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위치한 ‘셀립 루프탑’ 역시 셀립 순라의 특색있는 공용 공간이었다. 창경궁과 종묘가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의 전경은 다른 코리빙 하우스에서 보이는 도시 야경과 달리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널찍한 루프탑은 1층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친해진 입주민들이 간단히 맥주도 마시고 경치도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로 빼곡했다. 루프탑 구석에서 살짝 더 위로 올라가면 지인들과 프라이빗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세심한 구조와 고풍스러운 디자인, 정적이면서 편안한 부대 시설과 개인 공간은 여유가 있는 입주민이라면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종로살이를 제공한다. 숨 가쁜 일상을 떠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1인 가구가 지내봄 직한 공간이었다.
테이블 ; 코리빙에 멤버십을 더하다
주소: 서울 강남구 역삼로 106
사업자: SK D&D
가격: 2020년 기준 월 90만 원대
셀립 순라가 특유의 분위기로 우리를 매료시켰다면, ‘테이블(Table)’은 가는 길부터 우리를 압도했다. 번화가인 신분당선 강남역에서 5분만 걸으면 도착할 만한 놀라운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블은 에스케이디앤디(SK D&D)에서 만든 소셜 아파트먼트다. 테이블로서 5년 간의 여정을 뒤로 한 채 2022년 6월부터 건물 이름이 ‘비엘(BIEL)106’으로 바뀌었다. 테이블이라는 브랜드는 ‘에피소드(episode)’로 리브랜딩되어 서초, 성수, 신촌, 강남, 수유 등에 오픈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의 테이블은 다른 코리빙 하우스에 비해 가격대가 높았지만, 그에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멤버 온리 라운지’였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라운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입주 여부와는 별개로 멤버십에 가입해야 했다. 구독 경제를 주거 환경에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24시간 운영되는 무인 스낵바, 커피와 맥주, 서재와 복합기 등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어 1인 가구에게 매력적이었다. 거기다 플리 마켓, 매월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는 커뮤니티 활동, 술, 음악, 영화 등을 즐기는 멤버십 프로그램 등 각종 소셜 이벤트가 열려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이벤트들을 관리하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어떤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더라도 구심점이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데 커뮤니티 매니저 덕에 모임에 활기가 더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급 멤버십 서비스는 라운지뿐만 아니라 개인 공간에서도 누릴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방마다 세탁기, 주방, 화장실 및 샤워실이 포함되어 있어서 집의 구조는 오피스텔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 내부에 설치된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방문자, 택배 도착 알림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전기·가스·수도 사용량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concierge service)도 있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픈데 약이 없을 때를 대비해 테이블에서는 상비약을 제공하기도 한다. 입주민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까지 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또 세탁이 까다로운 의류는 동네의 세탁소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런드리고와 같이 세탁물을 수거 및 배달 하는 자체 컨시어지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침구류 교체와 더불어 룸 클리닝도 월 2회 제공된다. 더불어 택배 대행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가입하는 멤버십 서비스는 이러한 호텔급 컨시어지 서비스와 커뮤니티 프로그램 자유 이용을 포괄하는데, 동일 서비스를 밖에서 이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경제적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멤버십 서비스는 필수가 아닌 옵션이다. 이를 반영하듯 테이블은 ‘선택적 라이프 셰어링 하우스’로 불리기도 한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라이프 스타일의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마련하는 것은 다른 코리빙 하우스에서 적용해 볼 만한 서비스라고 생각됐다.
코리빙의 장단점
코리빙 하우스가 늘어나고 있고 저마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혼자 살게 된 사람이 선뜻 코리빙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따로’는 익숙하지만 ‘같이’는 불편함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용 공간을 공유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 쪼개진 방에서 사는 것 보다 한층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다. 다섯 군데의 코리빙 하우스를 탐방한 결과, 1인 가구를 위한 좋은 서비스가 있음에도 개인의 성향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서비스 접근성의 차이가 있었다. 코리빙의 장단점은 뭘까? 한 공유 주거 트렌드 리포트
[1]에 따르면 사람들이 코리빙 하우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지리적 이점과 공간 활용에 있다.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커뮤니티는 오히려 코리빙의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지리적 이점
코리빙 하우스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로 교통 요충지에 자리를 잡는다. 거주자에게 직장과 주거지 간의 수월한 이동은 매력적인 요소다. 국내 코리빙 하우스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지하철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약 400미터 반경 내 위치한다. 서울 오피스텔이 역에서 평균 589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과 비교하면, 코리빙 하우스가 직주 근접에 유리하다. 직주 근접은 직장과 거주지가 가깝다는 뜻의 부동산 용어다.
