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2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대참사와 실존적 위험

1859년 9월 2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남동쪽에서 금을 탐사하고 있던 C. F. 허버트(Herbert)는 저녁 하늘에서 숭고한 장면을 보게 된다. “거의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나타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들이 남쪽의 하늘나라에서부터 발산되고 있었다.” 그가 이후에 회상한 내용이다. “합리주의자와 범신론자는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측면을 보았다. 미신을 믿는 이들과 광신적인 이들은 끔찍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을 품었고, 그것을 아마겟돈과 최후의 종말에 대한 전조라고 생각했다.”

오로라 현상을 대참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대를 앞서갔을 뿐이다. 허버트가 관측했던 지자기 폭풍(geomagnetic storm)은 나중에 캐링턴 이벤트(Carrington event)라고 알려지게 되는데, 태양에서 방출된 1억 톤에 달하는 하전입자(전하를 띤 입자)들이 몇 시간 후에 지구의 자기권을 강타했던 사건을 말한다. 지구의 자기권이란 지구 핵에서 일어나는 유체의 흐름으로 인해 생성되는 자기를 띤 보호층을 말한다. 이러한 맹공격으로 인한 전자기적 효과는 단지 남극광이라는 경탄할 만한 장면을 만들어 냈던 것만이 아니다(당시에는 북극광도 나타났는데, 이때의 북극광은 저 멀리 남쪽의 콜롬비아에서도 관측됐다). 하전입자들은 모든 전도체 내에서 강력한 전류를 가볍게 유도해 냈다. 전신 네트워크의 일부가 저절로 움직였고, 배터리 없이 신호를 발생시킬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은 전구가 발명되기 20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처럼 모든 곳에서 전기가 사용되고, 기초적인 요소가 되며, 전기로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세상에서는 캐링턴 이벤트 정도로 거대한 “코로나 질량 분출(CME)”이 발생한다면 어마어마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유도 전류는 전력 공급망을 망가뜨릴 것이다. 자기 폭풍의 에너지로 인해 외기권(outer atmosphere)이 부풀어 오르게 되면, 인공위성들은 회로가 타버리거나 하늘에서 끌려 내려올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CME의 영향이 얼마나 심각할지 증명하는 일은 논쟁거리다. 어떤 이들은 1989년에 퀘벡에서 일어난 보통 수준의 폭풍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거대한 자기 폭풍이 발생한다면 수많은 지역에서 몇 시간 동안 전력이 차단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지구 종말의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물론 때가 되면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가려질 것이다. 태양 물리학자들은 향후 10년 안에 캐링턴 이벤트 수준의 지자기 폭풍이 발생할 확률을 10분의 1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결국 한 번은 발생할 것이다.

지자기 폭풍은 발생 가능한 재앙의 위협을 보여 주는 역사적, 지질학적인 기록 가운데서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다. 판데믹은 또 다른 사건이고, 거대 화산 폭발은 또 다른 사건이다. 각국이 앞서 경험한 재앙에 얼마나 잘, 혹은 얼마나 잘못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다른 재앙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는 것과 같다.

과학 기술은 이런 사건이 발생시키는 소요 사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판데믹 상황에서 백신을 개발하는 것처럼 과학 기술은 문제가 되는 상황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 반면에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을 때 전력망이 그랬던 것처럼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이 초래하는 새로운 위험을 전면에 드러낼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내연 기관과 핵무기다. 내연 기관과 핵무기는 환경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지구 온난화와 핵전쟁이라는 위협을 현실로 만들었다. 모두 전례가 없는 일들이다. 앞으로도 과학 기술로 인한 위협은 더 나타날 수 있다. 그 위험성의 수준은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어서,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옥스퍼드대 인류 미래 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의 토비 오드(Toby Ord)는 최근 저서인 《벼랑(The Precipice)》에서 실존적 위험(existential risk)을 “인류의 장기적인 잠재력(long-term potential)을 파괴하는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연재해들 중 일부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6600만 년 전에 공룡을 멸종시켜 버렸던 10킬로미터의 소행성 충돌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극초신성(hypernova)” 근처에서 만들어져서 행성을 절멸시킬 수도 있는 감마선 폭발(gamma ray burst)도 또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63만 년 전에 옐로스톤(Yellowstone)에서 발생해 미 대륙의 절반을 잿더미로 뒤덮었던 화산 폭발도 있다. 이런 “초특급 폭발(super-eruption)”로 인류가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문명을 간단하게 끝장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인류가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거치는 수십만 년 동안 장기적 잠재력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끝낼 수도 있는 자연재해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가?[1]


