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받기를 거부하는 70대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담당 의사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다 늙어서 죽지 않으려고 칼을 대는 것이 추하다”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하며 아들 부부의 눈치를 봤다. 팔순에 가까운 몸에 큰돈을 들인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통 없이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진의 끈질긴 회유로 수술을 받은 후, 그는 새 삶을 얻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노년의 욕망에 인색하다. 오래 살고 싶다, 젊어 보이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는 노인의 본능을 추한 것으로 취급한다. 더 나아가 노인다울 것을 요구한다. 나이에 걸맞은 옷차림과 말투, 세월에 순응하는 태도, 죽음에 대한 초연함을 갖추기를 바란다. 관록과 지혜를 겸비하고, 그것을 젊은이와 나누라고 한다. 하지만 노인의 욕망도 젊은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들이 늙기 싫고, 죽기 싫다는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낄지 모른다. 노화를 불가항력으로 단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늙어갈수록 노화를 둘러싼 갈등과 논쟁은 첨예해질 것이다. 언제까지 노인들에게 군말 없이 늙어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암을 치료하고픈 사람에게 운명을 거스르지 말라는 비난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더 젊은 얼굴, 가뿐한 육체로 여생을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두의 노년을 위해, 늙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엄보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