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천재 저자의 신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이 신을 모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작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특별한 존재다. 저자는 다양한 미디어 형태로 자연과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는 저자가 주관하는 질서와 구조 속에서 진실이라는 사유의 보물을 찾는 기쁨을 만끽한다. 작품 속에서 저자는 독자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향과 주제, 모든 해석의 결과를 자신에게로 귀속시키는 군주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저자를 신에 비유하는 것은 그들이 창작한 리얼리티의 독창성에 대한 경외의 표현이기도 하다.
텍스트의 예술성과 의미는 저자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동일시된다. 작품에 심취한 독자에게 저자는 작품 그 자체와 마찬가지다. 저자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모든 상식과 정보를 취하고, 취향이나 습관을 모방하는 독자의 행위는 신에 대한 숭배와 유사성을 갖는다. 독자들은 텍스트를 넘어 저자의 출신 배경과 예술적·사상적 성장 과정, 삶의 크고 작은 사건에 의해 파인 굴곡을 탐닉한다. 저자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과 경외는 격정적인 팬덤을 만들고, 이는 문화 예술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중요한 성장의 축을 담당한다.
저자에게는 타락한 현실을 관찰하고 어둠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선지자, 지도자의 이미지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이자 작가인 잭 스틸린저(Jack Stillinger)는 대중이 인식하는 저자의 핵심 정체성을 고독함과 신화로 파악했다. 스틸린저는 저자 숭배를 “신적 재능을 발휘해 물질화된 현실에 속박된 일반인이 발견할 수 없는 진실을 추구하고, 더 실제적인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성을 간직한 고독한 개인에 대한 숭배”로 정의했다.
[1]
저자 숭배는 근대 유럽에서 문학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이념 전파에 앞장선 식자층, 즉 현대적 인간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심화되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문학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책이 근대성과 계몽주의적 주체 의식을 유럽에 전파시키는 신매체로 부상했다. 당시 독자들은 책으로 접한 텍스트를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뛰어난 작가와 사상가가 던지는 특별한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는 문학 작품들이야말로 저자들이 구현하기 전에는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예술적 계시이자 비전이었던 것이다. 저자의 천재성과 고명함을 소비하는 지식 사회의 기틀은 이때 이미 완성되었다.
세속적 유혹, 사회의 거짓과 싸우는 고독한 천재 저자의 낭만주의적 신화는 9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저자의 신비성과 아우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발견되는 문화 현상이자 보편 의식이다. 저자는 탁월한 시각과 재능을 발휘해 현실을 관통하는 텍스트를 창작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독자는 저자가 현실의 모순을 풍자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저자는 여전히 현실 밖에 거하는 신의 대체재이자 세속적인 사회로부터 단절된 이상적인 창작 주체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술 작품을 처음 창작한 개인인 인칭적 저자는 저작권의 개념이 처음 고안된 중세 유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료하고 안락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예술적 성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문학 작품일수록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가진 인칭적 저자 한 사람의 천부적인 재능과 고유한 표현 기법의 결과물로 취급된다. 고독한 천재 저자의 신화는 저자 홀로 완성하는 문학 텍스트 자체(text-itself)를 예술의 본질로 대우하고, 다른 주체의 참여는 작품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간주하는 편견을 낳았다.
신이 창조의 대가로 절대적 권위와 존엄성을 요구한 것처럼 저자도 자신의 고유한 창작 행위의 결실인 텍스트의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소유권과 실질적인 권리를 최대한 주장하고자 한다. 실제로 저자는 창조적 역량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과 저작물에 대한 경제적 권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텍스트에 대한 권력의 주체로서 텍스트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누린다. 권한, 권위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authority의 어원이 저자(author)라는 사실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저자의 개념에 권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셰익스피어; 저자 프랜차이즈의 시작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영미 문학사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명성을 누리는 저자 중 하나다. 그의 작품들은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연극, 영화,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대중의 인지도, 비평가들의 평가 측면에서도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저자를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셰익스피어는 인류 문학의 정점에서 숭배받는 천재적 저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압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치명적인 루머가 따라붙는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집필하지 않았다”는 문학사 최대의 루머는 현대 영문학자와 역사가들만의 미스터리가 아니다. 그가 살아 있던 1590년경에도 대중은 셰익스피어가 연출한 연극이 직접 창작한 셰익스피어 오리지널인지 의심하곤 했다.
