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만 낳아도 애국자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아이를 간절하게 갖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고령 임신이 늘면서 매년 난임 부부는 10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8년 불임 환자 수는 22만 7922명에서 2022년 23만 8601명으로 4.7퍼센트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임 환자가 많은 연령은 71.8퍼센트인 30대, 그중에서도 30~34세가 많았고, 그다음은 35~29세 36.4퍼센트, 40~44세가 31.1퍼센트에 해당했다.
행여 어렵게 부모가 되더라도 둘째는 없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외동 선호 현상은 이미 보편적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해, 약 2년간의 신혼 생활을 지낸 후 아이를 낳게 되면 이미 30대 중반이다. 실제 출생아 중 첫째의 비중이 점점 늘면서, 그 비중이 60퍼센트에 가까워졌다. 첫째의 비중은 2002년 48.7퍼센트, 2012년 51.5퍼센트, 2022년에는 58.2퍼센트로 사상 최대치다. 2002년에는 출생아 중 둘째 이상 비중이 첫째 비중보다 더 높았지만, 2022년에는 출생아 중 첫째 비중이 둘째 이상 비중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2]
사람들은 둘째를 안 낳는 것일까, 아니면 못 낳는 것일까? 한국개발연구원의 2021~2022년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5~49세 미혼 청년들은 2.09명을 이상적인 자녀 수로 답했다. 즉, 사람들은 4인 가구를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만혼이나 경제적 부담, 돌봄 부담으로 인해 ‘못 낳는’ 게 현실이다. 당시 24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40대 직장인 여성 D씨에게, “둘째는 안 낳으세요?”하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아기가 크면 보내 달라는 학원도 보내야 하고. 저희 노후도 대비해야죠. 아기 한 명 낳아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이 무려 몇억 원이라고 하는데, 저희 부부 둘 다 나이도 있고 부담이 돼서 둘째 생각은 접었어요. 나이만 조금 더 젊었다면 도전해 봤을 것 같아요.”
향후 들어갈 사교육비, 부모 자신의 노후 자금까지 마련하려면 둘째를 낳아 기를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째를 기르려면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다시 써야 하는데 그 돌봄 시간,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둘째를 갖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해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다자녀의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넓혀 이들에게 교통, 문화 시설 이용, 양육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시에서도 2자녀도 ‘다자녀’로 규정하고, 공영 주차장 할인 혜택을 준다. 서울대공원, 서울식물원과 같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에 무료로 입장할 수도 있다. 올해부터는 주택 청약 시 다자녀 특별 공급 신청 자격도 2자녀 이상 가구로 확대했다. 이젠 두 명만 낳아도 애국자다.
요즘 부모들의 육라밸
아이를 위한 무조건적 희생 대신, 요즘에는 부모 자신의 행복도 중요한 시대다. 밀레니얼 부모는, 부모로서의 삶과 자신의 삶 간의 균형을 추구한다. 마치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이 직장에 무조건 충성하기보다 자신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듯, 육아에서도 육아와 라이프의 밸런스인 ‘육라밸’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법이 바뀌었다. 이제는 아기가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한 게 아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기가 행복하다.
밀레니얼 부모들이 자기 자신의 행복과 취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은 데이터로도 나타난다. 밀레니얼의 유튜브 관심사가 가장 직관적이다. 부모가 된 후 가족 관련 콘텐츠를 보는 경우가 두 배 늘기는 했으나 그 외에도 뷰티, 아웃도어, 게임 등 개인의 관심사 콘텐츠 소비 경향 또한 부모가 되기 전과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 즉, 요즘 부모는 부모가 돼서도 자신의 취미, 관심사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me-time)을 갖는다.
