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동 작품을 대만에서부터 영국의 세인트 아이브스(St Ives)까지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 그러니까 전시·대여 계약, 보험, 포장, 운송, 선적, 통관, 설치 등은 모두 민감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작업이다. 모든 전시의 뒤편에는 지구 전체에 걸친 물류 산업의 거미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술 관련 기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공유하는 것은 이제는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렸다.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열렸던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전시를 놓쳤는가? 그렇다면 최근에 전시를 오픈한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으로 가면 된다. 2017년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에서 열렸던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의 전시를 놓쳤다면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Tate Britain Gallery)로 가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의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전시는 아부다비와 대만, 일본, 호주, 중국을 경유해 곧 홍콩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전시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많은 미술관들이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블록버스터 전시에 의존하고 있다. 그 비용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미술관들과 협약을 맺고 투어 전시를 하는 것이다.
유명 작품으로 채워진 대형 전시에 대한 수요도 크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물류 산업에 대한 수요도 강력하다. “일종의 군비 경쟁처럼 되어 버렸어요.” 어느 큐레이터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미술 시장의 과열은 이미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가장 최근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연간 총 매출액은 680억 달러(77조 4792억 원)에 달하는데, 2008년 이후로 10퍼센트 성장한 것이며, 2018년에만 4000만 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엄청난 수량의 작품이 경매장에서 구매자들에게로 넘어가고, 딜러들에게 갔다가 다시 경매장으로 가고 있는데, 특히 급속하게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상업적인 대형 아트 페어가 55개 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260개가 넘는다.
결국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작품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가치를 띠게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투어를 하게 되었다. 순수 미술 작품을 운송하는 일은 돈이 많이 들고, 전문적이며,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오래된 걸작들은 깨지기가 쉽다. 현대 조각 작품들은 부서지기 쉽거나, 때로는 정말 형편없이 제작되어 있어서 어디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중요성을 가진 유물을 다룬다는 극심한 긴장감까지 가해진다.
어쩌면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있다. 디지털 복제 시대에 원작의 진정한 ‘아우라’를 잠시라도 느껴 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진짜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을, 진짜 벽에 걸어 두고, 마치 작가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앞에 설 수 있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우리는 갈망한다. 예술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물론 보여지는 데 있지만, 투어는 제쳐 두고라도 그저 전시되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결국 위험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며, 어쩌면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컨저베이터(conservator·예술품 보존 전문가)의 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술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여’나 ‘제공’ 같은 단어가 정감 있게 들릴지는 몰라도, 마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 사이에서 스타플레이어를 트레이드하듯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2018년 7월 말,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서는 여름 전시가 끝나가고 있었다. 며칠 있으면 설치팀이 들어와서 15세기 베니스의 화가였던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를 주제로 하는 가을 전시의 준비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갤러리 벽에는 페인트가 새로 칠해지고, 맞춤형 장식장들도 들여오게 될 것이다. 1층 작업실에서는 목공 두 명이 새로운 액자를 조각해서 금박을 입히고 있었다. 전시장 바로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유쾌하기 그지없는 손님들은, 잠긴 문 뒤에서 전시 산업이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건물 깊숙이에 자리한 사무실에서는 수석 큐레이터인 캐롤라인 캠벨(Caroline Campbell)이 내셔널 갤러리의 샌즈버리 관(Sainsbury Wing)을 축소해 놓은 낡고 꾀죄죄한 모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형의 벽들에는 컬러로 인쇄된 작은 그림들이 블루텍 접착제로 붙어 있었다.
캠벨의 계획은 약 100점의 그림과 드로잉,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전시의 주요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자로부터 배송될 것이다. 이들 작품의 3분의 1은 영국에서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던 것들이다. 이듬해 1월 전시가 종료되면 그 그림들은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Gemäldegalerie)로 일제히 이동하게 된다. 엄청난 노고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 스케일로 미술관들끼리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것들이 움직이게 되죠.” 얼굴을 찡그리며 모형을 응시하던 캠벨이 말했다. 그러고는 작은 벽면을 따라 만테냐의 작품 모형을 몇 밀리미터 위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