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5화

여기는 왜 힙하지 않은가

어떤 재미가 있어야 ‘노잼’이 되지 않는 걸까? 어떤 매력을 가져야 대전은 ‘노잼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떠한 매력과 근사함을 생각하며 대전의 장소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힙’하고 ‘핫’한 곳이 대전의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대전의 매력과 재미를 찾아야 했다. 그곳이 대전의 매력적인 곳 혹은 장소성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어느 시대든 그 시절의 멋과 매력을 지칭하던 용어들이 있었다.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 유행이 되고 트렌드가 된다. 경제 호황의 시대엔 ‘X세대’가, 고도 성장이 멈춘 시절엔 ‘네티즌’과 ‘얼리어답터,’ 그리고 저성장이 고착화된 요즘엔 ‘덕후’와 ‘힙스터’[1]가 멋과 매력을 정의하고 주도한다.

힙한 장소와 핫한 장소가 어떻게 다른지 학술적으로 정의된 적은 없지만, 힙과 핫은 2010년 이후 등장한 취향 주체인 힙스터와 연계되면서, 따라 하고 싶은 소비 취향과 개성을 정의하는데 필요한 형용사가 됐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로 정의되는 ‘힙하다’[2]는 장소와 붙어 ‘힙플레이스’가 됐고, ‘핫플레이스’는 “다른 장소와 차별화된 독특성을 지닌 지역이나 장소”[3]를 의미하게 됐다.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는, 공식적인 사전정의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곳’이란 공통의 문화적 기호를 지닌다.

대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곳은 어디인지 소셜 미디어 텍스트를 분석해 확인했다.[4] 줄임말인 ‘힙플’과 ‘핫플’이 문화적 기호로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를 2017년 전후로 보고, 2016년 1월 1일부터 생산된 블로그 텍스트를 대상으로 했다.

검색 키워드는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 그리고 ‘힙스터’로 설정했다. 2016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수집한 블로그 문서 중 중복 문서를 제외하고 7772건을 대상으로 명사와 형용사 그리고 동사를 태깅했다. 광고성 단어 등 여러 형태소를 불용어 처리해 최종적으로 분석에 활용한 단어는 4만 1652개다.

 

힙과 핫은 카페에 있다


대전을 반드시 포함하면서 ‘힙플’ ‘핫플’ 그리고 ‘힙스터’를 언급한 블로그 텍스트에 많이 등장하는 상위권 단어들은 연도별로 살펴봐도 비슷하다. 2016년에서 2022년 8월까지 ‘카페,’ ‘사진’ 그리고 ‘맛있는’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텍스트 안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쓰임새를 보여 주는 단어의 무게감 TF-IDF을 비교했을 때도 ‘카페(0.0142)’ ‘맛있는(0.0068)’ ‘사진(0.0067)’ 순이었다.
2016~2022년 ‘대전 힙·핫플레이스’ 블로그 텍스트 주요 단어 클라우드
‘카페’는 대전의 힙하고 핫한 장소 이야기에서 블로거들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게 사용하는 단어다. ‘카페’의 중요함 혹은 무게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 그 무게감은 카페와 다른 단어들 사이의 관계가 드러날 때 더 명확해졌다. 대전의 힙·핫플레이스 블로그 텍스트에서 카페는 가장 많은 단어와 연결돼 있고, 단어와 단어를 연결할 때에도 제일 많이 쓰인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이야기할 때 혹은 ‘예쁘’고 ‘분위기’ 있는 곳을 이야기할 때 ‘카페’가 꼭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카페’는 무게감 있는 다른 단어들을 거느린 단어이기도 하다. ‘사진’이나 음식과 관련된 단어들이 텍스트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중요한 단어들과 강력한 관계를 맺는 단어가 바로 카페다. ‘맛있는’도 사실 카페에서 먹은 음식 얘기를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단어고, ‘메뉴’나 ‘테이블’도 그렇다. 구체적인 음식 이름도 있다. ‘커피’가 가장 많고, ‘음료’ ‘술(맥주)’과 ‘안주’ ‘파스타’ ‘고기’ 등이 연도별 상위 100개의 주요 단어 목록에 속해 있다. 음식 중 가장 눈여겨볼 메뉴는 ‘디저트’다. 2019년에 단어의 중요도TF-IDF 100위 안에 처음 진입한 후, 2022년 8월까지 계속 순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디저트의 대명사 ‘케잌 또는 케이크’는 2021년에 처음으로 중요도 순위 100위 안에 들었다.

