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 짓기의 동역학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유대인의 금기 음식 목록을 분석해 특정 동물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밝혔다.[1] 유대인에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은 어떤 의미에서든 질서를 위반한 동물이다. 포유류는 새김질을 하고 발굽이 갈라져 있어야 한다. 낙타와 산토끼는 새김질은 하지만 발굽이 갈라져 있지 않아서, 돼지는 발굽은 갈라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아서 부정하다. 물고기라면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오징어와 같은 생물은 비정상이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동물을 나누는 도식에 정상이 아니면 오염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문화적 사실이 연계돼 혐오를 낳는다. 즉, 혐오는 기성의 질서를 강화하는 규칙이다. 변칙적인 것이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경계선을 위반하지 않고 순응하는 존재가 된다.
다르다는 것이 왜 혐오를 유발하는가? 진화론에서는 혐오 감정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2] 질병을 낳는 매개체인 병원균과 기생충 등 위협을 피하기 위해 혐오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실제로 맛이나 냄새를 통해 본능적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오염된 음식을 거부한다. 인간에게 혐오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은 더 광범위하다. 인간은 실제로 오염된 물질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질적인 대상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갖는다.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여성과 장애인, 이교도 등에 대한 혐오는 이들을 정상과 표준을 규정하는 지배 질서와 관련지을 때 나타나는 오염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구별 짓기는 지배의 한 방식이다. 기득권은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선을 긋고 차이에 가치를 매긴다. 우리를 그들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야 자원 독점, 지위 획득, 위험 회피와 같은 우리 집단의 이익을 유지하고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 집단을 더럽고 열등하며 병리적인 존재,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으면 우리 집단의 이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3]
실제 사회에서 어떤 지위가 더 이상적이고, 어떤 생활 양식이 더 고급스러운지 구분하는 일은 단순히 취향을 나누는 활동이 아니라 상층의 우월함을 하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전략이다.[4]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계급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구성물이더라도 차별로 전환될 수 있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와 존 스콧슨(John Scotson)은 저서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에서 상징적 경계를 통해 지배와 차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이들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영국의 윈스턴 파르바(Winston Parva) 마을은 인종, 직업, 소득, 지위, 계급이 유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노동자 거주 지역이다. 전체 인구가 10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임에도 기득권 세력과 아웃사이더 집단이 나뉘었고, 이방인에 대해서는 낙인찍기, 모욕 주기 등의 행위들이 벌어졌다. 기득권 집단은 자신들의 행위 규범과 생활 양식을 표준으로 규정하고, 아웃사이더 집단을 체계적으로 차별하고 있었다.[5]
엘리아스는 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거주 기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득권 집단은 새롭게 이주한 이방인들로 인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내집단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던 가치들이 무너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나누어 개인들을 구분하고, 잠재적 경쟁 집단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마을에서 집단을 가르는 거주 기간이라는 경계는 비록 자의적일지라도 집단의 고유한 가치를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기득권에는 이방인을 무시하고 차별할 권한을 주고, 아웃사이더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했다. 오염된 그들과 순수한 우리를 분리해 기득권을 지키는 것. 현실에서 혐오 정치가 나타나는 이유다.
상징적 경계가 자의적이라면, 지배 집단은 자신의 특권으로 인해 타자에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윈스턴 파르바 마을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덜고자 집단에 선(善)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했다. 이방인에 대한 혐오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과업으로 포장되었고, 차별주의는 견고해졌다. 차별은 기득권이 죄책감을 소거하고 내집단의 이익이나 우월한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6]
흥미로운 사실은 현실에서 상징적 경계가 주로 인접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는 특권 의식이나 우월감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다. 미셸 라몽(Michele Lamont)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 남성 노동자 계급은 전통적인 부르주아나 상류 계급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 지위가 비슷한 흑인 노동자 계급에게 사기꾼이나 범죄자라는 편견을 갖고, 백인이 그에 반해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자라고 묘사한다. 흑인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를 동료에 대해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반면, 백인 노동자들은 동정심도 없고 오만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7] 같은 하층 계급 내에서 인종에 따른 경계가 생성되는 것이다.
