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렌 쇠렌센(Søren Sørensen)은 1901년에 이 연구소의 화학 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맥주를 양조하는 동안 효소가 활성 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르홀트의 말이다. “효소는 맥아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꿉니다.
[2] 이 과정을 통제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쇠렌센은 양조 과정에서 맥아를 으깰 때 추출되는 맥아즙(wort)에 산(acid)을 첨가하면 효소의 활성이 증가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산을 지나치게 많이 첨가하면 효소의 활성이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최적의 기준점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효소를 활성 시키는 데 필요한 완벽한 산성도를 알아내야 했던 거죠.”
1890년대에 라트비아의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는 전극을 사용해서 어떤 용액에 들어 있는 수소 이온의 수를 측정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쇠렌센의 위대한 업적인 이 시스템을 사용하기에 간편한 크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기법은 산이 물과 결합하면 수소 이온을 방출한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참고로 양조 과정에서도 산과 물이 만나게 된다. 반면에 동일한 조건에서 알칼리 화합물은 수소 이온과 결합한다.
[3] 그리고 1909년에 그는 드디어 ‘음의 로그(negative log)’를 이용해서 이러한 농도를 측정하는 데 필요한 방정식을 알아냈다. 그는 이 계산식을 ‘수소의 힘(power of Hydrogen)’이라고 불렀다. 때로는 이것을 ‘수소의 잠재력(potential of Hydrogen)’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줄여서 pH 지수라고 부른다. 현재 pH 지수는 세계 공통의 과학 표준이다.
pH 지수의 범위는 0부터 14까지이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산성이 강하고, 높을수록 알칼리성이 강하다. 물은 중성이며 pH 지수는 7이다. 이 수치는 로그(log) 단위이기 때문에 단위가 1만큼 바뀔 때마다 그 세기는 10배씩 변한다. 즉, pH가 3인 물질은 pH가 4인 물질보다 산성이 10배이고, pH가 5인 물질보다는 산성이 100배인 것이다. 쇠렌센이 만든 이 척도의 미덕은 그토록 복잡한 계산식을 너무나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이걸 가르칠 정도로 단순하다.
사람의 혀는 pH를 민감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는 특히 중성(pH 7) 이하의 범위인 산성을 감지하는 데 뛰어나다. 아보카도와 레몬을 비교해 보자. 아보카도의 pH는 약 6.5이고, 레몬의 pH는 약 2.3이다. 우리는 그 차이를 쉽게 느낀다. 좀 더 정확한 측정법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리트머스 시험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종이를 산성인 식초에 담그면 빨갛게 변하고, 알칼리성인 암모니아수에 담그면 파랗게 변한다. 중성인 물에 넣으면 보라색으로 변한다.
“쇠렌센은 칼스버그의 맥아즙에 대한 최적의 pH는 5.5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르홀트의 말이다. “산을 더 넣거나 그 양을 줄임으로써 최적의 기준점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칼스버그의 맥주가 병이나 케그(keg)에 주입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pH 기준 수치가 4.1로 내려갔다. 다른 스타일의 맥주들은 서로 다른 pH를 갖는다. 예를 들어서, 벨기에 일부 지역의 특산품인 사우어(sour) 맥주의 pH는 3.2 정도로 더 낮다.
야콥센은 양조업계의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칼스버그연구소를 설립했던 의도는 그 자신의 맥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맥주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표를 위하여 이 연구소에서 수행한 모든 연구는 일종의 오픈 소스(open-source)로 간주되었다. pH 지수는 전 세계의 모든 양조업자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만약 대영 맥주 축제가 열리는 8월에 올림피아 전시장을 방문하게 된다면, 여기 참가한 어느 업체에게든 한 번 물어보라. 그들은 pH 지수를 매일 사용한다고 말할 것이다. “야콥센은 맥주 자선가로서의 지위를 매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하르홀트는 말했다.