사람들은 특정한 장소가 아닌 카페를 중요하게 언급하며 대전의 힙 또는 핫플레이스를 얘기했다. 이 외에도 카페와 관련 깊은 단어들을 함께 주요어들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대전의 힙플레이스, 핫플레이스 얘기는 ‘카페’ 얘기라고 말할 수 있다. 2016년에서 2022년 8월까지 텍스트에서 주제를 도출하고, 주제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서의 점유 비율을 계산한 토픽 모델링(Topic Modeling) 결과도 비슷했다. ‘느낌 있고 예쁜 디저트 카페에서 사진 찍기’ 토픽이 전체적으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최근 6년 8개월 동안의 블로그 텍스트를 통해 대전의 힙·핫플레이스가 어딘지 찾으면서 알게 된 건 동네 상권의 흥망성쇠다. ‘뜨는 동네’가 어딘지 시기별로 알 수 있었다. 2017년 전후 블로거들은 대전의 힙·핫플레이스로 주로 유성구 봉명동과 중구 대흥동을 자주 언급했다. 봉명동은 충남대와 카이스트 주변이고, 대흥동은 대전의 원도심이다. 서구 둔산동은 6년 동안 꾸준히 중하위권을 오르내리며 힙·핫플레이스 이야기에서 중요한 동네로 언급됐다. 2019년부터는 대전의 핫하고 힙한 곳을 이야기할 때 소제동이 빠질 수 없는 동네가 된다. 2019년 갑자기 등장한 소제동은 등장 첫해에 단어의 사용 빈도에 근거한 무게감 차트에서 23위에 랭크됐고, 다음 해에는 18위로 상승세를 탔다. 소제동은 대전역 주변 ‘레트로한 감성’으로 인테리어 한 카페 거리 조성이 관사촌 정비 계획과 맞물리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어느 동네가 힙·핫플레이스인지 하나만 고르는 건 어렵다. 꾸준히 100위 안에 주요어로 등장하는 동네도 있지만, 동네들은 순위에 들었다가 또 사라진다. 소제동도 2020년에는 18위까지 올랐지만, 2021년에는 28위로 다소 하락했고, 2022년 8월까지의 텍스트에서는 74위로 떨어졌다. 이러한 동네 상권의 흥망성쇠는 멋지고 매력적인 것을 찾는 소비행태가 이미 ‘노마디즘적 특성’[5]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소셜 미디어에 장소를 전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 정보는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콘텐츠고 (나만 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권력인가!) 일종의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전 힙·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거들의 이야기에는 ‘새로움’에 대한 단어들이 자주 쓰인다. 장소가 매력적일 때는 그 장소가 낯설 때다. 블로거들은 특유의 ‘노마드적 소비 경향’을 보이며 낯선 장소를 찾고, 그 장소에서 발견한 새로움을 누구보다 먼저 전시한다.

‘처음 생긴’, ‘(남들은) 모르는,’ ‘오픈 (런)’ 등의 단어가 자주 중요하게 쓰였고, 급기야 2021년엔 ‘신상’이 주요어 100위 안에 처음 등장했다. ‘신상’은 옷을 비롯한 상품을 설명하기 위해 쓰던 표현이었지만, 이젠 장소를 표현하는 말도로 쓰이게 됐다. ‘신상 카페’나 ‘신상 술집’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상품을 지칭하던 말이 장소의 성격, 장소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됐다. 매력적인 장소, 힙과 핫을 품은 장소는 낯설고 새로우며 그래서 제일 먼저 가서 사진에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일종의 상품이 됐다.