인접 집단에서의 구별 짓기는 하층 계급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상층 계급에서도 오랜 시간 부를 쌓은 전통적 부자와 벼락부자라는 경계가 생겨난다. 전통적 부자는 벼락부자가 천박하고 근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순수한 자신들과 구분하려 한다.[8] 구별 짓기는 우리 집단의 속성을 그들 집단보다 우월한 것으로 일반화하고 인정받으려는 행위다. 사람들은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열등한 존재를 지목하며 수많은 경계를 생산한다. 상층과 하층의 계급 대립은 희석되고, 새로운 경계를 통해 차별과 혐오가 작동한다.
너도나도 교육에 투자해 성공을 꿈꿨던 한국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인정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인정 획득 방식이 속물적 투쟁으로 유도되는 경향이 강하다.[9] 일정 정도 경제적 성취를 이룬 후에도 인정 투쟁은 누가 더 우위에 있는가를 지속해서 판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특권을 소유한 자는 갑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늘 갑과 을이 나뉘는 상황적 계층화(situational stratification)가 나타나고 갑은 을에 대해 갑질을 한다.[10]
이런 현상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경험이 적은 하층에서 더 두드러진다. 사회학자 전상인의 책 《편의점 사회학》은 하층 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층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 편의점은 대표적인 을들의 공간이다. 편의점에서는 본사 직원과 가맹점 주인, 손님과 알바생 사이의 갑을 관계가 형성되며 무시와 모욕 주기가 만연하다. 이들을 을의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본사의 의사 결정자들이지만, 편의점에서 의사 결정자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을들의 세계에서 부자는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이다. 차별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벌어진다.[11]
일상 속에서 순간마다 계층화가 발생하고 권력의 우열이 나뉜다. 우위에 있는 사람은 내가 같은 집단의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특권 의식을 지닐 수 있다. 지배 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허위의식은 근본적인 갈등 지점인 계급 간의 차별을 은폐한다. 오히려 차별은 같은 계급 안에서 미시적인 경계를 따라 심화된다.[12] 권력의 열세에 있는 사람은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수치심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에 의해 개인의 상처로만 남는다.
경계는 곧 적대감의 심화를 의미한다. 서로의 차이가 정상과 비정상, 우등과 열등, 순수와 오염, 선과 악의 문제로 변환되어 버린다. 더러워진 것을 깨끗이 치우고자 하는 것처럼 열등하고 오염된 그들을 분리하려는 행위가 혐오의 운동 법칙이다. 혐오는 특정 집단이 희소 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막는 것을 넘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13]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온전한 동료로 대우받을 수 없고, 기회와 부, 권리와 존중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은 분배 요구로부터 사회적 존재 가치, 정체성에 대한 인정 요구로 확장되면서 복잡해진다.
경계 밖의 마이너리티
혐오는 언제나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늙은 여성이나 집시, 소수 종교 집단이 혐오 대상이었고, 일본 사회에서는 재일 한국인과 원폭 피해자가 표적이었다. 혐오의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나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다수 집단이 어디에 경계선을 긋는가에 따라 혐오의 대상은 역동적으로 구성된다. 이 경계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거나 불안감이 압도하는 순간에 더 강화되고, 더 작은 공간으로 제한되며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 문제와 연결되는 특성을 보인다.[14] 생존 불안이 높아지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열등한 타자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혐오가 더 확산되는 이유다.
불안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왜 혐오를 택할까? 힘들수록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이에 대한 사회 심리학의 해석은 비교적 명확하다. 자기 집단이 무시당하거나 저평가된다고 느낄 때,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외집단 폄하이기 때문이다.[15]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불안은 사회로부터 퇴출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동반하며, 경제적 결핍을 넘어서 개인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위협한다.
