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시대
4화

ESG 침술 ; 행동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2009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의 절반 가까이는 졸업식 전날의 비공식 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맹세를 했다. “지극히 정직하게 행동할 것, 내 좁은 야망을 채우기 위한 결정과 행동을 거부할 것, 내 사업으로 사회에 창출할 장기적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일할 것” 등. 그들의 맹세는 기업에게 요구하는 ESG와 같은 맥락이다. ESG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 시작해 공유 가치 창출(CSV)과 연결된다. 각각의 정의는 시대와 쓰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기업의 경영 활동에서 ‘사회적 책임 의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공공성은 동일하다.

이러한 ESG 경영은 공공디자인과도 밀접한 개념이다. ESG 침술이란 영리 기업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협치(Governance)의 공공성을 실천하는 공공디자인의 한 방식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2011년 자사가 제작한 의류를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문구와 함께 《뉴욕타임즈》 광고란에 실었다. 환경을 위한다는 기업의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하나의 사건이다. 광고에 실린 R2 재킷은 친환경 소재의 제품이었지만 그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 135리터가 쓰인다. 소재의 원산지에서 창고까지 배송되는 데 20파운드, 약 9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또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2022년 9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자신과 가족이 소유하던 자사 지분의 100퍼센트를 기부하기도 했다. 약 4조 원가량의 지분은 환경 단체와 비영리 재단들의 활동에 사용될 것이다. 진실함을 실천하는 파타고니아는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79퍼센트가 ‘일하기 좋은 회사’로 추천하는 회사이며, 자발적 이직율은 연간 3퍼센트에 불과하다.[1]

기업이 책임감 있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소비자는 물론이고 근로자와 투자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기업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아진다. 파타고니아와 같이 최근 기업들은 현실로 다가온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개선하는 비즈니스를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ESG의 가치를 절대화한 기업이나 브랜드만이 지속 가능한 시대가 왔으며 이는 브랜드 액티비즘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란 기업이나 브랜드가 가치 소비를 주도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발맞춰 정치, 경제, 환경 등의 사회적 이슈에 ‘하나의 인격체’처럼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즉, 브랜드가 사회적 주체로서 소비자 의식 변화와 사회적 문제에 발맞춰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2] 이는 “사회를 유지하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들을 살려내고 유지하는 역할에 관심을 둔다.”[3] 브랜드 액티비즘은 공공디자인의 역할과 맞닿아 있으며, 기업은 공공디자인을 통해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자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4]



지속 가능성에서 답을 찾다


마이크로소프트 나틱 프로젝트
나틱 프로젝트(Project Natick)는 데이터 센터를 수중에 구축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지난 2018년 여름,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코틀랜드 오크니섬 근처 해저에 컨테이너 형태의 데이터 센터를 설치했다. 바다 마을 주민의 50퍼센트 이상이 해안가 주변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할 때, 가까운 바닷속에 서버를 설치할 경우 주민은 신호를 대기할 필요 없이 빠르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차가운 바닷속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서버 냉각도 이전보다 쉽고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가능하다. 발열이 높은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는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전력 발전을 위한 탄소 배출량도 줄게 된다. 나틱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다. 점점 심각해지는 데이터 센터의 전력 소비 등에 의한 문제를 자연과 함께 해결할 방도를 찾고자 한 것이다. 또한 데이터 센터의 구성품은 소모품으로 이용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일정 기간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원 낭비와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철 압력 용기, 열 교환기, 서버 등 나틱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모든 부품 혹은 기구는 재활용 가능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단순히 재화를 지불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닌,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는 가치 소비를 택하기 시작했다. 나틱 프로젝트는 이러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한 혁신적인 시도다.

아모레퍼시픽 업사이클링 벤치
최근 뷰티 업계에서도 친환경은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먹어도 되는 화장품’, ‘자연에서 추출한 재료’ 등 제품의 자연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내용물을 둘러싼 포장재다. 화장품 패키지는 대부분 보관의 용이성과 심미적 디자인을 위해 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며, 그 재활용률은 매우 낮다.

