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육아
3화

산 넘어 산, 돌봄 문제에 직면하다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인가


17개월 아기를 둔 30대 A씨 맞벌이 부부의 일상을 살펴보자.

온종일 회사에서 일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출근, 일명 ‘육아 출근’이 시작된다. 육아 출근과 동시에 밀린 집안일과 요리, 아이와의 시간에 눈코 뜰 새 없이, 피곤함을 느끼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 이미 늦은 저녁 시간, 아이가 깨어 있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아이와 질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돌본다.

A씨 부부에게 주말은 본격적인 가사 노동과 육아가 집중되는 시간이다. 아이 출산 이후, 주말에 부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가져본 지도 오래됐다. 아이와 나들이 일정, 밀린 빨래와 청소, 식료품 쇼핑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말에 오히려 주중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기에 신체적으로도 피로하다.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고, 각자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A씨 맞벌이 부부는 토요일엔 엄마가, 일요일엔 아빠가 육아를 전담한다.

A씨 부부의 일상은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이 버거운 일상마저도 주중 근무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갑자기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일을 그만두거나, 아이가 아프다거나, 부부가 모두 야근을 하거나 출장을 가게 되어 돌봄에 공백이 발생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왜 이전과 달리 요즘 부모에게는 아이 ‘돌봄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됐을까? 사실 일하는 아빠와 전업주부, 두 명의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정상이었던 시대에서는 돌봄 문제가 크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전업주부인 엄마의 몫이고, 경제적 역할은 아빠의 몫으로 명확하게 구분됐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전통적인 ‘정상 가족’이라 불렸던 4인 이상 가구는 2022년 기준 17.6퍼센트를 차지한다. 가장 작은 비중이다. ‘정상 가족’이었던 4인 가구는 이제 ‘비정상화’되고 있다.

신혼부부 과반이 맞벌이인 시대다. 맞벌이가 증가하면서, 일하는 엄마, 집안일 하는 아빠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이를 ‘젠더 대수렴(The Great Gender Convergence)’ 현상으로 설명했다.[1] 남녀 간의 성 역할 차이가 줄어들고 비슷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남성의 영역이었던 경제적 가부장 역할,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아이 돌봄의 역할도 부부가 함께 분담하게 됐고, 부부가 동시에 근무하면서 아이 돌봄 공백이 발생하게 됐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낳고 당면하게 되는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주중 일과 시간 동안 아이를 안정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다. 아이 등·하원 시간에 맞게, 아플 때마다 유연하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원격 근무를 자유자재로 쓰면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높은 수준의 유연성을 제공하면서 안정적인 연봉을 주는 직장은 많지 않다. 특히 일반적으로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오전 8~9시, 하원 시간은 3~4시다. 이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는 풀타임 정규직 근로자는 많지 않다. 맞벌이 부부는 반드시 이 ’돌봄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져 줄 수 있는 등·하원 도우미, 등·하원 전후로 비는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베이비시터나 보육 기관, 서비스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적합한 사람이나 기관을 찾지 못하거나, 해당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휴직하거나 직장을 포기하는 선택지를 고민하게 된다.

 

공동체 붕괴, 각자도생 육아


지금은 핵가족, 개인주의 사회다. 지역 공동체도 무너지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됐다.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에서의 육아는 어떨까. 아프리카에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예전에는 급한 일이 있을 때 옆집에서 아이를 맡아 주기도 했지만, 이젠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주변에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육아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함께 사라지면서 공동 육아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한 명 이상 있다’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61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답하며 32개국 중 최하위권인 30위를 기록했다. 다른 국가 대비 많은 한국인들이 고립감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해체된 공동체 속에서 출산과 육아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적인 과제로 변한다. 오로지 부모와 그 가족, 즉 개인에게 육아 부담과 책임이 집중된다.

마땅히 의지할 친구, 친척, 이웃이 없어지면서 요즘 부모들은 외려 가족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생겼다. 개인과 개인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부모 자식 간 관계는 더 긴밀해지는 것이다. ‘리터루족(Return+Kangaroo族)’이라는 신조어는 이 세태를 잘 담고 있다. 리터루족은 생활비, 주거비나 자녀 양육 등의 이유로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오는 독립한 자녀를 이르는 단어다.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하고는 자녀 돌봄 문제로 인해 다시 부모의 집 근방 도보 5~10분 거리로 이사 오는 경우가 많다. 요즘 부모들은 가능하다면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보육 기관보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부모에게 도움받기를 택한다.

