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이 민트도시기획 대표
2003년 포스코건설에 입사해 2년 만에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분양소장으로 임명됐다. 2010년부터 일본의 모리빌딩도시기획에서 근무했고, 2016년 국회 정책보좌관, 2018년 모리빌딩도시기획 서울지사장을 거쳤다. 현재 민트도시기획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아시아경제)
박희연 PD
14년 차 예능 PD다. 2014년 tvN 〈삼시세끼〉 정선편을 공동 연출하며 입봉했고, 2016년 〈아버지와 나〉를 단독 연출했다. 2017년 〈집밥 백선생〉, 2018년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로 음식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줬다. 2019년 〈커피프렌즈〉에 이어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즌 2를 연출했다.
엄윤미 씨프로그램 대표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 일했고, 헤드헌팅 회사 이곤젠더(Egon Zehnder) 서울 사무소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미션으로 하는 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C Program) 대표이자, 재단법인 카카오임팩트와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보영 애슬레타 크리에이티브 총괄
1995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띠어리, 슈에무라, 키엘,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의 크리에이티브 팀을 만들고 디렉터를 맡았다.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그룹 브랜드 전략 총괄 상무로 일하며 웨스틴조선호텔, SSG푸드마켓,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화장품 유통 기업 세포라에서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로 일했다. 구글 하드웨어 리테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쳤고, 현재 애슬레타에서 크리에이티브 총괄(Chief Creative Officer)로 일하고 있다.
정지선 셰프
중국 유학 후, 동네 중국집부터 특급 호텔까지 수많은 주방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3년 세계적인 식품 기업 네슬레(Nestlé)에 한국 최초 R&D 셰프로 입사했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 SB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등 예능 프로그램에 메인 셰프로 출연했다. 현재 레스토랑 ‘티엔미미’ 총괄 쉐프와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 특임 교수를 겸하고 있다.
일을 잘한다는 것; 스스로 기준을 세워라
정지선: 일을 잘한다는 건 일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전분을 풀고, 면을 헹궈 그릇에 담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스스로 만족의 기준을 세우고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 일을 잘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 때는 노력하는 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이다. 뷔페 아르바이트를 했던 10대 시절부터 돈 받은 만큼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덕분에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비결은 자기 만족감에서 비롯되는 빠릿빠릿함과 센스였던 것 같다.
(센스가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주방에서는 전체적인 상황과 동선을 계산하면서 다음 스텝을 염두에 두고 일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주방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초년병들에게 “이 일을 왜 하느냐”고 자주 묻는 편이다. 고기에 밑간을 하는 작업이 왜 필요한지, 칼질을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센스를 발휘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게 된다.
이보영: 개인이 일을 잘하는 것과 조직 차원에서 일이 잘되는 것은 다르다. 잘되는 조직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과 환경이 합쳐져야 한다. 일을 잘되게 하는 사람은 협업할 줄 알고, 사람을 파악하는 매니지먼트 능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과 맞춰 갈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강점과 타인의 강점이 맞물려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엄윤미: 일의 목적과 맥락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는 날과 마무리하는 날은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 빠르게 변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려면 일의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맥락을 안다는 것은 목표 달성을 위해 여러 사람이 협업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함께 일하는 이해관계자와 의사 결정자가 각기 어떤 고려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협업하려면 입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정해진 기간 내에 일을 매듭짓고 완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일은 정해진 시점에 결과물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박희연: 일을 하는 이유를 기준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 파트와 상의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하면 ‘전례가 없어서 힘들다’는 상대의 답변을 그대로 전달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해야 하는 질문은 “저희가 풀고 싶은 문제는 이건데,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요?” 같은 것이다. 다른 파트와 협업할 때는 서로의 분야를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가 많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이 부분이 왜 중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그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피드백이 오기도 한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강민이: 열심히, 바쁘게 일한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나의 경우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중점을 둔다. 시간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으니까. 일의 방향을 바르게 잡고 가능성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 효율적으로 움직여서 정해진 기간 내에 일을 완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일을 시작하면 매듭을 지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하고, 실행력을 발휘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라. 중요도를 잘 따지며 일하고, 성과까지 내면 가장 이상적이다.
좋은 조직을 찾는 기준; 성장하는 조직의 파도를 타라
엄윤미: 성장하고 있거나,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조직만이 주는 장점이 있다. 헤드헌팅 회사 이곤젠더에서 일할 때 20~30년의 경험을 가진 리더들로부터 커리어에서 중요했던 선택과 기회에 대해 들었다. 그때 얻은 깨달음은 개인의 역량만큼 ‘어떤 파도를 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개인이 얼마나 중요한 기회를 얻고 멀리 나갈 수 있는지가 속해 있는 산업과 시장, 조직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성장하고 있는 시장과 산업, 조직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도 중요한 역할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조직일수록 규모가 크거나 유명한 회사와는 거리가 멀고, 갖춰지지 않은 것들이 많을 수 있다. 만약 내가 성숙한 업계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야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런 조직 안에서 잘 정리된 체계를 배우며 성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실망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다.