이미 실존하고 있는 핵전쟁이나 기후 붕괴와 같은 기술 매개 위험에 대해서는 안심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토비 오드는 이런 요소들이 실존적 위협의 수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기술보다는 핵전쟁이나 기후 변화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도래하지 않은 기술이라면 자연 선택이라는 진화의 산물과는 다르게 파괴적으로 설계된 최첨단 생물 무기(bioweapon)나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창조주의 이해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 같은 것이 있다.

누구도 그런 위험성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정확히 제로라고 설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오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가오는 세기에는 탈주한 AI가 인류를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인류의 잠재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가능성에 대해서 “최소한 1000분의 1의 리스크”는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반박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논리 정연하게 제시하는 최적의 추정에 따라 모든 종류의 위험 요소를 계산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인류가 그처럼 불행한 사고로 미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6분의 1 정도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의 확률, 또는 리볼버 권총을 사용하는 러시안룰렛의 확률이다.

오드는 이런 도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 하나다. 이 게임의 판돈이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존적인 위험에 대해 걱정하는 학자들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인 버전으로 적용해서 “인류의 장기적인 잠재력”을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의 삶보다도 훨씬 더 큰 것으로 생각한다(이러한 경향의 현대적인 형태는 스웨덴의 철학자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2005년에 인류미래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즉,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았던 것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수조 개의 행복한 삶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잠재력을 보호하려는 아주 미미한 움직임도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 된다. 오드는 강력한 증거 기반의 공리주의에 따른 행동을 옹호하는 운동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실존적 위험성을 우려하는 것을 이 프로젝트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참사에 불과한 위험은 철학적 사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주제는 정치나 권력 영역의 계산법을 활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핵공격으로 인한 위험을 살펴보자. 론 서스킨드(Ron Suskind) 기자에 따르면 2001년 11월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Dick Cheney)는 미국이 “가능성은 작지만 충격은 큰” 사건에 대적할 새로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알카에다가 핵무기를 구축하거나 개발하는 것을 파키스탄의 과학자들이 도와줄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대응 차원에서 100퍼센트 확실한 것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은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정부 기관(국토안보부), 영장이 필요 없는 감시 활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행정 권력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만약 위험성이 1퍼센트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엄격한 조건에 맞춰 대응했다면, 세계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반드시 더 안전한 곳이 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비슷한 정도의 위험성을 가진 다른 것들에 대해 세계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체니 전 부통령이 20년에 걸쳐서 한 도시가 사라질 가능성에 대해 고려했다고 상상해 보라. 도시의 소중한 사람들과 자본을 수십 년마다 1퍼센트의 속도로 위험 속에 밀어 넣는 다른 문제들은 어떠한가? 수천 년에 한 번씩 나타나거나,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수조 달러의 비용이 들어가는 대참사들도 있다. 이런 위험 역시 진지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케임브리지대 실존적 위험 연구 센터(CSER, 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의 럼틴 세파스푸어(Rumtin Sepasspour)는 이렇게 말한다. “각국 정부들은 안보를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위험의 한 카테고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캐링턴 이벤트는 좋은 사례다. 정말 거대한 CME가 발생한다면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아마도 전력망의 변압 시설일 것이다. 변압 시설은 장거리 송전망과 가정, 기업, 병원 등 저전압 전력을 사용하는 지역 분배망 사이에서 전압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구축된 거대한 기계 장치다.

충분히 강한 유도 전류라면 이런 변압 시설을 수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 변압 시설은 보통 대체 장비를 제작하는 데 6~1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게다가 제작할 수 있는 산업적 역량을 갖춘 나라들도 몇 안 된다. 결국 파괴된 전력망은 한동안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물을 퍼내는 능력, 연료를 퍼내는 능력, 통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동시에 하늘을 탐사하는 도구도 잃는다면, 이제까지 탐험해 보지 못한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순식간에 빠져들 것입니다.” 콜로라도대 볼더 캠퍼스의 대기 및 우주 물리학 연구소(Laboratory for Atmospheric and Space Physics)의 소장인 댄 베이커(Dan Baker)의 말이다.

