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제9회 AKB48 선발 총선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투표 기간은 2017년 5월 30일(화) 오전 10시부터 6월 16일(금) 오후 3시까지로 하루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보름 이상에 걸쳐 진행되었다. 개표는 2017년 6월 17일(토) 일본 남쪽 오키나와(沖縄)의 해안 공원 도요사키 츄라 썬비치(豊崎美らSUNビーチ)에서 이루어졌다.
개표는 실제 선거처럼 지상파 TV에서 생중계될 정도로 현지의 엄청난 관심 속에서 진행된다. 일본 정부의 실제 총선거보다 AKB48의 총선거에 더 많은 관심이 몰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AKB48의 총선거에 일본 열도가 들썩거린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총선거 직후 일본의 스포츠 전문 매체인 닛칸스포츠가 호외(號外)를 발행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인기가 높다고는 하지만 걸 그룹의 인기투표 결과를 몇 년째 호외로 뿌릴 정도면, AKB48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데뷔 초기 AKB48 운영진은 많은 인원 때문에 모든 멤버의 방송 출연이 어려워지자 10~20명 안팎의 멤버를 선발해 출연시켰다. 선발 총선거가 개최되기 이전까지는 프로듀서 등의 운영진이 싱글곡마다 선발 멤버를 선택했었다. 그러나 이런 운영진 주도의 멤버 선출 방식은 멤버와 팬들로부터 “항상 그 멤버만 선발되는 건 불합리하다”, “왜 저 멤버는 선발되지 않는가?” 같은 항의를 받았다.
이러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그렇다면 팬 스스로 센터를 결정해 보라’는 운영진의 도전적 제안이 선발 총선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마침내 대중이 AKB48의 프로듀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총선거는 단순히 AKB48 그룹 팬들과 감동을 공유하거나 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룹 간 또는 멤버 간에 서열화와 경쟁의식을 심어 자신의 끼와 재능을 개발하고 키워 나가는 구도를 만든다. 인간은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깨닫는 순간 본연의 분발 의지가 자극되어 자율 시스템(autonomous system)이 작동한다.
총선거가 현재와 같은 대규모 이벤트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는 프로듀서도 멤버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총선거가 시작되기 전 아이돌 그룹 내에서 멤버의 인기를 표출하거나 서열화하는 것은 금기(禁忌) 중의 금기였다. 여럿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조화를 의미하는 ‘와(和)’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더욱 금기시되어 왔다. 총선거는 지금껏 금기시되어 왔던 멤버의 서열을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그러면서 대대적으로 언론에 노출시켜 버렸다. 이런 과감한 시도가 팬은 물론 그동안 무관심했던 대중까지도 열광하게 만들어 의도하지 않은 큰 성과와 파장을 함께 몰고 왔다.
대중의 실제 관심도는 투표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AKB48 선발 총선거에서는 총득표수가 338만 2368표나 될 정도로 팬들의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그렇다고 총선거가 모든 멤버들을 만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투표 결과, 순위가 낮거나 예상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 멤버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해 운영진에서는 임상 심리 전문가와 카운슬러로 팀을 꾸려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심리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5] 총선거를 통한 서열화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1인 다표제의 경제학
AKB48 싱글 선발 총선거의 투표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총선거의 경우 다음 항목 어딘가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해 투표권이 주어진다. 팬들이 투표권을 손에 넣는 방법은 크게 일곱 가지다.
① CD 구입
② 각 그룹의 모바일 회원
③ 각 그룹의 모바일 이메일 월액 회원
④ AKB48 공식 팬클럽 ‘니혼하시라회’(二本柱の会) 회원
⑤ 각 그룹의 DMM LIVE!! ON DEMAND 월액 회원
⑥ AKB OFFICIAL NET 회원
⑦ 총선거 당일 콘서트 입장객
위에 제시한 일곱 가지 투표권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CD 구입
1646엔(약 1만 60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2017년 5월 31일 발매 AKB48 48th 싱글에는 일련 번호가 기재된 투표권이 들어 있다. 특설 사이트에 접속한 후 일련 번호를 입력하고 원하는 멤버에게 투표하면 된다. AKB48 48th 싱글은 발매 첫날에만 무려 121만 7000장 팔렸다.
② 각 그룹의 모바일 회원
각 그룹 모바일 회원은 1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회원은 월 324엔의 회비를 지불해야 한다. CD를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해 처음 투표하는 사람들이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투표만 하고 회원을 탈퇴하는 경우도 많다. 투표는 각 그룹의 모바일 회원이 소속된 사이트에 접속해 스마트폰이나 휴대폰으로 하게 된다.