이보영: 커리어는 조직이나 상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초심을 돌아봐야 한다. 여성이자 아시안, 싱글 맘,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일하다 보니 혼자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회사에 소속돼야 했다. 회사에 속해 있어도 내 커리어의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다. 나는 디자인과 브랜딩, 크리에이티브 리더로서 후배를 키우고 팀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 일을 구글에서 하든 세포라에서 하든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구글 직원이나 세포라 직원 같은 수식어는 회사가 나를 해고하면 사라진다. 반면 ‘디자인과 브랜딩을 잘하고, 크리에이티브 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누구도 내게서 뺏을 수 없다.
강민이: 내가 가고 싶은 조직이 앞으로 성장할 곳인지, 나아가 조직의 성장에 내가 기여할 여지가 많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좋은 리더는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리더,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리더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일할 당시 만난 상사가 기억에 남는다. 내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었다.
박희연: 좋은 리더는 후배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제작 능력이 뛰어나도 대인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과 일하면 지치기 쉽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각자에게 맞는 역할과 책임을 잘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든 각자가 느끼는 바가 생긴다.
정지선: 배움의 기회가 많은 곳,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해야 한다. 지금까지 열 군데의 식당을 거쳤는데, 커리어에 가장 보탬이 된 곳은 한 유명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일반 업장과는 사용하는 식재료의 종류와 단가 자체가 달랐다. 쉴 틈 없이 책을 보고, 조리법을 그대로 재현하던 사부님도 기억에 남는다. 이미 대가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요즘은 나도 자기 전에 30분은 꼭 책방에서 요리책을 본다. 고(古)조리서부터 신간까지 가리지 않고, 바이두(百度) 같은 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조리법을 검색하기도 한다. 몰랐던 정보나 재미있는 레시피는 반드시 단톡방에 올려 직원들과 공유한다. 성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자기 자신도 끊임없이 배우려는 사람이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인정받는 커뮤니케이션;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말하라
박희연: 예산, 편성 등의 문제로 협의할 때가 있다. 이상적인 안과 현실적인 안을 모두 만든다. 가장 좋은 안을 들고 협상에 나서되, 최소한 현실적인 안은 받아 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안 될 걸 알지만 시도가 중요할 때도 있다. 이번에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만들면 다음에 비슷한 논의를 할 때 유리해진다.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비슷한 논의를 할 때 보다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상황에 맞는 전략을 잘 세우기 위한 기본이 리서치다. 편성 시간을 두고 협의해야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조정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이 시간대에 인기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등 담당자가 고려할 만한 데이터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하는 것이다.
강민이: 남성은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여성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성도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어필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업무나 성과를 평소에 자주 공유하면 조직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상사와 차를 마실 때나 함께 이동할 때, 평소 하던 생각을 전하는 것도 좋다.
이보영: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나의 가치관에 맞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자신 있게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맡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쭈뼛거리고 있으면 기회는 사라진다. 작은 목소리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게 첫 스텝이 된다.
자기 능력을 100퍼센트 발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프로젝트 안에 있다면, 바꿔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온화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일했다. 미국 회사에서는 프로젝트에 얼마만큼 공헌했는지 합리적으로 평가했다. 그래도 내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저 월급이 모자랍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제 성과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엄윤미: 더 단호해도 된다. 이전 직장에서는 해마다 두 번씩 성장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1년 차 때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스피크 업(Speak Up)”이었다. 내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말하라는 거다. 나는 착한 여자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여자아이가 잘난 척한다는 평가를 듣지 않으려고 돌려서 말하고, 덜 나서는 기술을 익혔다. 리더가 되려면 적극적으로,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사회인이 되어서야 배웠다.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되게 하려고 여기에 왔다’는 말을 떠올린다.