예비 변압 시설을 비축하는 것은 문제를 일부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형 변압 시설은 상용 물품이 아니다. “이런 설비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보관해 두는 거대한 창고 같은 건 없습니다.” 베이커 소장의 말이다. 예비 발전 장치와 같은 지역의 이중화 공급 시설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베이커 소장은 그런 곳에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서든 임팩트[2]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를 생각하는 과학자들과 정책통들은 캐링턴 이벤트 수준의 자기 폭풍에 대비해야 하는 전력망 사업자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진전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 우주 기상 예측 센터(Space Weather Prediction Centre)의 윌리엄 머터(William Murtagh)는 우주 기상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먼 길을 걸어왔으며, 시스템이 과도한 전압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전력망 사업자들이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양당의 합의하에 현재 의회에서 처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적어도 미국은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 3월에 공개된 ‘국가 우주 기상 전략 및 사업 계획(National Space Weather Strategy and Action Plan)’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조기 경보 시스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볼더의 우주 기상 예측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국립 해양 대기청(NOAA)은 인공위성 디스커버(DSCOVR)도 운용하고 있다. 디스커버는 지구 궤도가 아닌 지구와 태양 사이를 잇는 선상에서 공전하고 있는데, 두 천체의 중력에 의한 인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곳에서 지구 쪽으로 약 1.5킬로미터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디스커버는 영원한 낮의 영역(eternal sunshine)에서 지구의 회전을 관측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는 하지만, 태양에서 불어오는 전하를 띤 입자의 흐름을 측정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속도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만약 자기 폭풍이 지나가면 볼더의 위성 관제소는 최선봉이 지구에 충돌하기 15분~1시간 전에 디스커버로부터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1815년에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분화했을 때처럼 지구 전역의 기후를 냉각시키고 건조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계획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냉각을 불러일으키는 성층권의 황산염 입자가 빙하와 빙판에 특유의 잔류물을 남긴다는 사실을 보면 화산의 분출 빈도를 알 수 있다(표1 참조). 하지만 다음번의 분출이 언제가 될지를 말해 주는 일정한 패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불규칙성/ 화산 분출, 성층권으로 주입된 황산염 에어로졸(sulphate aerosol)의 양(단위: 백만 톤)/ 기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화산 분출*, (국가 기준)/ 린자니(인도네시아)/ 킬로토아(에콰도르)/ 쿠와에(바누아투)/ 후아이나푸티나(페루)/ 마운트 파커(필리핀)/ 라키(아이슬란드)/ 탐보라(인도네시아)/ 출처: 럿거스대, 스미소니언연구소 지구 화산 활동 프로그램(GVP)/ * 황산 분출 5000만 톤 이상 기준/ † 지역 불명
활동을 중단한 것처럼 보이는 화산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의 화산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으로 대폭발의 가능성을 밝혀야 한다. 다시 한번, 인공위성이 그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레이더 간섭 측정(radar interferometry) 기술은 화산의 아래쪽이나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는 마그마의 압력으로 인해 화산의 모양이 언제 변형되기 시작하는지 알려 준다. 브리스톨대 과학자들은 과거의 분출에서 얻은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서 미래의 분출을 예측할 수 있게 머신러닝(machine-learning) 시스템을 훈련하고 있다. 매우 거대한 분출은 상당히 예측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얼마나 클지, 영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잠재적으로 위험한 소행성을 찾는 데 전념하는 프로젝트들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협은 과거와는 다르다. 1980년대부터 사람들이 소행성 충돌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공룡들을 멸종시킨 것처럼 엄청나게 거대한 소행성이 걱정의 대상은 아니었다. 너무 드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에 그보다는 더 작지만, 화산 폭발처럼 기후에 지장을 줄 정도로는 충분히 거대하고, 세계 전역에 피해를 주기에 충분한 사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구 표면에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일부 지역을 무작위로 쓸어버리는 것보다는 좀 더 큰 규모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지구 근접 천체(near-Earth object)의 개체 수에 대한 이론적 모형들을 보면 엄청난 파괴를 입힐 정도로 충분히 커다란 천체들은 1000여 개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발견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겨우 100여 개에 불과했다. 이후 관측을 통해 나머지 대부분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지구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 조직인 모어데이터(MoreData!)의 앨런 해리스(Alan Harris)에 따르면 2019년 시점 데이터를 기준으로 볼 때 잠재적으로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구 근접 천체들 중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은 43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거대 소행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성은 줄어들었고, 이 문제는 밀려났다. 그리고 더 작은 소행성 발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국은 내년에 다트(DART, 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소행성 방향 이중 재설정 테스트’라고 하는 우주 임무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는 자신보다 큰 소행성의 궤도를 돌고 있는 작은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것으로 “지구 방위(planetary defence)” 역량을 갖추기 위한 첫 번째 시험의 장이 될 것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인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대참사의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작업에 효율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면,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3억 달러(3590억 원)라는 돈은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보다는 판데믹 조기 경보 시스템에 돈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방면으로[3]