제로 웨이스트에 동참하는 의미로 아모레퍼시픽은 2020년 ‘아모레스토어 광교’를 연 바 있다. 고객이 각자 재사용 용기를 들고 오면 리필 스테이션에서 샴푸와 바디 워시를 골라 담고 무게당 비용을 지불하는 시스템이었다.[5] 이외에도 아모레퍼시픽은 공병을 수거해 예술가들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등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일례로 글로벌 환경 기업인 테라사이클(TerraCycle), 그리고 건축 공예적 콘크리트를 만드는 예술 집단 디크리트(DCRETE)와 함께 키엘(KIEHL’S) 화장품 공병을 잘게 부수어 업사이클링 테라조 타일을 만들었다. 이 테라조는 키엘 신세계백화점 매장 인테리어 자재로 활용됐다. 또 삼표그룹과의 협력으로 폐플라스틱을 섞은 UHPC라는 새로운 소재의 콘크리트를 만들었고 이 소재로 업사이클링 벤치를 제작했다. 폐플라스틱 조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업사이클링이다.
창덕공원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과 삼표그룹의 업사이클 벤치 ⓒ아모레퍼시픽
벤치는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벤치는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모레퍼시픽과 같이 단순한 재정 기부 혹은 분리수거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전에 없던 소재를 개발하고, 그 결과물을 공공재로 기부하는 것은 그 기업만이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치다. 현재 이 벤치는 서울 종로구 창덕공원 및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또한 포스코와의 협업으로 플라스틱 공병을 활용해 친환경 소재인 슬래스틱(Slastic)을 개발했다. 슬래스틱은 제철소의 부산물인 슬래그(slag)와 폐플라스틱(plastic)을 융합한 소재로, 이태원 소재 공중화장실 ‘아리따운 화장방’을 만들 때 외장 마감재로 활용했다.[6]

곰표 플로깅 캠페인
지구를 위한 노력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MZ세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기후 위기와 같은 의제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인플루언서가 시작한 챌린지(challenge)를 따라하며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해시태그로 함께 하고 싶은 활동에 사람들을 먼저 불러 모으기도 한다. 특히 혼자보단 온라인 플랫폼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또 영어 ‘갓(God)’과 한자 ‘생(生)’을 합쳐 만든 소위 ‘갓생’이란 말로 자신이 정한 바른 생활 습관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데 힘을 쓴다. MZ세대가 일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이처럼 자신을 가꿔 나가는 바른 습관에서 활력을 얻는 것도 이 세대의 한 특징이다.

커뮤니티 문화와 바른 습관, 두 가지 속성이 합쳐진 여러 긍정적인 사회 활동이 늘고 있다. 일례로 스웨덴에서 시작한 플로깅(plogging)은 ‘줍다’라는 스웨덴 단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영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선 ‘줍다’와 ‘조깅’을 결합해 ‘줍깅’이라는 재밌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건강을 챙기면서도 쓰레기를 주워 환경을 지킨다는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이 행위는 개인 단위의 작은 환경 보호 운동이다. 이 트렌드를 포착해 자사의 브랜드 가치와 접목시키는 회사들이 늘고 있으며, 밀가루 브랜드 곰표도 그중 하나다. 곰표는 곰표맥주와 같은 트렌디한 이미지의 밀 관련 상품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도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상품을 기획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한다. 최근 MZ세대가 등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포착한 곰표는 2021년 11월 1일, ‘등산 플로깅’이라는 특이한 행사를 기획했다. 곰표는 소래산 입구에서 ‘곰표 포대’를 사람들에게 나눠 준 뒤 사람들이 등산하는 동안 쓰레기를 담아 정상에 오르면 품절된 곰표 굿즈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연 것이다.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소래산 정상에 임시 설치된 곰표 플로깅 하우스가 오픈하자마자, 1시간 만에 준비한 굿즈는 품절됐고 등산로에 보이던 쓰레기도 모두 사라졌다. MZ세대에 퍼진 등산 문화와 화제성 있는 ‘곰표 굿즈’라는 아이템이 한몫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행사는 사전 홍보를 통해 참가자를 모으지 않았다. 행사 당일 설치된 부스 앞을 지나던 소래산 등산객을 대상으로 벌인 이벤트였다. 이전까지 플로깅 행사는 주로 시내 혹은 강변에서 이뤄진 반면, 곰표의 캠페인이 SNS에서 핫했던 이유는 바로 ‘자연스러움’ 때문이었다.[7]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애는 등 기업 차원의 임팩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시민이 진심으로 공감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제시할 때 기업의 공적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았다. 단순 기부 혹은 일부 집단을 위한 좁은 지원이 대부분이라 기업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모레퍼시픽, 곰표 모두 기타 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이와 같이 기업은 환경과 관련된 공적 활동을 더욱 확대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소비자와의 접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브랜드 액티비즘을 펼치는 기업의 파급력이 커질 것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


