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2019년 이후 작성된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에서 가장 큰 노드면서, 가장 많은 연결망을 가지고 있고, 활발한 매개자이며 또한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큰 단어다. 많은 단어들이 ‘대전’과 직접 연결돼 있고, 대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페이지랭크식으로 말하면, 어떤 단어에서 ‘노잼 도시’ 이야기를 시작해도 결국 ‘대전’이란 단어를 쓰게 된다(‘대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전’ 주변에서 별도 모둠을 형성한 단어들은 ‘카페’와 ‘여행’, ‘예쁘’와 ‘사진’이다. 이 단어들은 일반적인 여행 이야기에 필요한 핵심어면서 대전을 여행한 얘기를 하기에도 필요한 단어일 것이다. 앞서 토픽 모델링을 통한 분석 결과와 유사하게, ‘노잼 도시’ 텍스트의 구조도 대전을 중심으로 한 대전 여행이 핵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밈을 실천했다. 그 덕에 대전을 방문하기도 했다. 대전이 난처하고 부끄럽고 웃기는 밈 덕을 본 것일까? 페이지랭크를 통한 주요 단어들의 연결망은 대전을 중심으로 다른 단어들, 일명 관광지와 관광·문화 콘텐츠들이 대전과 그저 1:1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대전과 성심당, 대전과 소제동, 대전과 수목원 등이 개별적으로 연결돼 있을 뿐, 보다 확장되고 복잡한 대전 방문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알만한 대전의 유명 장소들이 관계망 안에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전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연결된 별도의 관계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대전에 방문하긴 했지만, 대전의 여러 장소나 체험을 함께 얘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잼의 도시 대전’에 와서 여러 장소를 둘러보며 대전을 복합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성심당, 엑스포공원 등 한두 곳만 보고 떠난다고 추정할 수 있다. 확장성 없고, 짧게 머물며, 마치 특정 요소 하나만 소비하고 이를 블로그에 인증하는 듯한 대전 방문의 경향을 포착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 분석 결과는, 2019년 대전 방문의 해 이후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이미지, 즉 장소성을 소셜 미디어상에서 획득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 장소성 ‘노잼도시’는 ‘높은 휘발 가능성’과 ‘장소 상실의 위험’을 내포한다. 밈 때문에 사람들은 대전에 방문했지만, 이들의 장소 방문이 진짜 대전과의 관계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대전은 방문의 목적지로서만 있었을 뿐, 대전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느끼고, 자신만의 경험을 하고 느낌을 기억하는 과정은 텍스트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전의 어떤 지점을 찍고 오기 바빴던 것 같다. 그래서 사진이 중요했다. 그저 다녀왔다는 흔적만 남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블로그 유저들의 말 속에서 엄청나게 큰 자리를 차지한 ‘대전’이란 단어, 그 중심성은 마치 ‘아싸’를 백 명 알고 있는, 분투하는 ‘인싸’처럼 보인다. 그 크기의 ‘핵인싸’라면, 단어들의 연결망 안에서 확실하고 강력한 중심성을 진짜 가졌다면, 자신을 둘러싼 하위 연결망들이, 모둠들이 활성화돼 있어야 한다. ‘핵인싸’는 ‘인싸’를 여럿 거느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대전 주변의 단어들(대전의 장소들, 다양한 관광, 문화 활동들을 의미하는 단어들)은 대전만 바라보며 홀로 존재하는 부실한 네트워크를 가졌다. 자신 주변의 다른 단어들과 복잡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전의 중심성이 허약하고 위태롭다는 걸, 즉 대전은 진정한 핵인싸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대전의 지위 자체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대전을 여행한 이야기는 많지만, 대전에서 이들이 한 일은 다양하지 못하고 그저 산발적이고 단편적이다. 성심당 하나만 가보거나 중앙과학관, 소제동처럼 잘 알려진 곳을 ‘찍고’ 오면 그뿐이다. 대전 안의 여러 장소와 그저 1:1의 관계를 맺고 있는 대전은 그 고리가 끊어지면 언제든 중심의 위치를 잃을 것이다. 2019년 대전 방문의 해가 선포되면서 소셜 미디어 밈이 실제 방문으로 이어진 효과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휘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전의 여러 장소를 둘러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고 도시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 이를 기억하는 여행은 ‘예전 관광 스타일’이 됐다. 소셜 미디어가 삶의 여러 경험 방법과 내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소통 방식처럼, 여행도 즉각적이고 표현적이며 빠르게 진행된다. 밈의 실천이 곧 대전 방문이었으니, 대전을 방문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중요하다. 추상적이고 거대한 공간인 도시를 샅샅이 파고들거나 세심하게 볼 필요도, 그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물리적 장소들을 하나하나 엮어 완전체를 체험할 필요도 없다. 대표 상품 하나를 소비하면 다 산 것이나 다름없다. 대전의 어떤 것, 대전을 소비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떤 것 하나만이 중요하다. 그 요소를 소비했다는 걸 증빙하며 다른 유저들과 같은 걸 경험했음을 전시하는 것, 그렇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요즘 여행의 방식인 것이다. 이런 행태를 일본의 문화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Azuma Hiroki)는 ‘데이터베이스 소비’라고 불렀다.
관념적 공간인 도시는 잘게 쪼개진 ‘모에(Moe) 요소’로 쉽게 이해된다.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이 캐릭터에서 어떤 요소를 추출해, 자신들의 선호를 표현했던 것이 애초의 ‘모에’였다면, 이제는 그 역이 활발히 생성되어 소비된다. 이미 제시된 도시의 모에 요소를 소비하면 그 도시를 다 소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산에 간 사람은 해운대 해변 혹은 자갈치 시장 회를 소비하면 된다. 이는 부산에서 추출된 대표 특징이자 모에 요소다. 대표적인 요소 한두 개만 빠르게 소비하고 즉각적으로 사진을 전시해야 미디어 의례의 충실한 참여자가 된다. 노잼의 도시인 대전을 소비하기 위해서 방문했을 뿐이니 뜻밖의 장소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 성심당이라는 모에 요소,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노잼인 걸 확인한다는 것과 예쁜 사진을 찍어 여행을 증명한다는 확실한 목적이 있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정서나 경험은 만들어지지 못한다. 모든 도시에는 다양한 공간이 만든 장면과 사람, 사건이 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이 확실한 사람에게 이러한 도시의 다면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해운대와 회 센터로 부산을, 성심당으로 대전을 기억한다.
그래서 사실 성심당만 찾은 사람들은, 오히려 대전이란 장소와 더 멀어진다. 대전의 노잼을 찾아온 사람(방문자)과 대전에서 꾸준히 ‘유잼’을 발견해 온 사람(원주민)이 섞여 새로운 경험과 정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대전의 특징 하나만을 보고 찾아온 이들은 이런 기회를 마주하지 못한다. ‘대전이 노잼인’ 사람들과 ‘아니 왜 대전이 노잼이야? 이렇게 유잼인데!’라고 발끈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갈만한 곳이 없어서, 재미를 느낄 사건이 없어서 대전이 ‘노잼’인 것은 아니다. 장소성에서 파생되는 다른 관계와 체험, 감정 그리고 기억이 없을 때 대전은 노잼도시가 된다. 사람들이 장소로부터 새로운 감각을 체득하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의 특성을 발견하지도 못하므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재미’를 찾지 못한다. 대전을 찾은 이들에게 대전은 상실된 장소, 곧 의미 없는 곳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