같은 연령대, 같은 세대라도 삶의 방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결혼은 물론 연애도 하지 않는 1인 가구, 결혼했더라도 아이가 없는 2인 가구, 결혼 후 아이가 있는 3인 이상 가구까지 공존하는 시대다. 제일기획이 만든 광고의 한 장면은 34세, 우리 아이 ‘돌’ 사진을 찍는 부부의 모습과 랜선으로 ‘아이돌’ 콘서트를 보는 모습을 대비해 보여 주기도 했다. 비슷한 나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사는 삶의 무대와 배경이 다르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사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기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는 2030 세대가 많다 보니, 주변에서는 육아하는 친구를 찾아보기도 힘든 게 요즘 부모의 현실이다. 육아 경험이 없는 주변 친구로부터 심리적 위로나 공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육아와 관련한 고충을 이야기할 때 서로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공감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겪지 않은 친구와는 점차 공통 관심사를 찾기도 어려워지고, 그만큼 서로 멀어지게 된다. 오프라인에서도 친구처럼 육아 일상을 공유, 연대하고 싶은 요즘 부모의 니즈에 맞춰 동네 육아 친구를 연결해 주는 ‘육아크루’라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 애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1:1 육아 친구 매칭 서비스 덕분에 가까이 사람들과 연결돼 좋은 육아 동지를 만났다는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맞벌이 부모의 선택, 육아 휴직


출산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신생아를 어떻게 돌보고 키울 것인가라는 ‘양육’의 문제를 맞닥트리게 된다. 요즘에는 산후조리원이나, 가정에 방문하는 산후관리사 서비스를 통해 출산 후 육아 초반에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다 해도 출산 휴가 3개월, 육아 휴직이 끝날 때쯤이면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민을 덜기 위해 요즘 부모들은 출생 신고를 하자마자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 대기를 걸고, 시터넷을 통해 베이비시터를 적극적으로 구한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낳고 주로 활용하는 제도는 바로 ‘육아 휴직’ 제도다. 육아 휴직 제도는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고, 6개월 이상 근속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최대 1년까지 쓸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그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부분 아기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육아 휴직을 사용하며(64.3퍼센트), 평균적으로 육아 휴직을 쓴다면 2022년 기준 9개월 정도 사용한다.

한국의 육아 휴직은 법정 기간 대비 사용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는다. 물론 최근 육아 휴직에 대한 직장 내 인지도 및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육아 휴직 사용률도 증가했다. 2010년 11.9퍼센트였던 것이 2022년에는 그보다 세 배 증가한 30.2퍼센트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의 육아 휴직 법정 기간은 OECD 국가 중 7위로 긴 편이다. 반면 실제 사용 일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짧아, 이용률이 19.8퍼센트에 불과하다.[2]

한국의 육아 휴직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출생아 100명 중 여성 21.4명, 남성 1.3명만이 육아 휴직을 사용했다. OECD 국가 평균은 출생아 100명 중 여성 118.2명, 남성 43.4명으로[3] 한국의 육아 휴직 성별 격차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2.7퍼센트에 불과했던 남성 육아 휴직 비율이 2022년 27.1퍼센트로 증가함으로써 약 10배 늘었으나 아직까지 여성의 육아 휴직 사용이 전체의 대부분인 72.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더라도 아이 돌봄에 대한 부담은 아직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육아 휴직을 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가장 먼저 와닿는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줄어드는 체감 소득이다. 육아 휴직 기간에도 일부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회사에서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정부에서 육아 휴직 급여를 지급한다. 육아 휴직을 하면 받게 되는 금액은 최대 월 150만 원으로 책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중 75퍼센트인 월 112만 5000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육아 휴직 급여의 25퍼센트는 복직 6개월 후에 사후 지급금 형태로 받게 된다. 이 사후 지급금마저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직하지 않거나, 복직 후 6개월 내 퇴사하게 된다면 받지 못한다. 육아 휴직 기간 받는 금액은 75퍼센트에 불과해 체감 소득은 150만 원보다 더 낮은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육아 휴직자 월평균 육아 휴직 급여는 102만 5000원이다. 이는 2020년 기준 3인 기준 생계 급여 116만 원보다도 더 적다. 다른 국가 대비 한국 육아 휴직 급여의 소득 대체율은 낮다. 2022년 OECD 자료 기준, 한국 육아 휴직 급여의 소득 대체율은 44.6퍼센트로, 하위권에 속한다. 육아 휴직을 하면 소득이 반감하는 것이다. 소득이 적으면 육아 휴직이 경제적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월 소득 210만 원 이하는 육아 휴직 사용률이 18.2퍼센트로 점점 감소하는 반면, 월 소득 300만 원 이상은 육아 휴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4]

