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바이오 지도
5화

에필로그 ; 2024년 이후가 달라질 이유

2023년 바이오 주가 흐름은 좋지 않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오 종목으로 구성된 KRX 바이오 TOP10 지수는 2023년 대부분의 기간을 연초 출발점을 밑돌았다. 비중이 가장 큰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90만 원대에서 70만 원 초반까지 밀리기도 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중심인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 상장 지수 펀드(ETF)인 헬스 케어 셀렉트섹터 SPDR(XLV)은 S&P500과 나스닥이 한 해 동안 20~30퍼센트씩 급등하는 가운데서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사실 2023년 초반까지만 해도 바이오 주가는 상승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끝나면 반등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예측부터 틀렸다. 탄탄한 고용과 성장 앞에 미국의 ‘피벗(pivot·통화 정책 전환)’은 뒤로 한참 밀렸다. 미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고, 소비 역시 탄탄한 모습을 보이며 놀라운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 경제의 고공 행진에 글로벌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퍼센트에 다다랐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돈이 풍족하면 시간도 당길 수 있다.”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격언처럼 전해지는 말이다. 유동성이 풍부할 때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 2022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고금리가 지속하고, 돈줄이 마르면 아무리 유망한 산업도 탄력을 얻기 힘들다. 특히 바이오 산업에 금리는 혁신의 속도를 결정짓는 변속기와 같다.

‘바이오의 꽃’이라는 신약 개발 과정은 그만큼 험난하다. 통상 1만 개의 파이프라인이 있으면 그중 80개 정도만 임상 단계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중 10분의 1만이 신약 승인의 전 단계인 3상에 진입한다. 도전을 거듭해 여기까지 도달해도 문제다. 임상 3상에선 수백·수천 명의 다국가·다기관 환자를 상대로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약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천억 원을 투입하는 일이 허다하다. 중소형 바이오테크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빅파마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금융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며 기다리자고 했지만 바이오테크의 체력은 그걸 감당할 정도가 안 됐다. 2023년엔 자금 사정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최후 수단인 주주 배정 유상 증자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중소형 바이오테크가 유난히 많았다. 국내에서만 한 달에 2~3건 정도의 유상 증자 발표가 쏟아졌는데 주주에게 힘든 결단을 요구할 만큼 쪼들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긴축 종료 신호탄이다. 2023년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내놓은 2024년 최종 기준 금리 중간값은 연 4.6퍼센트였다. 9월 발표치(연 5.1퍼센트)와 비교하면 0.5퍼센트포인트나 낮아졌다.

2023년이 금리 인하 기대감을 붙들고 버틴 기간이라면 2024년엔 금리 인하와 함께 실제 채권 등에 쏠렸던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증시의 ‘상저하고’ 전망이 많은 건 금리 인하 움직임이 하반기로 갈수록 구체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오를 비롯한 성장주의 전반적인 회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점이다. 실제로 2023년 연말에 그런 흐름이 이미 나타났다.

하지만 산업의 성장을 금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각국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이전 같은 초저금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여건은 고금리의 장기화를 가리키고 있다. 과거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가 이어진다면 바이오 투자자의 투자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너도나도 잘 될 리는 없으니 더 까다롭게 선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와 기회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고금리는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차별화와 효율화를 통해 또 다른 성장을 기회를 찾아내는 바이오테크도 많다. 당장은 핵심 파이프라인 위주로 효율에 무게를 두겠지만 좋은 기업일수록 위기 뒤에 새로운 성장의 꽃이 핀다는 것을 안다. 비만 치료제 열풍을 복기해보면 알겠지만 중요한 건 트렌드를 읽는 눈이다. 그게 곧 투자 기회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작은 힌트라도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이 책은 중앙일보 프리미엄 유료 컨텐츠 ‘더중앙플러스’에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 ‘K-바이오지도 by 머니랩’이란 이름으로 연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책으로도 펴낼 수 있었던 건 연재 기간 동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덕이다. 좋은 기회를 준 중앙일보와 어려운 여정을 함께 해준 장원석 기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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