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라이팅
1화

들어가며: 에디토리얼 라이팅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2014년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지식 구독 서비스 ‘북저널리즘’을 출시하고, 책과 피처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11년간 165권의 책을 발행했습니다. 제가 편집에 참여한 책은 98권입니다. 집필한 책은 14권입니다. 예술가의 전기를 썼고, 기업가의 창업기를 썼고, 정치가의 비전을 썼고, 브랜드의 역사를 썼습니다. 책을 쓰고 편집하며 글쓰기의 두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독자를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발행된 글은 책이든 칼럼이든 보고서든 소셜 미디어 게시물이든, 모두 프로덕트(product)입니다. 프로덕트 오너(owner)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때 고객의 문제를 정의하고 니즈를 분석하듯, 작가는 독자에게 집착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회사에서 부장이 받아 볼 보고서를 작성하는 대리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공학적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구성이 글쓰기의 거의 전부입니다. 작가들과 책 작업을 해보면 목차 구성이 세밀할수록 좋은 책이 나옵니다. 저는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 이 글도 문단 개수와 분량을 정해 놓고 쓰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문단의 길이도 맞추려 합니다. 구조적·시각적 균형이 잡힌 글은 필연적으로 논리적 균형을 이룹니다.

회사를 차리기 전에는 국회에서 일했습니다. 정치인의 메시지를 작성했습니다. 시장 선거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여러 선거를 경험했습니다. 제가 작업한 원고가 국회 회의장과 유세차에서 읽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글 창의 글이 말이 되고, 말이 다시 정책이 될 때는 대단한 혁명가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정치 언어를 쓰는 동안에도 글쓰기 원칙이 있었습니다.

셋째, 목적이 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정치적 글쓰기라면 정치적 목적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정치적 목적이란 정치인의 사익이나 당리가 아닙니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입니다. 목적성과 진정성이 없는 글은 아무리 유려해도 생명력이 없습니다. 부사와 형용사에 의존하는 허약한 글이 됩니다.

넷째, 명료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벼리고 벼리어 더는 줄일 수 없는 문장이 가장 좋습니다. 청중과 독자의 기억에 오래 박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문장에 남는 단어가 없어야 합니다. 없어도 무방하다면 있어선 안 됩니다. 대체할 수 없는 단어를 찾고 군더더기는 쳐냅니다. 문장 구조는 하나의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 단문을 기본형으로 채택합니다.

정리하면, 좋은 글이란 ①독자를 중심에 두고 ②공학적으로 설계해 ③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④명료한 문장으로 쓴 글입니다. 물론 네 가지 원칙을 모든 글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원칙대로라면 베케트적 글쓰기는 낙제점을 받아야 할 테니까요. 이 원칙에 적합한 글이 바로 에디토리얼 라이팅(editorial writing)입니다. 설명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글입니다.

돌아보면 지난 20년간 제가 다룬 텍스트의 성격은 에디토리얼 라이팅이었습니다. 저는 픽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글쓰기가 에디토리얼 라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에디토리얼이란 무엇일까요. 에디토리얼의 사전적 정의는 명사로는 ‘사설’이고, 형용사로는 ‘편집적’입니다. 명사적 해석은 글의 유형을, 형용사적 해석은 글쓰기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명사부터 살펴볼까요. 신문과 잡지의 사설이나 칼럼은 특정 주제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기계적 중립을 출력하는 AI의 글쓰기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글이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돈 내고 읽고 싶지는 않지만, 그 행정 명령에 대한 폴 크루그먼의 해석은 돈 내고 읽습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다 알고 있는 주제였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 즉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면서 ―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튀어나옵니다. 그러니까 에디토리얼 라이팅은 생각을 전달하는 글쓰기이자 동시에 생각을 완성하는 글쓰기입니다.

에디토리얼을 형용사로 해석하면 에디토리얼 라이팅은 ‘편집적 글쓰기’ 정도가 됩니다. 편집적 글쓰기란 여러 매체에서 가져온 글감을 재배치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픽션을 제외하고 ― 마블(Marvel) 같은 트랜스미디어(transmedia)가 있기는 합니다만 ― 거의 모든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죠. 저는 편집적 글쓰기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통계와 이름을 잘 외우고, 필요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 논픽션 글쓰기에 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글링만 하면 다 나옵니다. AI 검색까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시대의 글쓰기에선 정보를 많이 아는 것보다 잘 배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맥락 만들기로 정보의 부가 가치를 높이는 거죠.

일간지를 살펴보면 정보의 위상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 1면의 기사 개수가 1960년대 평균 15개에서 현재 4개로 줄었습니다. 기사의 문법도 변했습니다. 단순 사실을 짤막하게 나열하던 방식에서 주요 이슈의 맥락과 배경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새 소식을 하나라도 더 전달하는 게 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정보가 차고 넘치니까요.

이제 정보는 값이 쌉니다. 비싼 것은 취향과 관점입니다. 바로 에디토리얼입니다. 에디토리얼 라이팅은 작가의 고유한 취향과 관점으로 정보를 선별하고 재배치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학예사가 된 셈입니다. 아무 작품이나 잔뜩 모은다고 전시가 되진 않죠. 1900년대 빈(Wien) 예술계의 분위기를 재현한다는,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에 맞게 전시물을 구성해야 관람객을 설득할 수 있겠죠.

그럼, 에디토리얼 라이팅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역량이 필요합니다. 기획력과 문장력입니다. 정보가 무한한 시대에 기획력은 곧 편집력입니다. 편집력을 더 쉬운 말로 바꾸면 ‘순서 감각이 있다’입니다. 이 감각이 있는 사람은 글을 쓸 때 정보를 단순 나열하지 않고 맥락에 따라 재배치합니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이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합니다.

머릿속 기획을 흘리지 않고 독자에게 잘 전달하려면 문장력이 좋아야겠죠. 문장력을 강화하려면 내 글을 많이 써봐야 합니다. 흔히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다작이 가장 중요합니다. 필사도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내 글을 쓰면 다작과 다상량을 동시에 할 수 있어 훨씬 좋습니다.

제가 아까 165권의 책을 발행했다고 말씀드렸죠. 달리 말하면 165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시행착오는 시행과 착오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성공한 방식을 계속해, 점차 시간을 절약해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아껴 기획력과 문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제 경험을 들려 드릴게요.

작가라는 호칭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생각합니다. 쓰는 순간, 모두 작가인 거죠. 독자님들 가운데 작가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올해는 그 꿈을 이루어 보시길 바랍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에디토리얼 라이팅 더 잘하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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