③ 각 그룹의 모바일 이메일 월액 회원
각 그룹의 모바일 이메일 회원은 1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회원은 월 324엔의 회비를 지불해야 한다. 투표는 회원이 소속된 사이트에서 이루어지며, 동일 그룹 서비스 내에 복수로 등록했더라도 한 명의 회원이 투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1표뿐이다. 다만, 다른 그룹에 회원으로 여럿 가입해 있다면 그 수만큼 투표권이 부여된다.
④ AKB48 공식 팬클럽 ‘니혼하시라회’ 회원
공식 팬클럽의 회원이 되면 1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연회비는 480엔, 입회비는 1000엔이다. 투표는 ‘니혼하시라회(二本柱の会)‘ 회원 사이트에서 한다. 또한 니혼하시라회의 ID는 등록 메일 주소를 바꿔 복수로 만들 수 있어 그 수만큼 투표가 가능하다.
⑤ 각 그룹의 DMM LIVE!! ON DEMAND 월액 회원
DMM LIVE!! ON DEMAND는 각 그룹의 극장 공연을 실시간으로 송신하는 서비스로 월 3066엔의 구독료를 지불해야 한다. 회원이 되면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투표는 각 회원 사이트에서 이루어진다.
⑥ AKB OFFICIAL NET 회원
AKB48 공식 인터넷 서비스로, 회비는 월 1480엔이다. 회원이 되면 AKB OFFICIAL NET 사이트에서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⑦ 총선거 당일 콘서트 입장객
총선거 주간에 개최되는 AKB48 그룹 콘서트에 참여하는 모든 입장객에게는 투표권 한 장이 부여된다.
누구나 총선거의 유권자 자격을 가지지만, 아무나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로 참여하려면 투표권이 필요하고, 그 권리는 지불한 금액에 비례해 차별적으로 주어진다. 즉, 팬은 구입한 CD 수만큼 투표권을 가질 수 있고, 각 그룹의 회원으로 복수 가입하거나 공식 팬클럽 회원으로 ID를 여러 개 가지면 그에 해당하는 수만큼 ‘1인 다표’(多票)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1인 다표는 총선거 시스템을 특징짓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총선거의 가장 대표적인 투표권이라면 역시 ‘CD에 든 투표권’이다. 논쟁과 비판이 가장 많이 집중된 투표권이기도 하다. 이 투표권은 팬이 구입한 수에 비례해 권리(투표)를 행사할 수 있어 여타 투표권과 사뭇 다른 성격을 지닌다. 주식(株式) 보유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株主)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싱글 음반 1장에는 투표권 1장이 들어 있는데 이를 활용해 1표를 행사하게 된다. 가령 투표권 100장을 확보했다면 무려 100회 투표할 수도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가 상위 16인에 들도록 몰표를 주기 위해 팬 한 명이 CD를 수백 장에서 수천 장을 사재기하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이유다.
실제로 팬들의 사재기는 AKB48 음반의 밀리언셀러 달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공략 대상도 10대 청소년이 아닌, 구매력을 가진 성인 남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총선거라는 형태의 이벤트는 인간의 경쟁 심리를 너무도 정확히 읽어 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똑같은 음반을 수십 혹은 수백 장씩 구매하게 만드는 AKB48의 판매 전략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총선거 투표권은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행위이자 빗나간 ‘AKB 상술’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음악 평론가 도미사와 잇세이(富澤一誠)는 총선거를 가리켜 “CD 불황 속에서 나온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특정의 팬 등 이른바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취하는’ 발상이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면 음악 이외의 요소로 순위 및 매출이 높아져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작품은 태어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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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투표권이라는 특전을 가지고 싶어서 한 명이 여러 장의 CD를 구입한 다음 곧바로 그 CD를 폐기하는 것은, 음악 애호가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그런 일들이 횡행하면 음반 시장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AKB 상술을 강하게 비난한다.
AKB 상술은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는다. 첫째, 총선거 결과가 인기 순위가 아닌 자금력 순위라는 비판이다. CD 1장에 투표권 하나라는 시스템하에서는 평소 인기가 높지 않은 멤버가 백만장자의 후원을 받으면 선발 1위로 등극해 센터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결국 특정 멤버의 인기가 아니라 팬들의 자금력이 어느 정도냐를 판가름하는 선거가 될 수 있다.
둘째, 음반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지적이다. 일부 광팬들은 총선거 투표권을 목적으로 음반을 대량 구매해 티켓만 빼내고 음반은 곧바로 중고 가게나 온라인 경매에 저가로 내놓아 가요 시장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셋째, 신인 아이돌 탄생을 저해한다. 대규모 인원을 멤버로 꾸려 시장을 독과점(獨寡占) 상태로 만들고, 팬의 규모가 한정된 가요계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이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이다.
