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그라운드 관리 분야 하나만 따져도 그 가치는 10억 파운드 이상이며,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잔디의 씨앗을 만드는 종자 애호가에서부터[2] 잔디를 더욱 푸른색으로 만들어주는 화학물질을 개발하는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2만7000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웨스트요크셔(West Yorkshire)에 있는 스포츠 잔디 연구소(Sports Turf Research Institute)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R&D 시설로, 이곳에서는 물이 다양한 유형의 모래층을 얼마나 빠르게 통과하는지부터 잔디 줄기의 촘촘한 정도가 골프공이 구르는데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영국과 겨룰만한 곳은 없다. 워릭셔(Warwickshire)에 있는 번하드앤드컴퍼니(Bernhard and Company)는 잔디 깎는 기계의 날을 위한 세계 최고의 연마 시스템을 만든다. 스태퍼드셔(Staffordshire)에 있는 알레트(Allett)와 더비셔(Derbyshire)에 있는 데니스(Dennis)는 최고급 잔디 깎기 및 관리 장비들을 공급한다. 데니스의 잔디 깎기 기계는 윔블던(Wimbledon)의 테니스 클럽에서부터 바르셀로나(FC Barcelona)의 캄프 누(Camp Nou) 경기장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의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 구장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스포츠 경기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콜더우드 역시 PSG에서 데니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영국에서 개발된 잔디 관리 기술은 테니스, 골프, 럭비는 물론이고 잔디 위에서 이뤄지는 모든 프로 스포츠 분야에서 적용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을 이끈 것은 막대한 자금력과 전 세계적인 팬들을 가진 축구였다. 물론 여느 구단이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그 성공의 주요한 요인이 자신들의 역할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그라운드 관리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수영선수들이 해수욕할 때나 입는 반바지를 착용하지 않고, 프로 사이클 선수들이 다리의 털을 깎는 것처럼, 최정상의 축구팀들은 승리와 패배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집착하게 된다. 2016년 펩 과르디올라(Pep Guardiola)가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잔디의 길이를 19mm로 깎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그가 이전에 이끌었던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Bayern Munich)에서 요구했던 것과 같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그라운드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23mm 길이로 깎는데 합의했는데, 잔디가 짧으면 좀 더 쉽게 닳을 수 있었고, 맨체스터의 추운 기후를 고려하자면 회복되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Jürgen Klopp) 감독은 2016/17 시즌이 끝난 후 그라운드 관리자에게 안필드(Anfield)의 그라운드가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이에 직원들은 그해 여름 내내 그라운드를 다시 조성했고, 리버풀은 다음 시즌 내내 홈구장에서 치르는 리그 경기에서는 무적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반 이후로 극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축구를 경기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우리는 아스널의 홈에서 언제나 최고의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했지만, 원정 구장의 조건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아르센 벵거(Arsène Wenger) 전임 감독이 이메일을 통해서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러한 개선은 경기의 퀄리티에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경기의 속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라운드의 퀄리티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선수들의 재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최정상의 클럽들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조건이다. 반면에 그라운드가 형편없다면 실력 차이를 줄이는 역할로 작용하는데, 최고의 팀들이 발휘하는 빠른 패스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축구에서는 고르지 못한 그라운드 조건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여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 2020)[3]는 대륙 전역의 11개 도시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이들 구장은 대부분 영국인들의 손을 거쳐서 관리되고 있다. UEFA는 모든 경기장에 “그라운드 전문가”를 파견해서 현지에 상주하는 그라운드 관리자와 함께 국제 대회의 수준에 맞게끔 운동장을 관리하게 만들고 있다. 아일랜드 사람인 리처드 헤이든과 그렉 웨이틀리(Greg Whately)를 제외하면, UEFA가 파견한 그라운드 전문가들은 모두 영국 출신이다. 준결승과 결승전이 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을 담당하는 그라운드 전문가는 데일 프리스(Dale Frith)이고, 그라운드 관리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회색 수염을 기른 36세의 잉글랜드 사람인 칼 스탠들리(Karl Standley)인데, 그는 최고의 잔디 권위자(Top Turf Influencer) 상을 포함해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웸블리에서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이 열리기 4주전에 대화를 나눈 스탠들리의 목소리에서는 마치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시험을 앞둔 우등생처럼 집중력과 함께 여유가 느껴졌다. 그렇다. 유로 2020 대회를 위해 만든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10억 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관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대회를 치르는 스타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대회를 위해서 이미 몇 년 동안 계획을 세워 왔습니다.” 최근에 스탠들리가 내게 해준 말이다. “우리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철저히 계획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그라운드 상태는 사실 오랫동안 끔찍한 수준이었다. 비라도 내리면 그곳은 진흙탕으로 변했다. 겨울의 추운 날씨가 되면, 그 진흙탕은 얼음판으로 변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그 얼음판은 다시 건조하고 먼지 날리는 흙구덩이로 변했다. “사람들이 웸블리 구장에 오는 걸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곳이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잔디로 조성된 그라운드였기 때문일 겁니다.” 콜더우드의 말이다.
