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과 혐오 문법
“살女 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아카이브에 붙은 포스트잇 메시지 중 하나다. 한 남성이 강남역 인근 노래방에서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다. 트위터에 ‘강남역 살인 사건 공론화’라는 계정(@0517am1)이 만들어졌다. 반응은 빠르고 또 뜨거웠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수많은 추모객이 모였고 “여자라서 죽었다”거나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일 뿐”이라는 분노와 공포가 담긴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었다.
한편, 추모 게시판에는 이러한 여성들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이런 사건 하나로 여혐(여성 혐오)을 일반화하지 말라”거나 “한 인간쓰레기가 저지른 범죄일 뿐, 온 남성들을 매도하지 말라”는 문구도 있었다. 추모 열기를 조롱하는 화환도 등장했다. 화환에는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병사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붙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오랜 시간 온라인 공간에서 부글부글 끓었던 젠더 갈등이 발화점에 도달해 폭발한 사건으로, 젠더 이슈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여성 혐오와 미러링 전략으로 대변되는 온·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양성 대결 양상은 극단적인 혐오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누적된 젠더 갈등이 전쟁 양상으로 치닫게 된 시점은 디시인사이드를 거점으로 한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가 등장한 2015년이다.[1] 메갤 유저는 일베를 중심으로 확산된 온라인에서의 여성 혐오에 반격하고자 했다. 이들은 여성 혐오의 언어를 고스란히 되갚아 주는 미러링 전략을 택했고,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했다.[2]
메갤의 등장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여성 혐오와 관련이 깊다. 여성 혐오는 일베는 물론 한국의 여러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웹툰은 종종 ‘여혐 파문’이 일어나는 장이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뷰티풀 군바리〉는 초기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 작품은 여성 징병제가 도입된 가상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군인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무임 승차자인 여성을 처벌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군복을 입은 여성의 신체를 선정적으로 그리는 등 작품의 주제와 무관한 포르노 요소가 빈번하게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젊은 남성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리에 연재됐다. 남성이 군대 문제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젊은 남성들의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평가가 다수다.[3]
일베는 여성 혐오 담론 구조의 원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전시장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베가 여성 비하를 위해 사용하는 어휘는 혐오 그 자체다. 연구자 엄진은 33만 건 이상의 일베 게시물 중에서 14개 검색어를 통해 추출한 56개 글을 분석해 일베의 언어 전략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 여성을 혐오스럽게 묘사해서 배척하기, ‘○○녀’로 낙인찍어 비난하기, 긍정적인 여성상과 대비시켜 배제하기다.
온라인에서 통용되는 여성 혐오의 문법은 일베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여성에게 실제 범죄에 준하는 수준의 언어폭력, 인권 유린을 행사하는 형태가 있다.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혐오 발언을 남발하고, 욕설을 통해 수치심을 가지게 하는 전략을 쓴다.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 팰수록 맛이 좋다’는 과거의 차별적 속담에서 유래한 ‘삼일한(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의미)’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 모형은 ○○녀라는 조어를 통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치녀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소비와 사치를 일삼으며, 남성의 경제력에 기생하려는 속성을 가진 한국 여성을 칭하는 말이다. 김치녀에 비견되는 바람직한 여성상은 ‘탈김치녀’나 ‘개념녀’, ‘스시녀’다. 남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검소하고 순종적이며 예쁘기까지 한 여성상이다. 엄진은 이 역시도 이기적이고 드센 여성을 비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여성 혐오의 일환임을 강조한다.[4]
메갤의 담론 구조는 일베의 방식을 따른다. 이들은 일베 담론이라는 원본의 맥락을 이해, 의도적으로 패러디한다. 메갤에서 만들어진 ‘김치남’, ‘한남충’, ‘씹치남’, ‘개저씨’ 등은 ‘김치녀’, ‘낙태충’, ‘김여사’ 등의 일베 용어에 대응한 표현이다. 이들은 남성 커뮤니티에서의 맘충을 엄마가 없으면 밥도 못 먹는 ‘김치남’으로 뒤집고,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삼일한’을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패야 한다는 ‘숨쉴한’으로 패러디해 여성 혐오를 조롱하고 충격 요법을 구사한다.
일베와 메갤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은 청년들이 안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선 일베 문화는 남성 중심 커뮤니티는 물론 현실 공간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저질 언어가 다소 순화되어 나타날 뿐 한국 남성 일반이 공유하는 젠더 인식은 일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불신은 군 가산점 폐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남성은 보상도 없이 군 복무라는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데 여성은 혜택만 누린다는 피해자 의식이 여성에 대한 반감을 키운다. 군 가산점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에 따라 폐지된 시점이 1999년인데 지금까지도 역차별 담론이 생산되고 있다.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남성들이 군대에 간 동안 여성들은 스펙을 쌓을 시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남성이 다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는 박탈감이 여성에 대한 분노를 낳는다.
남성의 여성 혐오 기저에 있는 박탈감과 달리, 메갤의 감정 구조는 여성들의 공포다. 주간지 《시사IN》은 약 두 달여의 기간 동안 매갤에서 10건 이상의 추천을 받아 ‘개념 글’이 된 게시물 2만 7888건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이 느끼는 공포는 구체적으로 범죄 공포, 시선 공포, 결혼 공포로 나눌 수 있다.
