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징후
변화: 틱톡과 이탈리아의 은행이 대규모 해고를 진행한다. AI의 도입에 따른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는 공식적인 사례다.
징후: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시스템이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AI는 강력한 시스템이다.
AI의 도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
틱톡(Tiktok)이 전 세계 직원 수백 명을 해고했다. 현지 시각 지난 10월 9일 통지 이메일이 발송됐다. AI의 도입으로 사람 손이 예전보다 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해고가 진행되는 분야는 콘텐츠 검수 쪽이다. 지금까지는 AI와 사람의 검수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제 AI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인원이 줄어들었다. 말레이시아 지사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500여 명이 감원 바람에 휘말렸다. 틱톡은 다음 달 더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이탈리아의 BPER 은행도 20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한다.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생성형 AI 기반의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AI 도입을 통한 인력 감축 계획이 실행 초기 단계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UBS 그룹도 인수합병 제안을 위해 30만 개 이상의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30분 이내에 분석할 수 있는 AI 도구를 개발했다. 도이치뱅크는 부유층 고객 포트폴리오 검토 업무에 AI를 사용한다. ING 그룹은 잠재적 채무 불이행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AI에 맡겼다. BPER 은행은 해고 발표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금융권에서 AI가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소식은 앞으로 더 자주 들려올 것이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KB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콜센터 협력업체를 6곳에서 4곳으로 줄이면서 콜센터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240명의 일자리였다. 결과적으로 신규 협력업체 2곳에서 이들을 고용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고 위기에 몰렸던 이들은 AI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 ‘그림자 노동’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업무가 끝난 후 한 시간씩 남아 챗봇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부분을 일일이 수정하거나, 전화 상담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타이핑해야 했다. 그들의 노동은 AI를 학습하는 데에 투입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비관론을 이야기한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분명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켜 부의 증대로 안내해야 할 혁명적인 기술이다. 그러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몰리고,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뛰어드는 것 아닌가. 그러나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콜센터에서 벌어진 일, 틱톡과 BPER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예견되었다.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지난 6월 발행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서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에 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향후 10년간 AI로 인한 미국 경제 성장을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 생산성 향상: 0.5퍼센트 (골드만삭스 예측 9퍼센트)
- GDP 성장: 누적 0.9퍼센트 (골드만삭스 예측 6.1퍼센트)
예측값이 너무 짠 것 아닌가 싶지만, 근거가 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AI 기술이 실제로 인간의 업무를 얼마나 자동화할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이미지 인식 (
컴퓨터 비전) 분야에 한정했을 때, 이 기술에 영향을 받는 작업의 4분의 1 정도가 10년 안에 자동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비용 대비 효율이 나오는 자동화 얘기다. 이는 전체 작업의 약 4.6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를 선행 연구 결과에 대입하여 추정한 결과가 GDP 누적 0.9퍼센트 성장이라는 소박한 숫자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차이다. 생산성 향상이 GDP 성장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는 AI 기술이 주로 ‘자동화’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과 자본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 폭에 비해 GDP 성장 폭이 더 커진다.
AI는 당신의 임금을 깎아버린다
구체적으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식은 어떻게 될까. 아제모을루 교수는 2024년 3월 발표한
논문, 〈간단한 AI 거시경제학(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을 통해 AI 시대의 경제 정책을 제안했다.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인간과의 협업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AI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AI는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지만, 불평등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과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논문에서는 이를 ‘배우기 쉬운 작업(easy-to-learn tasks)’과 ‘배우기 어려운 작업(hard-to-learn tasks)’으로 각각 지칭했다.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에 AI가 도입되어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이 올라간다면, 쉬운 일은 더 쉬운 일이 된다. 작업의 가치가 하락한다. 쉬운 일을 함께 하고 있던 중숙련, 고숙련 노동자는 어려운 일 쪽으로 투입된다. 결과적으로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사이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쉬운 일, 어려운 일에 모두 AI가 균등하게 도입된다면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 간의 격차가 확대된다. AI로 인해 자본의 투자 수익률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AI는 자본 집약적 기술이다. 발전하면 할수록, AI는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즉, 자본 소득이 증가한다. 반면, AI가 작업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사람의 역할은 축소되고 임금 인상이 억제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 기회가 줄어들고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 소득이 감소한다.
사유
80살 어르신이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도록 한 시간 동안 도와드렸던 경험을 반추하며, 콜센터 노동자는 이런 일을 AI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런 일을 굳이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한 시간 분량의 설명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AI 챗봇이 비용 대비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지금 하는 일을 언젠가 멈추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은 늘 그런 사건을 만들어 왔다.
벤처 사업가인 비노드 코슬라는 AI가 앞으로 10년 안에 모든 일자리의 80퍼센트를 대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코슬라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흘러넘치는 부를 고루 나누면 부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생각은 다르다. 아제모을루 교수와 함께 《권력과 진보》를 함께 쓴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MIT 교수는 AI로 인해 사라지는 만큼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은 일하기를 원하며, 기본소득론은 ‘패배주의’라는 것이다. ‘자동화’가 아닌 ‘인간과의 협업’을 위한 AI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아제모을루 교수의 생각과 맞닿는 지점이다. 우리는 어떤 AI를 바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