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유하는 사람의 에세이, 《마술 라디오》
새로이 마음 붙일 공간을 찾으시나요? 다른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혜윤은 CBS 라디오 PD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애독가입니다. 그는 늘 바다에 가면 어느 어부를 떠올립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에서도 작은 물고기와 금지 어종을 풀어 주는 어부죠. 때문에 그 지역에선 어부의 이름 석 자가 신뢰와 정확의 상징이 된다고 합니다. 왜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에서 그것들을 지키느냐는 물음에 어부는 답합니다. “내가 자유기 때문”이라고요.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놀랐어. 기습 공격을 당한 기분이었어. 내가 자유란 말을 너무나 오랫동안 듣지도 쓰지도 묻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어. 하나는 사회의 룰을 따른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지킬 의무, 즉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을 의무야. 그렇지만 우리는 두 번째 의무가 있기나 한 건지 잊곤 하지. 지금 어부는 두 번째 의무, 즉 자신을 지키는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었어. 그것이 자유라고.”
_정혜윤, 《마술 라디오》 64-65쪽
정혜윤 PD는 “무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하다”고 설명합니다. 때문에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공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공간은 우리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겠죠.
4. 생각이 흐르는 수성동 계곡
정혜윤 PD가 귀하게 여기는 공간을 따라가 볼까요? 그는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수성동 계곡임을 책에서 여러 번 말합니다. 종로09는 서울의 중심지를 누비는 마을버스입니다. 높은 건물이 솟아 있는 광화문을 한 바퀴 돌아 종로09가 향하는 종점은 수성동 계곡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에도 등장하는 수성동 계곡은 숨겨져 있다가, 2010년 옥인시범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발굴됐습니다. 공원으로 복원됐는데 계곡물이 쉽게 마른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비 내린 직후에 찾아가는 것을 특히 추천합니다. 광화문에서 10분 벗어났을 뿐인데 조용합니다. 계곡물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도시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며 사색에 젖을 수 있습니다.
5. 윤동주 시인의 언덕 나무 아래서
사색을 이어가기엔 걷기가 딱입니다. 인왕산로를 따라 30분 걷다 보면 청운공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닿습니다. 제가 샌드위치나 김밥 등 간단한 음식을 싸서 자주 가는 곳입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요. 언젠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그 아래로 피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공간을 지키며 가지가 길게 자라고 잎이 널리 뻗은 나무 아래 있으면 대찬 소나기에도 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나무 아래서 든든한 한 끼 어떨까요?
6. 걷는 사람의 사색, 《걷기의 인문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보이는 서울의 전경과 일몰은 덤입니다. 일몰을 기다리며 읽을 책으로는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추천합니다.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리베카 솔닛은 현대인의 삶이 움직이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 생각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걷기를 주제로 삼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보편적 행동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 생각이 두 발로 지나간 곳에 장소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소가 다시 그런 생각을 만들어냈다. 걸었기에 골목과 도로와 무역로가 뚫린 것이고, 걸었기에 현지의 공간 감각과 대륙 횡단의 공간 감각이 생겨난 것이고, 걸었기에 도시들, 공원들이 만들어진 것이고, 걸었기에 지도와 여행안내서와 여행 장비가 생긴 것이다. 멀리까지 걸어갔으니 걷는 이야기 책들과 시들이 쓰인 것이며, 순례와 등산과 배회와 소풍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쓰인 것이다. 역사의 풍경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_리네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18쪽
7. 하늘을 걷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