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미국과 유럽에서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연간 노동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경제적 기회와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제한되어 있다. 미국의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은 키에 관한 통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키가 큰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키가 클 가능성이 높은 것 만큼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난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관련 연구를 보면 미국 사람들 다수는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미국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세금 체계를 갖추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세금과 복지를 통해 불평등을 줄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다른 가치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도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과 관계가 반대로 흐를 수도 있다. 자신이 벌어들인 모든 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불평등한 상황에서 더 강화된다.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람들의 믿음에는 동기가 있다.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과 일치하는 신념을 선택하는 것이다. 복지 혜택이 빈약하고 세후 소득의 불평등이 극심한 미국에서 가난은 엄청나게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유럽인보다 더 ‘내가 번 것은 내 몫이고, 네가 번 것은 네 몫’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렇게 믿으면 스스로나 아이들에게 가난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동기 부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못 본 척 지나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불평등과 낮은 사회·경제적 이동성을 갖고 있다. 최근 역사를 보면 영국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인과 관계가 나타났다. 1979년 대처가 총리에 오른 이후, 불평등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불평등이 늘어난 후 영국인의 태도도 변했다. 복지 혜택은 가난한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재능 있는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높은 급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은 떨어졌다. 오늘날 영국인의 수입은 부모의 수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정반대의 상관관계를 기대했을 것이다.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높았다면 불평등도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이 공정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심각한 불평등을 견디고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평등은 놀라운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 불평등에 저항하거나 반발하는 대신, 우리는 그저 감내한다. 〈공산당 선언〉보다는 자기 계발 서적을 찾는다.
과세 제도를 둘러싼 공론의 양상이 변했다.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 대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불평등은 더 큰 불평등을 낳는다. 상위 1퍼센트는 더 부유해지면서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 있고, 삶의 질을 높일 기회도 많이 갖는다. 선거 운동을 후원하는 것부터 특정한 제도와 규제에 대한 로비에 이르기까지, 정치에도 점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부자들에게만 도움이 되고 비효율적이며 낭비적인 정책들이 양산되고 있다. 좌파 비평가들은 이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조차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걸로 보인다. 그는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계급 투쟁이 벌어졌고, 우리 계급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양상은 조세 제도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 감면 혜택을 많이 얻고, 세제 감면에 관해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기 위한 현금도 많이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세제 감면이 보장되면, 고소득자들은 급료 인상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보인다. 세후 급여 비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흐름이 반복된다.
1979년 이후로 선진국들 거의 대부분에서 소득세의 최고 세율이 낮아져 왔지만, 가장 먼저 세율을 낮추기 시작해서 가장 많이 인하한 곳은 영국과 미국이었다. 1979년 대처는 영국의 최고 세율을 83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낮췄다. 1988년에는 40퍼센트로 더 떨어졌다. 레이건은 1981년에 70퍼센트였던 미국의 최고 세율을 1986년에 28퍼센트로 삭감했다. 현재 최고 세율은 미국이 37퍼센트, 영국이 45퍼센트로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 수치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당시 미국의 최고 세율 평균치는 75퍼센트였으며, 영국은 더 높았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화폐 거시 경제학과 같이, 레이건과 대처 시기의 혁명적이었던 경제 정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하지만 미시 경제학으로부터 도출된 핵심적인 정책 아이디어는 널리 받아들여져서 오늘날 거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세금은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고, 특히 소득세는 근로 의욕을 저해한다는 생각 말이다.
이와 함께 과세 제도를 둘러싼 공론의 양상이 변했다.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 대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모두가 함께’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더 이상 승자와 패자를 나누지 말고, 모두가 승자가 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약속의 근간이 된 아이디어는 냅킨 한 장 위에 설명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아주 간결한 것이었다.
소득세 인하가 더 많은 노동과 생산적인 경제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추정은 상식적으로나 경제 이론상으로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12월의 어느 저녁, 야심 찬 젊은 보수주의자들은 워싱턴DC에 있는 투 컨티넌츠(Two Continents) 레스토랑에서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의 참석자 중에는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그리고 럼스펠드의 보좌관이었으며 래퍼와는 예일 대학교 동기였던 딕 체니(Dick Cheney)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래퍼는 포드 대통령의 세금 인상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소득세율이 100퍼센트가 되면 굳이 귀찮게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소득세율이 0퍼센트일 때처럼 세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세수가 최대가 되는 세율은 0과 100 사이에 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래퍼는 냅킨 한 장을 집어서 그 위에 세율과 세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곡선을 하나 그렸다. 그 유명한 래퍼 곡선(Laffer curve)
[1]과 통화 하향 침투설(trickle-down economics)
[2]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럼스펠드와 체니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핵심적인 부분은 세율이 100퍼센트보다 낮아야 더 많은 세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소득세율을 더 낮추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세수를 증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금을 인하함으로써 패자 없이 승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곧 ‘그렇게 된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금 인하가 세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인 가능성일 뿐, 실증적인 근거는 없었다. 심지어 6년 후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에 고용된 경제학자들조차도 이러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