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적(通時的)으로 보면 가족은 생애 주기를 반영한 경제 보완 시스템이다. 부모가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식들은 사회 진출을 위한 학습에 집중한다. 자식이 자라 경제 활동을 시작하면 나이 든 부모를 부양한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서로의 경제 활동 능력을 교차로 활용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1인 가구는 경제 활동 능력이 떨어져도 이를 보완해 줄 동거인이 없다. 2021년 기준, 1인 가구의 53.2퍼센트가 스스로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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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적(共時的)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다인 가구는 실직, 장기 입원 등의 이유로 가족 중 일부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을 경우 다른 구성원이 일시적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 1인 가구는 대안이 없다. 1인 가구는 통시적으로나 공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할 상대가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이사항이 발생할 경우 경제적 위기에 직접 노출되는 것이다.
주거의 문제
70년대 이후 한국의 주거 공급 정책은 4인 가구 중심이었다. 공급된 주택 대부분이 두 자녀를 둔 부부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됐기 때문에 1인 가구의 주거 선택지는 좁아진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을 나눠 쓰거나, 원룸, 오피스텔 등 1인 가구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주택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늘어나는 1인 가구 수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최저 주거 기준에 못 미치는 주택에 사는 1인 가구 비율은 10.6퍼센트, 2인 이상 가구는 5.3퍼센트다.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은 면적이 14제곱미터(약 4.2평) 미만인 경우 또는 전용 입식 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전용 목욕 시설 중 한 개라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많은 1인 가구가 부엌 또는 화장실이 없거나, 네 평에도 못 미치는 좁은 방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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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는 생애 주기별 맞춤형 주택 공급을 위해 통합 공공 임대 주택 세대 평면 21개종을 개발해 다양한 평면의 주거를 공급하려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기 위해 평면을 다양화한 것이다. 서울특별시는 ‘청년패스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 1인 가구에 40만 원 상당의 이사 서비스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1인 가구의 주거 비용을 보전하려는 제도를 시행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주택 공급 제도의 선정 기준은 전반적으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국민 임대 주택 등 저렴한 주택 공급 제도에서 동일 순위로 경쟁 시 입주자로 선정되기 위해선 가점을 얻어야 하는데, 이때 세대주의 나이가 많고 배우자를 포함한 65세 이상 직계 존속 1년 이상 부양자이며 미성년 자녀 수와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높은 가점을 받는다. 이러한 제도는 원천적으로 1인 가구를 배제하고 있다.
주거를 위한 금융 제도인 주거 자금 대출에서도 1인 가구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대출’, ‘내집마련 디딤돌 제도’, ‘저소득 가구 주택전세자금 대출’ 지원 기준에서 만 30세 이하 단독 세대주는 제외된다. 또한 주택금융공사 HF에서 제공하는 일반 전세 자금 대출도 자격 기준을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로 명시해 1인 가구의 수혜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14] 청년 1인 가구는 사실상 주거 안정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실제로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허울뿐인 지원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청년들이 있다. 바로 청년 주거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이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청년들이 서로의 이사를 도와주고 주거 보조금 성격의 장학금을 도입하는 활동으로 시작됐다. 나아가 청년을 위한 주거 상담사를 양성하는 데 앞장서고,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작은 움직임을 발판으로 민달팽이 유니온은 약 10여 년 동안이나 청년의 주거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보여왔다.
혼자 잘 살기 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 주거에 관해 생각해볼 만한 여러 가지 이슈를 던졌다. 다음은 인터뷰 중 민달팽이 유니온의 발언이다.
“정말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을 고려한 주거 정책인가요? 수입이나 자산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못한 청년들에게 신용을 기반한 대출 정책으로는 충분한 주거 비용을 충당케 할 수 없어요.”
“상한 음식을 팔면 그 식당은 처벌받잖아요, 그런데 하자 있는 집을 팔았을 때는요? 이런 것도 집이라고 부동산에 내놓았나 싶은 집들이 너무나도 많을뿐더러, 당당하게 위반건축물을 판매하는 집주인과 중개사도 허다해요.”
“집 구하는데 부동산에서 부모님이 보증금 지원 안 해주냐고 묻더라고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이는 제대로 된 주거 환경조차 영위할 수 없는 사회가 과연 공정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각종 주택 정책이 위치하는 곳이 전부 달라요. 월세 지원은 서울 주거포털에서, 주거 상담은 서울주거상담센터로, 전세자금 목돈 마련은 서울청년포털로 들어가서 봐야 해요.”
