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분량과 함께 천재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Karl Ove Knausgaard)의 빛나는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 2권에는 삶에 관한 음울한 조언들이 있다. 그는 탄식하듯 말한다. “내가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 자신이 이렇다 할 누군가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 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 자신이 뭔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성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크나우스고르의 책은 성공이란 대부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런 문장을 썼을 당시에 그는 부유한 국가들의 모임인 OECD 회원국 정치인들의 일자리 자랑에 대해서는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그걸 염두에 두고 썼는지도 모른다.
“실업률 수치가 51년 만에 가장 좋다. 와우!” 지난달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Theresa May)는 지난 2월에 이렇게 자랑했다. “고용률이 기록적으로 높고, 실업률은 기록적으로 낮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전에는 호주 총리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이 이렇게 소리쳤다. “우리 정부하에서 작년에만 매일 730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런 사실을 알렸다. “청년층 고용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정치인들의 으스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하지 않다. 일자리 증가는 그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다른 요인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처럼 실제로 일자리가 늘어났다. OECD 국가들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회원국들에서 늘어난 일자리 수는 4300만 개다. 실업률(전체 노동 인구 중 구직자 수)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표1 참조). 모든 회원국들의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의 실업률은 2008~2009년 금융 위기 이전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노동 참여율은 여전히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다. 2018년 생산 가능 인구의 고용률은 영국과 캐나다, 독일, 호주를 비롯한 22개의 다른 회원국들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호황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비숙련 노동자와 청년층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고, 장기 실업 상태 역시 줄어들고 있다. 정규직을 찾을 수 없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2008~2009년의 금융 위기 직전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2013년부터는 하락하고 있다(표2 참조). 미국 노동 통계국은 공식 실업률을 광범위하게 산출하는데, 여기에는 비자발적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노동 인구에서 제외됐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현재 그 수치는 장기적인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가?
일자리 호황의 규모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이 하락했다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오래된 공통적 인식이다. 사람들은 우버 택시를 운전하거나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진짜 직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처럼 — 제조업과 같은 남성들 위주의 전통적인 — “일자리”가 말라 버린 건 사실이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OECD 회원국들의 고용률을 보면, 중급 숙련직의 비율은 10퍼센트 하락했다. 다트머스대 교수이자 영국은행 금융정책위원회의 위원이었던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David Blanchflower)가 다음 달에 발간하는 신간의 제목은 이렇다. 《일하지 않는다: 그 모든 좋은 일자리들은 어디로 갔는가?(Not Working: Where Have All the Good Jobs Gone?)》. 어쩌면 학계와 언론계에서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현대의 노동 시장에 관한 주요 담론이 우울한 데에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암울한 진단이 맞을 수도 있다. 일자리가 더 불안정해졌다는 생각을 검토해 보자. 사실, 미국의 긱 이코노미(온라인 시장을 통해 고용되는 단기간 임시직)에 대한 공식적인 추정치는 전체 고용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 임시 고용이 1990년대보다 약간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규직 신규 고용 비율이 최근에 사상 최고치인 50퍼센트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한다는 생각 역시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OECD에서 1년 미만의 일자리를 가졌던 노동자의 비중은 늘거나 줄어드는 추세 없이 2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중급 숙련직 일자리의 붕괴도 재앙으로 판명되지 않았다. OECD 고용률에서 저숙련 노동의 비율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숙련 노동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최근까지도 비밀을 풀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은 임금 상승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실업률이 낮으면 채용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임금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의 시기에는 대부분 “필립스 곡선”[1]이 들어맞지 않았는데, 2014~2016년에는 실업률 하락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필립스 곡선은 다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임금도 마침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 급여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측정한 바에 따르면(노동에 의한 모든 대가를 국민 소득으로 집계),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많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임금이 상승하고 있다. 물론 노동 시장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에 비해서는 현재의 임금 상승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이는 더딘 생산성 증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가 과거보다 훨씬 더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도 잘못이다. (중간값의 3분의 2보다 적은 소득을 의미하는) “저임금”을 받는 비율은 20여 년 동안 계속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노동 시장이 만사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말라가(Malaga)의 레스토랑들은 북적이고 길거리는 깨끗하다. 이 스페인 도시의 실업률이 지난 5년 동안 평균 30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이곳에 일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인은 수많은 게임방 정도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텅 빈 택지와 넘쳐나는 노숙자들은 이 도시의 실업난이 심각하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실업률은 2.6퍼센트에 불과하다.