 

사진이 되는 장소가 힙하다


대전의 힙·핫플레이스 이야기엔 대전시 관광공사가 선정한 ‘대전 명소 10선’과 같은 종류의 장소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산, 강이나 역사 문화 유적지, 수목원이나 큰 공원, 하다못해 미술관도 ‘카페,’ 아니 (단어 활용의 무게감 종합 40위를 차지한) ‘맥주’만큼의 무게감도 없다. 크고 웅장한 공간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쉽게 접근 가능한 공간, 장소의 성격이 인테리어와 음악 등으로 뚜렷하게 생성될 수 있고, 즉각적으로 감지되는 공간인 카페가 블로거들에겐 힙하고 핫했다.

인위적으로 잘 조성된 장소인 카페가 왜 그렇게 힙하고 핫할까? 아마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6]라면 카페가 현대인에게 그 어느 때 보다 부쩍 요긴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제1의 장소인 집은 좁고 (대도시라면 더욱 좁고), 제2의 장소인 일터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이런 현대인들이 쓸데없이 시간을 죽이고 싶은 곳이 카페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환영의 인사를 받을 수 있는 동네 카페는 마음 편하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다. 하지만, 블로거들이 대전 힙플이자 핫플인 카페에 ‘교류’나 ‘환영,’ ‘포용’과 같은 지역 공동체성 회복 활동을 하려고 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러 카페에 간다.

‘카페’와 함께 대전의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에서 아주 중요하면서도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는 ‘사진’이다. 그 무게감으로 ‘사진’은 ‘카페’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카페 방문 목적이 그저 커피를 마시기 위함은 아니라는 걸 또렷하게 증명한다. 텍스트 안에서 ‘사진’과 함께 자주 쓰이는 단어들은 ‘분위기,’ ‘감성’과 ‘느낌,’ ‘예쁘다’ 등이다. 소위 ‘인스타그램에 쓸 수 있는(instagram-able)’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장소가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공간이 예뻐야 한다. ‘감성’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예쁜지, 무엇을 예쁜 공간이라고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예쁨’이 있어야 한다. ‘감성’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에 생산된 소품이나 영화 포스터가 있으면 ‘레트로’ 감성이고, 핀란드 가구가 있으면 ‘북유럽’ 감성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린 어느 카페에 들어서며 ‘감성 있다!’고 다 같이 외칠 수 있다.

블로거들에게 예쁘고 감성 있는 사진의 중요성은 어쩌면 당연하다. 수십 줄의 글은 못 읽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있어도 수십 장의 사진은 본다. 내가 경험한 감성을 전달하는 데 사진만큼 효과적인 매체는 없다. 더 인기 있는 블로거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좋아요’를 얻어 내기 위해 사진은 중요해진다. 그러니까, 내가 방문한 장소는 반드시 ‘잘 찍혀야 한다.’ 또한, 다른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눈에도 ‘잘 찍혀야 한다.’

이제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사진 모음은 명함이다. 얼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서 그를 알아 가고 이해한다. 때문에, 사진 그 자체가 중요해진다. ‘좋아요’를 많이 받아야 인기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나의 가치와 쓰임새를 의미하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이미지를 찍어 내고 싶어진다.

왜 내가 본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의 장소 사진들은 그렇게 한결같이 예쁜 것일까? 문화센터 사진반 수강생들이 전시한 사진들처럼 금방 지루해지는 이유는 뭘까. ‘예쁘고’ ‘멋진’ 포장은 이미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 그 방향성은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그 트렌드를 다시 확인하는 사진들을 찍고 게시한다. 엇비슷하게 예쁘고 멋진 포장지를 두른 사진이 소셜 미디어를 채운다, 내 명함을 채운다.

정해진 아름다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진은 오래 바라볼 필요가 없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만 해’와 같은 트렌디한 장소 사진은 ‘이런 아름다움을 보라’고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것 같다. 보는 관객 입장에선 뻔할 수밖에 없다. 사진을 찍은 이유나 그 뒤에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트렌디함’은 그 요소 하나만으로 이미 꽉 차있다. 더는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는 것이다. 이런 장소 사진들에는 감상하는 사람도 알아채는 지루함이 있다.

왜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그저 다들 좋아할 것만 같은 이미지를 뽑는 게 뻔하고, 재미없고 지루할 걸 알면서도 왜 거기에만 머무르게 될까? 힙하고 핫한 장소에 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힙과 핫 그 자체에 있다.

