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견고한 것들/ 미국, 비거주 부문 민간 고정 투자, GDP 대비 퍼센트/ 지식 재산 상품/ 장비/ 건설/ 출처:BEA
최근, 이러한 경향을 강화하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전체 투자액에서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 인프라와 더불어 연구 부문에도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다. 지난해 S&P500 지수에 포함된 미국 테크놀로지 기업들의 투자액은 연구 개발 분야를 포함해서 3180억 달러(375조 24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S&P500 지수에 포함된 전체 기업 투자액의 거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 그중 10개 기업의 투자액만 거의 2200억 달러(259조 6000억 원)다. 5년 전 이 기업들의 투자액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투자액의 상당 부분은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갔다. 이는 다른 기업들의 사내 컴퓨팅 관련 투자를 대체했다.
전반적으로, 지식 재산에 대한 투자 비율은 공장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보다는 안정적이다. 2015~2016년 당시의 저유가로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이 위축되었을 때, 이 부문 투자액은 10퍼센트 하락했다. 과거였더라면 즉각 경기 침체의 경고음이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 재산에 대한 투자는 이와 무관하게 순항했고, GDP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지속되었다. 번스타인 연구소의 필립 칼슨-슬레자크(Philipp Carlsson-Szlezak)는 이러한 현상을 실물 부문에 대한 투자가 과거와 같은 경제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지식 재산 부문 투자에 기댈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1990년대 후반의 닷컴 열풍 당시 지식 재산은 가장 먼저 줄어들기 시작한 투자 부문 중 하나였고, 결국에는 건물과 장비 투자액만큼 하락하고 말았다. 테크 기업들이 모든 부문의 투자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어떤 요인이 과거와 유사한 형태의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인지 살피는 일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거대 테크 기업들의 의존도가 높은 온라인 광고 시장의 위기다. 지금까지 광고 시장은 경기 순환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왔다.
세계가 2015~2016년 경기 부진의 초기 상황을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를 투자 지형의 변화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다.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미친 영향, 연준의 입장 변화로 인한 효과도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연준의 신속한 대응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팽창 기간, 중앙은행들은 나쁜 뉴스들이 쏟아질 때도 꾸준히 금리를 올리다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뒤늦게 금리를 낮추곤 했다. 가장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세 차례 경기 침체 직전에도 연준은 채권 시장이 대폭 하락하는 가운데 금리를 계속 올렸다. 2008년에는 세계 경제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유럽 중앙은행(ECB)이 근거 없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로 금리를 올렸다. ECB는 2011년의 회복기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는 유럽의 ‘더블 딥(double d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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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후에는 선진국 금융 정책에서 중대한 실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의 경기 약세를 마주한 ECB는 2020년 중반까지 금리 인상을 연기했고, 은행들에 보다 저렴한 금리로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ECB는 올해 말쯤 추가 완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연준은 경기 침체를 이유로 금리 인상 계획을 연기했다. 시장은 연준이 7월 31일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통상적인 조정 수치인 0.25퍼센트의 두 배 수준으로 금리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 완화로 무역 침체에 휘청거리던 신흥 시장의 중앙은행들도 완화 정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 신흥국들은 통화 가치 하락이나 달러 표시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2019년에만 해도 벌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가 금리를 인하했다.
팽창이 진행되면 보통 중앙은행들은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저금리 유지와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러한 갈등이 난감한 선택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은 이상할 정도로 낮았다. 이는 노동 시장이 사람들의 생각만큼 경직되지는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기업들의 이익이 임금을 상승시키고, 가격을 올리기에는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제의 글로벌화, 디지털화가 초래한 이해하기 힘든 물가 억제 현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금리 인상에 압박을 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은 2018년이 유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을 인하하면서 미국 경제가 활성화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무역 전쟁이 불붙었고, 세계 경제는 식었고, 연준이 걱정했던 인플레이션 위험은 가라앉았다. 미국의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 지수는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유로존의 해당 수치는 1.1퍼센트다.
중앙은행들이 완화 정책을 펴면서 물가 상승을 걱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완화 정책을 펴지 않았을 경우 벌어졌을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다. 미리 예방해서 사태의 악화를 막겠다는 전략은 아니다.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관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대해서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은 불확실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마이너스 금리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않으면서 단기 금리를 크게 낮추는 것뿐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들에게 미칠 피해는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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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충격에 직면하게 되면, 연준과 다른 중앙은행들은 신규 발행 화폐로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 완화(QE)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적 완화는 장기 금리를 낮춰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기 금리가 이미 낮은 현재로서는 양적 완화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양적 완화의 규모에도 한계가 있다. 유럽에서는 ECB가 구입할 수 있는 개별 회원국의 국채 비율이 33퍼센트로 제한되어 있다. ECB의 독일 국채 매입 비율은 이미 29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ECB가 양적 완화를 재개하려면 국채 매입 기준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50퍼센트 이상으로 올릴 수는 없다. 향후 국가 부채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채권자인 ECB가 과반수의 결정권을 갖게 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신이 폭이 좁기 때문에, 중앙은행장의 판단은 더 중요하다. 2011년 ECB의 실수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경험 많은 각국 중앙은행장들은 교체되고 있다. 오는 11월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의 후임으로 ECB의 총재 자리에 오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금융 정책 경험이 부족하다. 내년 1월에 영국 중앙은행 총재직을 그만두는 마크 카니(Mark Carney)의 후임자는 아직도 지명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준 이사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 자격이 없거나 희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18년 금리를 인상하라며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을 끈질기게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에 재선이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임기가 끝나는 파월 의장의 자리를 자신의 복심을 아는 누군가로 대체할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이사회에 지명한 사람들만큼 의외의 후보자라면 연준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미지의 배반[6]
경기 침체와 중앙은행 실책의 뒤를 이어 강한 충격을 준 세 번째 사건은 10여 년 전 금융 위기였다. 열기와 폭락은 금융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대안정기 동안에 금융 부문의 중요성이 상당히 커졌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바스코 카르발류(Vasco Carvalho)와 하버드대학교의 사비어 갸베(Xavier Gabaix)의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면서 확대된 안정성은 근본적으로 불안한 속성을 지닌 금융의 역할 강화로 상쇄될 수 있다. 금융 부문의 거대한 규모가 2007~2009년의 위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 산업은 2007년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당시의 주택 대출 위기와 견줄 만한 거품의 증거는 없다. 비금융 부문 산업의 부채가 사상 최고치인 GDP의 74퍼센트에 달하고, 이 부채의 일부는 잘게 쪼개져서 일본 은행의 회계 장부와 같은 이상한 곳에 기장되는 금융 상품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하지만 부채에 연결된 자산들은 15년 전처럼 그렇게 부실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품들이 활성화된 주된 이유는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이 주주들에게 이익을 챙겨 주기 위한 전략으로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비금융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과 기업 인수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부채에서 조달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지분을 소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