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순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를 들여다보면서 엄청난 낙관론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이어지고 있고, 미국과 이외 지역들의 기업 신뢰 지수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표1 참조) 여러 조사에 따르면, 무역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세계의 제조업 지수는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위축세로 접어들었다. 국내 수요가 불안정해지면서 서비스업 지수도 제조업 부문에 이어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독일과 같은 강력한 노동 시장을 가진 경제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 채권 수익률은 폭락하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올해 초 약 2.7퍼센트에서 시작했지만, 7월 2일 현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 2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달 초에 -0.4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장기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은 단기 채권 수익률도 장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채권과 물가 연동 채권의 수익률 차이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임금과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하기에는 다양한 경제권의 성장세가 너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표2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제 팽창이 유례 없을 정도로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경제는 2019년 2분기에도 거의 확실히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깨지지 않고 있는 1990년대의 GDP 상승세에 버금가는 성장 기간을 기록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24분기 연속으로 GDP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성장기가 지속되다 보면, 사람들은 곧 끝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2007~2009년의 금융 위기에서 배운 확실한 교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장기 성장에 축배를 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1]인 경제학이 금융 위기 전에 어떻게 떠들어 댔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2]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경기 변동성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나 자화자찬이 극에 달했던 것은 2003년이었다.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미국 경제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불황을 예방하기 위한 핵심 문제를 풀어 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세계 경제는 1930년대 이후로 가장 극심한 침체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황을 막아 냈다고 말하는 건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기나긴 팽창은 루카스와 동료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현대 경제학은 경기 변동의 원인을 총소비의 변화로 설명한다. 소비의 변화가 임금과 물가의 대응에 비해 빠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는 줄어든 소비로 매출이 감소한 기업이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발생한다. 그런데 소비가 감소하면 수요 공급의 원리에 의해서 물가와 임금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더 줄어들게 된다. 대안정기가 찾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비 불안정성을 줄인 경제의 변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수요 진작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중앙은행이 있다. 물론 지금도 금융 폭락은 경기 팽창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금융 폭락을 초래했던 위기는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미국에서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표3 참조)
이 팽창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당장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팽창을 중단시키는 산업과 투자의 실패, 중앙은행의 오판, 금융 위기 같은 요인들은 아직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침체는 그저 지연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비현실적인 일이 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제조업 부문의 침체를 살펴보자. 20세기 후반에 경기 침체를 심각하게 예측했던 사람들은 제조업 부문의 재고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되기 전, 경기 변동 예측 전문가였다. 기업들이 수개월 치 생산 계획을 미리 수립했던 당시에는 경기 변동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수요가 약간만 줄어도 제조업체들은 갑자기 생산을 중단하고 재고를 소진하기에 바빴고, 이는 경기 하락을 심화시켰다.
이제 이 요인은 덜 중요한 것 같다. 공급망 관리 기술이 향상되면서 재고의 양이나 재고 자체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선진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경제에서 제조업의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다. 현 상황이 보여 주고 있듯이, 공장의 가동률이 줄더라도 다른 경제 부문은 별 탈 없이 건재할 수 있다. 무역 전쟁에 직면한 현재의 제조업은 거의 실신 상태이지만, 서비스 산업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고, 그 덕분에 경제 전반도 괜찮은 편이다. 똑같은 양상이 2015년에도 있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더뎌지면서 제조업 부문에서 슬럼프가 나타났던 것이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 가운데 일부는 착시일 수도 있다. 장비를 미리 구입해 두기보다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공급 체인의 변화로 인해 서비스가 제품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들은 실제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기술,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예전에 쇳덩어리를 두들기던 업체들과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제조와 서비스 부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은 투자의 속성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서 국내 총생산(GDP)의 14퍼센트 정도에 달하는 민간 비거주 투자(기업의 설비 투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과 장비 부문에 들어가는 돈은 줄고 있는 반면, 지식 재산으로는 점점 더 많은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현재 지식 재산 분야는 비거주 투자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데, 이는 1980년대의 5분의 1에서 크게 상승한 결과다.(표4 참조) 올해 민간 부문의 지식 재산 투자는 1조 달러(1180조 원)를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전체 투자의 8분의 1 수준이었던 지식 재산 투자가 4분의 1로 늘었다. EU에서는 7분의 1에서 5분의 1로 증가했다.
