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재정의하다
패션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는 이미지와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갈수록 다양한 문화적·기술적 방식을 활용한다. 패션쇼 같은 전통적 매체는 물론 패션 전시, 패션 필름 같은 새로운 수단을 이용한다. 또한 브랜드 웹 사이트와 SNS 등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가지 시각적 표현을 제공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패션 소비자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 세대다. 시각 요소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집중 시간은 평균 8초로 짧지만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하고, 텍스트 대신 이미지와 이모티콘 등의 시각적 수단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뚜렷이 인식하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Instagram)과 스냅챗(Snapchat) 같은 이미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선호하며, 타인이 만든 이미지를 공유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제작에 나서는 적극성을 지녔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47퍼센트는 소셜 미디어가 그들의 구매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연령대의 19퍼센트가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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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젊은 소비자들은 광고나 전문가의 권유보다는 스스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이전 세대가 주로 자신보다 높은 연령층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과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비슷한 연령대의 인플루언서에게 더욱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특성과 밀레니얼 세대의 구찌에 대한 환호를 증명하듯, SNS의 유명 인플루언서이자 래퍼인 2000년생 릴 펌프(Lil Pump)는 온몸에 구찌 제품을 두르고 ‘구찌 갱(Gucci Gang)’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어 빌보드 차트 3위, 유튜브 조회 수 9억 회를 달성했다. 이는 기존 구찌 소비자에게는 당황스러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와 긴밀히 교감한 것은 구찌가 다른 패션 브랜드와 가장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구찌는 브랜드가 표방하는 가치와 디자인 철학을 새로운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핵심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전환했다. 꾸준히 소셜 미디어 활용을 늘려 왔고,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며, 한정 판매용 애플리케이션, 디지털 아트 작업, 가상 현실(VR),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 새로운 온라인 작업에 적극 참여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구찌는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선두에 서 있다.
구찌는 ‘디지털에 가장 능숙한 패션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14] 공식 웹 사이트에서는 ‘구찌 가든’ 등 온라인 전용 상품을 판매한다. 웹 사이트의 세부 메뉴인 ‘구찌 스토리(Gucci Story)’에는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셀러브리티(celebrity), 캠페인, 예술적 행보 등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어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웹 사이트 중 가장 풍부한 콘텐츠를 전달한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구찌 플레이스(Gucci Place)’라는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미술관, 예술가의 작업실, 복합 쇼핑 공간, 영국 공작의 저택 등 구찌의 영감을 자극했던 세계의 다양한 공간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브랜드의 취향과 가치를 반영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와, 장소와 관련 있는 구찌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달한다. CPS(Cyber Physical System) 기술을 이용해 애플리케이션에서 소개하는 장소에 실제로 가면 배지(badge)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에서는 한정판 제품을 판매했다. 구찌만의 감성을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공간과 여행이라는 테마에 맞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표현한 사례다.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 팬덤 현상을 강화한 것인데,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구찌는 코코 카피탄(Coco Capitan), 안젤리카 힉스(Angelica Hicks),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 언스킬드 워커(Unskilled Worker), 제이드 피시(Jayde Fish)와 같은 인스타그램의 젊은 스타 예술가를 발굴해 회화, 사진, 디지털 드로잉,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레이션하면서 디자인과 마케팅 영역에서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패션 브랜드와 예술의 만남은 이미 여러 브랜드에서 시도했던 방식이지만, 구찌는 스트리트 패션과 연계된 스타일, 온라인 한정 판매 컬렉션, 광고 캠페인 체험 이벤트, 아트 프로젝트 등을 통해 보다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공식 웹 사이트와 유튜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개했다. 특히 디지털 아트로 제품을 현실감 있게 체험하도록 해서 단순 관람을 넘어 구매를 촉진했다.
최근 구찌와 가장 많은 작업을 한 이그나시 몬레알은 젊은 스페인 예술가다. 2015년 ‘#구찌그램(#guccigram)’을 시작으로 구찌와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그의 대표 작업인 2018 S/S 캠페인은 고전 미술의 이미지를 자아내는 작품을 디지털 작업으로 제작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3D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구찌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구찌 매장의 쇼윈도를 스캔하면 캠페인을 위한 마이크로 사이트(microsite)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스마트폰 배경 화면과 몬레알의 일러스트레이션,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구찌 제품을 둘러볼 수 있다. 매장에서는 몬레알의 작품인 ‘구찌 유니버스(Gucci Universe)’를 360도 파노라마와 가상 현실로 체험할 수 있고, 리미티드 에디션도 판매한다. 이처럼 구찌가 제공하는 새로운 브랜드 경험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연결시켜 상품 구매를 유도하며, 브랜드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구찌의 시도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도 다시 정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