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을 바꾸는 문화 재생; 세이지 게이츠헤드
잉글랜드 북부 지방의 뉴캐슬 어폰 타인(Newcastle upon tyne)은 뉴캐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한때 동북 지역의 수도라 불릴 만큼 큰 규모의 탄광, 공장 지대였다. 지역을 흐르는 타인(Tyne)강에 건설한 부두 시설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영국 최초의 철도와 터보 엔진, 증기 기관차를 생산할 정도로 번영한 지역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광업에 종사하며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고 퇴근 후 펍에서 축구 이야기를 하며 여가를 보내는 노동자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프로 축구 클럽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연도가 18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일찌감치 경제 발전에 성공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번영은 값싼 석유가 수입되고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과거의 일이 되었다. 100개가 넘는 광산이 폐업했고, 제조업체들도 문을 닫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장기 실업, 치안과 환경 문제 등 사회 경제적 문제가 이어졌다.
뉴캐슬은 1990년대부터 맞은편 소도시 게이츠헤드와 함께 연합체를 구성해 뉴캐슬 게이츠헤드 지역 단위의 문화 재생 정책을 추진했다. 1998년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가 디자인한 조형물 북쪽의 천사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약 80만 파운드(12억 원)가 투입된 높이 20미터, 가로 54미터, 무게 208톤의 철과 구리 조형물은 명실상부한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곧이어 2002년 발틱 현대 미술관(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이 문을 열었다. 1950년부터 사용되다 1982년 폐업 후 철거 비용 문제로 방치되어 있었던 오래된 제분소 건물을 활용해 약 4600만 파운드(698억 6000만 원)를 투자하여 영국에서 런던 테이트 모던 다음으로 큰 현대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1]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소장품이 없다는 점이다. 영구 컬렉션 조성에 예산을 투자하는 대신 예술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젊은 예술가들을 끌어모으는 현대 미술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자 문화를 거부하고 엘리트 문화를 확산하려 한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2003년 80퍼센트 이상의 지역 주민이 방문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현대 미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the Millennium Bridge)는 설계안 공모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우승한 윌킨스 에어(Wilkinson Eyre)의 설계로 2001년 건립되었다. 미적 요소와 기능적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고정 관념을 깬 디자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두 개의 아치 철골 구조물이 조화된 도개교로, 하나의 아치는 자전거와 보행 도로, 다른 하나는 이 곡선을 받쳐 주는 아치형 구조물로 연결되어 있다. 배가 지나갈 때는 아치형 구조물이 낮아지면서 보행 다리가 들리고 두 개의 아치가 안정감 있게 균형을 이루게 된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들어 올려지는 다리는 마치 윙크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새로운 교량 역할뿐 아니라 게이츠헤드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건축이다.[2]
타인강의 아이코닉한 풍광은 2004년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세이지 음악당(Sage Music Center)으로 완성된다. 강철 구름이나 소라고둥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은빛 외관의 세이지 음악당은 외관만으로도 잊지 못할 이미지를 선사한다. 포스터는 기능적이고 심미적이면서 환대의 의미를 담은 건축을 창조하고자 했다. 내부에는 세계적 수준의 음향 시설을 위해 스펀지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
뉴캐슬 게이츠헤드의 도시 재생 사업 결과는 이렇다. 6만 명의 고용 창출을 이끌어 내면서 20퍼센트가 넘었던 실업률은 4퍼센트로 떨어졌다. 한 해 약 2000만 명의 방문객으로 40억 파운드(6조 699억 원)의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3]
게이츠헤드의 도시 재생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에는 게이츠헤드 의회가 게이츠헤드 퀘이즈(Gateshead Quays)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국제적 명성의 설계 사무소 HOK의 디자인으로 복합 시설물인 호텔, 레스토랑, 바, 전시관 등을 세이지 음악당과 발틱 현대 미술관 사이에 설치해 도심과 연결한다는 것이 새로운 비전이다.
이상향의 도시; 버밍엄 셀프리지
버밍엄은 영국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85킬로미터 떨어진 영국 제2의 도시로,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했다. 철도와 운하 네트워크로 물류 수송의 중심에 있었고 19세기에는 크게 번성해 ‘1000개의 직업이 있는 도시’로 불렸다. 버밍엄은 모더니즘의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기 침체로 모더니즘의 실패를 상징하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버밍엄은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다르게 분명하게 정의되는 역사적인 도시의 중심이 없었다. 경관 디자인으로 분류될 만한 것이 부족했다. 버밍엄이 ‘도로에 휩싸인 아무것도 아닌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이유다.[4]
이러한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서 1990년 버밍엄시는 도심을 7개 지구로 나누고 특성에 맞는 계획을 수립했다. 국제적인 중심 도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물리적 구조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도심 디자인 전략인 시티 센터 디자인 전략(City Centre Design Strategy)을 추진했다. 핵심은 주얼리 지구인 브린들리 플레이스와 마켓이 연결되는 불링 지역이다. 불링은 역사적 자산인 세인트 마틴 교회와 새로운 건축인 버밍엄 셀프리지 백화점 등을 연계해 쇼핑과 관광,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을 목표로 했다.