법적으로 보장된 1년간의 육아 휴직 제도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육아 휴직자의 과반은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즉 육아 휴직 제도는 줄어든 소득을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 직장인이 쓸 수 있는 제도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육아 휴직은 그림의 떡이다. 직장인 중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 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45.2퍼센트였다. 특히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월 급여 150만 원 미만 직장인에게서 그 비중이 더 크게 나타났다.

육아 휴직 제도가 있지만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31.8퍼센트), 그다음으로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25.2퍼센트) 때문이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자 수가 적기 때문에 육아 휴직으로 자리를 비우면,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을 때가 많아 휴직 신청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게다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자영업자, 프리랜서, 학생 등은 육아 휴직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육아 휴직을 어렵게 쓰더라도, 복직 후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많다. 육아 휴직을 쓴다고 회사에 알리게 되면 ‘퇴사하는 사람’, ‘승진에 대한 욕심을 버린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 육아 휴직을 쓰고 난 후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승진에서 누락, 최하위 고과를 받거나, 다른 부서로 배치받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 내에서 받을 불이익을 각오하고 육아 휴직을 쓰게 된다. 사회적으로 육아 휴직은 ‘쉬는 것’, ‘노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귀한 직장인에게, ‘잘 쉬다 왔냐’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한다.

육아 휴직의 낮은 소득 대체율, 육아 휴직 사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사용률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빠의 육아 휴직 사용 비중이 증가하면서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부담이 아닌, 점차 부부가 공동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는 추세다.

 

할마·할빠 육아


맞벌이 부부 10쌍 중 여섯 쌍이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다.[5] 할머니가 엄마가 되고, 할아버지가 아빠가 되는 할마, 할빠 육아가 성행하는 것이다. 2022년, 한국리서치는 황혼 육아를 경험하는 조부모 55~69세 300여 명을 대상 설문을 진행했다. 손주 육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는 불과 27.8퍼센트에 불과했다. 조부모 대다수가 맞벌이 자녀의 부탁으로, 자녀를 돕기 위해서 육아를 맡게 됐다고 응답했다. 이때 손주와의 관계는, 외가가 친가보다 두 배 이상 높았으며, 외할머니가 54.0퍼센트, 친할머니는 27.2퍼센트 비중을 차지했다. 엄마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이 편한 외가에 더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6.8시간, 주 3일 이상, 1년 이상 보수 없이 손주를 돌보고 있었다.

손주를 봐달라는 자녀의 부탁은 조부모 입장에서는 딜레마다. 현재 손주 육아를 1년간 경험한 60대 전업주부 B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처음엔 (손주를 봐달라는 자녀의 부탁을) 거절할까도 생각했지. 나도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이곳저곳 아프지만, 딸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공부도 많이 하고 이제 겨우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육아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으면 해. 내가 희생해서라도 딸은 그런 삶을 안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돕는 거야.”

육아를 도맡은 조부모들은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손주 육아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6] 물론 자녀 육아를 자신의 부모에게 부탁하는 요즘 부모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아이를 낳고도 직장 생활, 학업을 이어 나가고 싶어 부모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지만, 부모님에 불효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안게 된다.

