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트럼프의 미국을 신뢰할 것인가
1화

세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의 배신과 추락하는 미국의 신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해 주는 인물은 대통령 자신이다. 스스로 시작한 시리아의 대혼란을 두고 그는 이렇게 트윗을 날렸다. “모두 잘 해내길 바란다. 우리는 7000마일 떨어져 있으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위험한 지역의 동맹을 버리고도 미국이 악영향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미국의 우방과 적들은 쿠르드족을 배신한 트럼프의 미국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우려할 만한 일이다.

1000명의 미군을 철수시키기로 한 트럼프의 결정은 시리아 북부의 아슬아슬한 휴전 상태를 즉각적으로 파괴했다.(2화 참조) 이 철군으로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지금까지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 16만 명이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쿠르드족이 통제하는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이슬람국가(IS)의 지지자 무리도 탈출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쿠르드족은 피에 물든 시리아의 독재자이자 미국의 적인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의 미군을 귀환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그는 미국이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의 지지자 다수는 러시아와 이란, 터키가 시리아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말에 동의한다.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인들은 이제 세계의 경찰 노릇에 지쳐 버렸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서도 중동의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도 그중 하나다.

미국인들의 좌절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무작정 중동 지역을 버리는 일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런 결정은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를 손상시킨다. 이는 곧 미국이 자국민의 번영과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 힘들게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많은 측면에서 미국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혔다. 대통령은 1000명의 강력한 억지력을 갖춘 군대가 철수하면서 발생하는 힘의 공백이 대단히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보고를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결정에 대통령의 참모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쿠르드족은 아연실색했다. 영국군 장병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전우인 미군들이 짐을 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누구도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철군은 전우의 충성심을 저버린 결정이었다. 쿠르드 민병대는 시리아에서 IS ‘왕조’를 분쇄한다는 목표로 미국의 특수 부대, 공군과 함께 싸웠다. 약 1만 1000명의 쿠르드 전사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미군 5명이 사망했다. 이 초강대국은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비교 불가능한 최강의 정보력과 지역의 동맹을 결합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피를 흘리고, 적은 돈을 쓰면서 전쟁을 치렀다.

더 나쁜 것은 이 결정이 전략적으로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IS를 부활시키거나 아사드 대통령을 자극할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의 매서운 적국이자 아사드 대통령의 동맹국인 이란이 미국의 철수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미국이 버리고 간 기지에서 기쁘게 셀카를 찍을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수행해 온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1970년대에 잃어버린 그 역할이다. 사상자가 거의 없었던 소규모의 병력을 시리아에서 철수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불필요한 국경 간 분쟁을 촉발했고, 적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친구들을 배신했다.

안타깝게도 가벼움과 충동은 트럼프 외교 정책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이란이 미국의 드론을 공격한 후, 트럼프는 보복 공격 직전에 중단을 명령했다. 지난달 이란 혹은 그 대리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 시설을 공격했을 때, 그는 뒤로 물러서 있었다. 마치 초강대국의 외교가 과장법과 쇼맨십으로 굴러가는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듯 그는 고통스럽게 합의했던 조약들을 걷어차 버리고, 시끌벅적하게 무역 전쟁을 개시했다. 베네수엘라와 북한처럼 관계의 변화를 약속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결실로 돌아온 것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한 고려나 일관성 있는 전략 설계 없이 중대한 결정을 변덕스럽게 내려 버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 대신 거대한 상업적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사안에 대한 그의 대답은 경제 제재였다. 터키의 침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활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웬만한 나라들은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여전히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는 베네수엘라를 이끌고 있고, 김정은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터키는 시리아에서 (쿠르드와) 계속해서 싸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경제 제재 조치 역시 소모성 자산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의 이동 통신 거대 기업인 화웨이와의 관계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들은 주저하고 있다.

시리아에서의 대실패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미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쿠르드 공격 이전에도 터키는 러시아의 방공 미사일을 구매하면서 나토(NATO)와 갈등을 빚어 왔다. 이 침공으로 터키에 대한 경제 재재와 무기 금수 조치가 이어졌고, 나토의 균열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토의 동맹국인 작은 발트해 국가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방어할 의지가 있는지 시험하려 들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트럼프가 쿠르드를 버릴 수 있다면 아프가니스탄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운 탈레반이 세력을 넓힐 것이다. 중국은 국경 분쟁에 주목해, 때를 기다리면서 주변국 영토에 대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압박을 가할 것이다. 훌륭한 민주 국가인 대만은 이제 조금 더 불안해졌다. 미국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많은 동맹국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제 미국의 동맹에게는 스스로 무장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로 인해 각 지역에서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으로부터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북한이나 이란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수십 년에 걸쳐 미국이 힘들게 구축하고 유지해 온 질서는 불안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 질서를 바탕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혜택을 누려 왔다. 미국이 이 질서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미국은 자국민과 기업을 지키기 위해 무기와 군사력에 계속해서 투자해야 한다. 동맹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신이다. 한번 싹을 틔운 불신은 군사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나라들은 미국과 장기간의 무역 합의를 체결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산업 스파이, 국제 규칙 파괴 등으로 미국에 해를 끼치는 중국에 함께 맞서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이 되어 버린 인권, 민주주의, 신뢰, 공정한 협상이라는 가치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는 독자적인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방 세계는 심각하게 적대적인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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