최근, 이러한 경향을 강화하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전체 투자액에서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 인프라와 더불어 연구 부문에도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다. 지난해 S&P500 지수에 포함된 미국 테크놀로지 기업들의 투자액은 연구 개발 분야를 포함해서 3180억 달러(375조 24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S&P500 지수에 포함된 전체 기업 투자액의 거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 그중 10개 기업의 투자액만 거의 2200억 달러(259조 6000억 원)다. 5년 전 이 기업들의 투자액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투자액의 상당 부분은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갔다. 이는 다른 기업들의 사내 컴퓨팅 관련 투자를 대체했다.
전반적으로, 지식 재산에 대한 투자 비율은 공장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보다는 안정적이다. 2015~2016년 당시의 저유가로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이 위축되었을 때, 이 부문 투자액은 10퍼센트 하락했다. 과거였더라면 즉각 경기 침체의 경고음이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 재산에 대한 투자는 이와 무관하게 순항했고, GDP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지속되었다. 번스타인 연구소의 필립 칼슨-슬레자크(Philipp Carlsson-Szlezak)는 이러한 현상을 실물 부문에 대한 투자가 과거와 같은 경제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기억의 지속[3]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지식 재산 부문 투자에 기댈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1990년대 후반의 닷컴 열풍 당시 지식 재산은 가장 먼저 줄어들기 시작한 투자 부문 중 하나였고, 결국에는 건물과 장비 투자액만큼 하락하고 말았다. 테크 기업들이 모든 부문의 투자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어떤 요인이 과거와 유사한 형태의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인지 살피는 일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거대 테크 기업들의 의존도가 높은 온라인 광고 시장의 위기다. 지금까지 광고 시장은 경기 순환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왔다.
세계가 2015~2016년 경기 부진의 초기 상황을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를 투자 지형의 변화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다.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미친 영향, 연준의 입장 변화로 인한 효과도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연준의 신속한 대응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팽창 기간, 중앙은행들은 나쁜 뉴스들이 쏟아질 때도 꾸준히 금리를 올리다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뒤늦게 금리를 낮추곤 했다. 가장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세 차례 경기 침체 직전에도 연준은 채권 시장이 대폭 하락하는 가운데 금리를 계속 올렸다. 2008년에는 세계 경제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유럽 중앙은행(ECB)이 근거 없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로 금리를 올렸다. ECB는 2011년의 회복기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는 유럽의 ‘더블 딥(double dip)’[4]에 일조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선진국 금융 정책에서 중대한 실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의 경기 약세를 마주한 ECB는 2020년 중반까지 금리 인상을 연기했고, 은행들에 보다 저렴한 금리로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ECB는 올해 말쯤 추가 완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연준은 경기 침체를 이유로 금리 인상 계획을 연기했다. 시장은 연준이 7월 31일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통상적인 조정 수치인 0.25퍼센트의 두 배 수준으로 금리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 완화로 무역 침체에 휘청거리던 신흥 시장의 중앙은행들도 완화 정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 신흥국들은 통화 가치 하락이나 달러 표시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2019년에만 해도 벌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가 금리를 인하했다.
팽창이 진행되면 보통 중앙은행들은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저금리 유지와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러한 갈등이 난감한 선택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은 이상할 정도로 낮았다. 이는 노동 시장이 사람들의 생각만큼 경직되지는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기업들의 이익이 임금을 상승시키고, 가격을 올리기에는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제의 글로벌화, 디지털화가 초래한 이해하기 힘든 물가 억제 현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금리 인상에 압박을 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은 2018년이 유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을 인하하면서 미국 경제가 활성화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무역 전쟁이 불붙었고, 세계 경제는 식었고, 연준이 걱정했던 인플레이션 위험은 가라앉았다. 미국의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 지수는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유로존의 해당 수치는 1.1퍼센트다.
