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있는 노동
5화

소외된 노동자들

돌봄이라는 그림자 노동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일터와 가정 양쪽의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의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다. 고용 형태의 불평등, 가정 내 돌봄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돌봄노동을 직업으로 행하는 유급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불평등이다.

노동시장의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과 저임금 등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훨씬 높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반하는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성별에 따른 고용 형태를 살펴보면, 전체 취업자 중 남성은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비율이 26.3퍼센트로 추산되었으나, 여성은 전체의 41.2퍼센트에 육박했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처럼 회사와 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하는 비율, 전일제가 아닌 시간제 근로에 종사하는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1]

일터의 불평등은 가정의 불평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 여성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성 역할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취업한 맞벌이 가정에서도 여성은 대체로 경제적 보상 없이 가사노동을 부담한다. 세계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가사노동에 하루 평균 1~3시간을 더 할애한다. 아동, 노인 또는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남성보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시간을 돌봄에 쓴다.[2] 한국은 돌봄노동의 남녀 불균형이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편에 속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여성의 주중 가사 시간은 129.5분으로 17.4분에 불과한 남성의 7.4배에 달했다.[3]

돌봄의 불평등한 분배로 여성은 만성적인 ‘시간 빈곤(time-poor)’에 시달린다.[4] 가사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 승진, 교육과 훈련 등 일터의 기회에서 불리해지고, 이에 따라 경제적 수입도 남성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돌봄 불이익(care penal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5] IMF 금융 위기 당시 일차적 생계 부양자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기해 여성이 우선적 해고 대상자로 선정되었던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금도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돌봄노동과 유급 노동을 병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기간제, 단시간 근로 등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ILO는 젠더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무급 돌봄노동을 지금과 같이 주로 여성들이 전담할 것이 아니라 남녀가 동등하게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6]

간병인, 가사노동자, 아이 돌보미 등 생계유지를 위해 돌봄노동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여성의 문제도 노동법이 적극적으로 규율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유급 돌봄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는 여성이다. 2018년 ILO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모든 여성 노동자의 20퍼센트가량이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체 유급 돌봄노동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다. 한국은 돌봄노동자의 압도적 다수인 98.4퍼센트가 여성인 것으로 조사되었다.[7] 돌봄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와 열악한 근로조건은 잠재적으로 모든 여성에게 해당될 수 있는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여성 노동의 전반적인 지위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돌봄노동은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동 인구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급 돌봄노동자들은 현재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 및 사회보장 관계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적용 배제 대상이다. 돌봄은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8] 현재 가사노동자들은 대개 직업소개소를 통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와 연결되며 민법상의 사적 계약으로 규율될 뿐이다. 노동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근로 감독의 대상도 아니므로 일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도 사실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다. 많은 돌봄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 휴식의 부족, 사생활 침해, 물리적·성적 폭력 등 인권 침해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11년 ILO의 가사노동자 협약 및 권고가 채택되었다.[9] 우리나라에서도 가사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2017년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입법을 기다리는 상태다.[10] 돌봄노동자를 전면적인 노동법 적용 대상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특별법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보호를 도모하자는 취지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가사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목표로 제시하고, 돌봄 서비스를 공식화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제안하고 있다. 법안은 일정 요건을 모두 충족해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기관이 가사근로자와는 근로계약을, 이용자와는 이용 계약을 체결해 가사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이용자 입장의 서비스 품질 모두를 보장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근로자는 임금, 근로시간, 휴식 등에 있어 노동관계법령의 관련 조항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된다. 비록 완전한 직접 고용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가사노동자의 처우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는 진일보한 대응으로 평가받고 있다.[11]

고령화되는 인구학적 변동 속에서 돌봄노동은 다른 어떤 직종들보다도 더욱 많은 수요가 꾸준히 예상되는 노동이다. 따라서 여성 돌봄노동자의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이들의 불리한 현실은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고착화할 뿐 아니라, 돌봄의 수요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ILO가 돌봄노동과 관련된 문제들을 개선하고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노동의 미래에 있어 핵심적 과제라고 선언하는 이유다.

