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하버; 고대의 거품 소리
우리는 고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얼음으로 가득 찬 남극만(Antarctic bay)을 가로질러 출발했다. 그런데 처음 들은 소리는 예상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남극해 아래쪽에서 나는 혼란스러운 소리였는데, 마치 기후 위기 그 자체의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가 탄 소형 모터보트의 승객은 일곱 명이었다. 극지 가이드 한 명,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 저널리스트 두 명, 사진 촬영 담당자 한 명, 그리고 해양 음향학 전문가인 과학자 한 명이었다. 우리 주변으로는 들쑥날쑥한 흰색의 멋진 봉우리와 날카로운 푸른색의 빙하가 가득했다. 바다 위에는 부서진 얼음들이 별자리처럼 여기저기 듬성듬성 떠 있었다. 마치 하늘 크기만 한 거울이 깨져서 바다 표면에 산산이 흩뿌려진 것 같았다.
보트 조종사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선외기 모터를 껐고, 과학자인 팀 루이스(Tim Lewis)는 (긴 케이블에 방수 마이크를 단 장치인) 수중 청음기를 바다 밑으로 내렸다. 보트가 흔들리며 근처에 있는 교회만 한 크기의 빙산 몇 미터 옆까지 표류하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젠투펭귄 수십 마리가 물 안팎을 휙휙 들락거렸다. 저 멀리에서는 남극의 희미한 여름 태양 아래에서 산의 눈이 녹아 무너져 내리면서 일으키는 산사태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우리가 듣게 된 것은 소리라기보다는 바닷속 풍경이었다. 20미터 길이의 케이블을 전부 펼친 루이스는 털모자를 벗고 헤드폰을 끼고는 눈을 감은 채로 두 귀에 의지해서 바닷속으로 깊이 내려갔다. 우리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추정하려고 했다. 첫 번째 단서는 찌푸림이었다.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가?) 그다음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소리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협곡 사이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 같아요.”
우리는 돌아가면서 헤드폰을 받아 들었다. 모두가 비슷한 표정으로 집중해서 들었고, 기이한 소리에 대해 각자의 해석을 내놓았다. 활동가 한 명은 “배수구에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배를 조종하는 이는 “숲속의 폭포” 같다고, 카메라 담당은 “길거리의 빗소리”라고 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 역시 순간 이동을 했다. 바닷속이 아니라 거대한 동굴 안에서 높은 천장으로부터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텅 빈 공간 전체에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렸다.
“이건 빙하가 녹는 소리입니다.” 루이스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눈이 내리면 공기가 갇혀 에어 포켓(air pocket)이 생기고 몇 년, 몇 세기, 심지어 수천 년 동안 빙하 내부에 압력이 가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러분이 들은 건 공기가 방출되면서 터지는 소리예요.”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물이 공기 중을 가르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물을 가르며 탈출하는 소리였다. 우리는 얼음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 거품 소리는 놀라울 만큼 시끄러웠다. 우리 인간은 수면 위에서는 들을 수 없지만, 남극이 매년 여름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지구가 점차 뜨거워지면서 이 소리는 더 시끄러워지고 있다.
킹조지섬; 녹는 정도를 측정하기
2020년 1월 중순, 남극은 여름이 한창이었다. 과학자와 활동가들은 그린피스의 선박인 악틱 선라이즈(Arctic Sunrise)와 에스페란자(Esperanza)를 타고 장장 10개월에 걸쳐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탐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여정에 나도 잠시 합류했다. 남극반도(Antarctic Peninsula)와 사우스셰틀랜드 제도(South Shetland Islands)를 둘러보는 탐사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소재 대학에서 아홉 명의 연구진이 참여해서 인간의 활동이 어떻게 남극의 자연스러운 평형 상태를 교란하고 있는지 측정했다.
