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시작해 보자. 자율성의 장점은 명백하다. 로봇은 사람에 비해 값이 싸고 더 단단하며,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러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쟁터를 돌아다닐 로봇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야 한다. 지능이 낮은 드론은 전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총을 가지고 있는 우둔한 로봇은 전쟁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AI는 기계의 기능에 적합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사물 인지나 방향 탐지 등 간단한 기술부터 다른 기계들과 협업하는 좀 더 고차원적 기술까지 포함된다.
이런 능력들을 갖춘 지능적인 기계는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케네스 페인(Kenneth Payne)은 “AI 시스템은 이미 공대공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숙련된 군 조종관을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은 6대의 강력한 드론으로 실험을 했다. 드론들은 고도의 위협 상황은 물론 인간과의 접촉이 끊겼을 때에도 서로 협력해 임무를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스템 대부분의 지능은 편협하고 불안정하다. 잘 정돈된 환경에서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능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선 실패하기 쉽다. 결국 현존하는 자율 무기들은 레이더를 추격하는 미사일 주변을 맴돌거나, 선박과 전초 기지를 방어하는 속사포 사격을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쓸모는 있지만,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은 이 무기들에는 최근 개발되고 있는 세련된 머신러닝 기술은 불필요하다.
개선하고, 개선하고, 개선하라
AI가 전쟁터의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데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람을 죽이든 죽이지 않든 로봇들은 확인한 결과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정찰기와 위성처럼 많은 군사 플랫폼에서 중요한 부분은 유용한 정보로 전환할 수 있는,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를 송출하는 것이다. 현재 데이터의 양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11년 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의 1만 1000대쯤 되는 드론은 32만 7000시간(약 37년)이 넘는 영상을 전송했다.
이런 정보들은 대부분 감시받지 않는다. 군사적 목적의 AI가 수행해야 할 두 번째 주요 임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이다. 실험실에서 수행한 테스트 결과를 반영하는 스탠퍼드대학의 연례 AI 발전 지수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화상 분류(image classification) 분야에서는 2015년에 인간의 성과를 능가했고, 2015년에서 2018년 사이엔 하나의 이미지에서 여러 사물을 찾아내는 좀 더 어려운 작업인 대상 분류(object segmentation) 분야에서 인간의 두 배에 가까운 성과를 냈다. 화상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분야에서는 아직 인간 관찰자를 속이는 수준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감지하지 못하지만 시스템은 인식할 수 있다. 한 연구는 0.04퍼센트의 픽셀을 바꾸는 것만으로 AI 시스템이 팬더 이미지를 긴팔원숭이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2017년 2월 미 국방부는 딥러닝 알고리즘이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국방부는 이후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알고리즘 전투’ 팀을 꾸렸다. 딥러닝과 다른 기술을 이용해 의심스러운 대상과 행위를 식별해 내는 이 팀은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을 계기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광범위하게 일하고 있다. 목표는 실행 가능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정보는 대부분 폭탄을 투하하거나 특수 부대가 문을 발로 차고 적진에 진입하는 데에 쓰인다.
프로젝트 메이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내부 관계자는 시간 절약과 새로운 통찰의 측면에서 알고리즘 전투 팀이 분석가들에게 제공하는 유용성은 현재로선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체 도시 전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광각 카메라가 숱한 긍정 오류(false positive·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오류)들을 쏟아 내고 있다는 것이 일례다. 그는 그러나 “이런 시스템의 본성은 고도의 반복 학습에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보 처리 속도는 빠르고, 프로젝트 메이븐은 (AI 군사 전략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영국 공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영국의 기업 ‘어스아이(Earth-i)’에서 일하고 있는 션 코베트(Sean Corbett)는 어스아이가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해 위성으로 감지 가능한 거리에서 수십 곳의 군 기지에 배치된 각기 다른 군용기의 기종을 98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로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영리한 부분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는 기지를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일상적인 배치 상태와는 다른 불규칙한 움직임들을 구별해 낼 수 있게 된다. 명백한 변화가 나타난다면 정보 분석가들에게 보고된다.