로컬화와 라이벌 전략; AKB48의 미래
AKB48이 공들여 추진해 온 전략 가운데 근래 그 성과가 확연한 것이라면, 단연 로컬화 전략과 라이벌 전략을 꼽을 수 있다. 두 전략을 통해 AKB48 그룹의 미래상을 진단해 보자.
아키하바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AKB48을 시작으로 일본 현지에는 2008년 SKE48, NMB48, HKT48, NGT48, STU48 등의 자매 그룹이 존재한다. 각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AKB48 자매 그룹은 단순히 해당 지역 대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일본 전국적으로도 지명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해외 거점의 자매 그룹 결성을 추진하면서 글로벌화(globalization)에 경도되는 듯 보였던 그룹 전략이 예상을 뛰어넘어 로컬화(localization)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7년 선발 총선거에서 팬 투표로 선발된 멤버 16명의 재적 그룹을 집계해 보면, AKB48 소속이 4명, 나고야의 SKE48이 5명, 오사카의 NMB48이 2명, 후쿠오카의 HKT48이 2명, 니가타의 NGT48이 3명 등으로 일본 전국에 걸쳐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이는 로컬화 전략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로컬화 전략의 성공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주효했다. 첫째는 도쿄 아키하바라에 거점을 둔 AKB48의 인기 멤버를 지역 그룹으로 파견해 해당 지역 그룹을 활성화시키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해 총선거에서 24만 6376표를 얻어 1위로 선발된 사시하라 리노(指原莉乃)는 HKT48과 AKB48의 멤버를 겸임하고 있다. 둘째는 팬들의 소속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팬은 자기 지역 그룹을 적극 지지하게 되고, 그 그룹 멤버가 선발 멤버에 들어가길 간절히 응원한다. 그런 팬 의식을 최대한 활용해 다른 지역 그룹과 경쟁하게 함으로써 총투표수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무엇보다 총투표수 확대는 음반 판매 증가로, AKB48의 이익(매출)으로 직결된다.
이처럼 AKB48 그룹의 로컬화 전략은 체계적이면서도 치밀하다. 일본 현지에서 중앙 정부의 지방 자치 단체 부흥 전략보다 지역 활성화에 훨씬 더 공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AKB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초기의 총선거와 비교하면 근래 AKB48의 기세는 주춤한 듯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만까지만 해도 AKB48의 얼굴이었던 마에다 아쓰코(前田敦子)와 오시마 유코(大島優子)가 에이스 자리(센터 포지션)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하면서 AKB48 그룹을 국민적 아이돌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지난 2013년 이후 투표수에 조금씩 기복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행해진 총선거의 투표수 추이를 살펴보자. 2013년까지 꾸준히 상승했던 투표수는 2014년 주춤했다. 2015년 투표수는 다시 급증하지만 2016년에는 오히려 감소했고, 2017년은 다시 증가세를 이어갔다.
모든 제품은 수명 주기(Product Life Cycle·PLC)를 가지고 과정별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제품이 시장에 처음으로 투입되어 일반인들에게 인식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도입기), 어느 정도 보급되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매출액이 급속하게 증가한다(성장기). 그러나 영원히 성장만을 거듭할 것 같은 제품도 일정 시점부터 다수의 경쟁자가 출현하면서 수요는 포화 상태에 이른다(성숙기). 그리고 어느 순간 제품은 서서히 쇠락해 간다(쇠퇴기). AKB48 선발 총선거의 총득표수 추이에 이런 PLC의 개념을 대입해 보자.
AKB48가 결성된 직후인 2005~2010년을 도입기, 2010~2015년을 성장기, 그리고 2015년부터 현재는 성장이 멈추는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판단된다. 매년 투표수를 늘려 왔던 2015년까지와 비교해 2016년과 2017년의 최근 2년은 투표수의 증가율 둔화가 뚜렷하다.
성숙기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매출액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정점에 이르는 시기이다. 때문에 AKB48이 과거처럼 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성숙기에 필요한 전략은 특별 부양책을 강구해 정점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쇠퇴는 늦추는 전략이 최선책이다.
