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생애 주기의 붕괴
2022년 통계청은 출산율이 2024년 최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으로 봤다. 1990년대생의 등장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출생 인구는 70만 명 대로, 그 수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출산할 나이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아이도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이에 1990년대생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특성을 무시한 발언이라며 당황스러움과 분노를 표했다. 이들은 출산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예측치를 발표한 통계청 직원은 기존의 당연시되던 일반적인 생애 주기,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말했을지 모른다.
20대에 취업하고 결혼해, 30대 초반에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이전의 생애 주기 모델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생애 주기에 따른 사회적 시계는 한없이 지연됐다. 혹은 사회적 시계에 맞게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개인 선택의 문제가 됐다. “결혼은 고급재, 출산은 사치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청년들은 결혼할 여력도, 더 나아가 출산과 육아를 할 여유도 없어 최대한 미루고 있다.
2022년 기준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세대에 해당하는 19~34세 인구 중 대부분인 82퍼센트가 미혼이다. 평균 초혼 연령도 30년간 약 5세 증가했다. 1992년 남자 28.0세, 2022년 33.7세로 약 5.7세 증가했으며, 1992년 여성 24.9세, 2022년 여성 31.3세로 약 6세 이상 증가했다. 30년 만에 20대 중후반에 결혼하던 추세에서 3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이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간극
기존의 생애 주기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 가는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워낙 사회적 시계가 늦어지다 보니, 기성세대는 20대 취업, 30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과 같은 사회적 과제를 제때 하지 않는 요즘 청년들이 다소 게으르거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대 후반인데 취업은 했나?’, ‘30대인데 늦기 전에 결혼해야지’라는 이야기는 명절 금기 질문으로 꼽힌다.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데, 개인의 안락함이나 자유를 위해서 아기 낳기를 꺼린다는 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이와 관련해 결혼할 생각이 없는 자녀를 둔 60대 여성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세대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결혼, 출산, 육아를 미루거나 포기하던데. 우리 때만 해도 결혼했을 때부터 완벽히 갖춰놓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두 명 정도는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형편은 어려워도 아이를 잘 키웠어요. 옛 속담에 ‘아이는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대에 요즘 세대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네요.”
기존 제도들의 설계는, 이전의 인구 행동 특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제도와 서비스 모델은 현재와 미래 세대의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변화된 특성을 그만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한다. 앞서 통계청에서 향후 출산율이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원인을 1990년대생 출산 가능 인구의 증가로 짚었다. 기존 데이터에 의하면 통계에 따른 예측은 유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의 젊은 세대가 인식하는 심리적 현실을 감안한다면, 예측은 빗나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인식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전망, 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출산 관련 제도는 효과적일 수 없다. 기성세대가 어려움 속에서 아이를 낳아 길렀으니, ‘국가를 위해서라도 아이 두 명은 낳아야 한다’는 당위가 젊은 세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계도와 당위만으로 접근하는 출산 제도는 밀레니얼 세대의 반감만 부를 뿐이다.
“‘당신이 애를 낳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냥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하면 1도 타격이 없는 말이에요. 일단 내가 위기라니까요. 내가 위기인데 지금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하면 누가 말을 들어요.”[1]
저출산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
출산과 육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개개인의 선택이 모여 집단적인 선택이 되고 사회 트렌드가 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집단 자살’ 수준의 심각한 초저출산을 겪고 있다.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저출산은 분명한 재앙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저출산은 단지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 환경에 적응적인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해서 출산, 육아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오로지 청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왜 청년들은 저출산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사회가 청년들을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열심히 하면 미래에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대는 갔다. 가족주의적, 집단주의적 가치관도 깨졌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높아졌다.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근로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집값은 더욱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청년 세대다. 지금은 재생산에 대한 욕구보다 더 먼저인 생존 욕구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선 결혼, 출산이 오히려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된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청년들 사이에서는 출산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1년 18~34세 미혼남녀의 이성 교제 비율은 53.9퍼센트였지만, 2021년 19세~49세 29.4퍼센트로 급감했다. 2022년 인구보건복지협회 연구에 따르면 19~34세 미혼 청년 인구의 3분의 2가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 이 중 70퍼센트는 자발적인 비연애 상태다. 연애를 하지 않는 청년 중 53퍼센트는 앞으로도 연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연애도 부담스러운 시대다. 청년 세대는 연애가 결국 결혼, 출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 굳이 시작해서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다. 2022년 12월 KBS 〈시사직격〉에 출연한 20대 교사 B씨는 비연애주의, 비혼주의를 선언했다. 그녀는 “연애로 시작해서 결국 결혼하고, 결혼하게 되면 출산할 것으로 생각하니까,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시리즈로 생각해서 그 시리즈 자체를 아예 시작 안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원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거나 기존의 사회적 규범에 반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당장의 취업 준비, 직장 생활로 이미 심신이 지쳐 있기에 연애와 결혼이 시간 낭비라고 인식되거나 그럴 여유 자체가 없는 것에 가깝다. 쉬지 않고 경쟁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를 ‘번아웃 세대’라고 일컬을 정도로 요즘 청년들은 지쳐 있다.
2019년 1월, 최재천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 종을 보더라도 환경이 살기 좋으면 개체 수를 늘리고, 환경이 척박하면 생존을 위해 개체 수를 줄이는데 인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대익 교수 역시 자신의 저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저출산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적응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가 처한 환경과 심리적 상황, 달라진 가치관을 파악해 보면 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 변화, 달라진 사회의 모습에 맞게 제도의 설계도 달라져야 한다. 2022년 약 50조 원 이상의 저출산 예산이 배정되고,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총 322조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출산율은 나날이 더 낮아지고 있다.
연애조차 시작할 여유가 없는 청년 세대 중에서도 연애, 결혼, 출산을 선택해 육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밀레니얼 부모들이다.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극복하고 이를 선택한 이들이다. 육아는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에 불을 지르고 있다. 과연 밀레니얼 부모들이 느끼는 삶에서의 위기의식과 고통은 무엇일지 먼저 생각해 보자. 왜 요즘 세대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까? 밀레니얼 부모들을 통해서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출산과 육아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인 장애물은 무엇이고, 청년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출산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각을 달리 해야 한다. 개개인을 통계적 숫자로 보거나 ‘출산’의 도구로 접근하는 것보다 심리적 관점에서 밀레니얼 부모들을 이해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 부모가 가진 이전과는 다른 니즈(needs), 그리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기성세대의 관점이 아닌, 그들의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볼 시점이다. 결혼 출산 관련 제도를 설계할 때도 기존의 결혼과 출산, 4인 가구라는 전통적 가족 프레임(frame)에서 벗어나 이전과 달라진 밀레니얼 세대들이 처한 사회 경제적 환경, 달라진 삶의 방식에 맞는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선행돼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지금 밀레니얼 부모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