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전체 인구 중에서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사고 실험에 의한 예상치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2화 참조). 아동 접종 허가를 받은 백신은 아직 없다.
수많은 나라들에서 감염에 가장 취약한 소수 집단들은 정부와 의료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참상을 직접 목격한 돌봄 노동자들 중에서도 많게는 절반 정도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신규 변종을 고려했을 때 감염자 1명이 이 질병을 퍼뜨린 사람의 수가 평균 1명 미만이 되려면 전체 인구의 약 80퍼센트가 면역력을 가져야 한다. 이 지점이 에피데믹(epidemic, 대규모 전염병)이 가라앉는 한계선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무리한 주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각국 정부들은 코로나19를 엔데믹으로 다루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들은 현재 (코로나19를) 언젠가는 지나갈 비상사태로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엔데믹으로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빗장을 걸어 잠금으로써 코로나 청정국을 모색했던 뉴질랜드를 살펴보자. 뉴질랜드는 이런 식으로 공식 사망자 수를 25명이라는 낮은 수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처럼 가혹한 정책은 영구적인 방어책이 될 수 없다. 뉴질랜드는 북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에 취약한 뉴질랜드인들이 접종을 받게 된다면 이 나라에는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는 더 큰 압박을 받을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감염과 사망의 일상화를 용인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정부는 비상사태 조치에서 사회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갖춘 정책으로 언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계획해야 한다. 코로나 청정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던 나라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정책을 전환하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현재 백신이 더디게 접종되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 공산당은 코로나19의 모든 감염 사례를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이 질병이 널리 퍼지는 것을 서구 민주주의의 타락에 대한 징조로 규정해 왔다.
뉴 코로노멀(new coronormal)
코로나19와의 공생을 위한 조정은 의학에서 시작되고 있다. 변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백신을 수정하려는 연구는 이미 개시됐다. 널리 퍼지고 있는 변종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하고 촉진제 접종에 대한 규제 당국의 승인을 가속화되는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감염되더라도 사망하거나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더욱 많은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면역력을 획득하고, 변종에 적합한 촉진제 백신을 주기적으로 접종받으며, 코로나19가 웬만해서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련의 치료법들을 조합한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의료만으로는 코로나19의 치명적인 발병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부담은 대부분의 대유행병과 마찬가지로 비의료적인 행위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대가가 따르는 국가적인 봉쇄 조치나 수개월 간의 학교 폐쇄가 아니라, 개인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과 같은 습관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이나 혼잡한 장소에 대한 접근 금지 등은 의무 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은 경계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보건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겠지만, 제한적으로 보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지의 여행 산업에 대한 특별 기사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언제까지 억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무관용의 원칙을 폐기하기를 꺼리는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급성 감염이 지속되고 만성적으로 발병하면서 건강을 약하게 만드는 ‘만성 코로나(long covid)’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번 판데믹의 다음 단계가 암울할 것 같다는 의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완전히 잠재워지지는 않더라도, 지금은 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좋은 상황이다. 이 모든 공로는 의학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