한국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폭행, 성희롱, 모욕, 데이트 강간, 살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낀다. 일반적으로 성범죄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다. 여성들은 이런 현실에도 여성만이 성적으로 방종한 ‘걸레’라는 편견이나 비난에 시달리는 점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시선 공포는 남성의 시선에 노출되고 품평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다. 불법 촬영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불법 촬영 결과물이 유통되고, 이에 상처받아 자살한 여성의 동영상까지 ‘유작’이란 이름으로 퍼져 있는 현실에서 나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공유하고 있다. 결혼 공포는 시집살이와 가사 노동, 독박 육아 등에 대한 공포다.[5]
일베와 메갈 현상은 젠더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이들의 담론 구조는 혐오 문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청년 세대가 안고 있는 불안이 혐오로 전이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일베와 메갤의 표현 아래 있는 감정 구조는 남녀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성은 지위 상실과 청년 세대의 불안정에 대한 불안을, 여성은 안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혐오 문법으로 표출한다.
끝나지 않는 인정 게임
메갤의 등장은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고, 동시에 메갤은 두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하나는 이들의 언어가 미러링인가, 혐오의 악순환인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혐오의 언어를 빌려와 혐오에 대응하는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6]
현재 이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후자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우선 메갤이 내부에서 분열했다. 성 소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두고 운영진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성 소수자를 배척하고 오직 여성의 권리만을 생각하는 독립적인 페미니즘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워마드다. 워마드는 여성이 아닌 소수자와 연대하지 않는 페미니즘을 내세웠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아동 납치 계획 게시물 논란 등으로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논란은 막장의 아이콘이 일베에서 워마드로 옮겨 갔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워마드에 ‘페미나치(페미니즘과 나치즘의 합성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현재 상황은 워마드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 준다.
분열의 뼈대는 워마드의 극단적인 문법에 있다. 이들은 남성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한남’처럼 도덕을 무시하고 남성을 혐오한다. 남성 장애인과 성 소수자, 남성 연예인과 BL물(남성 동성 연인의 로맨스를 그린 장르)을 소비하는 여성에 대한 배척까지 포함한다. 기혼 여성도 워마드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가부장제에 안주하고 있으면서 래디컬한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워마드와 같은 입장은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도 논란거리다.
일례로, 홍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과 관련한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서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와 ‘곰’ 퍼포먼스가 등장했다. ‘재기하다’라는 표현은 성재기 전 남성연대 대표의 한강 투신 사건을 조롱하는 워마드의 은어이고, 곰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인 문을 거꾸로 든 것이다.
남성 정치인은 좌우 가릴 것 없이 혐오하며 여성 정치인은 좌우 상관없이 지지하는 것이 이들의 기본 입장이다. 안희정 전 충남 지사의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할 목적으로 만든 〈더러운 잠〉 전시를 옹호한 표창원 의원 등에 회의감을 느낀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킹혜’라 부르거나 대통령 탄핵을 ‘여혐 탄핵’이라 칭하기도 했다. 광복절에 문재인 탄핵을 내건 태극기 집회에 워마드가 참석한 것은 이와 같은 고유한 실천 논리에 기인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 차별 경험을 공유하며 결집했던 영 페미니스트와 진보 정당, 여성학자들은 이들과 선을 긋는 모양새다. 그러나 워마드를 둘러싼 논란은 낯설지 않다. 2010년 일베가 출현해 전성기를 구가할 때도 언론과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일베의 출현과 활동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그들의 감정 구조보다는 일베가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의 반인륜 행위가 집중 부각되며 사회에서 청소돼야 할 쓰레기로 인식됐다. 선량한 남성들이나 진보적인 지식인, 건전한 정치인, 올바른 언론이라면 일베와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자기 검열이 생겨났다.
워마드의 등장은 2000년대 이후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와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남성 중심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한국의 온라인 게시판은 20~30대 여성들의 외모나 행동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남성들의 놀이터로 쓰였다. 일련의 ○○녀 시리즈를 통해 남성들은 섹슈얼리티를 무기로 남성을 착취하는 존재,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허영심 많은 존재라는 왜곡된 여성상을 만들고 소비해 왔다.
이런 풍토에서 여성에 대한 경멸과 망신 주기가 정당화됐고, 여성들은 공적 공간이나 시민 사회에서 배제돼도 마땅한 존재로 규정됐다. 다만 일베의 여성 혐오 문법이 전통적인 차별주의와 달랐던 점은 피해자 남성의 정체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일베는 정치, 사회 영역에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여성들의 등장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는 약한 남성을 상정했다.[7]
여성 혐오는 일베의 출현으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뿌리 깊은 혐오의 역사를 거치며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각색되며, 소비되는 남성들의 콘텐츠였다. 김치녀에 대한 반감은 한국 남성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정서다. MLB 파크, 클리앙, 보배드림, 수컷닷컴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성 인권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서도 읽힌다. 이들은 남성이 돈을 더 많이 부담하는 데이트 문화, 남성이 집을 장만해야 하는 결혼 문화 등을 양성평등 시대에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잔재라고 해석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있고, 남성들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도 수컷닷컴에는 “서해 교전 당시 싸우다 전사한 장병들의 죽음은 월드컵 축제 속에 조용히 묻혔는데, 정신 질환자가 여성 한 명을 죽인 사건에는 난리를 친다”는 글이 올라왔다.[8]
한편, 메갤에서 워마드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출현한 영 페미들은 혐오 범죄와 성적인 시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고, 분노를 운동으로 전환해 여성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불법 촬영의 당사자가 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을 향해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라며 경고를 날리고,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다.
남성들의 디지털 하위문화와 영 페미니스트의 젠더 인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닮아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했고, 인터넷 하위문화의 언어에 익숙하며, 인터넷을 통해 젠더 문화를 학습한 세대로 극단적인 젠더 프레임을 구가한다는 점에서다. 이는 남녀 전쟁이 특히 청년 세대 내부의 현상임을 말해 준다. 양자의 혐오 문법은 이들의 존재를 악마화하고,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게 만든다. 미디어는 이들의 막말 퍼레이드에 포커스를 맞추고, 우려와 두려움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악마화되는 일베와 워마드의 극단적인 혐오 전쟁은 결이 다른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인정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