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봉과 함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가타카〉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향한 당시의 의심 어린 시선이 녹아 있다. 인간 DNA에 있는 30억 개의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장대한 프로젝트는 1990년 시작됐고, 완벽한 완성을 본 것은 2023년이다.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취사선택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세상, 태어나는 순간 유전 인자에 근거해 계급과 한계를 단정 짓는 사회. 영화 〈가타카〉가 그리는 생명 공학의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인간 생명의 설계도를 모두 읽어 낸 지금까지 영화 속 부조리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과학은 우리의 삶을 바꿨다.
개인의 잘못이나 불운의 결과로 여겨졌던 치명적인 질병들이 하나둘 치료 가능해졌다.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이었던 비만은 이제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환자는 물론 환자 가족의 미래를 앗아가는 치매 또한 게임 체인저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앞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인류는 유전자를 ‘읽는’ 존재를 넘어 ‘편집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겠다”라며 생성형 AI를 이용해 생명 공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노라고 선언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의 야심도 만만치 않다. 기술이 달리고 있다. 미래가 가까워진다.
“Never saved anything.”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는 결함을 가진 유전자를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그 무엇도 아껴 두지 않았다. 멋진 성공 스토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전력 질주할 수는 없다. 극복해야 할 몸으로부터 한 걸음씩, 인류는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이오 산업의 잠재력은 수익률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섹터의 눈부신 성장은 인간의 삶을 재정의한다. 노화와 질병은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니다. ‘생애 주기’의 의미가 퇴색한다. 나이 들면 누군가의 돌봄에 기대고 병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시대가 끝난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가 바뀐다. 지금, 바이오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 기민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최첨단 기술과 특수한 산업적 구조를 두 저자는 세심하게 풀어낸다.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의 전문성과 장원석 중앙일보 기자의 해석력이 돋보이는 《2030 바이오 지도》에서 독자 여러분도 인류의 새로운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아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