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을 위한 나쁜 경제학
완결

부자들을 위한 나쁜 경제학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 도입된 경제학적 주장은 불평등의 엄청난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 주었다.


부유한 나라 대부분에서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세계화와 신기술로 고숙련 기술과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막대한 보상을 얻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고, 불평등은 어쩔 수 없이 커진다. 차등 과세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려는 시도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세계의 엘리트들은 조세 회피처로 쉽게 자금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세금을 인상하면 부의 창출을 저해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더 가난해진다.

이 주장의 가치에 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이런 논리가 1945년에서 1980년 사이의 경제학 정설과 극명하게 대립된다는 사실이다. 불평등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며, 정부의 다양한 정책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경제학의 정설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평등이 줄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의 대부분은 1980년대 이후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80년에서 2016년 사이 총소득에서 최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과 영국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미국과 영국에서 하위 90퍼센트의 소득은 25년 동안 거의 늘지 않았다. 50년 전 미국의 CEO 한 명이 버는 평균 소득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20배 정도였다. 오늘날 CEO 한 명이 벌어들이는 돈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354배에 달한다.

세계화된 경제 내에서는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쉽게 반박될 수 있다. 1980년 이후로 미국, 영국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불평등 지수가 대폭 상승했다. 반면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같은 국가에서는 상승 폭이 훨씬 적었고, 프랑스, 벨기에, 헝가리 등에서는 불평등 지수가 유지되거나 감소했다.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국가의 불평등 지수는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영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유한 나라는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불평등의 양상은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정치권은 이처럼 불평등이 커진 것은 주류 경제학 및 정치학 사상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당선을 계기로 사회가 자유 시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선진국 경제권을 통틀어 1945년 이후로 불평등이 가장 크게 나타난 시기와 장소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미국과 영국이다.

정치적 변환이 원인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정치인과 엘리트의 결정으로, 하향식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편리한 믿음이다. 우리는 유권자로서의 선택이나 일상적인 결정들을 통해 불평등을 증가시키거나, 최소한 묵인했을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불평등이 현재 어느 정도인지, 최근 얼마나 커졌는지를 모두 과소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조사 결과를 보면, 불평등에 대한 태도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최하위에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불평등을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거나, 최소한 거부감을 덜 갖게 되었다.

우리의 태도가 분명하게 반대로 돌아서지 않는 한,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에는 우리 몫이 아닌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세금이 우리의 주머니를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불평등이 공정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심각한 불평등을 견디고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평등은 놀라운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최근에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던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성공에 대한 운의 역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거짓말이지만, 그럴듯한 변명거리는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이면에 행운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면 자신감을 높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성공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기 쉽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열심히 일하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자격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항상 옳지는 않다. 개인이 벌어들인 것을 전부 가져갈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국가마다 다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 강한 지지를 받는 국가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증거가 많이 나타나는 국가다.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과 유럽의 불평등에 관한 여론조사를 보자. 수입을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운이라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두 배가량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열심히 일한다면 장기적으로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비율은 미국이 유럽보다 두 배 높았다.
1988년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Reuters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미국과 유럽에서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연간 노동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경제적 기회와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제한되어 있다. 미국의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은 키에 관한 통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키가 큰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키가 클 가능성이 높은 것 만큼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난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관련 연구를 보면 미국 사람들 다수는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미국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세금 체계를 갖추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세금과 복지를 통해 불평등을 줄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다른 가치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도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과 관계가 반대로 흐를 수도 있다. 자신이 벌어들인 모든 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불평등한 상황에서 더 강화된다.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람들의 믿음에는 동기가 있다.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과 일치하는 신념을 선택하는 것이다. 복지 혜택이 빈약하고 세후 소득의 불평등이 극심한 미국에서 가난은 엄청나게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유럽인보다 더 ‘내가 번 것은 내 몫이고, 네가 번 것은 네 몫’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렇게 믿으면 스스로나 아이들에게 가난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동기 부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못 본 척 지나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불평등과 낮은 사회·경제적 이동성을 갖고 있다. 최근 역사를 보면 영국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인과 관계가 나타났다. 1979년 대처가 총리에 오른 이후, 불평등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불평등이 늘어난 후 영국인의 태도도 변했다. 복지 혜택은 가난한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재능 있는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높은 급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은 떨어졌다. 오늘날 영국인의 수입은 부모의 수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정반대의 상관관계를 기대했을 것이다.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높았다면 불평등도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이 공정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심각한 불평등을 견디고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평등은 놀라운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 불평등에 저항하거나 반발하는 대신, 우리는 그저 감내한다. 〈공산당 선언〉보다는 자기 계발 서적을 찾는다.
 

