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아이템들은 비슷한 사업 계열이었나?
전부 달랐다. 모바일 앱이라는 공통점뿐이었다. 실패가 거듭되니 마음가짐도 점점 바뀌어 갔다. 그전에는 이런 거 좀 한번 해볼까? 이거 좋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러다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어떤 것을 해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 고민한 끝에 논의된 것 중 하나가 ‘간편 송금’이라는 영역이었다. 이때부터 핀테크로 닻을 올렸다. 간편 송금 문제를 혁신한다면 큰 성취겠다, 대박이겠다 이런 기대감으로 몰입했던 것 같다.
당시 핀테크의 어떤 가능성을 봤냐고 한다면 글로벌 사례였다. 미국은 당시 벤모(Venmo)라든지 스퀘어사의 캐시앱(Cashapp)이라든지, 이미 송금과 결제 영역에서 혁신 사례가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서비스로 커가고 있었다. 한국에도 분명히 금융 영역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트렌드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토스는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거둔다. 월 이용자 수가 1500만 명가량으로 국내 금융 앱 중 1등인데 주 고객은 20~30대다. 처음부터 이들을 겨냥해 전략을 세웠나.
20~30대만을 겨냥한 적은 없다. 그냥 금융 하면 토스를 떠올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것에 가까웠다. 금융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개선해 베니핏(이익)을 주면 그러한 인식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초기 타깃과 확장 전략은 핀테크 사업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은행들과 연동을 해야 하는데 초기엔 은행들이 연동을 잘 안 해줬을 거 아닌가. 특히 큰 은행들이 그랬다. 처음에 가까스로 기업용 은행 서비스인 펌뱅킹(firm banking)을 기업은행과 연계했고 그다음에 부산은행, 경남은행 이렇게 연계를 하면서 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해당 은행들의 고객을 타깃으로 삼았다. 일례로 울산에 있는 유니스트(UNIST)라는 대학교가 경남은행을 썼는데 그러면 거기 학생들은 다 경남은행 계좌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러면 유니스트에 가서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식으로 이용자를 모았다. 즉, 전략을 갖고 20~30대를 겨냥했다기보다는 고객이 있는 곳을 겨냥한 것이다.
물론 20~30대 위주로 먼저 성장한 건 맞다. 서비스 초기, 토스의 서비스에 훨씬 더 열광한 건 20~30대다. 당시 인터넷 뱅킹의 송금은 액티브엑스(ActiveX)도 설치하고 공인 인증서도 깔아야 하는 등 무려 8~9단계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이걸 세 단계로 줄였다. 이런 간편함이 20~30대에 훨씬 더 빠르게 소구됐다. 송금을 주로 많이 하는 게 20~30대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 20대 인구의 85퍼센트, 30대의 72퍼센트, 40대의 57퍼센트가 토스 이용자다.
젊은 층을 타깃한 이벤트가 많기도 했다.
초기의 이벤트를 모아 보면 20~30대의 여러 요소가 섞인 복합물 같기도 하다. 구전 마케팅 방식인 리퍼럴(referral)이 주효했고 공유하기 좋은 형태의 이벤트
[2]가 많았다. 아무래도 젊은 층이 훨씬 더 반응하는 이벤트였는데 그게 곧 모바일에 더 적합한 형태기도 했다. 아무래도 메인 서비스인 간편 송금이 젊은 층에 호소력이 있으니 이벤트 역시 그걸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자연스레 서비스를 확장하다 보니 서비스마다 주요 이용 연령도 다양해졌다. 토스 증권, 토스 뱅크, 토스 페이먼츠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30~50대가 많이 쓰지 않겠나. 이렇게 서비스 확장이 연령의 다양화로 이어지며 성장하는 것도 토스에서 나타난 하나의 경향성이다.
성장통과 캐시 버닝
간편 송금으로 출발한 토스는 우리나라 핀테크 분야에서 단연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모바일인덱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스마트폰 사용자는 약 1300만 명이며 1인당 월평균 사용일은 14.8일로 나타났다. 토스는 간편 송금 이후 2021년 3월엔 토스 증권, 같은 해 10월엔 토스 뱅크를 출시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현재는 주요 뱅킹 서비스 제공자인 카카오뱅크, KB스타뱅킹, 신한 쏠, NH스마트뱅킹보다 많은 사용자를 유치하며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토스의 간편 송금 서비스를 지금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업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토스가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 단지 어떤 기업이 서비스 하나를 론칭한 것이라고만 평할 수 없는 이유다. 그 과정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 진정한 개척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토스는 그간 가시밭길을 걸었다. 첫 번째 난관은 서비스를 론칭한 2014년에 찾아왔다. 당시 은행 자동 출금 서비스CMS를 개인 간 송금에 이용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서비스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CMS는 단일 접속만으로 전체 거래 은행의 펌뱅킹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은행을 거치지 않은 개인 송금에 이를 허가받는 건 도전적인 과제였다. 결국 토스는 서비스를 폐쇄해야 했다. 관련 라이선스를 따는 데 드는 비용은 자본금 10억 원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선 핀테크 서비스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가는 길이 막힌 상황. 개척자 토스는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신대륙에 닿는 방법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우선은 핀테크라는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가고 이후 핀테크 비즈니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필요성을 강변하는 데 집중했다.
