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지나며 게임 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남들과 다른 시도, 방향에 집착했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들이 아타리 쇼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카드는 눈앞에 보이는 한계를 깨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도 앞에는 더 나은 개발 환경과 수많은 플랫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광고나 마케팅 방식이 자리 잡기 이전이었던 1990년대, 게임을 홍보할 수 있는 건 게임 그 자체밖에 없었다. 성공하기 위해 게임은 더 자극적으로 변했고, 더 선정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모탈 컴뱃〉과 〈둠〉은 시대를 가로막고 있던 관념을 부순 사례였다. 이들은 게임 산업에 새로운 규칙을 도입해 산업 전체의 부흥을 이끌었지만, 한편으로는 잔혹하고 선정적인 게임이 범람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레저슈트 래리〉의 등장은 미국 성인 게임 다양화의 포문을 열었고 〈동급생〉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기반을 마련, 지금의 하위문화 탄생에 이바지했다. 새롭게 열린 온라인 게임의 시대는 게임의 재미와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안겨줬다. 범죄 게임은 과도한 폭력성에 대한 도덕적 경각심을 이끌었고, 잔혹한 연출의 공포 게임, 플랫폼에 맞춰 변화한 도박성 게임의 등장은 새로운 세일즈 포인트의 탄생이자 논란의 시작이었다. 게임 산업은 1980년대보다 빠르게 진화했고,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자극이 돈이 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게임을 즐기게 된 이 시기, 새로운 규칙은 산업 전체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더 잔혹하게, 더 살벌하게 〈 모탈 컴뱃 〉
1980년대 말 게임 산업은 자극을 찾아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우주 전쟁으로는 눈 높은 유저들의 지갑을 열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확실한 차별성이 필요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폭력성과 선정성이었다. 1992년 8월 아케이드 게임으로 출시된 격투 게임 〈모탈 컴뱃(Mortal Kombat)〉은 폭력성 논쟁의 시작이었다. ‘캡콤(CAPCOM)’의 〈스트리트 파이터2(Street Fighter 2)〉가 나온 지 1년 조금 지난 시점에 등장한 이 게임은 개발사가 조심하던 일종의 선을 차분하게 ‘페이탈리티(Fatality)’
[1]해 버린다. 스타일도, 게임성도, 보이는 모든 부분을 말이다.
닌텐도의 패미컴은 아타리 쇼크 이후 위축된 북미 게임 시장을 장악했다. 당시 닌텐도는 논란을 피하고자 신체 훼손이나 죽음 등의 자극적 요소가 담긴 게임을 출시하지 않았다. 잔혹한 게임들은 아케이드 게임으로는 계속 나왔지만, 거실을 장악한 패미컴으로는 이식될 수 없었기에 애초에 개발조차 시작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개발자 에드 분(Edward John Boon)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에드에게 게임 개발은 하나의 창조였다. 창조 행위에 제한이 없듯, 게임 개발도 그래야 했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든든한 친구 존 토비아스(John Tobias)와 함께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에드는 개발팀과 함께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빅 트러블(Big Trouble)〉부터 동양을 다룬 코믹스와 서적을 탐독하며 홍콩과 중국, 일본의 고대 문화와 무술을 연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수많은 필멸자(Mortal)가 영원히 싸우는(Combat) 동양풍의 아웃 월드(Out World)다. 차별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탈 컴뱃〉은 인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와 차별화를 하기 위해 ‘실사 모션 캡처’ 방식을 도입한다. 움직임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찍고, 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이었지만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존이 말했다. “완벽한 승리를 느끼게 해줄 순 없을까?” 격투 게임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승리하는 완승(퍼펙트) 같은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나온 질문이었다. 에드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 맞아. 완벽한 승리… 상대방을 완전히 보내 버리는 방법을 도입하자.”
에드는 세 명의 팀원을 불러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했다. 승패가 결정된 후 상대방을 죽일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기술을 비밀처럼 감춰 둔다면 유저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 기능이 바로 ‘페이탈리티’였다. 개발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게임성에 대한 업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스트리트 파이터2〉에 익숙한 유저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모탈 컴뱃〉에 동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잡지에 상대방을 완전히 보내 버릴 수 있는 비밀 기술의 존재가 드러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한 유저들의 발걸음이 기기 앞으로 몰리며 순식간에 화제작에 올랐다. 페이탈리티 기능 덕분에 〈모탈 컴뱃〉은 없어 못 팔 정도의 게임이 된다. 하지만 곧 페이탈리티는 여러 단체의 표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