과세 제도를 둘러싼 공론의 양상이 변했다.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 대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불평등은 더 큰 불평등을 낳는다. 상위 1퍼센트는 더 부유해지면서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 있고, 삶의 질을 높일 기회도 많이 갖는다. 선거 운동을 후원하는 것부터 특정한 제도와 규제에 대한 로비에 이르기까지, 정치에도 점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부자들에게만 도움이 되고 비효율적이며 낭비적인 정책들이 양산되고 있다. 좌파 비평가들은 이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조차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걸로 보인다. 그는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계급 투쟁이 벌어졌고, 우리 계급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양상은 조세 제도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 감면 혜택을 많이 얻고, 세제 감면에 관해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기 위한 현금도 많이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세제 감면이 보장되면, 고소득자들은 급료 인상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보인다. 세후 급여 비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흐름이 반복된다.

1979년 이후로 선진국들 거의 대부분에서 소득세의 최고 세율이 낮아져 왔지만, 가장 먼저 세율을 낮추기 시작해서 가장 많이 인하한 곳은 영국과 미국이었다. 1979년 대처는 영국의 최고 세율을 83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낮췄다. 1988년에는 40퍼센트로 더 떨어졌다. 레이건은 1981년에 70퍼센트였던 미국의 최고 세율을 1986년에 28퍼센트로 삭감했다. 현재 최고 세율은 미국이 37퍼센트, 영국이 45퍼센트로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 수치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당시 미국의 최고 세율 평균치는 75퍼센트였으며, 영국은 더 높았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화폐 거시 경제학과 같이, 레이건과 대처 시기의 혁명적이었던 경제 정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하지만 미시 경제학으로부터 도출된 핵심적인 정책 아이디어는 널리 받아들여져서 오늘날 거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세금은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고, 특히 소득세는 근로 의욕을 저해한다는 생각 말이다.

이와 함께 과세 제도를 둘러싼 공론의 양상이 변했다.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 대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모두가 함께’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더 이상 승자와 패자를 나누지 말고, 모두가 승자가 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약속의 근간이 된 아이디어는 냅킨 한 장 위에 설명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아주 간결한 것이었다.
 