중앙은행들이 완화 정책을 펴면서 물가 상승을 걱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완화 정책을 펴지 않았을 경우 벌어졌을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다. 미리 예방해서 사태의 악화를 막겠다는 전략은 아니다.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관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대해서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은 불확실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마이너스 금리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않으면서 단기 금리를 크게 낮추는 것뿐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들에게 미칠 피해는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분석되고 있다.[5]
상당한 충격에 직면하게 되면, 연준과 다른 중앙은행들은 신규 발행 화폐로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 완화(QE)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적 완화는 장기 금리를 낮춰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기 금리가 이미 낮은 현재로서는 양적 완화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양적 완화의 규모에도 한계가 있다. 유럽에서는 ECB가 구입할 수 있는 개별 회원국의 국채 비율이 33퍼센트로 제한되어 있다. ECB의 독일 국채 매입 비율은 이미 29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ECB가 양적 완화를 재개하려면 국채 매입 기준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50퍼센트 이상으로 올릴 수는 없다. 향후 국가 부채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채권자인 ECB가 과반수의 결정권을 갖게 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신이 폭이 좁기 때문에, 중앙은행장의 판단은 더 중요하다. 2011년 ECB의 실수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경험 많은 각국 중앙은행장들은 교체되고 있다. 오는 11월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의 후임으로 ECB의 총재 자리에 오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금융 정책 경험이 부족하다. 내년 1월에 영국 중앙은행 총재직을 그만두는 마크 카니(Mark Carney)의 후임자는 아직도 지명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준 이사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 자격이 없거나 희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18년 금리를 인상하라며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을 끈질기게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에 재선이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임기가 끝나는 파월 의장의 자리를 자신의 복심을 아는 누군가로 대체할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이사회에 지명한 사람들만큼 의외의 후보자라면 연준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미지의 배반[6]
경기 침체와 중앙은행 실책의 뒤를 이어 강한 충격을 준 세 번째 사건은 10여 년 전 금융 위기였다. 열기와 폭락은 금융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대안정기 동안에 금융 부문의 중요성이 상당히 커졌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바스코 카르발류(Vasco Carvalho)와 하버드대학교의 사비어 갸베(Xavier Gabaix)의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면서 확대된 안정성은 근본적으로 불안한 속성을 지닌 금융의 역할 강화로 상쇄될 수 있다. 금융 부문의 거대한 규모가 2007~2009년의 위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 산업은 2007년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당시의 주택 대출 위기와 견줄 만한 거품의 증거는 없다. 비금융 부문 산업의 부채가 사상 최고치인 GDP의 74퍼센트에 달하고, 이 부채의 일부는 잘게 쪼개져서 일본 은행의 회계 장부와 같은 이상한 곳에 기장되는 금융 상품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하지만 부채에 연결된 자산들은 15년 전처럼 그렇게 부실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품들이 활성화된 주된 이유는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이 주주들에게 이익을 챙겨 주기 위한 전략으로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비금융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과 기업 인수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부채에서 조달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지분을 소각했다.
저금리 역시 현재의 높은 자산 가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산 가격에는 미래 수입에 대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 저금리 지역의 자산 가치가 고금리 지역보다 더 높게 나타날 것이다.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조정되는 주가 수익률(PER)이 지난 2년간 대부분 30 이상을 유지했다는 것이 불안하게 보일 수는 있다. 이런 높은 수치를 마지막으로 넘었던 것이 바로 닷컴 버블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주식의 미래 수익은 과거에 비해 지금 훨씬 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다만 금리를 올리게 되면 이러한 논리는 붕괴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금리 인상은 논의에서 빠져 있다.
투기 행위가 적은 현상도 경제학자들로서는 설명이 필요한 문제다. 중앙은행의 역할과 경제의 근본적인 동인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저금리가 금융 불안정성을 야기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금리가 낮게 유지되어 왔는데, 그런 불안정성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 가지 답변은 금융의 흐름이 자체적인 사이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신용 성장이 상당한 수준의 폭등을 일으키는 금융의 사이클은 등락 폭이 커졌지만, 기간은 15~20년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모델에 의거하면, 미국은 아직 금융 사이클상의 호황기를 맞지 않았다.(표5 참조)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가계와 기업을 포함하는 미국의 민간 경제 부문이 1990년대 말, 2000년대 말과는 달리 부채보다 저축을 더 많이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 부문이 주도하는 경기 하락 현상과 가장 분명한 상관 관계를 보이는 지표로 가계 부채의 증가를 꼽는다. 특히 소비 붐이 동반될 때는 더욱 그렇다. 미국과 유럽 모두 2000년대에는 가계 부채가 크게 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경기 사이클에서 가계 부채가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세계 경제의 전례 없는 팽창은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무역 전쟁으로 꺾인 활기는 중앙은행들의 매우 제한적인 경기 부양 처방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는 건강하다. 조금 더 오래 버티게 된다면, 세계는 조금은 더 건전한 경제로의 전환을 이룬 것처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