시간과 공간 활용
공용 공간 형태는 말 그대로 공간을 나눠 쓰는 것을 말한다. 노동 구조의 유연화, 자유로운 출퇴근 등으로 거주자들의 마주침이 적어졌다는 점은 오히려 공간 공유를 원활하게 했다. 거주자들이 공용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과 패턴에 따라 넓은 공간을 혼자 누릴 수도 있다. 주거비 한도 내에서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정해진 공간에만 머무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
커뮤니티의 한계
코리빙 하우스를 선택하는 데 있어 여전히 1인 가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커뮤니티다. 새로 들어온 입주민의 경우 기존에 형성된 커뮤니티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코리빙 하우스가 가진 분위기도 거주자 구성원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 활발한 커뮤니티를 가진 코리빙 하우스가 있는 반면, 퍼스널 스페이스 personal space를 존중하며 소극적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곳도 있다.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일정한 목적에 따라 혹은 필요에 의해서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에 대해 입주민들 간 현실적인 정보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었다.
소통의 어려움은 공용 공간 이용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공용 공간을 이용하려 해도 그 공간을 누가 이용하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샤워 시설의 경우, 출근 전 아침 시간과 잠들기 전 밤 시간에 이용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활 패턴을 비껴가는 입주민의 경우 공간 이용에 제한이 없어 오히려 유용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일찍 일어나 사람이 많이 모이기 전에 씻는 등 혼잡 시간대를 일부러 피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행동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것이다.
사생활 노출과 안전의 문제도 있다. 보통 1인 주거 형태에서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보안에 다방면 신경을 써야 하지만 코리빙의 경우 그러한 종류의 부담은 줄어든다. 다만 코리빙은 공용 공간을 입주민들과 같이 사용하는 만큼 개인의 생활 패턴이 자연스레 타인에게 노출된다.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다른 거주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생활 패턴이 노출되며 개인 공간이 비는 시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지문 인식 등 보안 시설을 마련해 외부인의 침입은 막을 수 있지만,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막을 순 없다.
높은 가격
보통 코리빙 하우스의 경우 보증금은 고사하고 월세만 해도 60~200만 원 선이다. 저소득 1인 가구에 큰 부담이다. 다만 반대 의견도 있다. 전술한 리포트는 단순 숫자만 비교하면 공유 주거 월세가 높아 보일 수 있으나 제공하는 서비스나 콘텐츠의 가치 value, 편의성을 고려하면 경제성이 더 부각된다고 설명한다. 리포트는 코리빙 하우스가 주는 가치를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하는데, 하드웨어는 기본 옵션이 제공(퍼니시드furnished)되는 개인 특화 공간, 공용 라운지·카페·회의실 등의 커뮤니티 공간 그리고 창고·공유 키친 등 생활 공간으로 나뉜다. 소프트웨어는 룸 클리닝·보안·렌탈 등의 주거 서비스, 각종 강연이나 파티 등의 커뮤니티 콘텐츠, 의식주나 취미·건강 등을 포함하는 제휴 서비스로 나뉜다.
서울 소재 두 곳의 공유 주거가 제공하는 서비스 및 콘텐츠를 대상으로, 외부에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가격을 계산한 결과, 주변 월세에 관련 서비스 및 콘텐츠 가격을 더할 경우 적정 가격은 약 130~140만 원대였다. 즉, 주변 어딘가에 혼자 살며 이 모든 서비스를 각각 결제할 경우 드는 총비용이라는 뜻이다. 반면 두 공유 주거의 실제 월세는 해당 가격의 90~94퍼센트였다. 리포트는 이를 근거로 공유 주거 시설 이용이 오히려 경제적임을 역설한다.
다만 이것은 코리빙 하우스의 모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때의 얘기다. 소통 등의 문제로 공용 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딱히 필요치 않은 시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면 모순이 발생한다. 청년 1인 가구로 한정해, 이들의 평균 소득을 감안하면 코리빙 하우스의 가격은 꽤 부담스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