다. 키이우의 북서쪽 오제라(Ozera)에서 경찰이 발견한 것이었다. 이 편지는 어떤 종이의 뒷면에 적혀 있었는데, 이 종이는 (수륙양용 무장병력 수송차량인) BTR-MDM 122호의 승무원들에게 내리는 명령을 기록하는 종이였다. AP 기자가 이 종이를 피에르 보에게 보여줬고, 그는 다시 이 문서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다. 그런 다음 그는 BTG에 배속된 러시아 의무병들의 명단을 활용해 해당 차량의 승무원 두 명이 누구인지 알아냈으며, 그들이 러시아 울리야놉스크(Ulyanovsk)에 기지를 둔 제31 독립 근위공수여단(31st Guards Air Assault Brigade) 소속 병력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탈출 경로 지도가 침공 이전의 ‘희망적인 생각’에 의해 그려진 것임을 알아냈다. 그 지도에는 점령을 위해 필요한 목표 지점이 많이 표시돼 있었지만 그중 상당수는 러시아가 빼앗지 못했다. 이 지도의 시작점인 바실키프(Vasylkiv) 공군 기지는 키이우의 남서쪽 40킬로미터에 위치한 곳으로, 러시아가 지금까지 진격했던 곳보다 훨씬 더 남쪽이다.
이는 러시아 군대가 브리핑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침공을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추가적인 증거이다.
“정말이지 담뱃갑 뒷면에 그린 것 같은 지도였습니다.” 보의 말이다. “어설프게 대충 이뤄진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