여성의 노동이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복합적으로 기인하는 문제다. 여기에서 노동법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도전은 무엇일까? 약자의 어려움에서 출발한 노동법은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더욱 근본적이고 변혁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기존의 노동법이 설계된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전제에 대해 창조적으로 의문을 던지고, 노동법의 목적과 규율 대상에 그동안 여성에게 불평등하게 전담되어 온 돌봄노동을 포섭하여 노동법이 보다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의 근간은 20세기 초에 주로 형성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 호황기를 맞으며 완전 고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노동 관련 법률과 정책의 주된 기조를 이뤘다. 남성 생계 부양자(male breadwinner)의 노동시장 진입과 배우자인 여성이 가사와 육아 등의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성별 분업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남성 노동자들의 완전 고용이 달성되어 모든 남성이 임금을 받으면 자연스레 여성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의 생계가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표준고용관계(standard employment relationship)가 성립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전일제 근로가 정착되었다.[12] 이러한 노동 제도가 표준인 사회에서는 임금노동자가 가정에서 돌봄노동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13]

현존하는 노동법의 법적 인간상은 집에 가서 돌봄노동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력은 다른 재화와 달리 무한정 소모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재생산의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임금노동이 원활히 기능하려면 돌봄노동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 가정에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통해 시장 경제 활동에도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노동법은 돌봄노동을 여전히 비공식 경제의 영역으로 방치하고, 돌봄노동에 대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 왔다. 돌봄노동은 가시화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 평가 절하되어 왔고,[14] 이러한 현상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여성 전반에 대한 불평등의 중요한 원인이다.

지금까지 노동의 젠더 불평등에 대한 법적 대응은 주로 ‘여성의 남성화’ 방식에 치중하여 이루어져 왔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제1조에서 법의 목적으로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노동시장 영역에서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는 방식을 주로 추진하고 있다.[15] 그러나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지면, 돌봄을 남녀가 공평하게 분배하기보다는 비용을 지불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하는 돌봄의 ‘상품화(commodification)’ 현상이 심화된다.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매개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돌봄노동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채 노동시장의 고용 불평등만을 시정하려 하는 것은 젠더 불평등 문제의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여성의 취업률이 높아질수록 돌봄노동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저숙련 여성들이 전담하게 될 뿐이다. 선진국 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면서 개발 도상국 출신의 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가사와 육아의 빈자리를 채우는 현상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노동의 남녀 불평등은 물론이지만 여성의 노동 안에서도 임금노동을 전담하는 고소득 여성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저소득 여성 간의 분절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16]

돌봄은 그 성격상 시장에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봄의 상품화보다는, 돌봄의 보편화 내지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면서도 올바른 방향이다.[17] 그렇다면 임금노동 및 돌봄노동의 수행에 있어 ‘여성의 남성화’뿐 아니라 ‘남성의 여성화’가 가능해지는 것, 돌봄의 역할을 남녀 모두가 함께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법이 설계되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고, 선택적 시간 근무제를 적극 활용하며, 최근 많이 논의되는 기본소득의 도입 등 제도적 방법들을 실험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노동법은 임금노동권만을 주로 보장하고 있으나 변화된 시대의 노동법은 돌봄노동권을 동시에 보장하는 방식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가사, 양육, 간병 등 돌봄노동은 힘들고 번거로운 의무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한편으로 자기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을 돌볼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삶의 본질적인 기쁨이자 누구나 생애 주기 속에서 원하는 때에 누릴 수 있어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일터에서의 임금노동을 벗어나 가정에서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것이 하나의 권리로 인식될 필요가 있으며, 노동법이 보다 정의롭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과 시민 사이, 우리 안의 이방인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동남아시아 국가 출생의 A씨는 1990년대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비자가 만료된 지는 오래지만 20년째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상태로 거주하며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18] 그는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를 구사한다. 10대 때 떠나온 본국은 이제 기억에서 잊혀 간다. 돌아갈 계획은 없으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한편,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B씨는 출생 직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올해 만 18세가 되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영어로만 교육받았으며 미국에 정착한 이래 아직 서울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 간혹 한국어를 여전히 능숙하게 구사하는 교포들을 만날 때 낯선 소외감을 느낀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한국 국민인가? 국적법상의 국적을 기준으로 답하면 A는 외국인, B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누가 한국 시민인가를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지 않다. 시민권(citizenship)은 법률상의 개념은 아니다. 우리말로는 시민권으로 번역되어 시민의 권리라는 뜻을 갖지만, 우리 헌법상의 기본권 또는 실정법에 규정된 법률상의 권리는 아니다. 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법적 권리는 아닌 권리, 그러나 시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권리, 그것이 시민권이다.