선원, 엔지니어, 활동가 등 59명에 달하는 승무원의 도움으로 과학자들은 음향 모니터링, 환경 유전자 샘플 채취, 플라스틱 초미세섬유(microfibre) 테스트, 식물성 플랑크톤 분석 등을 실시했다. 펭귄과 고래 개체 수에 대한 조사도 수행했다. 인류 최초의 탐험가들이 항해를 거듭하면서 해안선 지도를 그렸던 것처럼, 이번 탐사의 목적은 남극 생태계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번 탐사에서 우리가 찾아갔던 수역과 섬 중에는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곳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남아메리카의 최남단 지역인 케이프혼(Cape Horn)에서 남쪽으로 600마일(966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킹조지섬(King George’s Island)에서 악틱 선라이즈에 올랐다. 비행장 하나, 교회 두 곳, 10개국에서 온 약 500명에 이르는 반영구 거주자들의 연구 기지가 있는 이 다국적 공동체는 다른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다 협력 정신이 살아 있고, 목적 자체가 과학 연구이기 때문에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자주 등장했다. (절묘하게도 남극은 지구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마지막 대륙이었다.[1])
그러나 이곳도 전 지구적인 또 하나의 거대한 위기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기후 변화 말이다. 남극 탐험의 베테랑들은 이곳에 있으면 남극 지역의 온난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맛보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남극만 주변의 경사면에는 눈보다는 헐벗은 바위가 더 많았고, 돌이 가득한 해변에는 얼음이 전혀 없어서 이곳이 펭귄의 고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영국의 브라이튼 해변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손가락처럼 뻗어 나온 남극반도(Antarctic Peninsula)의 기온은 지난 70년 동안 섭씨 3도가량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상승 기록 중 하나다.
더욱 놀라운 건 이곳 만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선박의 숫자였다.
“사람들은 남극이 고립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신화에 불과해요.” 그 전날 푼타아레나스에 있는 칠레 국립남극연구소(National Antarctic Institute)를 방문했을 때 마르셀로 레페(Marcelo Leppe) 소장이 내게 해준 말이다. “변화가 너무 커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레페 소장은 이 지역을 연구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로, 방문객은 점점 더 늘어나고, 눈은 점점 더 줄어드는 광경을 목격해 왔다. “저는 빙하가 100미터 후퇴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일부 땅은 지나치게 녹화가 진행되어 거의 골프 코스처럼 보일 정도죠.”
지난 12월, 킹조지섬의 칠레 연구 기지에 있는 관측 장비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는 레페 소장을 더욱 우려스럽게 만들었다. 멀리 6200마일(9978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생성된 블랙 카본(black carbon)이 대기 중에서 검출된 것이다. 미세한 양이라고 해도, 이런 그을음은 흰색의 풍경을 검게 만들고, 햇빛을 반사하는 능력을 떨어뜨려서 눈과 얼음을 더 빨리 녹게 만든다. “그래도 최소한 미래의 지질학자들은 이 지역 얼음 속에서 검은색 층을 발견하면 2020년에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음울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그 외에도 미래의 지질학자들을 위한 단서들은 더 있다. 리에주대학교(University of Liège)에 따르면, 2019년 12월 24일은 기록이 시작된 이후로 남극의 얼음이 최악의 수준으로 녹았던 고통스러운 하루였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2월, 남극반도의 끝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기지는 대륙의 본토 기온으로는 최고인 섭씨 18.3도를 기록했다. 며칠 뒤, 시모어 섬(Seymour Island)에 있는 관측소는 대륙 최고 기온인 섭씨 20.75도를 기록했다. 바로 그날, 남극에 있는 이 섬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보다도 더웠다.
전 세계 민물의 거의 70퍼센트는 남극의 눈과 얼음에 갇혀 있다. 이게 모두 녹으면 해수면은 50미터 이상 상승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대부분의 인류 문명은 이미 물에 잠겼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정치인들은 위기에 대응하는 걸 꾸물거리는 사이에 관광 산업은 지금이 바로 고객들에게 우리가 알던 남극을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포착했다.
트리니티섬; 세상 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처음 이틀 동안, 주변이 고요한 가운데 우리는 바다의 풍경과 야생 동물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남쪽으로 항해했다. 면적이 미국과 멕시코를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이 대륙의 생물 종 수는 런던의 흔한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도 적다. 그러나 거주 생물의 다양성 부족을 숫자로 보완하고 있다.