[3] 오늘날까지도 셰익스피어가 직접 희곡을 창작하고 필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그의 텍스트는 진위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추앙받는 셰익스피어의 원본 텍스트가 누구에 의해, 몇 명에 의해 창작되었는지, 심지어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칭적 저자의 신화성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암시한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란은 저자와 텍스트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 저자 개인의 천재적 역량 외에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다수의 주체,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탄생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셰익스피어는 동시대를 산 독자들에게는 문학가가 아닌 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알렸다. 셰익스피어가 사망하고 7년 후,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이 셰익스피어 희곡으로 명시한 18편의 작품을 모은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를 출간하기 전까지 그는 글로브 극장의 지분을 가진 연극 기획자이자 연출자, 배우로 잘 알려져 있었다.
[4] 셰익스피어가 살아생전 직접 발표한 작품은 연작 시집 《셰익스피어 소네트》와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능욕〉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1609년 영국에 흑사병이 유행하며 극장이 휴업하지 않았다면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창의적인 이야기꾼인 동시에 뛰어난 사업가로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셰익스피어는 문학가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보다, 연극의 기획자로서 현실적인 성공을 거두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활동했다. 그가 출판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저작료와 판권에 대한 독점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활동했던 콘텐츠 사업가로서 내린 합리적인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엘리자베스 1세를 위해 궁정에서 상연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일곱 명의 동료를 규합해 극단 ‘더 로드 체임벌린스 맨(The Lord Chamberlain’s Men)’을 창설했고, 그로부터 3년 후 자체 상영 기관인 글로브 극장을 열었다. 글로브 극장은 셰익스피어와 더 로드 체임벌린스 맨의 구성원이 공동으로 소유한 사업체였다. 극작가와 배우, 개인 투자자들로 구성된 주주들은 상시 공연을 위해 창작 연극을 함께 구상했다. 당시의 연극은 저자 역할의 범위가 확실히 규정되거나 고정되지 않았다. 더 로드 체임벌린스 맨은 연극의 기획과 창작, 연출, 연기를 분담한 집단 창작 공동체였다. 사업 운영 측면에서는 현대의 미디어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성 높은 연극을 기획하고 상연해, 경제적 이윤을 최대한 창출하는 것이 극단의 미션이었다.
더 로드 채임벌린스 맨은 판매된 영수증 개수를 근거로 작품의 흥행 성적을 일별로 확인할 수 있는 박스오피스 시스템을 갖췄고
[5] 이를 통해 대중의 반응과 성향을 정성적,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박스오피스 데이터는 작품의 텍스트를 보완·수정하는 데 활용했다. 흥행성이 높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창작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셰익스피어는 한 명의 위대한 신화적 저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날의 마블(Marvel)처럼 다수의 미디어 저자가 교류하고 텍스트를 변주하면서 활동하는 저자 프랜차이즈의 시초이자 브랜드 네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훗날 고고학적 연구와 텍스트 연구, 새로운 사료 발굴을 통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실제 셰익스피어를 발견하더라도 현재 대중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위상은 저자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 맥락이 융합된 문학적 사건이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저자는 그와 함께 활약했던 복수의 창작 주체들, 그의 텍스트를 현대로 이어 준 다양한 출판 기획자와 학술 연구자, 아티스트들을 포함한다. 현대의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이 인칭적 저자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텍스트의 창작자와 셰익스피어 비즈니스의 창작자를 분리할 것을 제시하는 이유다.
[6]
《톰 소여의 모험》의 저자이자 미국 문학계의 링컨이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역시 큰 맥락에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저자 프랜차이즈 사업가의 시초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 역시 자신과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등 유명 작가와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전 미국 대통령의 책을 출판한 유력 출판사의 사주였기 때문에 상업 주체와 융합된 저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적인 국제 저작권법을 제정하는 데 실질적인 지휘자 역할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트웨인은 타자기(typewriter)가 문학과 출판에 큰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하고, 거금을 투자한 테크노크라트
[7]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와 마크 트웨인은 신격화된 인칭적 저자의 개념에서 벗어나, 확장적인 저자의 역할을 예측하고 실천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일찍이 저자의 스타성과 권리를 상장시킬수록 콘텐츠로 창출되는 이윤이 극대화된다는 경제 논리를 몸소 체험하면서 저술과 출판, 홍보, 판매가 융합된 제도적 인프라를 개척했다. 그들이 저작권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대에 이미 현대적인 미디어의 원형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와 마크 트웨인을 현대적인 콘텐츠 사업의 선구자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만드는 창작자
신격화된 인칭적 저자의 위상은 오늘날의 출판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저자는 그야말로 신화적 맥락으로만 존재한다. 저자가 유일한 창작 주체로서 창조 과정 전체를 주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텍스트는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창작 주체들과 접속한다. 창조 행위를 완수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인칭적 저자와 대중 사이에서 텍스트를 연결하고 중재하는(mediating) 숨겨진 저자, 미디어 저자(media authorship)의 존재가 필연적인 이유다.