우리 법은 국민과 외국인을 구분할 뿐, 시민 개념은 다루지 않고 있다. 헌법은 국민에게 기본권을 보장하며 법률로 이를 구체화한다. 한편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제법과 조약에 따라 그 법적 지위를 결정하며,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에게 기본권 주체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를 국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로 나누어 외국인에게는 국민의 권리에 해당하는 것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고 한다.[19] 문제는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특히 노동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부정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인권뿐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이지만 대한민국에 거주하며 생활 및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국민과 동일한 공간에서 삶의 터전을 꾸려 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활 공동체의 현실적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권 보장에서 배제되거나 제한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 들며, 더 나아가 국민과 외국인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이라는 개념틀로 이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국인의 권리 보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대체로 두 가지 주장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억울하면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본국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주장이다. 양쪽 모두 현실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타당치 않다.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하는 요건은 우리 법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글로벌 불평등 경제에서 모국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본국에서의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불가피하게 떠나와야 했다는 점에서 이주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결과’라고 표현되기도 한다.[20]

국적에 기반해 정당화되는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흑백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민권 개념으로 이주노동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시민권의 발전 과정을 돌이켜 보면, 고대 그리스는 노예와 자유인으로 계급이 철저히 나뉘어 있었고 시민은 자유인으로서의 특권을 가진 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시민을 “법을 집행하고 관직을 갖는 데 참여하는 자”라고 규정한다.[21] 로마 제국의 경우, 초기에는 로마에서 태어난 자유인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했으나 제국의 세력과 영토가 확장되면서 2세기경에는 로마 제국 내 모든 주민에게 시민권이 확대되었다.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투표권, 적법 절차(due process)를 향유할 권리, 형사처벌 시 극형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이 보장되는 한편, 납세와 병역 등 의무가 주어졌다. 로마 출생이 아닌 외국인은 드물기는 하지만 일정 기간 이상의 군 복무를 마친 경우, 로마 제국에 특정한 공로를 세우거나 경제적 기여를 하는 등 특정 요건을 갖추면 시민권을 취득한 사례가 있었다.[22]

근대적 시민에 보다 근접한 개념은 세계 최초로 주권이 왕이 아닌 국민(시민)에게 있음을 선언한 1789년 프랑스 혁명기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에서 발견된다. 이 선언의 내용은 근대적 인권 개념, 시민 개념의 시초로 평가된다. 인간과 시민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특히 정치 또는 납세 등 공동체 참여와 관련된 조항들에서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세기에 들어 인류는 세계 대전의 잔혹함을 경험한 뒤, 1948년 UN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천명하고,[23]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의 입장을 반영해 정치권과 사회권 모두를 포함한 권리 장전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세계인권선언은 국적, 성별, 인종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현대 인권 규범의 초석을 놓았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여성, 소수 인종, 장애인 등 근대 이전에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계층에게로 권리의 양과 질을 확장시키기 위한 민권 운동 및 평등 운동이 시민권 개념을 형성해 왔다.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인한 비약적인 지구화 진행과 함께 이주가 급증한 20세기 후반부터는 이민자들, 특히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시민권에서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24]

이주노동이 전 세계적으로 핵심 문제가 된 21세기 현재, 시민권은 다른 각도에서 중요하다. 타향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는 이들은 어디에서 시민권을 갖는가? 출신국인가, 아니면 거주국인가? 시민권은 국적과 일치하는가? 모국이 아닌 나라에서 이들의 권리가 제한받는 것은 정당한가? 시민권의 내용뿐 아니라 위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장소가 한 인간의 권리의 틀을 좌우할 수도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민권과 이주노동의 관계를 연구해 온 법학자 린다 보스니악(Linda Bosniak)은 시민권을 이해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법적 지위로서의 시민권, 평등으로서의 시민권, 그리고 민주적 참여로서의 시민권이 그것이다.[25] 먼저 지위legal status로서의 시민권은 국적과 시민권을 유사하거나 동일하게 보는 입장이다. 시민권을 다른 권리들의 보장을 위한 일종의 전제 또는 자격으로 본다. 평등(equality)으로서의 시민권은 평등할 권리로서 시민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시민권이 있어야 타인과 평등할 수 있으며 시민권이 없으면 불평등한 상태에 놓인다는 의미다. 참여(democratic engagement)로서의 시민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정치적 권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이해 방식이다.

