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
12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미래 도시의 DNA

택시는 석유 대신 전기로 움직이고, 자율 주행 버스가 도심을 달린다. 자가용이 있어도 타는 일은 많지 않다. 차량 호출과 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현금도 필요 없다. 노점에서조차 모바일 결제가 통한다. 로봇이 음료를 만들고, 점원이 없는 무인 편의점이 늘고 있다. 미래 사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이 도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유럽의 어느 지역도 아닌 중국 선전이다.

40년 전 중국 변방의 어촌 마을이었던 선전은 세계의 제조 기지로 성장했고, 평범한 공업 도시에 머물지 않고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특화된 도시로 체질을 바꿨다. 선전의 제조 공장들은 스타트업을 위해 소량의 제품을 빠르게 제작해 준다.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라는 평가처럼, 제조업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역인 것이다. 선전으로 몰려드는 중국 전역과 세계의 메이커들은 도시의 내일을 더 빠른 속도로 앞당기고 있다.

선전은 중국 정부의 탄탄한 설계 아래 탄생한 계획도시다. 실제로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더 많다. 중국 정부는 선전에서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해 규제 개혁과 정책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누군가는 ‘정부가 만들어 낸 도시에서 배울 것이 뭐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지원 정책을 바람직한 성장 모델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중국에는 중국만의 답이 있고, 한국에는 한국만의 답이 있을 것이다. 선전의 방식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전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상상만 하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선전 시민에게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첨단 기술을 직접 경험하면서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있는 선전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선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하드웨어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계획도시라는 개발 방식에 있는 것도 아니다. 선전의 정체성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선전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비견되는 혁신 도시로 만든 것은 새로운 기술, 풍부한 자본과 인력 등의 물리적 조건만이 아니다.

선전의 혁신 뒤에는 변해야 한다는 의식,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적응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다. 도전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문을 열고, 시스템과 제도를 바꾸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일단 한번 해보라고 독려하는 문화가 있다. 선전은 지금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곽민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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