미디어 저자의 기원은 출판 산업이 부흥한 중세 유럽의 인쇄 기술자다. 이들은 저자가 제공한 텍스트를 책이라는 포맷으로 전환하는 임무를 맡았다. 창작에 관한 인쇄 기술자의 기여도는 비단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쇄 기술자들은 출판 미디어에 필요한 기술적·이론적 지식과 방법을 고안했고, 이 과정에서 발휘된 재량권은 창의성이 발휘된 실질적 기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인쇄 기술자들은 텍스트의 근본인 언어와 문법의 기초를 다져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통일된 언어와 문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에는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 차이에 따라 언어와 문법의 형태가 제각기 달랐다. 텍스트는 국지적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수많은 교정과 표현 양식의 변환을 거쳐야 했다. 문법과 문체의 교정 임무는 저자와 독자를 중재하는 미디어 저자인 인쇄 기술자들의 몫이었다. 주요 도시의 거점 인쇄소들이 각자 특유의 문법과 스타일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면서 중세 언어는 점차 현대 언어로 진화할 수 있었다.
[8]
인쇄 기술자는 자신이 고안한 활자 배열 체계에 맞게 문법과 어휘를 교정했고, 이 과정에서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은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달라졌다. 인쇄 기술자들과 출판업자들은 저자의 어휘를 개선해 의미 전달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치고 문맥을 수정했을 뿐 아니라, 페이지 레이아웃 스타일을 도입해 독자의 미적 체험에 관여했다. 이들은 독자층을 확대하기 위한 홍보·마케팅 전문가 역할까지 수행했다.
[9] 그렇게 탄생한 최종 텍스트가 인쇄소의 기술적, 미적 해법으로 완성된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인쇄 기술자들의 역할은 현대의 출판 편집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의 출판 시장에서도 여전히 인칭적 저자의 천재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기존의 문화·예술계에서 출판사, 출판 편집자, 제작사로 대표되는 미디어 저자의 역할과 재능, 기여는 줄곧 평가 절하되었다. 미디어가 단순히 텍스트를 유통하는 데 필요한 도구로 취급되면서 미디어 저자는 예술적 아우라가 결여된 텍스트-콘텐츠 변환 담당자, 전달자의 수준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저자와 대등한 창작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긍정하게 되면 저자의 신화가 훼손된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인칭적 저자와 미디어 저자가 협력적인 동시에 대립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획·제작부터 홍보·유통까지 자신의 기준과 스타일로 저자와 독자를 중재했다는 점에서 인쇄 기술자, 훗날의 편집자들은 새로운 포맷과 시스템을 고안한 창작의 주체들이다.
텍스트와 매체 사이의 상호 연관성이 강화된 트랜스미디어 환경은 저자의 개념과 창작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미디어 저자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의 영향력과 창작 권력이 확대되면서 도리어 인칭적 저자의 권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대의 저자들은 과거에 비해 다중적이고 광범위한 트랜스미디어 네트워크 환경이 구축된 문화 산업 생태계 속에서 활동한다. 오늘날 미디어 저자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 주체로 조명을 받으며 콘텐츠 시장이라는 무대의 중앙으로 나서고 있다. 트랜스미디어 시대의 저자의 역량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하기보다, 다양한 창작 주체와 함께 창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콘텐츠를 연결하는 것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트랜스미디어 시대의 창의성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은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미디어 저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코믹북, 영화, TV 시리즈,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 등으로 광활한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지속 가능한 흥행 모델을 완성했다. 2000년대 이전에도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프랜차이즈화는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상호 연관적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수준에는 못 미쳤다.