2019년 5월 23일에 열린 ‘코리아핀테크위크 2019’에서 강연자로 나선 이승건 대표의 발언에 당시의 생각이 녹아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보통 기업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토스가 폐쇄된 1년 동안의 이야기도 전했다. “1년 넘게 규제 개선 요청과 핀테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다. 그 결과 2015년 1월 청와대에서 직접 대통령께 업무 보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날을 계기로 여러 규제가 풀렸다.”
[3] 실제로 토스가 핀테크 서비스의 실현 가능성을 선보이자, 후발 핀테크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핀테크 불모지에서 핀테크 성장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토스의 송금 서비스는 CMS 방식이었기 때문에 은행이랑 제휴를 맺어야만 서비스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규제는 해제됐지만 금융권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은행과 제휴를 맺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서현우 CSO가 밝힌 것과 같이 펌뱅킹의 경우 IBK은행을 시작으로 부산은행, 경남은행 등 지방은행과 먼저 제휴를 맺었다. 다행히 국민은행과 제휴 이후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소비자와 투자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졌다. “토스해”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토스의 성장통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토스는 간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사용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지 않고 떠안아 사용자들이 증가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였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자본금도 그만큼 빨리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토스는 이러한 ‘캐시 버닝(Cash burning)’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서현우 CSO는 인터뷰에서 토스가 겪은 성장의 변곡점을 이야기하며 허들을 넘어선 비결로 ‘윈-윈 전략’을 꼽았다.
토스는 어떻게 허들을 넘었나
토스의 성장에 변곡점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
첫 번째는 우리가 구현하고자 했던 간편 송금의 방식이 합법으로 인정받았던 그 시점이다. 그게 2015년 초다. 그 일로 인해 토스의 간편 송금이 정식 론칭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간편 송금으로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됐던 순간이다. 처음 정식 서비스 론칭을 했을 때 새로운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아 한 1년 정도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 그 시간을 거치고 2016년 초에 갑자기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5년도에 전체 이용자가 30만 명이었는데, 2016년 1월에 30만 명의 새로운 이용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2월에 또 30만 명이 들어오면서 그때부터 매달 30만 명씩 성장이 시작됐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제품이 소구되는 좋은 마케팅 포인트들을 찾았던 게 주효했다. 성장이 멈춘 1년 동안 어떻게 하면 토스의 서비스들을 잘 어필해서 마케팅을 할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다양한 이용자 그룹에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그게 트리거(trigger)가 돼서 본격적으로 터졌던 게 2016년 1월이었던 거다. 그 지점이 또 하나의 변곡점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떤 마케팅 방법이었나?
음성 녹음 같은 마케팅이었다. 그게 갑자기 어떤 그룹에서 반응이 나오면서 엄청난 성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노하우를 가지고 온라인에서 소위 말하는 ‘타깃 마케팅’을 계속 성공시키며 성장해 왔다. 이전에도 우리가 우리의 서비스에 대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한 번 쓰면 계속 쓰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토스를 경험한 이용자들로부터 주변으로 “야, 토스 좀 써봐 정말 편해”라며 바이럴이 계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핀테크 분야가 불모지였던 이유 중 하나는 금융이 정부의 영향력이 큰 굉장한 규제 산업이기 때문일 터다. 토스의 서비스가 중단됐던 1년 반 사이 이를 뚫을 수 있던 비결은 뭔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마치 뭔가 비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당시엔 사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혁신은 윈-윈하는 모델이었다. 당시 은행들은 펌뱅킹이라는 것을 썼고 우리는 여기에서 더 간편하게 송금하고 결제할 수 있게 혁신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우리 서비스를 통해 추가적인 매출을 올릴 수도 있었다.
정부나 규제 관점으로 봤을 때도 핀테크가 해외 시장에서 혁신적인 파급을 일으키고 있었고 이를 선도하는 기업들도 있었기에, 정책적으로 우리를 서포트 해주는 물결을 만들고자 했다. 이렇듯 이해 당사자 간 대립하는 구도가 아닌 윈-윈하는 구도로 사업을 이끌어 온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 더해 국민이 원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니 이런 것들이 모두 맞물려 이뤄진 성과가 아닐까.
간편 송금의 경우 결국 주 파트너가 은행 아닌가. 은행이 공인 인증서나 OTP 등 추가적 장치를 요구한 이유 중 하나는 한 번의 사고가 크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일 거다. 이러한 안전성 담보가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 레퍼런스를 쌓는 게 너무나 중요했고 너무나 어려웠다. 처음엔 1년 넘게 거의 발로 뛰었던 것 같다. 대표가 직접, 혹은 그때의 팀원들이 은행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했다. “이런 걸 하려고 한다”, “이게 이런 이점도 있다” 등 지난한 설득의 과정과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두 개 은행들이 그 문을 열어 줬다.
송금 등 우리 서비스의 규모가 일부 은행들의 트래픽에 맞먹는 수준으로 퍼져가는 과정에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고 한 번 생길 법한데 안 생기네’ 하면서 레퍼런스와 신뢰가 조금씩 쌓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점 다른 은행들의 문도 열렸다.
그 과정에 왕도는 없었다. 처음엔 무작정 발로 뛰면서 한두 개 은행들을 설득시켰고, 그 은행들을 가지고 최대한 성장하면서 우리가 문제없다는 걸 증명해 냈고, 그 증명해 낸 결과들로 다시 또 설득하면서 은행을 다 우리 서비스에 붙인 것이다. 간편 송금을 전체 시중 은행에 연결하는 데 3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