그라운드 상태가 나쁘면 경기가 취소된다는 걸 의미했고, 이는 수익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부 구단들은 그 대안으로 인조잔디를 선택하기도 했다. 1981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Queens Park Rangers, QPR)가 옴니터프(OmniTurf)라는 인조잔디를 깔았다. 아스팔트 위에 얇은 층의 인조잔디를 덮어서 만든 이 새로운 그라운드의 표면은 너무 딱딱했던 나머지, 올덤 애슬레틱(Oldham Athletic)의 전임 감독이었던 조 로일(Joe Royle)은 골키퍼가 찬 공이 바닥에 맞고 너무 높이 튀는 바람에 상대편의 크로스바 위로 곧장 넘어간 적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QPR 팀이 이 새로운 잔디 위에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자, 몇몇 다른 구단들도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위 “플라스틱 그라운드”가 홈팀에게 불공정한 이점을 주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1995년에 이를 금지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라운드 관리 분야의 새로운 장이 이미 펼쳐지고 있었다.
현대 축구와 관련한 대부분의 스토리가 그런 것처럼, 전문적인 잔디 관리의 성장세 역시 텔레비전과 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1990년대에 당시만 해도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에 TV 중계권료가 쏟아져 들어오자[4], 리그에 속한 클럽들은 이적료와 선수들의 연봉에 더욱 많은 금액을 쓰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면서, 그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부상의 위험성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경기장의 표면을 뛰어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그라운드 관리자들이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갑자기 그라운드 관리자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아스널과 토트넘(Tottenham)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프랑스 니스(OGC Nice) 팀의 수석 그라운드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스콧 브룩스(Scott Brooks)의 말이다.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 외에도, TV를 통해서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고려해야만 했다. 프리미어 리그가 스스로를 멋진 글로벌 브랜드로 홍보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에서도 멋지게 보이는 상품이 되어야만 했다. 진흙탕이면서 이리저리 튀고 잔디는 듬성듬성한 경기장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방송사들도 “당구 테이블 같은 그라운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콜더우드는 말한다. 영국의 그라운드 관리자들을 대변하는 단체인 그라운드관리협회(Grounds Management Association)의 CEO인 제프 웹(Geoff Webb)의 말에 의하면, 일부 방송사들은 심지어 중계권 계약의 내용에 경기장이 매우 깔끔한 조건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라운드가 개선되면서, 축구 경기 그 자체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올드 트래퍼드의 구장이 그런 식으로 변화하면서, 이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지냈던 알렉스 퍼거슨 경(Sir Alex Ferguson)이 이메일을 통해서 내게 들려준 말이다. “그라운드의 표면이 항상 일정하고 뛰어난 조건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고, 특히나 볼을 빠르게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스티브 브래독, 잔디테크의 창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