현재보다 미흡했던 미디어 네트워크 인프라의 기술적 완성도를 탓할 수만은 없다. 코믹스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부터 성공을 거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의 전례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194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슈퍼맨을 아동용 코믹북의 주인공에서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영웅으로 격상시켰고, 1950년대의 〈어드벤처 오브 슈퍼맨(The Adventures of Superman)〉과 1960년대의 TV 시리즈 〈배트맨〉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실제 배우가 연기한 슈퍼히어로의 파급력을 확인한 제작자들은 영화로 손을 뻗었고, 1978년 리처드 도너(Richard Donner)가 연출한 〈슈퍼맨〉은 블록버스터 장르의 시초로 인정받으며 4편까지 제작되었다. 팀 버튼(Tim Burton)이 연출하고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er Nolan)이 리부트(reboot)한 〈배트맨〉 시리즈는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영화로 기록되었다.
멀티미디어 시대와 트랜스미디어 시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개별적 텍스트를 상호 연관적 텍스트로 재구성할 수 있는 융합적인 창작 파이프라인의 존재 여부다. 트랜스미디어 텍스트를 성공적으로 창작하는 데에는 미디어 인프라 수준이 아니라 중재 역할을 수행하는 미디어 저자의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례로 DC는 워너브라더스에 인수된 1967년부터 영화, TV와 연계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갖고 있었다. 2008년 발표된 〈아이언맨〉이 공식적인 첫 블록버스터 작품이었던 마블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DC는 지속 가능한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DC는 미디어 저자를 확보하는 대신, 스타 감독의 개인적인 명성에 기대 영화의 흥행을 노렸다.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등 인칭적 저자의 지위를 누리는 유명 감독들은 특유의 독립적인 비전과 스타일로 배트맨을 창조해 개인의 캐릭터가 반영된 시리즈를 완성했다. 하지만 상호 연관적 트랜스미디어 프랜차이즈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개성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들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팝콘 영화의 이미지를 불식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타 콘텐츠와의 상호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프랜차이즈의 관점에서 DC, 혹은 워너브라더스의 배트맨이 아니라 각각 버튼의 배트맨, 놀란의 배트맨으로 각인된 것이다.
반면 마블의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동일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에서조차 감독과 작가가 수시로 바뀐다. 오늘날의 대중에게는 DC, 마블 등 영화의 브랜드와 스튜디오, 출연 배우, 전편·속편·리부트 등의 구분이 감독 개인의 명성, 개성보다 더 중요한 특징적 요소이자 프랜차이즈의 직관적 특징으로 인식된다. 텍스트를 창작하는 과정에서도 과거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저자들의 창작적 재량권을 존중하고, 이전 내용을 반성적으로 변형시키는 중재적인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마블의 〈어벤져스〉를 연출한 조스 웨던(Joss Whedon) 감독은 트랜스미디어 시대 미디어 저자의 좋은 예다. 〈어벤져스〉를 제작하기 전 그의 대표 이력은 TV 시리즈 〈버피와 뱀파이어〉의 크리에이터 역할이 전부였다. 블록버스터 영화는커녕 자신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구축한 경험이 전혀 없는 무명 감독에 가까웠다.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에 비해 인지도는 물론 브랜드 가치도 현저히 떨어졌다. 《뉴욕타임스》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분명 “마블의 플래그십 영화를 맡은 감독으로는 의외의 발탁”
[10]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마블의 선택은 옳았다.
웨던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조스 웨던의 〈어벤져스〉로 재창조하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마블 코믹스의 열렬한 팬으로서 방대한 슈퍼히어로 텍스트와 서브 텍스트에 익숙했고, 이전 작품이 구축해 온 세계관을 존중했다. 오랜 슈퍼히어로 팬덤 활동, 마블 코믹스의 스토리 작가 경력, 〈버피와 뱀파이어〉를 〈엔젤〉이라는 연계 시리즈로 확장해 상호 연관적 미디어 프랜차이즈를 구현했던 경험은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감독으로서 웨던의 최대 장점이었다. 웨던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집했다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집결체인 어벤져스 시리즈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마블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별적인 슈퍼히어로와 브랜드를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유통시키는 것이다. DC를 소유한 타임워너도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지만 출판 코믹스에서 이뤄 낸 성과를 트랜스미디어로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디어 프랜차이징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의 개념을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적용해 발전시킨 개념이다. 일차원적인 소스의 반복과 복제, 재생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간에 연관성을 맺고 각자 유의미한 개별적인 변이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추구하는 창의성은 탈중심적인 변주를 발생시키는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 기업은 원천 소스, 지적 재산권을 확보해 라이센싱(licensing) 계약
[11]을 맺고 로열티를 받는 통제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미디어 시대의 창의성은 경쟁사인 미디어 기업이 구축한 독자적인 창작 파이프라인의 역량이 자사 콘텐츠의 본질마저 변이시킬 수 있을 만큼 상호적인 협력 관계를 맺는 유연한 태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DC는 지적재산권, 저작권, 배급권 등을 통해 창작 파이프라인을 통제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미디어 간 접속을 시도했지만, 마블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자사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들을 탈영토화해 경쟁사에 저작권을 양도했다.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마블이 탈중심적이고 분열적으로 스토리를 변주하고, 광활한 트랜스미디어 세계관을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마블 자체적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텍스트의 상호 연관성과 복수의 세계관이 미디어 전역에서 활동하는 다채로운 창작 주체들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창작 주체는 한 사람의 뛰어난 개인이 아닌, 다수의 인물과 다양한 기능이 융합된 미디어 저자다.