소득세 인하가 더 많은 노동과 생산적인 경제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추정은 상식적으로나 경제 이론상으로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12월의 어느 저녁, 야심 찬 젊은 보수주의자들은 워싱턴DC에 있는 투 컨티넌츠(Two Continents) 레스토랑에서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의 참석자 중에는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그리고 럼스펠드의 보좌관이었으며 래퍼와는 예일 대학교 동기였던 딕 체니(Dick Cheney)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래퍼는 포드 대통령의 세금 인상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소득세율이 100퍼센트가 되면 굳이 귀찮게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소득세율이 0퍼센트일 때처럼 세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세수가 최대가 되는 세율은 0과 100 사이에 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래퍼는 냅킨 한 장을 집어서 그 위에 세율과 세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곡선을 하나 그렸다. 그 유명한 래퍼 곡선(Laffer curve)[1]과 통화 하향 침투설(trickle-down economics)[2]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럼스펠드와 체니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핵심적인 부분은 세율이 100퍼센트보다 낮아야 더 많은 세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소득세율을 더 낮추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세수를 증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금을 인하함으로써 패자 없이 승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곧 ‘그렇게 된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금 인하가 세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인 가능성일 뿐, 실증적인 근거는 없었다. 심지어 6년 후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에 고용된 경제학자들조차도 이러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영국의 전직 재무 장관이었던 조지 오스본. 오스본은 2013년에 영국의 최고 세율을 50퍼센트에서 43퍼센트로 낮췄다. © Matt Cardy/PA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영원한 낙관주의자였던 레이건을 매료시켰다. 역사학자 대니얼 로저스(Daniel Rodgers)에 따르면, 레이건은 ‘세금 감면은 기업가 정신을 촉발할 것이고, 이는 반드시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세수 확대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전문가 측근들의 의견을 기각했다. (포퓰리즘적 낙관주의와 조바심의 강력한 조합은 요즘 상황과도 비슷해 보이는데, 래퍼가 도널드 트럼프 선거 캠프의 자문 위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소득세 인하가 세수 증가로 이어지려면, 더 높은 세후 소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더 일하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GDP와 소득이 증가하면 세율을 낮췄음에도 세수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레이건의 세금 대폭 인하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세금 인하가 없었다면 미국 경제가 작동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그렇지만 통화 하향 침투설에 동조하는 사람들조차도 세금 인하가 GDP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인정했다. 그들이 말했던 낙수 효과가 전체 세수에서 세율 인하를 상쇄할 만큼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래퍼 곡선은 세수를 최대로 만드는 최고 세율이 0퍼센트에서 100퍼센트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점을 경제학자들에게 상기시켰다. 이 마법의 숫자를 찾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이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인상해서 불평등을 줄이려는 시도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 논리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영국의 재무 장관이었던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은 세금을 인하해도 세수 감축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래퍼식 주장을 하면서 소득세 최고 세율을 50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낮췄다. 오스본의 주장은 영국에서 세수가 최대가 되는 최고 세율이 40퍼센트 정도라는 경제 분석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불확실한 추정에 근거해 도출된 것이다. 수치 산출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우선, 세율이 낮으면 세후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동기를 얻는다는 기본적인 생각부터 살펴보자. 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미미하다. 소득세가 떨어지고,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초과 근무 수당을 받거나 유급 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고, 기존의 근로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급여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런 기회를 갖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더 열심히, 많이 일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일을 덜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세후 소득이 증가하면, 일을 덜 해도 그전에 받던 것과 동일한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득세 인하가 더 많은 노동과 생산적인 경제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추정은 상식적으로나 경제 이론상으로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오스본의 주장에는 훨씬 어려운 문제가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다. 소득세를 인하하면 최상위 1퍼센트의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고, 늘어난 수입은 경제 활동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고 추정하곤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파이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를 비롯한 몇몇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1980년대 세금 인하 이후에 CEO나 최고 경영진 사이에서는 경제 활동이 증가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주주 배당금을 줄이고 자신들의 급여를 더 올렸다. 이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배당 세액 수입이 줄어들었다. 피케티와 동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세수가 최대가 되는 최고 소득세율은 83퍼센트 정도로 높다.
 

현대 세계에서 모든 경제 활동은 정부의 영향을 받는다. 시장 역시 필연적으로 정부에 의해 정의되고 기틀이 잡힌다. 정부가 생겨나기 전에 소득이 발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부자들을 위한 소득세 인하는 처음에는 경제학적 주장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래퍼의 미사여구에 정치인들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에게 래퍼의 생각은 익숙하면서도 하찮은 것이었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세금 인하로 인한 세수 증대 효과를 증명할 만한 이론이나 근거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론과 근거가 모두 모호하다. 정치인들은 그동안 이 사실을 무시해 왔다.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자는 의견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경제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09년, 영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이 50퍼센트로 인상되었을 때(4년 후에 오스본은 이를 45퍼센트로 낮췄다), 영국 최고 수준의 부자인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3]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강풍이 몰아치는 영국의 바다 위를 기꺼이 항해하며 부를 창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소말리아 해적들이 하는 방식의 습격은 가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사모 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의 CEO인 스티븐 슈워츠먼(Stephen Schwarzman)은 특별 세제 감면 혜택을 없애는 것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비유하기도 했다.