이렇듯 1인 가구의 주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민달팽이 유니온과 같이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지점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건강의 문제
한편 1인 가구는 눈치를 볼 동거인이 없어 다인 가구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혼삶의 자유는 1인 가구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스스로 훈련된(self-disciplined) 사람들은 본인만의 생활 리듬을 유지하며 건강한 생활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생활 리듬을 잃어버리기 쉽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의 건강 관리 실천율은 전체 인구에 비해 낮았다. 정기 건강 검진과 적정 수면 실천율은 75퍼센트 내외지만, 규칙적 운동 실천율은 39.2퍼센트로 저조한 편이다. 불규칙한 수면과 생활 패턴은 당연하게도 건강에 큰 해가 되는데, 1인 가구는 아플 때 가까이서 상시로 돌봐줄 누군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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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역시 건강과 관련해 1인 가구가 해결해야 할 큰 문제이다. 시간을 맞춰 끼니를 챙기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위한 사회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 식사를 챙기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사회적 리듬을 느끼지 못하는 1인 가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며, 일주일에 다섯 끼를 컵라면, 삼각김밥, 과자류 등으로 대충 때운다. 간편함에 치중한 식사는 영양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또한 1인 가구와 다인 가구의 건강 행태를 비교분석한 연구에서 청년 1인 가구의 흡연율과 음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16] 자유가 1인 가구의 건강에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생활의 문제
1인 가구는 일상생활의 부담이 크다. 가사 노동을 분담할 사람이 없어 한정된 시간을 쪼개 일도 하고 가사까지 해야 한다. 생활에 필요한 가사 도구 일체를 좁은 공간에 구비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의 25퍼센트가 식사 준비, 주거 관리 등 가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생활비와 같은 경제적 문제나 외로움 등 정서적 문제보다 높은 수치다. 음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의 ‘1인분 서비스’나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와 같이 1인 가구를 겨냥한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식사 배달, 세탁물 처리에 한정되어 있으며 적극적으로 이용하기에는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
안전의 문제
1인 가구, 특히 여성 1인 가구 사이에서 꾸준히 대두되는 어려움은 안전 문제다. 1인 가구의 걱정은 응급, 구급 상황, 생활 안전, 주거 침입, 도난으로 나뉜다. 한국 사회의 치안은 과거에 비해 개선됐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지만 주거 침입에 대한 1인 가구의 걱정은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도난 및 강력 범죄에 대한 우려가 크다. 1인 가구가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주거지가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위험 상황에 혼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0년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거지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주택 자체에 방범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 주요하다. 안전·방범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로 “CCTV 부족”, “주변 이웃을 신뢰하기 어려움”,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등이 언급됐다.
게다가 1인 가구는 위험 상황 발생 시 대처 자체가 어렵다. 대처와 신고를 혼자서 동시에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절반에 가까운 1인 가구가 안전·방범을 강화하기 위해 집에 방범 장치를 설치한다. 여성의 경우, 휴대용 호신·경호 기기를 구비하거나 비디오 폰(video phone) 등을 설치한다. 실제로 20대 여성 13퍼센트가 안심 귀가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공효진, 김예원 주연의 스릴러 영화 〈도어락〉과 같이 여성 1인 가구의 공포를 주제로 한 영화도 나왔다. 혼자 사는 집에 누군가 침입하면 가족·지인을 긴급 호출해야 하는지, 경찰에 우선 신고해야 하는지, 주어진 상황을 먼저 수습할 것인지 신속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또한 거주자가 눈치채기 어려운 주거 침임 범죄 수법도 있어 1인 가구 혼자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외로움 문제
혼삶의 어려움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사회적으로 유리된 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외로움은 증가한다. 1인 가구가 겪는 외로움은 사회 문제로 발현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 가능한 무연고 사망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2656명, 2020년 3136명, 2021년 3488명이다. 고독사 가운데 54.9퍼센트는 50~64세 중장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17] 고독사에 취약한 계층이 사망 전 호소한 어려움으로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우울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각 지방 자치 단체(이하 지자체)는 이를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고독사 감지 및 대응을 위해 많은 활동을 벌인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중장년 1인 가구 맞춤형 상담, 고독사 예방 사업, 한지붕 세대공감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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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느끼는 외로움이 모두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장대익 교수에 따르면, 관계로부터 비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생기는 외로움과 일반적 의미의 자발적인 고독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은 과도한 사회적 관계에 지쳐 있고, 그로부터 고갈된 사회적 자원을 충전하고 싶어 한다. 고독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한 사회적 생존 기술이다.
[19] 반면 외로움은 사회적 유대감의 부재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위협이 되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는 대응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