요즘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딸을 낳으면 비행기는 타지만 주방 매트에서 죽는다.” 일본에도 비슷하게 ‘손주 피로(孫疲れ)’라는 단어가 있다. 손주를 돌보는 일은 행복한 일보다는 피곤한 일이다. 실제로 조부모의 신체적 피로도와 심리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특히 신체적인 질환이 있거나 건강이 좋지 못한 경우 육아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손주 육아를 통해 신체적인 건강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의 경우 삶의 만족도가 높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낮게 나타났다.[7] 손주와의 유대감 및 애착, 개인의 보람, 사회적 기여 등은 조부모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손주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대인 관계 문제 발생 빈도를 낮추며[8], 자녀의 출산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9]

전 세계적으로 황혼 육아가 증가하고, 조부모의 육아 참여가 저출산 해결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더라도, 조부모의 손주 육아가 궁극적인 돌봄 공백의 해결 방안이 돼서는 안 된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아무런 경제적 보상이나 사회적 지원이 없다면 아이 돌봄에 대한 책임을 결국 조부모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황혼 육아가 조부모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심리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조부모의 손주 육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양육 부담을 덜 수 있는 공공 돌봄 서비스 지원 체계와 정책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이에 선진국은 조부모의 돌봄을 사회적으로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것도 일종의 직장 근무로 보고 손주 돌봄 기간만큼 국민연금을 납입할 수 있는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연금 크레딧 제도를 운영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손주 출산과 돌봄에 휴가를 쓸 수 있는 손주 휴가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월 30만 원 수준의 조부모 손주 돌봄 수당을 지원하고, 손주 육아에 필요한 양육법, 스트레스 관리 요령 등의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이를 운에 맡기다, 베이비 시터와 어린이집


육아 휴직도 쓰기 어렵고, 조부모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면 결국 육아를 하늘의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거나,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이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는 것은 천운’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난다면 그를 계속 고용하기 위해 그들이 사는 곳 주변으로 이사를 하는 경우도 생길 정도다. ‘운이 안 좋으면’ 계속 면접을 보며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베이비시터를 찾아야 한다. 24개월 남아를 키우고 있는 30대 여성 C씨는 출퇴근 베이비시터를 고용했으나, 이미 여러 번 바뀌어 벌써 다섯 번째 면접을 봤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베이비시터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거나, 일이 생겨 휴가를 내야 한다고 하면 더욱더 난감하다.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부탁할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이런 아이 돌봄 서비스 관련 시장이 시스템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린이집, 베이비시터의 아동 학대와 관련된 언론 보도도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아동 학대로 인해 사망한 사건까지 보도되면서 부모들의 마음은 불안감은 더 커진다. 과거의 경력, 특별 요건이나 인증 없이도 누구나 베이비시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뢰를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연구 논문에 나온 인터뷰에 나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기까지는 어려움의 연속이다.[10]

“출산 휴가가 끝나면서 아이를 집 옆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어요. 우연히 일이 일찍 끝난 날 어린이집에 낮에 가봤는데 6개월 된 애가 방바닥에 누워서 우유를 혼자 먹고 있는 거예요. 우유병이 쏟아지지 않게 수건을 돌돌 말아서 어깨랑 턱 사이에 괴어 놓았더라고요.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했지요. 그때부터 친정 엄마가 와 계세요.”(D씨)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상대적으로 민간, 가정 어린이집보다 신뢰성이 더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출생 신고와 동시에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린이집에 입소하기까지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워낙 대기 인원이 많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여 원하는 어린이집에 들어가더라도 맞벌이 부부의 경우 직장 출퇴근 시간과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 사이의 공백을 해결해 줄 베이비시터나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해야 한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하는 데만 해도 월 100~150만 원의 비용이 든다. 베이비시터 모집 공고에 따르면, 중국 동포 기준 2023년 260~320만 원, 한국인은 300~350만 원 수준이다. 맞벌이 가구 평균 소득 월 760만 원 대비 30~50퍼센트 수준의 비용 부담이며, 여성의 평균 임금인 월 268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11]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는 데만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의 월급을 다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돌봄 문제, 해결 방안은 있다


무급 가사 노동은 요리, 청소, 빨래, 돌봄 활동으로, 유급 노동과 비슷한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쓰인다. 집안일, 돌봄도 결국 ‘노동의 일부’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이 노동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급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환산해 본다면 얼마일까. 통계청이 2019년 기준 집안일의 노동 가치를 계산해 본 결과 무려 490조 원에 달했다. GDP의 25.5퍼센트에 해당한다.