슈퍼리치들의 불평을 비웃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불평 뒤에 자리한 발상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다. 소득세는 일종의 강탈 행위로, 소득을 벌어들인 사람들이 마땅히 소유해야 하는 돈을 정부가 가져간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이는 세금이란 기껏해야 필요악이고, 가능한 한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고 기반에서라면, 피케티가 말하는 83퍼센트의 최고 세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는 세금을 강탈 행위로 여기는 생각을 중심으로 한 완전한 문화적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정치인들이 ‘납세자의 돈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나 ‘세금 해방일’[4]을 기념하는 활동도 그런 맥락이다. 이러한 언어는 정치계 외부에도 존재한다. 세금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나 회계사, 변호사도 소위 ‘조세 부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세전 소득이 애초부터 납세자의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조세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혹은 조세 제도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소유권은 법률상의 권리다. 법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찰력과 사법 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이 필요하다. 이런 기관은 조세 제도를 통해 거둬들인 자금으로 운영된다. 세금과 소유권은 사실상 동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가질 수는 없다.
“지난 20년 동안 계급 투쟁이 벌어졌고, 우리 계급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 ©Kevin Lamarque/Reuters
사법 체계와 경찰력 등을 유지하면서 사적 소유권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유일한 기능이라면, 세율은 매우 낮을 수 있다. 그리고 최상위층에 추가적인 세금을 물리는 것은 일종의 강탈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소득이 생기면 소유권이 발생하고, 완전한 민간 시장 경제에서 국가는 사후에 개입할 뿐이므로 소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 서적들은 이런 방식으로 국가를 시장에 부속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세계에서 모든 경제 활동은 정부의 영향을 받는다. 시장 역시 필연적으로 정부에 의해 정의되고 기틀이 잡힌다. 정부가 생겨나기 전에 소득이 발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의 영향을 받는다. 출생 환경이나 건강도 각자가 누리는 의료 서비스의 영향을 받는다. 민간 의료 서비스도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교육 체계, 약품과 의료 기술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다른 모든 재화 및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운송 네트워크와 통신 시스템, 에너지 공급 체계, 지적 재산권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광범위한 법적 합의, 주식 등의 공식적인 거래 시장, 국가 간의 사법권 관할 체계 등 사회 경제 인프라에 의존한다. 로이드 웨버 경의 재산도 그가 작곡한 음악들의 저작권 기한을 정부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이 성취한 일에서 사회적 조건이나 정부의 역할을 떼어 놓고 ‘나만의 것’을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세금을 강탈로 보는 시각은 개인이 성공이 화려한 고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지난 세대, 현재의 동료와 정부의 기여를 무시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결과다. 정부의 역할을 평가 절하하게 되면, 자신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쓸데없이 정부에 돈을 내고 있으며, 이는 괜찮은 거래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정부가 적은 세금을 징수하는 사회에서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의견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로 부자들이 세금이 낮은 국가로 국적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버핏이 훨씬 더 분명하게 답변하고 있다. “배 속에 현재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때 램프의 요정 지니가 와서 쌍둥이들에게 이렇게 물어요. ‘너희들 중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나게 될 거고, 다른 한 명은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게 될 거야. 만약에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게 된다면, 세금을 내지 않을 거야. 만약에 미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면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너는 몇 퍼센트까지 부를 수 있어?’ 여기에서 설마 ‘나는 혼자 다 이뤄 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방글라데시보다는 미국에서 태어나기 위해 돈을 더 내려고 할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유한 나라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시장의 힘보다는 정부의 정책 결정에 의해 발생했다. 정책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불평등을 통제하기를 원해야 한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을 정부 정책과 사회 전반의 핵심 목표로 만들어야만 한다.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가장 견고하고 기만적이며 사그라들지 않는 논리는 경제가 아니라 윤리다. 위대한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요약해서 말했다. “윤리학의 가장 오래된 과제는 이기심을 도덕적인 것으로 훌륭하게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언제나 여러 가지 내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갖고 있다. 눈에 띄게 부자가 된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궁핍함이 주는 인격 형성의 가치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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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세계경제 #정책 #돈 #세계 #가디언
[1]
세율과 세수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곡선. 세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세수가 무조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그래프다. 2차 함수의 뒤집어진 포물선 모양으로, 적정 세율 지점을 지나면 세수가 점점 줄어드는 형태다.
[2]
상위층이 더 많은 부를 가져야 그것이 하위 계층으로의 낙수 효과(trickle down)로 이어져서 결국엔 경제 전반을 성장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3]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의 음악을 만든 스타 작곡가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4]
가상의 개념으로, 연간 소득을 일로 분할해 세금을 공제한 후 순수하게 납세자 자신의 소득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는 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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