 

힙과 핫은 이미 서울에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은 대전 관광지 검색 순위를 여러 빅데이터를 활용해 알려 준다. 최근 5년 (2018~2022년) 내비게이션 데이터(T-MAP)를 분석해 사람들이 대전에서 검색한 장소가 어디인지 살펴보면, 역시 성심당이 압도적 1위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사람들은 한밭수목원을 23만 2836건, 대전오월드를 35만 4567건을 검색했고, 성심당 본관을 41만 2364건 그리고 성심당 DCC점을 24만 574건 검색했다. 대전 선사유적지(3만 7900건)도 가고 계족산황톳길(4만 9780건)도 가지만 역시 많은 이들은 성심당에 간다.

흥미로운 점은, 압도적인 검색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의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에서 ‘성심당’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를 알려주는 TF-IDF 분석 결과에서도, 단어들 사이 관계를 보는 중심성 분석에서도 단어 ‘성심당’은 통합 Top 100위에도, 연도별 Top 10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성심당은 힙하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낯설고 새로우며 사진에 예쁘게 담기는 감성과 분위기를 지닌 공간을 찾는 블로거들에게 성심당은 힙하거나 핫하지 않다. 물론 성심당은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고, 대전의 관광 자원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성심당은 낯설고 새롭지 않으며,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곳도 아니다.

대전의 힙·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 마이닝 결과 ‘성심당은 힙플이나 핫플이 아니었다’고 하자, 대전 사는 사람들은 ‘그래?’라며 놀랐지만, ‘맞아, 그렇지’라며 바로 수긍했다. ‘노잼도시’에 대한 텍스트 마이닝에서 성심당은 중요한 단어였고, 대전을 대표하는 장소였지만, 그 대표성은 블로거들이 말하는 요즘의 매력적 장소(힙플, 핫플)는 아니었다.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에 사용된 주요어와 그 관계성은 장소의 매력이 ‘비일상성’에 있다는 걸 보여 준다. 힙하고 핫한 곳에 가는 건 일상의 일이 아니다. 블로거들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고 애인과 데이트할 곳으로 힙·핫플레이스를 얘기한다. 이것이 가장 점유율이 높은 토픽이었다. 장소 방문 목적이 (데이트나 오랜만의 만남과 같은) 비일상적인 행위가 수행될 공간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장소는 그 행위의 배경(또는 행위를 담는 그릇)으로 예쁘게 존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장소 자체를 탐색하거나 장소와 관계를 맺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힙플과 핫플은 귀엽고, 예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인테리어로 만들어진 ‘감성 또는 분위기’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

여기서 ‘감성’과 ‘분위기’는 내가 장소에서 얻어 낸 것이라기보다, 장소가 풍기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 장소에서 감성과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감성과 분위기를 돈 주고 사는 데 훨씬 익숙하다. 성심당에서 내는 비용엔 공간의 감성과 분위기 값은 포함돼 있지 않다. 성심당의 주인공은 빵이 분명하고, 구매하는 것은 빵이지 예쁘고 독특한 감성으로 조성된 (꾸며진)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맛있는 빵을 먹는 곳’으로 존재하는 성심당은 힙플이나 핫플이 아니게 된다.

또한 무엇보다도 성심당은 ‘서울의 것’이 아니다. 2018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대전의 힙·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에서 자주 무게감 있게 사용된 상위 100개의 단어 중 단연 눈에 띄는 단어는 ‘서울’이다. 서울은 100위 안에 든 주요 단어 중 대전이 아닌 유일한 지명이다. 서울은 꾸준히 20위에서 50위권을 오가다, 2022년엔 16위로 상승했고, 모든 연도 통합 100개의 단어 중엔 31위에 올랐다.

대전이 반드시 포함된 문서만 크롤링했고, 대전의 여러 동네와 장소명이 등장한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서울이 이렇게 빈번하게 쓰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불용어 처리를 하고 새로 분석해야 하는지 고민도 됐다. 궁금했다. 왜 이렇게 서울이 자주 등장하고 또 중요할까. 왜 꼭 서울일까? 대전의 매력적인 장소에 대한 글들인데, 왜 서울을 언급하는 걸까? 블로그 텍스트를 직접 읽어보면 ‘서울’은 삭제해야 할 단어가 아니라, 그 지배력을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단어라는 걸 알게 된다.