누군가는 ‘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리에 없던 공원을 만들고, 혁신적인 건축물을 짓는 등 좁은 영역에 한정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많은 기업이 자사의 비즈니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유무형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은 정부나 기관이 시스템적 한계로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들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며 건강한 사회를 향한 다양한 역할을 자처한다.

카카오임팩트 100up 프로젝트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보이는 부분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방에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그 밑에 양동이만 받쳐 두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자 지난 2019년 사회 문제 정의 협업 플랫폼 ‘카카오임팩트 100up’이 출범했다. 100up은 문제 정의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복잡함을 정확히 인식하고, 각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솔루션 프로젝트였다. 문제 정의 지원 베타 프로젝트는 2022년 4월 종료됐으나, 청년 실업·가정 폭력·저출산·고령화·디지털 성범죄·남녀 불평등 등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내가 정의하려고 하는 이 문제가 나와 어떻게 연결될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는 자사의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감 기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잘 된 문제 정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 함께 해결하려는 동료들과의 소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공감, 솔루션의 방법적 완성도를 높인다.” 프로젝트의 참가자 서현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다. 사회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광범위하고 모호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당사자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모두가 해결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8]

카카오 100up 프로젝트는 이처럼 사회 문제의 이해관계자 스스로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 질문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와 사회 문제 사이에 연결 지점이 있어야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의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카드 을지로 셔터갤러리
소위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3가엔 철물, 목재, 공구 업체와 노포가 경계 없이 섞여 있는 골목들이 즐비하다. 낮에는 오토바이, 지게차, 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밤에는 그 길거리가 노포로 바뀐다. 예전부터 이곳은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다양한 업체와 장인, 기술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밤에 상점들이 업무를 마치고 셔터를 내리면 이 공구 거리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된다. 그 스산한 골목에서 노포들은 저녁 장사를 하게 된다.
을지로의 셔터갤러리 ⓒ신한카드
길거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우나 셔터가 내려진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며 있고 싶지는 않다. 공구 가게들이 셔터를 내린 밤에도 이곳이 젊은 사람들의 감성에 부응하는 힙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없을까? 2020년 7월 신한카드와 서울 중구청은 작가 다섯 명과 협력해 가게의 셔터들에 그림을 그려 ‘셔터갤러리’를 만들었다. 을지로의 밤을 찾은 사람들에게 먹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함으로써 이 골목은 주인과 방문자 모두 만족하는 공간이 됐다. 이제는 공구 가게들이 문을 닫는 주말에도 셔터의 이색적인 그래픽 작품과 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을지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업과 민관의 협력으로 탄생한 공공디자인은 이곳을 한층 더 힙하게 만들었다.[9]