판데믹이나 태양 폭풍, 화산 분출 등에 대해서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지식 활용 계획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무시무시한 적들에 대해서는 어떨까?
인류가 초래한 기존의 위험들은 이미 상당히 잘 다뤄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더 철저하게 모니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측면들(예를 들면, 메탄가스 배출원과 토양 수분의 변화량)이 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완전히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의 속성은 원래 보유한 이들이 서로 상대방의 능력과 의도를 감시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것이다.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포괄적 핵 실험 금지 조약 기구(CTBTO)에서 지진계, 방사성 동위 원소 센서, 저주파 탐지기 등이 한데 결합되어 놀라울 정도로 잘 발달된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어떠한 규모의 핵무기라도 들키지 않고 몰래 터뜨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곧 나타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통 지능(traditional intelligence) 기법에서는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이 새로운 천연 병원체를 검출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지만, 진화된 생물 무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대책은 플랫폼 치료 기법(platform therapy)을 중심으로 구축된 “정밀 의학(precision medicine)” 접근법에서 나올 수 있다. 플랫폼 치료 기법은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그런 유사 과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다. 패턴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현재의 AI 시스템에 대해 사람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될 위험성 정도를 걱정하고 있다. AI는 그것 자체로는 우표 수집보다 더 위험한 것도 아니고, AI가 인간처럼 지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이 분야의 관계자들 대부분은 언젠가는 AI가 인간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상당히 다양하다(표2 참조). 이렇게 차이가 크다고 해서 어떠한 위협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위험의 실체를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언젠가, 아마도, 내 생각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동등해지거나 뛰어넘을 것으로 생각하는 시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개별 답변/ 파란색 실선(평균)/ 2016년 이후 연수/ 출처: 카티야 그레이스 외, 〈AI는 인간의 성능을 언제 뛰어넘을 것인가? AI 전문가들의 증언〉
하지만 하나의 분야이자 위협으로서 AI는 합성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학술 문화에서 태어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들 분야의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출판물 간행이나 토론을 기피한다. 이러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모니터링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위험 요소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간은 이미 경험한 문제들에 대비하려고 한다. 우주 기상 예측 센터의 윌리엄 머터는 1989년에 퀘벡에서 발생한 사건 이후 고도가 높은 지역의 전력망 사업자들이 다른 지역의 사업자들보다 태양의 자기 폭풍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사스(SARS)로 심하게 타격을 입었던 나라들은 판데믹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체적으로 더 잘 대응하고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위협이 나타난다면,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대응책을 구축할 만한 핵심적인 경험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과학과 상상력이 빈자리를 채울 수도 있다. 캐링턴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허버트의 동료들 중에서 미신을 믿는 광신적인 이들은 기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끔찍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인류도 미래를 그런 식으로 내다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수조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잘살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걱정할 만한 가치가 있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이성이 밝혀낼 것이다.
[1]
영화 〈더티 해리〉의 대사
[2]
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의 4편 제목.
[3]
〈Every Which Way but Loose〉.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티 해리〉 시리즈 이후에 찍은 영화 제목. 한국에서는 <더티 파이터 2>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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