정지선: 중식 주방의 핵심부는 재료를 손질하는 ‘칼 판’, 웍(wok)을 돌리는 ‘불 판’이다. 그 다음에 ‘면 판’, ‘디저트 판’이 이어진다. 주방 막내 시절에는 칼 판, 불 판은 꿈도 못 꾸고 ‘디저트 판’을 맡았다. 나보다 늦게 들어 온 남자 스태프가 힘이 더 세다는 이유로 먼저 면 판에 올라가고는 했다. 같은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다음은 내 차례가 될지 모르니까 기다려야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바로 웍을 돌리고 칼질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편견이 있는 조직과 부딪쳐 그들의 인식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봐달라고 남을 설득할 시간에 스스로 빛나는 길을 택해서 걷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성장을 확인하는 방법; 반복하면 잘하고, 잘하면 재미있다
강민이: 자신감에 일하는 재미까지 더해질 때 성장했다고 느낀다. 처음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무섭고 어렵다. 하지만 배우는 것은 분명히 있다. 여기서 재미를 느끼면 몰입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일이든 매일 하면 재미가 없다. 꾸준히 일하는 지구력을 키우려면 내가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배움이 주는 재미를 느끼면서 계속하다 보면 성장해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포스코건설에서 최연소 분양소장을 맡았을 때다. 나이도 어렸고, 책임자 역할이 버거웠다. 하지만 큰 미션을 일찌감치 달성하고 나니 다른 일이 무섭지 않은 효과도 있더라. 어려운 일을 맡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재미가 생긴다.
박희연: 후배들에게 프로그램 시작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우라고 한다.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것일 수도, 잘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편집 시사 때마다 최소 한 번은 사람들이 박장대소하게 만들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자신만의 성장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정지선: 성장을 확인하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 식당을 찾는 손님들 덕분에 지금에서야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전까지는 이루고 싶은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나를 증명할 방법을 찾아 분투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 강의에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요리 대회 출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수상을 하지 않더라도 작은 접시 하나를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공부하게 된다.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절박하게 기회를 잡아야 한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긴 호흡을 유지하며 최고치의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보영: 실수는 할 수 있다. 대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뼈아프게 노력해야 성장한다. 사람을 잘못 고용했든, 프로젝트가 망했든 나의 실수를 인정한다. 그다음 잘못된 이유를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성장하는 방법인 것 같다.
엄윤미: 일을 하는 시기와 환경에 따라 다른 목표를 세웠다. 막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을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 문서 작성하는 법, 이메일 쓰는 법,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법 등이 모두 배워야 할 일이었다. 그때는 팀이 잘되는 것이 중요했다.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성장의 목표도 분명하지 않은 시기였다. 팀 목표에 집중해서 뭐든지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돌아보면 이 경험이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이후 5년 동안은 회사의 체계와 동료들의 피드백을 가장 신뢰했다.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배웠고, 내가 승진하면 하게 될 일을 지금 맡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다양한 업무 스타일을 관찰했다.
지속하는 힘;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의 폭을 좁혀 나가라
이보영: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도 있다. 나는 요리를 잘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디자인은 좋아하는데 잘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생산성이 높고, 깊게 파고들 수 있다. 처음에 어떤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가 달라지고, 일하고 싶은 분야도 달라진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으면서 폭을 점점 좁혀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산성을 높인다. 그러면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엄윤미: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꾸준히 하는 근육이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에너지라는 자원을 의식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더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원하는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도 저절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일과에는 하기 싫고 재미없는 과제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하는 능력은 근육처럼 발달하는 것이라서 어느 시점에는 노력해서 키워야 한다.
정지선: 호텔에서 일할 때 결혼했다. 당시 기혼 여성 스태프 중 아이를 낳고 호텔 주방으로 복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출산 후 다시는 주방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살 길을 찾겠다고 마음먹고, 학원 강의, 자격증 수업, 창업반 수업을 맡으며 강사 커리어를 쌓았다. 임신 중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이직할 곳을 찾았다. 다행히 출산 후 두 달 만에 세계적인 식품 기업인 네슬레의 R&D 셰프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4년의 경력을 쌓고, 지금의 자리를 얻었다.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주방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이 정말 좋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방법을 찾아 끈질기게 매달려야 한다.
박희연: 좋아하는 마음이다.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도 있어야 하지만, 출연자도 좋아해야 한다. 어떨 때는 출연자 이름 옆에 하트를 그려서 편집실에 붙여 두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끼는 후배가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 즐거움을 더 크게 느낄 때가 온다. 이 시기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만두라”고 이야기했다.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1년 차 때는 누구나 힘들다. 몸이 힘들어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그만두겠다고 했던 후배들 모두 지금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성장했다.