무급 가사 노동을 실제 유료 가사, 돌봄 서비스로 대체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사 도우미 ‘청소연구소’ 앱에 의하면 청소 서비스를 받는 비용은 30평대 아파트 기준 4시간에 약 6만 원 선이다. 2023년 베이비시터 평균 시급은 1만 5000원으로, 2023년 최저 시급 9620원 대비 약 1.6배 수준이다.[12] 비록 가사 노동의 대부분은 무급이지만,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산적 활동을 돕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사회적 가치가 없지 않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므로 아무나 할 수 없어,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가사와 돌봄은 결국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도 하나의 문제다. 2021년 양성평등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가사 및 돌봄은 전적으로 혹은 주로 아내가 부담한다고 답한 비율이 68.9퍼센트, 맞벌이도 60퍼센트 이상으로 나타났다. 2019년 통계청 분석 결과에서도,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이 여성 3시간 13분, 남성이 56분으로 여성이 세 배 이상 많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맞벌이 부부도 남편이 54분, 여성이 3시간 7분으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2022년 통계청 기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견해가 과반수인 64.7퍼센트에 해당하는 등 이전보다 인식은 개선됐음에도 실제 가사 부담률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실제로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편 21.3퍼센트, 아내 20.5퍼센트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2023년 기준 육아 휴직자 중 여성 비율이 73퍼센트에 달해, 대부분 여성에게 육아 부담이 쏠리고 있다.

특정 성별에 집중된 가사, 육아 부담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경제 활동 참가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여성들이 육아를 기피하거나, 추가적인 자녀 출산을 포기하는 경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2021년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보고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을 성차별적 구조에서 찾았다.[13] 전 세계 가장 높은 수준의 고등 교육을 받고, 경제적 자립도도 높은 한국 여성들은, 여성에게 치중된 가사 육아 부담과 경력 단절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나쁜 거래(Bad Deal)로 인식하게 된다. 2022년 한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54.6퍼센트로 OECD 평균인 53.2퍼센트보다 높은 상황이다. 맞벌이를 원하는 요즘 부모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의 기회비용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 부모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 돌봄 문제는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의 저출생 위기 극복 방법을 다룬 책인 《인구 위기》는 여성이 돌봄을 전담하고, 남성이 경제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통적인 자녀 양육 방법은 이미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라 변화된 사회생활, 경제적 조건에 따라 여성은 비출산을 선택함으로써 ‘적응’하고 있다. 저자는 약화한 가정의 돌봄 기능을 사회적으로 확장해, 아동 보육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가정이 양육 환경으로서 퇴보할 때, 학교나 사회는 단절된 가족의 돌봄 기능을 수행하고 아동의 집단 돌봄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 가정 돌봄을 효과적이고 무해하게 대체하고 불충분한 가정 돌봄을 사회로 확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아이 돌봄 문제를 부모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보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14]

아이 돌봄 인력 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요즘 부모들이 베이비시터를 어떻게 구하는지를 살펴보자. 대부분 ‘지인 또는 친인척의 소개로(75.6퍼센트)’, 산모 도우미의 소개(9.4퍼센트)로 아이 돌볼 사람을 알음알음 구하고 있다. 물론 4.8퍼센트의 경우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구하기도 했다.[15]