보스니악은 이주노동에 있어 법적 지위로서의 시민권, 또는 평등으로서의 시민권 중 어느 쪽을 취하는지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시민권을 법적 지위로 이해할 경우에는 그 지위의 유무에 따라 국민과 외국인, 혹은 시민과 비시민(noncitizen) 사이에 어떤 구분을 두는 것에 대해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국민에게 시민권이라는 지위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외국인에게는 그런 지위가 없음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사실상 ‘2등 시민’이라는 데에 있다. 시민권을 지위로 이해하는 한 결국 사회 내에서 2등 시민 혹은 배제당하는 약자의 존재를 묵인하는 논리로 귀결된다. 반면 구성원의 평등할 권리로서의 시민권을 통해 외국인을 바라보면, 외국인이 암묵적인 2등 시민으로 고착화되는 현상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는 과연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에 대한 노동법의 규율은 한국의 경제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 성장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취업하고자 하는 개발 도상국 출신 외국인들의 유입과 내국인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력을 원하던 사용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주로 3D 업종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가 취업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외국인의 임의적 취업을 허용했다가, 1991년부터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활용했고, 2003년 이후에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의 노동을 규율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외국인의 노동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판결에 등장했다. 대법원은 건설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불법체류 외국인이 과연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다투는 사안에 대해, 비록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노무를 제공했다면 법적인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최초의 판결을 내렸다. 체류 상태에 문제가 있다 하여 근로계약까지 당연히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보고, 일하던 중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정당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26]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두 번의 중요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다. 먼저 2007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존의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외국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술 연수생으로 보았던 것이 헌법 제11조에 근거한 외국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국민이 아닌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작업 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이들의 기본권 주체성을 부인하고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결정했다.[27]

그러나 2011년에는 사업장 이동을 3회 이내로 제한하는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4항이 외국인의 근로권,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 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는 헌법 소원이 기각됐다.[28] 다수의견은 이 조항이 외국인 근로자의 “무분별한 사업장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 기회를 보호”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 관리로 “중소기업의 인력 수급을 원활히 하여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정당한 제한이라고 보았다.[29]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의 사업장 이동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들었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직 기회를 제한한다고 해서 실제로 내국인 일자리가 보호되는지에 대한 인과 관계는 증명된 바 없다. 외국인은 아직 주로 농어업, 영세 사업장에서의 제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들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직종 및 직무가 사실상 분리된다고 지적한다. 서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업무 분야와 내용이 자연스레 구분된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은 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서 소비자 역할도 하기 때문에 외국인의 고용이 장기적으로는 내수 진작 및 고용 창출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30] 우리 고용허가제가 여전히 제한하고 있는 사업장 이동에 대해 UN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은 취업 후 적어도 2년 이상이 경과하면 직장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31]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도 합법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2015년에는 이주노동자의 단결권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져서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포함된 노동조합의 합법성을 인정해 이주노조가 최초 설립된 지 10년 만에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32] 2005년 서울과 경기 지역 외국인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노동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서울지방노동청은 이 노조에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포함되어 있다며 설립 허가를 내어 주지 않았다.

1심[33]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들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과 지위 향상을 도모할 법률상 지위에 있지 않아 노조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2심[34] 및 대법원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출입국관리법이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행위 자체를 금지할 뿐, 외국인이 실제로 제공한 근로에 따른 권리 및 이미 형성된 근로관계에서의 노동법적 권리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 판결은 불법체류 외국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단결권을 제약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만일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직하려는 단체가 ‘주로 정치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적법한 노조가 아닐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주노조는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재차 설립신고를 했지만, 노동청은 이주노조가 고용허가제 개선 및 폐지 주장을 하는 것이 정치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또다시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결국 이주노조는 규약 내용을 “이주노동자 인권 개선 등”으로 수정한 뒤 비로소 신고필증을 받게 되었다. 근로조건과 직결된 고용허가제 폐지를 규약에 포함했을 때는 합법적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 내용을 삭제한 후에야 설립신고가 처리되었다는 점은 노동 행정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일례다.[35]

