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제안한 행동 수칙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꼬드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반대했다. 이들 국가들은 중·러의 제안이 주장하는 비무장 우주라는 개념을 선호했다. EU의 행동 수칙이 밝히고 있는 우주 공간에 자산을 보유한 국가들이 자산 보호를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을 반대했다.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가까운 시일 내에 많은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재래 무기와 우주 무기에 대한 경계도 흐릿하다. 2008년에 미국이 자국 위성을 요격할 때 사용했던 것은 원래 미사일 격추를 위해 개발된 SM-3 요격 미사일이었다. 인도도 요격 미사일로 위성 요격 테스트를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신뢰의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상 군축 협정을 폐기하기에 바쁘다. 새로운 협정의 토대를 찾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특별히 의지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모든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SWF의 브라이언 위든은 지적한다.
하지만 협정이 없었더라도 최소한 대화는 했어야 했다.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은 리스크를 줄이고 통제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핵무기 정책에 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우주 보안과 관련한 사안에서 대화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두 나라의 전함이 조우할 경우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처럼, 그들은 근접 작전 시 안전거리에 대한 규칙을 구체화할 수도 있었다. 대화가 있었다면 모든 민간 위성에서 트랜스폰더(transponders·무선 송수신기)를 사용하고 점검 계획이 있으면 사전에 통지한다는 내용을 필수 사항으로 포함시킬 수도 있었다. 군 소속의 많은 우주 관제사들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더 많은 민간 위성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알리고 예측 가능하게 행동한다면, 의심스러운 행동들은 보다 더 쉽게 간파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주 전쟁에 관한 법이 없다고 해서 전쟁에 관한 기존의 관습법이 우주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해상에서 관습법이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인간이 없는 구역에서 인간성과 군사적 필요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러한 도전적인 과제들은 이미 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 관한 내용을 다룬 2013년의 탈린 매뉴얼(Tallinn Manual)이 비슷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미국, 영국의 4개 대학이 주도해서 만든 우메라 매뉴얼(Woomera Manual)과, 캐나다의 한 대학이 이끌고 있는 밀라모스 프로젝트(MILAMOS
[7] Project)와 같은 움직임들은 우주 공간에서도 그런 규범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1958년에 나사(NASA) 설립을 위해 제정된 국가 항공 우주법(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ct of 1958)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우주에서의 활동들은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한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이 말은 물론 당시에도 절반만 사실이었다. 하지만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현재의 우주는 지상 군사력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 우주는 그 자체로 전장이 되었지만, 문제는 다음 전쟁이 우주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전쟁이 우주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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