하지만 계급 이동이 어려운 현실에서는 정체성을 고양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손상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무수한 경계를 만들어 내며, 경계선 밖의 존재인 마이너리티(minority)의 생산을 가속한다. 마이너리티는 흔히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로 묘사된다. 소수자란 단순히 수적으로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권력에서 열세에 있는 집단을 말한다.[16] 마이너리티는 사회의 다수 집단들에 의해 무시, 편견, 증오의 대상으로 선택되고,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17]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누가 마이너리티로 규정되며, 어떤 환경이 마이너리티의 생산을 가속화하는가? 강원대학교 사회통합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는 한국 사회의 다중 격차 및 갈등 현황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 조사를 매해 진행하고 있다. 먼저 자산, 성별, 연령, 결혼, 외모, 신체, 취향 등의 차이로 인해 편견의 대상이 되는 집단을 구성한다. 일반인에게 이렇게 구성된 집단의 목록을 제시하며 ‘당신이 속한 모임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불인정(수용 불가)을 10점으로, 인정(수용 가능)을 1점으로 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2017년까지 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는 빈곤, 비혼, 중독, 취향, 열등을 경계로 출현하고 있었다.[18] 주목할 점은 전통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빈민이나 장애인, 미혼모보다 마약 중독자, 알콜 중독자, 흡연자, 성 소수자, 오타쿠, 게이머 등 중독과 취향의 영역에서 생산되는 마이너리티를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월등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은 뚱뚱한 사람과 못생긴 여자, 키 작은 남자나 취업 포기자 등 주관적 선호의 영역에서 차별 대상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는 객관적인 차이가 아니라 외모, 신체, 취향 등과 같은 주관적 영역에 가치를 매기거나,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병리적으로 바라보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마이너리티가 생겨나는 것은 불안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차별 심리는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고 느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의 불안은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통제력을 무력화하고 있다. 삶에 대한 통제감이 줄어들면 낙관적 미래를 상정하기 어렵다. 자신의 취약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동시에, 주변의 위협도 실제보다 더 강하게 느낀다.[19] 결국 개인은 타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며 자기 구제를 위한 생활에만 몰두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공적 토대를 늘리기보다, 개인이 삶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경영하는 기업가로 무장하기를 독려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감정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투자 대상이나 소득의 원천으로 바라본다. 경쟁의 내면화는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노력이나 운, 과제의 난이도와 같은 외부 요소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 모자람과 같은 내부 요소로 돌리게 한다.[20] 경쟁에서 도태되면 정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 타자를 폄하한다. 불안의 파괴적 효과는 마이너리티 차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삶에 대한 통제감이 낮을수록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이 강하게 나타났다. 또 경쟁의 내면화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취향, 중독, 열등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의 문제를 우열의 문제로 생각하고 차별한다는 것이다. 경쟁의 내면화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은 차별받아야 한다는 위험한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비만인, 열등생, 취업 준비생은 자기 관리의 실패자라서,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외부에서 유입됐기 때문에, 장애인과 노인은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차별할 수 있다.
다원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차이는 언제든 차별로 전환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잠재적 마이너리티는 더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급속한 기술 발전에서 뒤처진 사람, 취업 경쟁에 발목 잡힌 취업 준비생,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희생자의 유족, 독특한 기호를 가진 사람 등이 계속 전에 없던 마이너리티로 유입되고 있다.
다음 표는 한국 사회의 잠재적 마이너리티를 구성한 것이다. 가로축과 세로축은 더글러스의 집단-격자(group-grid) 모델을 참조했다. 집단은 사회가 개인 혹은 집단에 가하는 압력의 정도다. 집단 축의 수치가 높으면 경계가 제도화되어 있으며, 집단에 대한 공식적인 차별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집단 축의 수치가 낮으면 차별과 분리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만 있는 상징적 경계를 통해 작동한다는 뜻이다. 세로축인 격자는 마이너리티를 구분하는 경계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규모에 관한 수치다. 전체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계인지, 소규모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국지적인 경계인지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