이러한 자선 정신은 pH가 단순히 양조업자의 맥아 통을 넘어서 훨씬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pH 지수는 더욱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의학에서는 체액을 검사하기 위해 이용한다. 예를 들어 혈액의 pH 지수가 7.35부터 7.45까지인 경우를 정상 범위라고 판단한다. pH 지수를 통해 신장이나 간 기능의 부전, 당뇨, 요로 감염 등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농업, 해양학, 배터리 설계, 식수 처리는 물론이고 선체의 보호나 항공기 외부의 부식 방지 등 pH 지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쇠렌센은 노벨 화학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열 번 이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노벨 화학 상을 수상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당시 그의 동료였던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Emil Christian Hansen) 역시도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 양조업계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pH 지수의 발견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3. 맥주 생산의 혁명, 효모
“1880년대 후반은 효모를 비롯하여 미생물학 분야 전체를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르홀트의 말이다. “파스퇴르는 음료 산업에서 살균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양조업자들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활성화된 무언가가 관여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맥주를 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크리스티안 한센은 그전에 이미 박물학 분야의 학위를 취득한 상태였다. 그래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쓴 〈비글호 항해기(Voyage of the Beagle)〉의 덴마크어 최초 번역본을 펴내기도 했다. 맥주 애호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다. 1877년, 한센은 당시 급성장하던 미생물학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막 새로운 연구소를 설립했던 야콥센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한센은 남은 인생을 모두 야콥센의 양조장에서 몸담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파스퇴르의 연구에 매료되었다. 한센에게는 맥주에서 발견될 수 있는 미생물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한센은 맥주를 변질시키는 원인이 단지 박테리아만이 아니라 양조장의 효모를 감염시키는 야생 효모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야생 효모가 일단 양조장에 침입해 들어오면 맥주는 계속해서 상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야콥센은 그를 연구소의 생리학 과장에 임명했으며, 한센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착수했다.
한센은 칼스버그에서 원래 보유하고 있던 효모 변종이 독일 뮌헨 근처의 슈파텐(Spaten) 양조장
[4]에서 40년 전에 들여온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그곳을 찾아가서 신선한 시료를 얻어 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완전히 순수한 샘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현미경의 슬라이드에 효모 용액을 한 방을 떨어트렸다. 그러고 나서 용액 한 방울에 얼마나 많은 효모 세포가 있는지를 세었다. 만약 거기에 30개의 세포가 있다면, 그는 원래의 용액을 30배로 희석했다. 즉, 희석된 용액 한 방울에 평균적으로 단 하나의 효모 세포만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 용액 한 방울은 순수한 것이고, 그 한 방울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효모를 배양할 수 있었다. “한센은 완벽하며 동일한 효모 샘플을 생산하는 방법을 발견했던 겁니다.” 하르홀트는 말했다.
그런데 그는 이 연구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1883년에 칼스버그가 만들어내는 맥주들이 하나둘씩 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콥센은 “효모 오염이 내 비즈니스를 죽이고 있다”라며 절망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센이 구원 등판을 했다. 슈파텐 효모의 새로운 샘플을 연구하던 한센은 칼스버그에서 40년 동안 존재해 온 효모가 사실은 슈파텐의 오리지널 효모 및 그것으로 위장한 야생 효모가 섞인 잡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위장한 야생 효모를 별도로 분리하고 그것으로 맥주를 만들어 보았다. 이를 통해 칼스버그의 맥주 맛을 해치는 것은 위장 효모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의 추적을 통해서 그 야생 효모는 인근 과수원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슈파텐의 오리지널 효모에 양조장의 이름을 따서 사카로미세스 칼스베르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고 새롭게 명명했다. ‘칼스버그 1호 효모’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희석-정화 기법을 활용해서 이 효모의 순수한 버전을 분리해냈다. 이를 이용하여 그는 오염 없는 양조를 재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1883년 11월 12일, 오염되지 않은 최초의 맥주가 빚어졌다. “효모와 pH에 관한 칼스버그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맥주 역사가인 프로츠의 말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연구 덕분에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연중 내내 맥주를 양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야콥센은 한센의 연구가 전 세계의 맥주 생산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양조업자들에게 무료로 샘플을 보냈다. 그는 또한 한센이 효모를 증식시키기 위해 고안한 칼스버그 용기 또는 플라스크의 세부 정보도 제공했다. 불과 몇 달 만에 맥주의 변질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이 효모가 라거 맥주에 완벽한 이유는 그것이 깨끗한 필스너의 풍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하르홀트의 설명이다.
이제 우리는 효모 배양균과 양조 설비가 매우 쉽게 오염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자칫하면 형편없는 맥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때로는 브레타노미세스(Brettanomyces)라는 야생 효모 때문에 독특한 ‘말 안장(horse saddle)’ 냄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맥주를 마실 때 그 누구도 맡고 싶지 않을 냄새다. 다시 말해서 칼스버그 1호 효모를 비롯하여 다른 여느 맥주 효모들은 깨끗한 종균으로부터 배양되어야 한다. 깨끗한 설비는 필수적이다. “살균이 차이를 만듭니다. 좋은 양조업자와 나쁜 양조업자 사이의 차이는, 나쁜 양조업자가 아주 가끔씩만 좋은 맥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르홀트의 일갈이다.
1888년이 되자 스칸디나비아의 거의 모든 주요 양조업자들이 칼스버그 1호 효모를 사용했다. 1900년경에는 유럽의 나머지와 북아메리카, 러시아로도 이것이 퍼져 나갔다. 발효 전문 과학자들과 양조업자들, 그리고 심지어 제빵업자들까지도 순수한 효모 변종을 분리하는 한센의 기법을 배우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