ABC마트 세상에 없던 신발
2016년 어느 새벽, 어두운 출근길에서 거리를 홀로 청소하는 환경 공무관을 마주친 이주윤 씨는 그해 11월 ABC마트 ‘세상에 없던 신발’ 캠페인에 응모했다. 당시 ABC마트는 공식 페이스북을 활용해 메시지 혹은 게시물 댓글로 신발 제작 아이디어를 받고 있었다. 참가자가 개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세상에없던신발’, ‘#세없신’을 달고 콘텐츠를 올리는 방식으로도 응모할 수 있었다. 직접 그린 스케치, 컴퓨터로 편집한 이미지는 물론 텍스트만으로도 아이디어를 제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모전의 허들을 대폭 낮췄다.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발을 제작하고 기부한다는 이 캠페인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또 많은 시민들이 보내 준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재미로라도 만들어 보고 싶은, 혹은 실제로 제작하면 누군가에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제품이라는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됐다.
(좌)소비자 응모작 디자인, (우)실제 제작한 라이트 슈즈 ⓒABCMART KOREA 유튜브
이주윤 씨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환경 공무관을 위한 ‘라이트 슈즈’다. 워커에 4단계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랜턴을 부착해 어둠을 밝힌다. 랜턴은 밤길도 쓰레기도 잘 비추며, 탈부착이 가능해 일상생활에서도 이 워커를 신을 수 있다. ABC마트는 이주윤 씨를 비롯해 선정된 열 명의 공모자에게 각각 100족의 신발을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총 1000족의 신발이 사회 복지 단체 등에 기부됐다. 이주윤 씨의 라이트 슈즈는 중랑구청 소속 환경 공무관들에게 전달됐다. ABC마트의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신발이 필요할지를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신발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무료로 신발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10]



브랜드, 거버넌스를 만들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그 분야의 전문가일까, 혹은 정부나 기관일까.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시민이 주체가 되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크고 작은 움직임이 보인다. 이에 다양한 분야의 기업은 재정과 기술 등을 지원함으로써 건전한 거버넌스 형성에 동참하고 있다. 

SK Sunny와 청년 서포터즈
많은 경우 청년들은 단순한 봉사 활동을 넘어 주체적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속에서 본인 또한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학업 성취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스펙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만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운영하던 SK행복나눔재단은 이 문제점을 포착했고,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젊은 인재를 양성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것이 발전해 현재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서포터즈 ‘써니(Sunny)’가 됐다.

청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가장 두려워하고 또 취약한 부분은 네트워크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지만 언제 어떻게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실현이 어렵다.

써니는 이처럼 사회에서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젊은 세대가 꾸준히 개입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적인 과정 설계부터 현장 검증까지 교육을 제공하고, 다양한 멘토나 관련 기관과의 연결은 물론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도 담당한다. 현재 Sunny는 프로그램을 세 가지로 확장해 운영하고 있다. 써니 스콜라(Sunny Scholar)에선 청년들이 사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써니 글로벌(Sunny Global)에선 다국적 학생들이 비영리 스타트업을 조직해 지속 가능 목표에 관한 문제를 해결한다. 또 써니 베트남(Sunny Vietnam)은 베트남 하노이를 거점으로 현지 학생들이 자국의 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기업은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줌으로써 미래형 거버넌스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청춘발산마을
한국은 1990년대에 접어들며 흔히 ‘도넛 현상’이라 불리는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기 시작했다. 일거리를 찾아 도심으로 인구가 몰렸고, 젊은이들이 떠나며 지방의 작은 마을들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중 하나가 광주광역시의 발산마을이다. 1970~1980년대 당시엔 방직 공장 여공들로 붐비던 지역이었으나 마을의 생계 수단이던 방직 산업이 사양 산업이 되며 젊은이들은 떠났고, 어르신들만 남았다. 텅텅 비어 버린 빈집과 오래된 공장들, 세월의 흐름 속 흔적만 남아 버린 마을. 더 이상 발산마을에선 젊은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던 곳이 현재는 새로운 청춘들이 자라는 푸른 마을로 탈바꿈했다. 지금의 ‘청춘발산마을’이다. 2015년 현대자동차그룹과 사회적 기업 공공프리즘은 광주광역시와 서구청,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광주광역시를 둘러싼 다양한 기관들과 거버넌스로서의 대안 마을을 모색한 결과다. 낙후된 발산마을을 변화시킬 방법으로 첫 번째 택한 것은 ‘컬러아트프로젝트’였다. 마을이 갖고 있던 색깔들을 재배치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낡은 담벼락과 공터는 주민들의 참여로 젊은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글귀와 다양한 벽화들로 채워졌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는 나의 열정을 쓰다듬어 준다.” 이곳 청년들이 꾸던 꿈들이 글로 살아났으며, 발산마을은 체조 선수 양학선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광주시 서구청에서 마을의 공가와 폐가를 한두 채씩 매입하기 시작했고 그 공간을 현대차의 예산 지원을 통해 리모델링했다. 커뮤니티 공간이 생기자 사람이 모였고, 사람이 모이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발산마을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점점 많아졌고, 몇몇 어르신들만 오가던 평상에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개선 사업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재개발을 원하는 마을 주민들은 지역 재생 사업에 반대하기도 했다. 수개월간 이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한 끝에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는 발산마을 주민들을 새로운 커뮤니티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지역의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2018년, 청춘발산마을의 월간 평균 방문자 수는 150명에서 6000명으로 증가했고 발산마을의 고질적 문제였던 공실률도 약 36퍼센트 감소했다. 사업 시작 전에는 대부분 고령 인구로 구성되어 있던 입주 팀도 12개의 청년 입주팀이 더해지며 활기를 더했다.[11]