강민이: 체력과 의지. 걷기와 헬스를 꾸준히 한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두뇌 회전도 느려진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성장의 동력; 인생은 길다, 여기가 끝은 아니다
이보영: 한동안 지쳐 있던 시기가 있었다. 커리어의 변곡점에 도달했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데에 3~4개월이 걸렸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움직였는데,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은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더라. 6개월 동안 힘들었다고 해도, 100살까지 산다면 전체 인생에서는 200분의 1이다. 1년이 힘들었다고 해도 100분의 1이다. 인생에서 지날 수 있는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인생을 넓은 시야로 보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강민이: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이다. 아주 큰 희열을 느끼지도 않지만, 아주 크게 좌절하지도 않는다. 그저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힘든 순간은 있다. 그럴 때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눈다. 예전에는 회사 동기나 선후배 등으로 관계가 한정적이었지만, 요즘은 소셜 미디어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지 않나.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면 힘을 얻기 어려운데, 관심사가 통하는 다른 분야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다. 가끔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정지선: 요리사도 슬럼프에 빠진다. 음식 맛이 제대로 안 나고, 재료를 봐도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모든 것을 멈추고 책을 보거나 요리 그림을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지쳤을 때는 일부러 영감을 주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회복이 되고, 그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한다. 나를 롤모델로 삼고 요리하는 친구들이 있고, 내 존재를 이슈화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지선 셰프 밑에서 더 많은 배움과 기회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책임감과 부담감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엄윤미: 동료들 덕분에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0대를 앞두고 있거나, 30대를 지나고 있다. 일하는 여성에게 30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많은 기회가 열려 있는 시기인지 알고 있다. 그 많은 기회들을 뒤로 하고 씨프로그램을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이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건강한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꾸준한 동력을 얻기 위해서도 좋은 동료가 필요하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위로받고 자극도 얻는다.
박희연: 나는 좀 무던한 편이라 쉽게 성장했다고 느꼈다. (웃음) 토크쇼를 하면 토크쇼가 재미있었고, 리얼리티쇼를 하면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했기 때문에 쇼 프로그램에서 조연출을 했을 때는 ‘메인 PD가 되면 무대를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음악을 넣는 일을 할 때는 편집이랑 음악이 찰떡같이 맞아서, 자막을 쓰는 일을 할 때는 ‘이 자막 진짜 웃기다’는 시청자 말 한마디에 성취감을 느꼈다.
일을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엄윤미: 20대 중후반에 가장 고민이 많았다. 뭐든지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에 잡히는 선택지는 많지 않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도 잘못된 선택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갈팡질팡했다. 다양한 길을 알아보고, 고민하는 것도 20대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됐던 것은 실제로 ‘했던’ 일들이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던 것,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일단 시험을 치고 지원서를 냈던 것, 관심 분야의 책을 읽었던 것, 프로보노(공익을 위한 자원 활동) 프로젝트에 지원하겠다고 손을 들었던 것이다. 작게라도 시작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는 된다.
정지선: 육아와 업무가 겹쳤을 때 가장 힘들었다. 아이가 아픈데 출장이 잡혔을 때, 밤새 응급실에서 간호하다 식당으로 출근했을 때,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둘 중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 힘든 것을 즐기자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일을 포기하는 동료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커리어를 잘 쌓겠다고 박사 과정까지 밟은 지인이 출산 후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지금 뭐하고 있냐고, 빨리 다시 나가서 일하라고 닦달할 것이다. 내게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길 바란다. 아이가 6살이 된 지금도 가장 힘든 직업은 엄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이겨 내면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박희연: 주니어 시절의 고민은 개인 생활은 거의 없이 일에만 시간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에너지는 고갈되고, 대인 관계도 좁아졌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이라서 극복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때까지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더 많은 연봉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 부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회사에 가는 게 행복할 것이다.
나는 이 회사에 좋은 선배가 있고, 끌어 주고 싶은 후배가 있다. 첫 프로그램 시청률이 저조해서 평가가 안 좋았다. 그랬더니 후배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없어지더라. 다음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후배들을 챙길 수 있는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에서 성과를 내는 것만큼 좋은 관계를 쌓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문제다.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강민이: 국회에서 일했을 때 두 아이가 각각 3살, 5살이었다. 국회 업무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갑자기 사건이 터질 수도 있고 생활 패턴도 불규칙하다. 당시 탄핵 정국 등으로 사건이 많던 시절이라 거의 집에 못 들어갔다. 아이에게 시간을 쏟을 수 없어서 힘들었다. 내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당시 내린 결론은 내게는 예측할 수 없는 업무가 맞지 않고, 내 일정과 업무량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국회를 나와 이 기준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찾았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생각해 보고, 조건에 맞는 일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커리어를 구상해야 한다.
이보영: 고민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20대의 고민, 30대의 고민, 40대의 고민이 달랐다. 50대를 바라보는 지금의 고민도 다르다. 20대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방황했다. 30대에는 선택의 폭이 줄었다. 대신 그 일을 잘 배우고 성장할 방법을 고민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는 개인적인 비전에 집중했던 셈이다. 40대가 되니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일이 잘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지난 25년 동안 그걸 해왔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민은 필요하다. 고민하는 사람이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