군주적 미디어 저자와 저작권
미디어 저자의 역할과 권력은 중세의 인쇄 기술자, 셰익스피어와 마크 트웨인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사업가, 오늘날의 마블로 이어지면서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한 명의 개인처럼 유기체적 통일성을 갖고, 확고한 주체성과 권력 의지를 전파하고 통제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과 같은 군주적 미디어 저자도 등장하고 있다. 출판사, 제작사로 대표되는 이들은 신격화된 인칭적 저자가 기업의 형태로 재현된 것으로, 자신에게 복속된 다수의 저자들을 통제해 하나의 획일화된 창작 질서를 수립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주를 억제한다.
저자의 개념을 무력화하고, 개별 창작자의 지적 재산권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미디어 권력의 사례는 슈퍼히어로 코믹스에서 찾을 수 있다.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콘텐츠는 복수의 저자들에 의해 탄생했지만 창작 파이프라인은 철저히 출판사에 의해 통제되었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속도전과 물량전으로 최대한 많은 캐릭터를 동시에 등장시켜 다양한 조합을 신속하게 실험한 다음, 인기 캐릭터와 시리즈를 선별하는 방식이 무한 반복되었다. 인기 캐릭터를 일주일에 하나씩 생산하고 이를 다양한 미디어 포맷에서 복제·재생산해야 했기에, 출판사는 원작자의 동의 없이 복수의 창작 파이프라인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의 저작권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시초이자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슈퍼맨은 원작자가 오랫동안 저작권을 행사하지 못한 사례로 꼽힌다. 슈퍼맨은 1933년 당시 고교생이었던 제리 시겔(Jerry Siegel)과 조 슈스터(Joe Shuster)에 의해 탄생했다. 남자 청소년들이 상상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장난과 남성적 모험의 결합이 초기 슈퍼맨의 특징이었다. 시겔과 슈스터의 슈퍼맨은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에 가까웠고, 남자 어린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며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의 정의와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영웅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슈퍼맨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창작 인력이 필요했고 이를 통제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편집자의 권한이 커졌다. 사업적 측면에서 독자층을 남아에서 청소년, 성인으로 확장할 필요도 있었다. 유아적이고 코믹한 시겔과 슈스터의 슈퍼맨에 역행하는 새로운 슈퍼맨을 창작한 인물은 당시 DC 코믹스의 편집장이었던 모트 와이징어(Mort Weisinger)였다. 그는 슈퍼맨을 현실적 갈등을 해결하는 성숙한 인물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작자들의 아이디어를 수시로 묵살하고, 자신의 슈퍼맨 비전을 DC 코믹스의 모든 슈퍼맨 저자와 아티스트들에게 강요했다.
[12] 와이징어는 시겔과 슈스터의 창작적 재량권을 최소화하는 대신 DC 코믹스 편집부의 창작 권한을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대중에게 익숙한 슈퍼맨을 재창조한 미디어 저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시겔과 슈스터는 슈퍼맨에 대한 10년짜리 창작 독점 계약이 만료된 후, 특별 기념호를 제외하고는 두 번 다시 슈퍼맨 텍스트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판매된 슈퍼맨 상품이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도 배제되었다. 시겔과 슈스터는 후배 코믹스 저자들의 노력으로 DC와 워너브라더스로부터 슈퍼맨과 관련한 모든 콘텐츠에 둘을 원작자로 표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경제적 권리는 곧바로 회복되지 못했다. 1977년 양측은 워너브라더스가 시겔과 슈스터, 그 후손들에게 매년 2만 달러(2376만 원)의 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중재안에 서명함으로써 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13] 두 원작자가 63세가 되던 해였다.