“서울에 ***가 성수동에 있는데, 최근 대전에도 입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는데요, 대전 핫플 맞습니다.”

“소제동은 뭔가 그리운 감성 같은 게 묻어 있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서울 어디랑 비교하면 좋을까? 익선동과 성수동 그 중간 어디쯤?”


사람들은 대전의 힙·핫 플레이스를 얘기하면서 그곳을 서울과 비교한다. 서울은 대전의 매력적인 장소를 얘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자 비교 대상이다. 블로그 텍스트에서 서울은 멋지고 매력적인 곳을 판단할 수 있는 표준으로 쓰인다. 서울에서 유행한 것, 다시 말해, 서울 사람들이 인정한 것이 대전에 오면 ‘대전의 힙과 핫’이 된다.

2016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블로거들이 대전의 힙· 핫플레이스에 대해 이야기한 주제가 무엇이 있는지 점유율을 도출해 살펴보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서울 여행’이 세 번째로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연인과의 카페 데이트,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술집 나들이 다음으로 사람들은 서울 방문을 얘기하고 있다. ‘대전의 매력적 장소를 얘기하는 데 서울 여행이 왜 이렇게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란 의문은 단어 서울의 쓰임새, 즉 서울이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데 어떻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답이 더 명확해진다.

서울은 대전 힙·핫플 텍스트에서 단어 사이 연결 고리가 되고, 여러 중요한 단어들과 함께 등장한다. 마치 ‘핵인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단어가 바로 ‘서울’이라는 뜻이다. 이런 ‘핵인싸’ 단어는 텍스트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그 텍스트의 구조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서울은 대전의 매력적 장소 이야기를 구성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요 단어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를 서울의 ‘위세성’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이야기 속에서 서울의 위세성은 2016년, 2017년에는 최상위를 차지했고, 코로나가 심각했던 2020년에는 약해졌다가, 이후 다시 상위에 등장하는 위력을 보였다. 지역 여행이 주를 이뤘던 2020년에는 대전 소제동이 위세력 top 50에 처음 등장하기도 했으나, 2021년에는 서울의 위세성 순위가 소제동을 앞지르고, 2022년에는 결국 2위를 차지한다. (2022년 위세성 1위는 ‘시간’이다.)

서울이 지방 도시 대전의 장소 매력을 판단할 기준이자 표준으로 기능한다는 데 사람들은 합의한 것 같다. 이러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표준이 있으면 비교가 쉬워지고, 경쟁의 원칙을 세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순위 매기기가 쉬워진다. 어느 공간이, 장소가 그리고 도시가 더 매력적인가 혹은 더 힙하고 핫한가를 표준이 된 서울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시끼리의 비교와 순위 매기기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사실 우린 은밀하고도 정확하게 순위를 매겨 왔다.