지난 1997년 일본에 데뷔한 ‘모닝구 무스메(モーニング娘。)’는 2000년대 전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중반부터 침체기에 빠지면서 PLC의 쇠퇴기로 모두가 판단하였다. 그러다 2011년 이후 돌연 부활하면서 현재까지 높은 인기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처럼 PLC에서 보여 주는 각 단계가 모두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얼마든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AKB48는 모닝구 무스메처럼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에 이르고, 자체적으로 다시 부활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 증거가 지난 2011년 데뷔한 노기자카(乃木坂)46이다. 노기자카46은 프로듀서 아키모토가 성숙기로 가던 인기 절정의 AKB48에 맞붙인 강력한 대항마다. 노기자카46의 46이라는 숫자는 AKB48보다 멤버수가 적을지언정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아키모토가 붙인 이름이다. AKB48의 공식 경쟁자(competitor)를 만들어낸 것이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아이돌 그룹을 새로 만들어 치열하게 경쟁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아키모토의 노림수는 ‘강한 경쟁자 덕분에 다른 것들의 활동 수준이 높아져 전체 분위기가 활성화된다’는 이른바 메기 효과(catfish effect)
[7]라 할 수 있다.
강력한 라이벌이 존재하면 기존의 시장 지배자(leader) AKB48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새로 등장한 라이벌(challenger) 역시 시장 지배자를 뛰어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어느 한쪽이 시장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라이벌도 쉽게 퇴색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프로듀서의 의도는 적중했다. 현재 AKB48 그룹의 자매 그룹인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欅坂)46 등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AKB48과 노기자카46의 경쟁은 오리콘 차트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7년 한해 오리콘 차트 싱글 순위를 보면, 1위에서 4위까지를 AKB48의 싱글이 차지했고, 이어 5위에서 7위까지를 노기자카46의 싱글이 차지하고 있다.
두 그룹의 관심도 경쟁도 치열하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AKB48의 관심도가 시장에서 차츰 감소하고 있는 반면, 노기자카46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 가다 2016년 무렵 AKB48을 앞질렀다. 노기자카46이 아직 AKB48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급속히 그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인스턴트 아이돌에서 간판 아이돌로
지난 2010년경부터 일본 현지에서는 AKB48의 인기에 편승해 그 이름을 모방한 ‘알파벳 약자+숫자’ 이름을 신제품이나 광고, 작품 등에 사용하는 오마주(hommage)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또한 AKB48 선발 총선거의 시스템을 모방하거나 타이틀에 ‘총선거’를 가져다 붙인 인기투표 기획도 줄을 이었다. AKB48의 성장 과정을 분석하면 일본 경제의 흐름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현상, 나아가 비즈니스 전략까지도 꿸 수 있다는 주장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경제학자 다나카 히데토미(田中秀臣)는 AKB48은 불황에도 강한 ‘디플레이션 문화’의 하나라고 주장하며, 디플레이션이라는 일본 경제 상황에 적응하고자 태어난 것이 바로 AKB48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베노믹스를 통한 일본 경제 회복에 발맞춰 디플레이션이 해소되고 인플레이션이 도래하면 AKB48의 인기는 후퇴 또는 종언을 맞을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조만간 일본은 디플레이션과의 오랜 싸움을 끝낼 것으로 보이는데 AKB48의 인기가 실제 하락세로 돌아설지 초미의 관심사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소비자의 식상함과 피로감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가장 큰 압력이자 두려움이다.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유지해 오면서 점차 대중에서 소수의 오타쿠 위주로 팬이 결집되고 있다는 시장의 따가운 지적은 AKB48 그룹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프로듀서 아키모토로 대표되는 기업 AKS는 시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 멤버를 수시로 교체하면서도 노기자카46 같은 전혀 다른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는 등 새로운 콘텐츠 창출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설령 AKB48 그룹 위상에 금이 가더라도 이를 대체할 아이돌 그룹을 이미 확보한 상황이라 당분간 AKS의 미래상이 크게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합작의 〈프로듀스48〉은 지금껏 시도된 적이 없는 대단히 흥미롭고 놀라운 기획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 60퍼센트를 차지하는 범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과 포용성을 함께 지닌 아시아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다. 한일 문화 교류 차원은 물론 양국에 걸친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s) 창출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끝으로 AKB48의 운영 시스템과 전략이 케이팝(K-pop)에 던지는 시사점은 이렇다. 우선 AKB48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세밀히 분석해 취사선택 과정을 거친 다음, 케이팝에 맞게 적용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대중의 취향이 끊임없이 다변화하고 새로운 아이돌이 줄지어 데뷔하는 가운데 단기간에 수명을 다하는 ‘인스턴트형 아이돌’이 아니라, 오랜 기간 정상을 유지하면서 케이팝을 이끌고 그 붐을 세계로 전파하는 ‘간판 및 장수(長壽)형 아이돌’ 육성 시스템과 전략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