장밋빛 일자리 수치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에서 열망하는 것은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하는 것 아니었냐며 말이다. 사람들이 임금 노동에 참여할 필요가 없게 되면 자기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에 마음껏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좀 더 나아간다. 지난해 출간된 그의 저서 《엉터리 직업(Bullshit Jobs)》은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성서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의 직업이라는 건 대부분 의미 없이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 특히나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그런 경향이 심한데, 그들은 직장 생활 대부분을 사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허비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 반세기 동안 OECD 내에서 가장 낮은 수치인 평균 3퍼센트대의 실업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른 대가가 바로 단조로운 육체노동이라는 것은 무시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네다 공항의 수하물 수취 구역에서 일하는 한 여성의 업무는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있으면서 그 위에 쏟아지는 여행 가방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도쿄의 패션 중심 지구에 있는 한산한 술집에서는, 세계 최고의 진-마티니(오렌지 비터스를 한 방울 떨어트리는 것이 포인트다) 한 잔을 세 사람이 만들고 있는데, 손님에게 나가고 나면 그들은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그레이버 교수는 이것이 사회 발전의 징후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꿀벌로 변화시키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는 강력한 노동 시장으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소득세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연구들을 보면, 실업률은 도난은 물론 폭력 범죄율과도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목적의식을 주고, 목적의식은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사회적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직업을 갖는 것을 통해 더 쉽게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도 있다. 최근 자본주의와 관련해서는 좋은 이야기가 별로 들리지 않았지만, 이것은 좋은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OECD의 노동 시장이 강화된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나라의 정부들은 사람들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더 간편해진 상황에서 고용주들에게 추가 고용이라는 비용 부담을 지우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와 마이클 오스본(Michael Osborne) 교수가 2013년에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내 일자리의 47퍼센트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동일 임금, 차별 금지, 건강 및 안전 조치, 출산 및 육아 휴직 보장 등 노동 관련 규제들은 계속해서 강화되어 왔다. OECD 내 24개 국가의 통계에 따르면, 정규직 중간 소득 대비 실질 최저 임금은 2000년 44퍼센트에서 현재 50퍼센트로 상승했다.
산업의 중심지들
노동 시장은 왜 이리도 활황인가? 이는 부분적으로는 경기의 순환과 관련되어 있다. 경제 성장은 실업률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 금융 위기에서 회복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국은 적당히 느슨한 통화 정책에 힘입어 역대 최장 기간의 경제 성장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편, 포퓰리즘의 인기와 금융 위기 등이 맞물려 불확실성이 대두되면서, 기업들은 회수가 어려운 대규모 투자보다는 직원을 고용하는 일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노동 집약적인 서비스 부문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도 금융 위기 이후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다. 이런 모든 점들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이 놀라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낮을 줄은 몰랐다. 2013년 10월, IMF는 향후 5년 동안의 선진국 경제 전망을 발표했다. IMF는 연간 GDP 성장률을 2.4퍼센트로 내다보면서, 2018년의 예상 실업률은 6.9퍼센트일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IMF는 경제 성장률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실업률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2018년의 실업률은 5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을 경기 순환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인구, 기술, 정책에 관한 장기간에 걸친 구조적 변화들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먼저 인구를 살펴보자. OECD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청년층의 실업률이 중장년 집단보다 더 높은 경향이 있다. 상대적인 기술력 부족은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장년층은 한번 직업을 잃으면 은퇴해서 노동 인구 통계에서 제외될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청년 실업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실업률이 높았던 1980년대에는 부유한 국가들의 15~24세 청년들이 노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퍼센트였다. 현재는 17.5퍼센트 정도로 떨어져 있다.
바꿔 말하면, 인구 구조의 변화로 현재의 실업률을 과거와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의 2000년 인구 구조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지금의 실업률은 0.5퍼센트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컨설팅 업체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유로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곤두박질치는 실업률은 통계적 오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의 중요한 요소인 기술적인 변화는 노동 시장을 그야말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서 고용주와 잠재적 피고용인의 “매칭(matching)” 사례가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인이라는 것은 지역 신문에 광고를 한다거나 구두로 퍼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는 고용주들이 다양한 채용 사이트들에 즉시 채용 공고를 낼 수 있다. 결원을 채우는 데 드는 실질 비용이 2016년까지 10년 동안 80퍼센트 줄어들었다. 그리고 구직자들은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피터 쿤(Peter Kuhn)과 하니 만수르(Hani Mansour)가 2011년에 발표한 연구는 인터넷을 통한 구직 활동이 구직자의 실직 기간을 25퍼센트 정도 줄였다고 밝히고 있다. OECD에서 높은 실업률을 보이는 나라들은 온라인을 통한 구직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곳인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에서는 실직자의 40퍼센트만이 온라인 구직 활동을 한다. 반면 한국은 95퍼센트 이상이다.
