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디어는 위대한 저자의 작품을 손상하지 않고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종의 그릇으로 여겨졌다. 많은 독자들은 출판사, 영화사, 편집자, 제작자가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창작자의 이름을 믿고 콘텐츠를 선택한다. 그러나 최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은 제작사, 기획자가 창작자보다 강력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마블의 팬들은 배우나 감독의 명성이 아닌 마블의 역량을 믿고 티켓을 구입한다.
저자는 마블로 대표되는 기획, 중재 역할을 하는 창작자를 ‘미디어 저자’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미디어 저자는 작품을 창작한 개인인 인칭적 저자와 대중을 연결한다. 다양한 미디어 형태를 넘나들며 콘텐츠와 스토리가 변주되는 트랜스미디어 시대에는 창작자와 중재자의 역할이 모호해지면서 미디어 저자의 영향력이 커진다. 인칭적 저자와 미디어 저자가 협력할 때, 다양한 소비 방식을 횡단하는 확장성 있는 텍스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창작뿐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고, 변주하고, 완성하는가가 흥행과 성공의 관건이 되었다.
기획과 연결에 능한 미디어 저자의 활약은 문화·예술 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창의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작업은 골방에 들어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콘텐츠를 더 열성적으로 소비하며 ‘덕후력’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벤져스〉를 만든 조스 웨던이 마블의 모든 캐릭터와 세계관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장 최적의 조합과 유연한 스토리 구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엄보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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