시겔과 슈스터는 슈퍼맨의 기본적인 내러티브, 인물의 특징과 능력, 주변 캐릭터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제공했지만 현대의 대중에게 각인된 슈퍼맨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그들의 창작물이 아니다. 오늘날의 슈퍼맨은 인칭적 저자의 창작물이 아니라 미디어 저자의 창작물에 가깝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원작자들의 창작적 재량권을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 분리해 낼 수 없다.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면 슈퍼맨의 제작을 담당한 DC 코믹스의 아티스트와 저자, 편집자의 기여도가 원작자보다 오히려 더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팽창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현대 사회는 독과점을 지향하는 군주적 미디어 저자가 출현하기 쉬운 환경이다. 이들은 콘텐츠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개별 저자들의 창작 재량권을 부정하고 경제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슈퍼맨의 사례는 인칭적 저자와 미디어 저자 사이에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명료한 중재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창작 재량권 분배의 문제는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 창의성과도 직결된다. 인칭적 저자와 미디어 저자의 비전과 목표, 역량은 서로 다르고 장단점 역시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인칭적 저자의 장점이 독창적 비전과 예술적·미적 표현이라면 상호 연관적 텍스트를 멀티 플랫폼에서 구현하고 수시로 창의적 분열을 시도하는 역량은 미디어 저자의 전문 분야다. 한쪽이 상대 영역을 잠식하면 신격화된 인칭적 저자 또는 군주적 미디어 저자가 등장할 수 있다.
모두가 저자인 시대의 창작
《뉴욕타임스》의 기사
〈누구나 글을 쓴다. 그러나 모두 작가일까?(Everyone Writes. But Is Everyone a Writer?)〉는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프로 저자와 일반인 저자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 대신 프로 저자와 일반인 저자가 창작 활동을 함께 하고, 서로 다른 창의성을 발휘하는 협조자로서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14] 모두가 이미 저자인 시대에 저자의 가치는 경제적, 상업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다.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는 광범위한 미디어 접속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들에게 이미 현실이다. 일상을 회고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형식의 SNS 게시물은 빅데이터 시대의 자산이 되고, 다양한 미디어 포맷에 기록되는 소비 활동의 후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평론을 제공한다.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은 저자가 되고 싶은 대중의 창의적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시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자를 대체하는 새로운 단어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Z세대라 불리는 미래의 주역들이 가장 선망하는 저자군이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페북러, 트위터리안, 리뷰 블로거 등은 기술과 매체의 혁신과 연동되어 진화하는 저자의 원형이다. 이들의 창작물에 공감과 피드백을 보내는 성실한 댓글러까지 저자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
트랜스미디어 환경은 저자와 독자, 창조자와 수용자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면서 높은 수준의 확장성을 실현하고 있다. 독자는 얼마든지 저자가 될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집단 지성과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공동 저자들은 내부의 편집 기능은 물론 외부 팬덤의 개입을 모두 저작 활동으로 수렴한다. 이들은 인칭적 저자의 신화에서 벗어나면서 탄생한 미디어 저자의 현대적 플랫폼이며, 서로를 중재하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컬래버레이션이다.
저자는 글을 쓰고, 출판사는 책을 만든다는 논리는 창의성을 특정 인물의 부산물로 일반화할 때만 참이 된다. 창조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맞물리는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지적·기술적 교류의 결과물이다. 텍스트를 집필하고, 이를 활자로 프린트해 책으로 제본하고, 다양한 경로로 유통하고, 최종적으로 독해하는 모든 단계의 참여자들이 창작의 주체다.
저자는 박제된 개념이 아니다. 명료하게 규명된 저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칭적 저자의 품을 떠난 텍스트는 더 많은 창작의 관문에 직면한다. 이러한 관문들은 잠정적으로 텍스트의 맥을 끊거나, 다른 방향으로의 변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텍스트는 책의 형태로 최종 출판되기까지 빈틈을 발견하거나 끊긴 부분을 잇는 다른 창작 주체의 참여로 새롭게 연결되며 완성된다. 저자의 자리에 최종적으로 하나의 이름이 박히더라도, 텍스트는 이를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연쇄적인 공동의 창작 과정을 이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