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범지구적인 위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연적 기후 변화가 가장 빨리 진행된 시기는 2만 년 전 빙하기에서 1만 년 전 간빙기까지의 기간이다. 1만 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가 4도 상승했다. 반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진 최근에는 지구 평균 온도가 1도 올라가는 데에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극단적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2020년 한 해만 보아도 한국은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을 겪은 뒤 6월에는 때이른 더위로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7월과 8월에는 최장 기간 장마 기록을 갱신했다.[3] 적당히 더워야 할 날씨가 폭염으로 번지고, 미세 먼지는 순환되지 못해 눌러앉고, 겨울은 더 추워졌다. 한국에서는 작년 여름 폭염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구 평균 기온 단 1도가 오른 결과다. 한국의 평균 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1.7도 상승했다.
평균 기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극단의 위기 상황이 더 자주 찾아온다는 의미다. 기존의 자연재해가 더욱 강하게, 자주 일어나게 된다. 2020년 호주는 관측 이래 가장 가장 덥고 건조한 한 해를 보냈고, 이에 강풍까지 겹쳐 2019년에 시작한 산불이 6개월간 멈추지 않았다. 남한보다 더 큰 면적이 소실됐고, 약 3100개의 집이 불탔으며,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여럿 발생했다. 코로나로 국경이 닫힌 4월, 태평양의 바누아투와 솔로몬 제도에는 카테고리 5 규모의 열대성 사이클론 ‘헤럴드’가 발생했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주민들이 일구던 밭은 사라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국경 간 이동이 어려운 시점에 일어난 재해였기 때문에 구호 물품의 지원은 더뎠다. 이 지역은 2015년 사이클론 ‘팸’ 이후 재건을 겨우 이룬 곳으로, 5년 만에 같은 규모의 사이클론을 또 한 번 겪게 되었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는 연초에는 사이클론,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전체 국토의 4분의 1가량 이상이 물에 잠겼다. 100만 가구 이상이 손실됐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사망자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2019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자연재해는 1900개에 달했으며 약 25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0년도 이에 버금가는 수가 집계됐다.[4] 지난 20년간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재해는 더욱 강해졌고, 빈도수는 늘었으며 그에 따라 이재민의 수도 매년 증가했다.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205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제 이주의 위험에 놓인 인구가 10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5]
기후 위기의 얼굴
기후 위기의 재앙적 영향을 잘 보여 주는,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모습의 끝에는 기후 이주가 있다. 기후 이주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지만, 이는 약 30년 전 첫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기후 변화 보고서[6]가 발간되었을 때부터 예견된 미래였다. IPCC 보고서는 “기후 변화가 인류에 미칠 가장 심각한 영향은 인간의 이주이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해안 침식, 해안 침수, 극심한 가뭄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고, 인도양의 몰디브, 태평양의 투발루, 키리바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기록했다.[7] 1990년대의 예측처럼 투발루의 9개의 섬은 이미 거의 수몰됐으며 향후 50~100년 사이에 전 국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8] 몰디브는 2100년이면 약 80퍼센트의 국토가 사라질 전망이다.[9] 먼 미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 태어나는 세대가 실제로 맞이할 수 있는 미래다. 더불어 기후 이주는 태평양, 인도양, 카리브해 등의 도서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의 피해가 있는 곳에 이주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후 이주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주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기후 변화와 그와 연관된 다양한 환경 변화의 원인으로 이주하는 사람 또는 이주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 난민’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기후 난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에 관한 논란도 있다. 기후 위기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기존 난민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난민은 정부나 조직 등으로부터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으로 인해 박해를 받아 본국을 떠나 타국으로 피신한 사람[10]이다. 국경을 넘어 본국이 아닌 국가로 이동한 후에 난민 신청을 해야 하며, 제네바협약의 규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 협약의 기준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 난민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기후 변화 때문에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이를 정부나 조직에 의한 박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인종, 종교, 국적 등 난민의 정의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른 탄압의 원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기후 난민’이라고 하면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 침입해 와 불합리한 요구를 하면서 도착국에 부담을 안기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향도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시각을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난민협약에 동의한 약 140개 협약국들은 난민 협약을 보다 포괄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재협상을 원하지 않고 있다. 난민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바꾸면 보호 대상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난민의 거대한 물결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고, 기후 난민이라는 표현이 기후 변화의 피해에 관심을 촉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수몰 위기인 키리바시의 국민 이오아네 테이티오타(Ioane Teitiota)는 2013년에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 기후 난민으로서 보호 신청을 했다. 뉴질랜드 법원은 기후 난민은 1957년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기후 변화의 위험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 2020년에 유엔 인권위원회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11] 테이티오타의 진정에 기후 변화가 생명권(right to life)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기후 변화의 위험이 높은 국가로부터 제3국으로 피난 온 이를 강제 송환하면 안 된다고 권고한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판결은 구속력 없는 권고이지만, 기후 위기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의 급진적 또는 점진적 변화로 인해 국경을 넘는 이들이 증가할 것이며, 빠르면 10~15년 안에 기후 이주에 세계 사회가 대비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는 이처럼 기후 위기에 경각심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기후 난민으로 그려지는 모습은 기후 위기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에는 부적합하다.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학계와 유엔 내에서도 기후 난민은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는 ‘기후 이주’, 또는 더 포괄적인 ‘환경 이주’다. 이 글에서는 기후 변화가 주요 원인임을 강조하는 ‘기후 이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용어는 없지만, 유엔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IOM)는 2007년에 ‘환경 이주’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환경 이주자(environmental migrant)’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환경의 점진적 또는 급속한 변화가 주요한 이유가 되어 생명과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주거지를 강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떠나는 이들을 말한다.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이주, 국내 또는 국외로 이주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12]
적합성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이 정의는 의도적으로 포괄적으로 제시되었다. 우선 환경의 변화가 이주의 주요한 원인임을 강조한다. 기후 변화뿐 아니라 기후와 무관한 환경적 변화(화산 폭발, 지진 등), 인간의 활동과 개입으로 인한 환경적 변화(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삼림 벌채 등)를 모두 포괄한다. 또한 몇 시간, 며칠 사이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주해야 하는 이재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해수면 상승, 토양의 염분화와 같은 점진적 변화로 인해 이주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이주를 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한국의 경우 개발 과정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시골에서 도시로, 또는 해외로 이주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본래 경제적 요인은 이주의 가장 강력한 동기다.[13] 환경 변화가 이주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의미다. 기후 위기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해지는 환경 변화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서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을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야 할지 말이다. 이 선택은 강제성과 자발성 사이에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바닷가에서 내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