최근 아이 돌봄을 양지화했다고 평가받는 ‘맘시터’ 앱은, 아이 돌봄 매칭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돌봄 인력에 대한 신원 확인, 본인 인증, 아동 학대 성범죄 경력을 조회해 주고, 관련 육아 자격증과 가족 관계 증명서, 건강 검진 결과서도 검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이 돌봄 인력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 및 부모-아이 돌보미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 앱으로 평가받는다. 아이를 외부에 맡기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모의 불안감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서비스인 것이다. 베이비시터의 투명한 정보 공개, 인증 제도 운영과 동시에 적절한 보상과 처우 개선도 필수적이다. 물론 일부 베이비시터의 자격 미달, 학대 논란이 있지만, 베이비시터에 대한 적절한 처우, 법적 보호 없이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언제나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보육 기관도 확충해야 한다.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못할 때, 베이비시터가 갑자기 급한 사정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 갑작스러운 부모의 야근으로 인해 공백이 발생할 때, 비상시에도 유연하게 보육 기관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보육 서비스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질도 중요하다. 공공 보육 서비스가 있더라도 아이에게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다면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회장 백선희 교수는 2022년 11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보육 시설이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미흡하다. 아동 학대 문제 등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부모들은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신뢰할 만한 우수한 보육 시설이 주변에 있다면, 조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하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16] 질 높은 보육 서비스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보육 교사들의 전문성과 경력에 맞게, 처우 및 근무 환경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가족 친화적 기업 문화도 중요하다. 정부에서 육아 휴직제도의 법정 기간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부모가 그 제도를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육아 휴직이 형식적인 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롯데그룹의 경우 별도 신청, 승인 절차 없이 자동으로 육아 휴직이 시작되는 자동 육아 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출산하면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남성도 의무적으로 최소 한 달 이상 육아 휴직을 사용하도록 해 육아 휴직 사용률을 높였다. 조직 차원에서 육아 휴직을 장려함으로써 어린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화를 만든 것이다.

물론 육아 휴직 사용률을 높이고 육아 휴직 사용 기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휴직을 사용하지 않고 일을 병행하면서도 같이 육아할 수 있는 육아 친화적 조직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2023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3세 미만의 자녀를 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원격 근무를 가능하게 하고, 미취학 자녀를 둔 근로자들에게는 야근 면제권을 적용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만약 업무 여건상 원격 근무가 불가능하다면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근로자에게 원격 근무와 유연 근무를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특정 시간 이후에 회의나 야근을 제한하거나, 긴급 자녀 돌봄 휴가를 제공해 업무의 유연성을 확보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일부 국내 기업들은 언제든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찾을 수 있는 사내 어린이집을 확충하거나, 직접 아이 돌봄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등 육아기 근로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복지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1]
김난도 외 10인, 《트렌드코리아 2024》, 미래의 창, 280쪽.
[2]
한국은행,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 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2023.11.
[3]
육아 휴직 분할 사용한 건수도 중복 계산돼 100 이상의 숫자가 산출됨.
[4]
국회입법조사처, 〈육아 휴직 소득 대체율의 효과: 남성 육아 휴직 사용의 조건과 과제〉, 2021.
[5]
육아정책연구소, 〈맞벌이 가구의 가정 내 보육실태 및 정책 과제 보고서〉, 2016.
[6]
육아정책연구소, 〈조부모 영유아 손자녀 양육실태와 지원방안 연구〉, 2015.
[7]
경희대학교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 〈국민연금연구원 노후보장패널조사 분석 결과〉, 2024.
[8]
Griggs et al. 〈They’ve always been there for me’: Grandparental involvement and child well‐being〉, 《Children & Society》, 24(3), 2010, p.200-214.
[9]
Thomese & Liefbroer, 〈Child care and child births: The role of grandparents in the Netherlands〉,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75(2), 2013, p.403-421.
[10]
양소남·신창식, 〈어린 자녀를 둔 일하는 어머니의 일가족양립 고충〉, 《보건사회연구》, 31(3), 2011, 81쪽.
[11]
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 〈2023년 여성경제활동백서〉, 2023.
[12]
ZDNET Korea, 〈“동남아 가사도우미 월 200? 너무 비싸” 맘카페 ‘시끌’〉, 2023.05.12.
[13]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PIIE), 〈The pandemic’s long reach: South Korea’s fiscal and fertility outlook〉, 2021.6.
[14]
알바 뮈르달·군나르 미르달(홍재웅·최정애 譯), 《인구 위기》, 2023, 337~338쪽.
[15]
육아정책연구소, 〈민간 육아도우미 이용실태 및 요구 조사 결과〉, 2018.
[16]
브라보마이라이프, 〈저출산 문제 해법은? ‘귀한 아이’ 고령자가 함께 돌봐야〉,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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