‘도시 브랜드’ 평가는 이제 내 손끝에서 시작된다. 권위 있는 기관이 거주나 근무 혹은 투자처로서의 도시 경쟁력을 평가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젠 방문자 개개인의 온라인 평판을 주요 지표로 삼은 도시 평가가 제시되기도 한다. 온라인에 나타난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도시에 대한 긍·부정 평가, 미디어 관심도, 소비자의 참여와 소통량, 소셜 미디어에서의 대화량이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2023년 8월 도시에 대한 이런 빅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결과 한국 도시 브랜드 평판 1위는 서울시다. 서울시는 참여지수 34만 7688, 미디어지수 52만 5868, 소통지수 181만 3718, 커뮤니티지수 163만 6002였다. 2위는 부산시(참여지수 8만 2752, 미디어지수 34만 8266, 소통지수 131만 2288, 커뮤니티지수 172만 1005), 3위는 제주도(참여지수 8만 513, 미디어지수 26만 7233, 소통지수 143만 3804, 커뮤니티지수 107만 8970)[7]인데, 서울과 다른 도시들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이야기 생산의 거점인 소셜 미디어에서 확실히 서울은 주인공이다. 서울은 조명받고, 다양한 캐릭터가 발굴되며,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들은 주인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낯섦’과 ‘새로움’은 힙·핫플레이스 이야기에서 중요한 단어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보다 새로운 것이 멋져 보이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왜 그렇게 새로운 것이 멋진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내 마음은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이유 혹은 나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새로운 것이 힙하고 핫하다고 생각해, 그걸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가 기준이자 표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기준이 될 ‘원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새것이 가장 좋다는 저주 같은 세뇌가 우리에게 심은 근본에 대한 콤플렉스[8]”를 말했지만, 근본이 없어서, 근본이 아니어서 늘 새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원본은 목표가 되고 목표는 추격을 부른다. 지방 도시 대전은 서울을 목표로 서울의 것들을 추격한다. 서울은 아마 뉴욕이나 파리를 목표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서울 청계 고가 도로가 추격한다. 익선동 카페 거리를 대전 소제동이 뒤쫓는다. 이렇게 누군가의 뒤를 좇는 추격의 특징은 하나의 방향, 우상향 고점을 지향하게 한다는 데 있다. 대전 앞에 서울이, 서울 앞에 뉴욕이, 뉴욕 앞에 있는 어떤 도시를 향해 오른쪽 위로, 또 위로 추격의 그래프를 그린다. 일렬로 서서 한 방향으로 추격 중인 도시들이 그리는 건 직선뿐이라, 꺾은 선이나 곡선은 레이스 이탈이며 패배다.

내가 사는 장소, 도시가 추격의 레이스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우린 좇고 있는 표준과 원본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역시, 서울은 이렇게나 멋지군!’ 힘든 추격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본에 대한 칭찬 이면엔 원본이 아닌 것에 대한 멸시가 있다.

‘비(非)서울적’인 것, 곧 ‘지방’은 일종의 두려움이다. 서울은 너무 멋지고, 세련됐고, 근사하기 때문에 그 외 지방은 보기에 썩 좋지도 않고, 촌스럽고, 우습다. 서울은 ‘지방’이란 단어를 무기 삼아 서울 아닌 것들의 촌스러움과 하찮음을 공격한다. 서울 친구들이 어쩌다 튀어나온 내 사투리 억양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자기 비하를 곁들인 유머로 쿨하게 넘어갔지만, 사투리가 웃음의 소재가 됐다는 게 당황스럽다. 세련된 서울의 것에 순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면이 우습고 싫어진다. 그래서, ‘지방’은 불편하게 하고 겁먹게 하는 단어다. 웬만하면 지방이란 단어를 피하고 싶다. 내 안의 지방의 것, ‘서울 아닌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서울 아닌 것을 피하고 싶은 ‘디나이얼 지방출신’에게 놓인 가장 암울한 미래는 ‘두려움이 가져올 변화 없음’이다. 지방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다양한 캐릭터를 두텁게 쌓을 수 있고,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지만, 무서워서 꼼짝하지 않는다. 서울을 모방하는 것이 안전하고, 서울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승산 있기 때문이다.
[1]
윤여울, 〈한국 디자인문화에 나타난 취향의 변화와 특징: 1990년대-2010년대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8.
[2]
네이버의 우리말샘은 ‘힙하다’를 2017년에 처음 언급했다.
[3]
변미리, 〈서울의 핫플레이스 혹은 ‘뜨는 거리’: 보보스적 예술과 허세 사이 그 어디쯤〉, 《서울의 인문학: 도시를 읽는 12가지 시선》, 창비, 2016.
[4]
4장의 텍스트 마이닝 분석은 다음에 근거한다. 주혜진, 〈소셜 미디어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대전의 힙·핫플레이스 개념 형성 분석〉, 대전세종연구원, 2022.
[5]
고명지, 〈‘#핫플레이스’를 통해 알아본 청년세대의 소비문화〉, 《인문사회21》 12(3), 2021, 645~660쪽.
[6]
레이 올든버그 (김보영 譯), 《제3의 장소-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풀빛, 1999.
[7]
최문희, 〈서울시, 도시 브랜드 평판 8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1위〉, Business Korea, 2023. 8. 23.
[8]
복길, 〈신도시에 대한 애증 ‘05학번 이즈 히어’〉, 《시사IN》 813, 2023, 58~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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