이주노조가 고용허가제 폐지 또는 체류자격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제도가 설계된 방식이 이들의 근로조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을 비롯한 여러 제도적 한계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억지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동조합 활동은 근로조건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를 정치 운동으로 단정하여 단결권을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주노동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화를 소비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며, 문화를 전달하고 생활 공동체에서 함께하는 현실적 의미의 시민이기도 하다.[36] 저출생, 고령화 경향이 심화될수록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 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이다.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동권 보장 수준은 전체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보여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외국인의 노동법적 권리를 내국인과의 차별 없이 보장하며, 이들의 법적 지위에 안정성을 도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1]
통계청,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18.
[2]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Report: Gender Equality and Development〉, 2012.
[3]
조성호·김지민, 《일·생활 균형을 위한 부부의 시간 배분과 정책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82쪽.
[4]
이지은, 〈기본소득과 재량시간: 성별 비교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청년연구자 네트워크 세션 발표문, 2018.
[5]
윤자영, 〈돌봄불이익과 기본소득〉, 《한국사회정책》, 제25권 제2호, 2018.
[6]
ILO, 〈Addressing Care for Inclusive Labour Markets and Gender Eequality〉, 《Global 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 Issue Brief #3》, 2018, p. 2.
[7]
이병희 외, 〈비공식 취업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2012, 48쪽.
[8]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 범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시 5명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가사 사용인은 기간제법, 남녀고용평등법, 최저임금법, 직업안정법 및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관련 법률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9]
ILO, 〈Domestic Workers Convention〉, 2011.
ILO, 〈Domestic Workers Recommendation〉, 2011.
[10]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정부 제출안, 2017. 12. 28.
「가사노동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서형수 의원 및 27인, 2017. 6. 16.
[11]
조성혜, 〈가사근로자의 법적 지위와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분석〉, 《법과 정책연구》, 제18권 제2호, 2018.
[12]
Judy Fudge, 〈Labour as a Fictive Commodity: Radically Reconceptualizing Labour Law〉, 《The Idea of Labour Law》,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13]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김현지·이영주 譯), 《집안의 노동자: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갈무리, 2017.
[14]
이반 일리치(노승영 譯), 《그림자 노동》, 사월의책, 2015.
[15]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6]
Lourdes Beneria, 〈Globalization, Women’s Work and Care Needs: The Urgency of Reconciliation Policies〉, 《North Carolina Law Review》, Vol. 88. No. 5, 2010.
[17]
장지연, 〈돌봄노동의 사회화 유형과 여성노동권〉, 《페미니즘연구》, 제11권 제2호, 2011.
[18]
현행법 및 판결 등에서는 체류자격이 없이 국내에 있는 외국인을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체류자격 위반은 하나의 불법행위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의 정체성에까지 ‘불법’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과도한 낙인이라는 점, 그리고 때로는 이민법 및 정책의 한계 때문에 불법체류 현상이 양산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용어가 더 바람직하다.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도 ‘불법(illegal)’이라는 표현은 지양하고, ‘미등록(undocumented)’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본서에서는 법령 및 판결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할 때에만 ‘불법체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
헌재 2001.11.29. 선고 99헌마494 결정.
[20]
브라이언 터너(서용석·박철현 譯), 《시민권과 자본주의》, 일신사, 1997, 49쪽.
[21]
아리스토텔레스(라종일·천병희 譯,) 《정치학》, 박영사, 2003, 91-92쪽.
이선주, 〈시민권, 포함의 역사 또는 배제의 역사〉, 《영어영문학연구》, 제55권 제1호, 2013, 331쪽.
[22]
유동기, 〈사도 바울과 그의 시민권〉, 《학문과 기독교 세계관》, 제4집, 2011, 49쪽.
[23]
UN,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1948.
[24]
ILO, 〈Executive Summary on International Labour Migration: A Rights based Approach〉, 2010, p. 1.
[25]
Linda Bosniak, 〈Citizenship and Work〉, 《North Carolina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and Commercial Regulation》, Vol. 27. No. 3, 2002, p. 498.
[26]
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누12067 판결.
[27]
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4헌마670 결정.
[28]
헌법재판소 2011. 9. 29. 선고 2007헌마1083, 2009헌마230, 352(병합) 결정.
[29]
그러나 반대 의견에서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고용 허가를 받고 적법하게 입국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대한민국 내에서 거주하며 일정한 생활 관계를 형성,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는 중이라면, 적어도 그가 대한민국에 적법하게 체류하는 동안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그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30]
Jennifer Gordon, 〈People are not Bananas: How Immigration Differs from Trade〉, 《Northwestern University Law Review》, Vol. 1004, 2010.
[31]
UN, 〈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 1990.
[32]
대법원 2015. 6. 25. 선고 2007누4995 전원합의체 판결.
[33]
서울행정법원 2006. 2. 7. 선고 2005구합18266 판결.
[34]
서울고등법원 2007. 2. 1. 선고 2006누6774 판결.
[35]
이다혜, 〈이주노조 대법원 판결의 의의와 한계〉, 《노동법학》, 제56호, 2015, 369쪽.
[36]
이다혜, 〈시민권과 이주노동-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시민권’의 모색〉, 서울대학교 법학박사 학위논문, 2015.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