2003년 오픈한 백화점 셀프리지 버밍엄은 불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셀프리지는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1909년 오픈한 고급 백화점 체인이다. 맨체스터에 분점이 있었고 세 번째 입점 지역이 버밍엄이다. 셀프리지가 들어온 것 자체가 쇼핑 도시로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변곡점이었다.
백화점의 외관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설계를 맡은 건축 사무소 퓨처 시스템스(Future Systems)는 물리적으로 불링 쇼핑센터와 연결되어 있지만 확연히 분리되는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푸른색 바탕의 1500개의 은색 알루미늄 원반으로 뒤덮인 아이코닉한 외관을 창조했다. 파코 라반 시퀸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 신체의 곡선미를 살린 형태로 디자인했다. 셀프리지 버밍엄은 개관 첫해에만 3000만 명이 찾았고 매년 그 이상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듬해에는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의 건축상을 받았다. 버밍엄을 넘어 영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람들의 궁전; 버밍엄 도서관
새로운 도시 재생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버밍엄의 시티 센터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2006년 버밍엄시는 브린들리 플레이스와 버밍엄 셀프리지가 위치한 불링의 성공을 발판으로 향후 20년간 도심을 재활성화하는 마스터플랜인 ‘빅 시티 플랜(Big City Plan) 2026’을 발표했다. 초기 지역 재생을 기점으로 버밍엄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꾸준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며 양질의 보행 공간이 연결되면서 지역 자산을 갖추게 되었다. 버밍엄시는 이러한 자산을 지속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비즈니스 및 산업, 쇼핑, 커뮤니티, 교육 및 학습, 문화·스포츠 및 레저, 자연과의 연결성 등을 도심 활성화의 핵심 테마로 설정했다.
2009년까지 주차장이었던 자리에 2013년 문을 연 버밍엄 도서관은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세계 수준의 공공 랜드마크를 목표로 건립된 버밍엄 도서관은 네덜란드의 메카노 건축 사무소(Mecanoo Architecten)가 설계했다. ‘사람들의 궁전(people’s palace)’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 가족 친화적인 환경에 초점을 맞췄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메탈 서클은 무수한 변종으로 확장, 중첩되며 궁극적으로 도시의 시간을 파사드에 새긴다. 건축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원형 공간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다이내믹하게 연결된다. 원형 로톤다(rotonda)는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를 유도하는 패시브 디자인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의 건축
7개의 아이코닉 건축은 쇠퇴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도시 재생의 촉매로 기능한다. 도시 재생의 완벽한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더라도 지역의 새로운 비전을 외부에 발신하는 장소 브랜딩의 훌륭한 아이덴티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자연, 산업, 문화에 따른 이미지는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로 변화한다. 지역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이코닉 건축이다.
흥미로운 점은 7개의 건축이 각기 다른 정도로 기존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와 코즈웨이베이 방문자 센터는 기존의 이미지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방향을 택했다. 타이태닉 벨파스트와 터너 컨템퍼러리는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았던 기존의 이미지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부각시키고 공감대를 끌어냈다. 마케팅의 측면에서 기존의 이미지와 새로운 건축을 연결 짓고 있다. 타이태닉 쿼터의 경우 타이태닉이 건조된 곳이라는 분명한 명분이 존재하지만 실제 출항한 곳은 영국 남부의 사우스햄프턴이다. 관광객을 흡수하게 된 큰 원인인 영화와는 더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아이코닉 건축은 추상적으로 빙하와 배를 패턴화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터너 컨템퍼러리 역시 윌리엄 터너가 방문하고 그림을 그린 지역임은 분명하지만 건축가인 치퍼필드의 빛에 대한 고유한 해석과 은유는 완전히 새롭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아이코닉 건축의 이미지를 변용하고 전달하는 건축이다. 버밍엄 도서관은 금속 세공 지역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변용해 새로운 공공 건축을 사람들의 ‘궁전’으로 해석했다.
버밍엄 셀프리지와 세이지 음악당은 기존의 이미지를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 대신 새로운 기능과 기술이 적용된 시설을 혁신적인 외관으로 보여 준다. 기존의 이미지를 변용하는 것이 새로운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두 건축은 더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조형적으로 곡선을 사용하고 외피에도 신소재를 적용한 반짝이는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혁신적인 건축의 주위에는 역사성 혹은 지역성을 반영하는 건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버밍엄 셀프리지의 경우 불링 지역의 역사적 자산인 세인트 마틴 교회와 이웃하고 있다. 시퀸 드레스가 건물로 형상화된 쇼핑의 아이콘이 오래된 교회와 함께 조망되며 그 사이에서 시민들이 휴식하고 있는 모습은 지역의 역사와 미래를 현재로 불러온다. 세이지 음악당도 제분 공장이었던 발틱 현대 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와 나란히 서서 강변의 스카이라인을 풍부하게 완성한다.
이처럼 아이코닉 건축은 장소 브랜딩이라는 보다 큰 목적하에서 단일 건축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도시 재생의 일부이자 하나의 경관을 이루는 요소로 기능한다. 현대의 아이코닉 건축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현재의 경관으로 소통하며 우리 곁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