규모가 작다고는 해도 긱 이코노미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일자리들을 창출해 고용을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수도꼭지를 고치는 것은 직접 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화면을 터치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시킬 수 있는 일이다.
작업 진행 중
일자리 호황에는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난 작지만 수많은 정책의 변화라는 세 번째 중요한 요인이 있다. 최근 정치인들이 자신의 성과로 주장하려 하는 부분이다. 각국 정부들은 당근과 채찍을 써 왔다. 당근 중에서는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강화되어 왔고, 육아 휴직은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점점 확대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경제 개혁 방안에는 아동 보육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노동 참가에 영향을 미쳤다. 2013년에 발표된 프랑신 블라우(Francine Blau)와 로렌스 칸(Lawrence Kahn)의 연구 결과를 보면 특히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성 고용률은 OECD 내에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 왔다. 미국에서는 여성 고용률이 주춤하고 있지만, OECD 전체적으로 보면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표3 참조).
또 다른 당근은 교육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고등 교육을 받은 OECD 내 노동자의 비율은 2000년 22퍼센트에서 현재 거의 40퍼센트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 비해서 고용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고등 교육은 대개 우수한 직업 윤리를 갖게 해주고, 그러한 노동자들은 활용 폭이 넓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채찍을 휘두르기도 한다. 많은 나라들이 단체 교섭 협의나 노동조합이 갖는 힘을 억눌러 왔다. 덕분에 임금은 시장 상황에 따라 좀 더 유연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수십 년 전에 비해 명목 임금이 감소한 노동자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소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고용주가 힘든 시기에 임금을 삭감할 수 있다면,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임금 체계는 올라가기 쉬운 만큼 쉽게 내려가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노동자들의 실수령 임금에서 보너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인데, 이는 경제 불황의 시기에 간편하게 삭감될 수 있는 항목이다. 2009년 일본의 접객업 부문에서는 노동자들의 연말 보너스가 40퍼센트 이상 삭감되었다.
낡은 노동 관행을 개선하는 데 실패한 나라들은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국적으로 350개에 이르는 산업 협정이 거의 대부분의 기업과 정규직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협정은 생활비와 생산성의 지역 격차는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한 대가는 가난한 남부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대거 퇴출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에서는 경제적 상황이 바뀌어도 단체 교섭 협정은 좀처럼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08~2009년 당시에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불경기가 찾아왔지만, 건설 업종의 명목 임금은 5퍼센트 상승했다. 사장들은 직원들을 자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각국 정부들은 보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어 왔다. 2001년에는 평균 임금을 받는 무자녀 1인 가구 노동자가 1년간 무직 상태가 되면, 직전 소득의 48퍼센트 정도를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2018년에는 그 비율이 41퍼센트로 줄어들었다. 고용 보험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폭 까다로워진 자격 수급 심사를 받아야 한다. 영국에서 실업 수당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지난 20년 동안 8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로 인해 임금 유연화가 이어졌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실업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임금 삭감을 택할 것이다.
이러한 개혁 조치들은 가혹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조치들은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커스 해거돈(Marcus Hagedorn), 이우리 마노프스키(Iourii Manovskii), 커트 미트먼(Kurt Mitman)은 공동 논문을 통해서 2013년의 미국 사회를 들여다봤는데, 당시 실업 수당 수급 기간이 73주에서 25주로 줄어든 사람들도 있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복지의 축소로 2014년에만 200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그해 전체 고용 증가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치다.
끝없는 노동
컴퓨터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직 상태로 내몰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노동 시장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우울한 전망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프레이와 오스본의 추정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사실이 될 것이다. 임금 상승이 가속화되면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자동화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500년 동안의 경험을 되짚어 보면, 기술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의 일자리가 파괴되기보다는 보완되어 왔다. 하늘을 찌르는 지금의 고용률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들도 많이 있다. 현재의 성장세를 보면 앞으로 경제는 더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에 일부 OECD 국가들의 실업률이 1퍼센트 정도로 낮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비경제 활동률, 실업률은 더 줄일 여지가 있다.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투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몇 가지 실질적인 조언을 남긴다. “그러니까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라.” 모든 사람들이 조언을 따른다면, 부유한 나라들의 일자리 시장은 더욱 놀라운 일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