물론 알고리즘은 어디에나 쓰일 수 있다. 이미지뿐 아니라 어떤 정보도 소화할 수 있다. 영국 정보 기관인 MI6의 국장인 알렉스 영거(Alex Younger) 경은 지난해 12월 “현대의 분석 기술과 결합한 방대한 데이터는 현대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미국의 정보 기관인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 유출된 문서는 파키스탄의 휴대 전화 정보 수집에 활용된 (안전하게 ‘스카이넷’이라 불리는) 머신러닝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테러리스트 집단의 첩보원으로 일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예를 들어 휴대 전화 사용자가 지난달 파키스탄 동북부의 라호르(Lahore)에서 국경의 페샤와르(Peshawar)로 여행했는지, 평소보다 전화기를 더 자주 끄거나 교환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2016년까지 영국 합동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전역한 리처드 배런(Richard Barrons) 경은 이렇게 말한다. “정보의 개념은 지휘관이 질문을 하면 정보 기관들이 답을 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들을 활용하는 과거의 세계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새로운 세계로 전환되고 있다.”
실제로 질문에 답하는 데에 필요한 데이터가 적군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JAIC의 첫 프로젝트는 무기도 아니었고, 스파이 활동을 위한 도구도 아니었다. 그것은 블랙호크 헬기(다목적 전술 공수 작전 수행용 헬기)의 엔진 이상을 예측하기 위해 특수 부대와 협업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알고리즘 버전은 4월에 적용됐다. 지휘 통제 임무를 맡은 군용기와 수송 차량에 대한 공군의 실험 결과, 예측 정비(predictive maintenance) 등을 통해 계획되지 않은 업무의 양을 3분의 1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이는 현재 국방부가 장비 유지에 투입하고 있는 예산 780억 달러(92조 9300억 원)를 크게 감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AI의 쿠데타
물론 정보를 처리하는 일의 핵심 목적은 실제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AI가 전쟁을 바꿀 세 번째 방법은 소대부터 전국 본부에 이르기까지 군사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서서히 침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AI 기업 유니콰이(Uniqai)가 개발한 ‘북방의 화살(Northern Arrow)’은 군 지휘관이 임무를 계획할 때 도움을 주는 시판 상품들 가운데 하나다. 북방의 화살은 적의 위치, 무기 종류, 지형, 그리고 날씨 등 각각의 변수에 따라 방대하게 수집되는 정보를 잘게 쪼개 준다. 원래는 군사들이 12~24시간 동안 지도와 차트를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수행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고도별 탱크의 속도 같은 정보를 도서와 매뉴얼, 그리고 경험 많은 지휘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집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우왕좌왕하는 의사 결정권자에게 왜 이러한 선택이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옵션을 제공한다.
북방의 화살이나 미국의 유사한 CADET(컴퓨터 보조 설계 및 평가) 소프트웨어 같은 ‘전문가 시스템’ 플랫폼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다. CADET으로 2분 걸리는 일을 하려면 한 사람이 16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기술들을 사용하는데, 알고리즘 측면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기술이다.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은 AI로 간주되긴 하지만, 같은 입력 정보가 항상 같은 출력 정보를 도출하는 방법인 결정론적 방식을 쓴다. 이 방법은 세계 최초의 범용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도출한 출력 정보를 활용하던 군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이 컴퓨터는 1945년 포병 사격표
[2]를 개발했다.
실제 세계에서 무작위성은 정확한 예측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수많은 현대적 AI 시스템은 보다 복잡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기존의 방식에 무작위성을 더한다. DARPA의 실시간 대립 지능과 의사 결정(RAID·Real-time Adversarial Intelligence and Decision-making) 소프트웨어는 5시간 뒤 적의 목표와 움직임, 심지어 감정까지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스템은 큰 문제들을 작은 게임 단위로 축소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컴퓨터의 동력을 줄이는 일종의 게임 이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실시된 초기 실험에서 RAID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정확성과 속도를 자랑했다. 바그다드에서 실시된 2시간의 시뮬레이션 게임은 사람으로 구성된 다수의 팀이 RAID 또는 사람들과 맞붙는 방식이었다. 사람으로 구성된 팀의 절반 이상은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소프트웨어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보리스 스틸먼(Boris Stilman)은 “이라크 반란군 역할을 맡은 퇴역 대령들이 소프트웨어에 겁을 먹어서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손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회고했다. RAID는 이제 군용으로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