이들은 육아뿐 아니라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요즘에는 육아하면서도 SNS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거나, 네이버 스토어를 열어서 사업을 운영하거나, 재테크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 육아와 N잡을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운용하는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부모들은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2022년 기준 산후조리원 2주 평균 비용은 300만 원을 상회하지만, 대부분의 요즘 부모가 산후조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회차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산후 마사지, 산후 관리 프로그램, 산후 필라테스, 요가 등 몸매 관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기존 ‘아줌마’, ‘엄마’에 대한 편견을 깨는 ‘젊줌마’도 나타났다. 젊줌마는 ‘젊은 아줌마’의 줄임말이다. 자기 계발, 커리어, 자기 관리는 뒤로하고, 가족과 자녀를 최우선시하며 헌신적이었던 전통적인 아줌마의 이미지보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도 챙기고 힙한 취향, 최신 트렌드도 따라가는 요즘 엄마들이 바로 젊줌마다. 요즘엔 철저한 몸매 관리 후 배가 드러나는 크롭 티를 입고 아이와 함께 문화 센터에 가는 것이 유행이다. 외모로만 보았을 때 자녀 유무를 판단하기 어려운 젊줌마가 많아지고 있다. 요즘에는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의 다른 정체성을 포기하기보다, 엄마라는 정체성과 함께 원래 갖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요즘 부모들은 친구 같은 부모를 추구한다. 이전의 전통적인 부모들은 가부장제에 기반해 자녀에게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강조했다. 이에 어긋나면 체벌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권위적인 부모상이 지배적이었다. 최근에는 맞벌이가 늘어나고 가부장제가 옅어지면서, 권위적인 부모상에서 자녀와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친근한 부모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신의 행동을 자녀에게 상세히 설명해주고 자녀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렌디 대디(Friend+Daddy), 친구 같은 아빠처럼 자녀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녀의 시선에 맞추는 부모가 대세다.
2021년, 시장 조사 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2퍼센트가 ‘요즘은 친구 같은 부모가 대세’라고 답했다.[3] 그만큼 부모와 자녀 간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김용섭은 《라이프 트렌드 2020》에서 요즘 밀레니얼 세대 부모를 “친구 같은 아빠와 엄마, 의사 결정에서 수평화가 이루어진 가족 관계, 자녀 교육에 대한 맹목적인 지원이나 투자 대신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부모상”이라고 진단했다.[4]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녀의 가치도 달라졌다. 자녀는 전통적으로 대를 잇는, 혹은 노후를 보장하는 생산재였다. 이제는 가부장적 의식이 옅어지고, 개인의 노후는 사회가 부담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자녀는 더 이상 생산재가 아닌 고비용 소비재에 가까워졌다.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만 남은 것이다. 가업을 잇거나, 부모를 부양한다는 자녀의 ‘경제적 역할’보다도 부모와 공감할 수 있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정서적 가치’, ‘관계적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자녀의 질적이고 정서적 측면이 더 중요하게 되자 부모의 자원을 소수의 자녀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육아도 마치 일하는 것처럼
밀레니얼 부모에게 일이 중요한 것처럼 육아도 중요한 과제다. 밀레니얼 부모에게 육아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아닌 하나의 인생 과제다. 육아라는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 마치 대학교에서 학위를 따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듯 끝없는 자녀의 발달을 위한 양육 과제를 열심히 해결해 나간다. 밀레니얼 부모는 육아하면서도 일하는 것처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나가고, 육아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밀레니얼 부모가 육아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최근 밀레니얼 부모들 사이에서는 ‘육아 퇴근’, ‘빠른 육퇴 기원’이라는 단어를 흔하게 쓴다. 이는 육아는 일상, 자연스러운 것에서, 이제는 육아가 업무의 일종이 됐음을, 즉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육아 퇴근’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육아와 개인 자유 시간의 구분은, 즉 부모로서의 자신과 자녀와의 정체성이 분리됐음을 의미한다. 요즘 육아는 엄마, 아빠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하는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일로 인식되고 있다.
요즘 부모는 아기가 잠들고 난 육아 퇴근 후에도 바쁘다. 일과 시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육아 질문들을 열심히 인터넷, 유튜브 전문가를 통해서 검색하고 해결한다. 때로는 수많은 전문가가 전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떨 때는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얻을 때도 있다. 육아 관련 정보가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업데이트된 정보인지 따지기도 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살피다 보면, 오히려 불안하고, 혼란스러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요즘 부모들이 육아 퇴근 후에도 바쁜 이유는 육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는 이전의 방식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답을 찾고 싶다. 밀레니얼 부모는 육아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들은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을 비롯해 육아 전문가가 주관하는 컨설팅, 교육 프로그램, 책을 찾아 공부한다. 사회적 상황과 문화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예전의 조언과 방식을 따르기는 퍽 불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마와 아기가 동시에 나타났을 때 연관되는 감성 단어 중 ‘걱정’, ‘스트레스’, ‘불안’, ‘실패’가 높은 순위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