킹조지섬으로부터 남쪽으로 150마일(24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트리니티섬(Trinity Island)을 처음으로 잠시 방문했을 때부터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재잘거리는 펭귄, 끙끙거리는 바다표범, 꽥꽥거리는 가마우지를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그곳과 우리의 다음 정착지인 파라다이스 하버(Paradise Harbour)에서 우리는 불과 나흘 동안 여섯 척의 거대한 크루즈를 목격했다. 거기선 소형 보트를 타고 고래를 구경하려는 사람들, 카약을 타고 모험을 즐기려는 휴가객, 그리고 붉은색 재킷을 입고 새의 배설물로 얼룩진 경사면을 따라 걸어 다니는 트래킹족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남극을 처음 발견한 지 200주년이 되는 2020년 남반구의 여름(북반구의 겨울) 기간에는, 8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남극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보다 거의 세 배나 증가한 수치다. 판데믹 이전에만 하더라도 조선업계는 극지방과 얼음에도 견딜 수 있는 크루즈 수요가 강세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호화 유람선 운영사들은 바닥 난방이 되는 데크의 “이글루” 시설, 수중 라운지, 관람 데크 확장 등을 통해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 관광 안내 책자가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생의 최전선”이라고 설명하는 이곳을 경험하기 위해 관광객들은 1만 달러에서 많게는 2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한다.
지나치게 우세한 우리 종에게 남극은 숭고한 존재 안에서 우리는 작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요즘처럼 연약하고 과중한 부담을 주는 조부모가 아니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잘 양육해 주는 어머니로서의 자연을 다시 느낄 기회인 것이다. 여행사는 관광객들에게 거의 버림받은 황량한 대지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스케줄을 조정하고, 크루즈의 선장들에게는 레이더를 확인해 주변의 다른 선박들이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고 지시한다. (우리의 극지 가이드인 톰 포맨(Tom Foreman)이 지적하듯, “500명의 사람들이 다른 거대한 쇳덩어리를 타고 근처를 지나가는 걸 보면 고독에 대한 기대감이 적잖이 망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사들이 고독이라는 환상을 조성하는 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이 있다면, 최소한 그 노력이 관광객의 과밀 현상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바이오보안(biosecurity)은 남극에서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씨앗, 균류,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남극 땅에 발을 내려놓기 전에는 반드시 신발을 소독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야생 동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동물들이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 한 펭귄으로부터는 5미터, 바다표범으로부터는 10미터, 고래로부터는 5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쓰레기를 버려서도 안 된다.
지난 5년 동안, 아스트리드 자피로(Astrid Zafiro)는 남극으로 가는 교통량이 증가하는 걸 봐왔다. 킹조지섬에서 남쪽으로 약 250마일(402킬로미터) 떨어진 파라다이스 하버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애드미럴 브라운(Admiral Brown) 기지의 소장인 그녀는 관광 산업의 성장세가 기온 상승으로 초래되는 변화만큼이나 가시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펭귄 서식지를 지나서 소형 연구 시설 뒤쪽에 있는 경사면을 따라 우리를 안내한 후, 자피로는 만의 건너편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누나탁(nunatak, 얼음 위로 솟아난 민둥산 봉우리)을 가리켰다. 근처의 대형 크루즈는 고무보트 위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조각난 빙하 덩어리가 바닷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게 우리 바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곳 만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고, 얼음은 부서지고 있어요.” 자피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자피로는 기후 변화 모델에는 드러나지 않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설명했다. 남극이 기후 위기로 위협받을수록, 남극이 녹기 전에 이곳을 보려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구의 끝인 남극까지 가려면 크루즈와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지구를 가열시키게 된다. 이렇듯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관광 산업은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2]이 된다.
악틱 선라이즈에는 카롤라 라케테(Carola Rackete)라는 독일 출신의 젊은 승무원이 있었다. 그녀는 내게 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Glenn Albrecht)가 제안한 개념인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에 대해 말해 주었다. 환경이 파괴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이르는 단어인데, 지금 이곳의 관광객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면서 그런 상실감을 미리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왔을 때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을 거라는 걸 아니까, 그걸 즐기려는 거예요. 사라질 거라는 예측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점이 가슴 아픕니다.” 라케테의 말이다. 솔라스탤지어와 남극은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는 파라다이스 하버에서 사흘을 보냈다. 매일 보트를 타고 나가서 샘플을 채취하고, 고래, 바다표범, 펭귄을 관찰하고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날 밤, 지금이 이 모든 걸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선뜻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산 위쪽으로 태양의 엷은 잔광이 희미해지자, 어스름한 만은 마치 잘 가공해 놓은 크롬처럼 매끈했다. 시간 자체가 얼어붙은 것 같았고, 나는 초창기 남극 탐험가 중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신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공간을 초월한 나의 사색이 중단되었다.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던 대형 크루즈에서 KC 앤드 더 선샤인 밴드(KC and the Sunshine Band)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실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 그 노래의 가사가 계속해서 귓전에 맴돌았다. “That’s the way, uh-huh uh-huh, I like it, uh-huh, uh-hu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