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는 수많은 시간에 걸친 계획적인 훈련이 성공을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훈련은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어려서부터 좁은 범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은 스포츠 외의 영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점점 더 경쟁적으로, 복잡하게 변화할수록 더 일찍 시작하고, 더 전문적으로 기량을 닦아야 한다고 배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kerberg)처럼 성공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영역에 뛰어들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칭송을 받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데에 찬사가 이어진다. 암을 다루는 의사라면 이제는 일반적인 암 전문가가 아니라, 특정 장기의 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해마다 더 심해지고 있다.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에 따르면, 의사들 사이에는 ‘왼쪽 귀 전문의’에 관한 농담이 있다. “정말로 어딘가에 왼쪽 귀 전문의가 존재하지 않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다룬 베스트셀러 《바운스: 재능의 신화와 훈련의 힘(Bounce: the Myth of Talent and the Power of Practice)》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매슈 사이드(Matthew Syed)는 영국 정부가 타이거 우즈식의 특성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고위 관료들이 부처를 이동하는 것을 두고 “타이거 우즈를 골프에서 야구, 축구, 하키로 순환 근무시키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그저 그런 성적에 그치던 영국 스포츠는 새로운 스포츠를 시작하는 성인이나 뒤늦게 재능을 나타내는 대기만성형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힘입어 2012년 올림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페더러가 했던 방식대로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접해 보는 것은 이제 우스운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일반적인 운동선수는 물론, 엘리트 선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기량이 절정에 달한 엘리트 선수들은 수준이 낮은 선수들보다 계획적인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엘리트 선수가 되는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는 그들이 결국 전문가가 될 종목의 계획적인 훈련에 시간을 덜 쓴다. 대신 연구자들이 ‘샘플링 기간’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에는 체계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한다. 자신의 다양한 신체 능력을 끌어내고, 능력과 성향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한 가지 영역에 집중한다. 개인 종목 운동선수들에 대한 한 연구 논문의 제목은 ‘나중에 특성화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논문의 제목은 이렇다. ‘팀 스포츠에서 최고가 되는 법은 늦게 시작해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굳은 결의를 갖는 것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이 주제에 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종목에서는 그럴 수 있어도 우리 스포츠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런 목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 커뮤니티에서 특히 높았다. 그런데 때마침 2014년 말 독일의 연구 팀에서 연구 논문을 내놓았다. 직전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둔 독일 국가 대표 팀이 뒤늦게 특성화를 한 전형적인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22세 혹은 그 이후까지도 아마추어 리그 이상으로 체계화된 축구를 접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다른 운동을 했고, 축구를 했어도 체계적이지 않은 수준이었다. 2년 뒤 발표된 축구에 관한 또 다른 연구는, 기량이 비슷한 11세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해 2년 동안 변화를 추적했다. 13세가 되었을 때 기량이 더 많이 발전한 것은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하고, 축구를 하더라도 훈련과 연습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하키에서부터 배구에 이르기까지 다른 수많은 스포츠 종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초특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마케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스포츠를 넘어 광범위한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좋은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스포츠 스타들의 경로를 보면, 타이거 우즈보다는 로저 페더러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훨씬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이 잘 알려진 선수도 종종 있지만, 나중에 특성화했다는 배경은 잘 알려지지 않곤 한다.
2018년의 슈퍼볼
[2]을 보자. 한쪽 팀의 쿼터백
[3]은 미식축구를 하기 전에 프로야구 팀의 드래프트에 지명된 적이 있던 톰 브래디(Tom Brady)
[4]였으며, 반대편 팀의 쿼터백은 미식축구와 농구, 야구, 가라테를 했고, 대학에서 농구를 할지 미식축구를 할지 고민하다가 미식축구를 선택했던 닉 폴스(Nick Foles)
[5]였다. 슈퍼볼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계 올림픽에서는 체코 선수 에스테르 레데츠카(Ester Ledecká)가 사상 처음으로 한 대회의 서로 다른 종목(스키와 스노보드)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레데츠카는 어렸을 때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다. 지금도 비치 발리볼과 윈드서핑을 즐긴다. 10대 시절에는 학업에도 열심히 임했기 때문에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레데츠카가 놀라운 업적을 달성한 직후에는 우크라이나의 복싱 선수인 바실 로마첸코(Vasyl Lomachenko)가 가장 적은 경기만으로 세 체급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어렸을 때 우크라이나 전통 춤을 배우느라 4년 동안 복싱을 쉰 적이 있었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어려서 정말 다양한 운동을 했습니다. 체조, 농구, 축구, 테니스 등등. 그렇게 다양한 스포츠들을 했던 것이 결국 제가 풋워크(footwork)
[6]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것 같습니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사고를 하며, 나중에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에게는 로저 페더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 말이다.
2014년, 나는 스포츠에서의 뒤늦은 특성화에 관한 발견을 나의 첫 번째 책 《스포츠 유전자》의 에필로그에 담았다. 이듬해에는 다소 생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 연구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강연 대상은 운동선수나 코치가 아니라, 예비역 군인이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스포츠 업계가 아닌 다른 직업에서의 전문화와 진로 전환에 관한 과학 연구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발견한 내용들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연구를 보면, 일찌감치 한 가지 진로를 정해서 매진한 사람들은 대학 졸업 후에 더 많은 소득을 올렸지만, 뒤늦게 특성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량과 성향에 보다 잘 맞는 직업을 찾음으로써 뒤늦은 출발이 주는 불리함을 상쇄하고 있었다. 기술을 발명한 사람들은 경력 발전 과정 초기에 폭넓은 경험을 위해 깊이를 약간 희생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예술 창작자들에 관한 연구에서도 거의 동일한 결과가 있었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7](그는 어렸을 적 음악 수업을 그만두고 그림과 야구에 집중했다)에서부터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
[8](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했는데, 사실 그녀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에 이르기까지 내가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우즈보다는 페더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수의 예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 강연에서, 나는 주로 스포츠 분야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고, 다른 분야에서 찾아낸 내용들은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다른 분야의 주제를 물고 늘어졌다.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모두 뒤늦게 전문 분야를 찾았거나 진로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어느 정도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