지금은 발산마을의 청년과 지역 주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함께 반상회를 열고 청년들의 공간에 어르신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청년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개발한 음식들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밥상공동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년들이 지역 주민들의 집에 찾아가 함께 식사도 했다. 처음엔 청년들을 외부인으로 느끼던 어르신들이 이들을 받아들이며 하나의 공동체가 됐다. 현재 청춘발산마을엔 카페, 식당,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가게들이 운영되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이처럼 기업과 아티스트 집단, 관, 주민이 함께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활기 넘치는 공동체 마을이 탄생했다.

대웅제약과 아름다운 재단, 꿈틀꿈틀 놀이터
신나게 놀고, 건강히 성장해야 하지만 놀이터의 시설이 부족해서 혹은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특히 장애 아동들에겐 좁은 계단, 좁은 도로, 좁은 화장실 등 공공 놀이터를 이용하기까지 제약이 많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의 6만 개 놀이터 중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10개도 안 됐다. 그러다 2006년, 대웅제약은 ‘무장애(barrier-free) 놀이터’ 건립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놀이 시설물들의 구조가 단순하다는 점에서 비장애 아동이 뛰어노는 일반 놀이터만큼 대중적인 놀이터의 역할을 하진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공공 공간에는 세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물리적 장벽’은 장애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활동할 때 겪는 환경·물리적 방해다. ‘태도의 장벽’은 장애인의 사회 활동과 참여를 가로막는 사회적 편견, 차별 등이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장벽’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며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어려움이다. 이 중 첫째, 물리적 장벽을 해소하고자 대웅제약은 ‘웃음이 있는 기금’, 아름다운 재단은 ‘차별1%기금’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등과의 거버넌스를 통해 2015년 1월 국내 최초로 무장애 통합 놀이터인 ‘꿈틀꿈틀 놀이터’를 만들었다.[12]
꿈틀꿈틀 놀이터 ⓒ아름다운재단
처음 기획 단계에선 약 1년간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뒤엔 기존 놀이터와 무장애 놀이터를 구분하지 않는 독일의 놀이터들을 답사했고, 공개 세미나와 워크숍 등을 통해 학부모 의견을 반영하며 무장애 놀이터 디자인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그 결과 꿈틀꿈틀 놀이터엔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모래 대신 탄성 바닥재가 사용됐고 휠체어를 타고 즐길 수 있는 회전 놀이 기구와 안전벨트가 부착된 그네 등을 설치했다. 꿈틀꿈틀 놀이터는 현재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해 있다. 13개의 안전한 놀이 시설로 이뤄져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첫 번째 놀이터가 됐다. 아름다운재단은 2016년 꿈틀꿈틀 놀이터를 만든 경험과 정보를 정리해 ‘무장애 통합 놀이터 매뉴얼’을 만들었고, 이어 2023년엔 ‘무장애 실내놀이터 매뉴얼’을 제작했다. 재단은 실내놀이터 건립과 무장애 놀이 키트 개발, 놀이 워크숍 등 무장애 놀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다른 지역의 놀이터 사업에도 좋은 본보기가 됐으며 현재 경기 수원시, 제주시 등 전국 곳곳에서 무장애 통합 놀이터가 생겨나는 추세다.
[1]
이중대, 〈‘착한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진짜 힘은 직원들에 있다〉, THE PR TIMES, 2018.7.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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