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믿음은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어긋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경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까?
1929년 미국 공화당 소속의 리드 스무트(Reed Smoot) 상원 재정위원장과 윌리스 홀리(Willis Hawley) 하원 세입위원장은 외국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공동 제안했다. 두 의원은 이 보호주의 법안이 미국 내 고용을 늘리고 평범한 미국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보호하리라 기대했다.
스무트-홀리법(Smoot-Hawley Tariff)[1]은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천 명이 넘는 학자와 전문가가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에 보호무역을 공언했던 후버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했고, 2만 개의 품목에 평균 40퍼센트의 세금이 부과됐다. 미국이 쌓아 올린 거대한 관세 장벽은 15년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됐다.
누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는가. 88년의 세월이 지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스무트-홀리법이 통과한 그 의회 건물 앞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자 리얼리티 TV쇼의 스타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듬성듬성 모인 군중 앞에서 “보호가 엄청난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과거에도 그랬듯 경제학자들은 경악했다. 2018년 3월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관세가 미국 경제에 이익이 되기보다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 전 영역에 걸친 확신이다. 적자 문제, 감세 문제, 규제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경제학자들도 자유무역의 이점에 대해서는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학문적 합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지식인 집단은 무시당했고, 트럼프는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먼저 중국을 겨냥해 중국산 로봇과 고속 철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2018년 6월 1일 마침내 선을 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 연합과 캐나다, 멕시코산 철강에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다. 전통적인 우방국에 심한 모욕감을 안긴 이 결정은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트럼프의 다음 목표는 수입 자동차다. 그다음은 또 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편 유럽 연합과 캐나다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인내심을 나약함으로 착각하리라는 것을 알고, 청바지부터 버번위스키에 이르기까지 미국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반격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 구입을 중단하면서, 트럼프의 핵심 지지 지역인 미 중부 농업 지대에 타격을 주고 있다. 1930년대에 벌어진 경제 보복과 경제적 고통, 대중의 분노, 신뢰 상실의 악순환이 과거 무역 전쟁의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세계 무역을 관장해 온 다자 체제가 전후 자유화와 개방의 견인차였던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의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교 우위
영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1817년 포르투갈 와인과 영국 옷감을 예로 들면서 ‘비교 우위’[2]라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주창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의 이론적 장점을 확신해 왔다.
리카도는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의 생산에 집중하고, 그 제품을 교역할 때 모든 국가의 생산성이 극대화된다고 주장했다. 이 아이디어의 혁명적인 지점은 ‘비교’라는 단어에 있다. 리카도는 모든 국가가 특정한 수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자원에 ― 비옥한 땅이든 값싼 노동력이든 기술적 자원이든 ― 집중하면 국가의 번영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모든 국가가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카도는 국가가 자체 생산이 가능한 것만 소비해야 한다는 자급(autarky) 이론과 한 국가의 수출이 곧 다른 국가의 손실을 의미한다는 중상주의의 신뢰성을 파괴했다.
실제로 경제사학자들은 자유무역의 장점에 대해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 1930년대 초 대공황 당시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실패 속에서 스무트-홀리법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추가 손실을 유발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호주의와 관세가 상황을 호전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상황을 놓고는 이런 견해가 더욱 힘을 얻는다. 폭격을 맞은 유럽 경제에 무상 원조를 제공하고 무역 장벽을 해체한 미국의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Wirtschaftswunder)’을, 프랑스가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을 맞이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동화되고 세계 수출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수억 명의 중국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식스 대학교의 앨런 윈터스(L. Alan Winters)는 세계 무역 체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중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세계 무역 체제는 전후 세계 경제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소득이 크게 늘었고, 역사상 최초로 세계 빈곤이 절대적으로 감소했다.”
경험 학습
그러나 무역 자유화가 번영의 절대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에도 이면은 있다. 모든 사례가 비교 우위 이론에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독일과 미국은 당시 초강대국이던 영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자국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 장벽을 세웠다.
캠브리지대 경제학자 장하준은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대부분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상당한 기간 동안 높은 수준의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했다고 지적한다.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그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채택했다면 상황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보호무역주의가 비스마르크(Bismarck, 독일의 첫 수상)의 독일이나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미국의 18대 대통령)가 이끄는 미국의 성장을 늦췄다고 판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전후 시대의 사례도 있다. 1960년대 한국의 산업 발전은 높은 관세 장벽 아래서 일어났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40년 동안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대외 경쟁에서 보호했다. 대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다시 말하지만, 보호무역주의가 이들 국가에 큰 피해를 입혔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세 국가의 성장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무역 장벽과 산업 보조금의 결합은 이러한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 잠재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이나 조선업을 보호하면서 키운 산업 역량은 다른 고부가 가치 기술 개발의 토대가 된다. 보호주의는 자국 경영자와 관료에게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완전히 개방된 무역의 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회다.
장하준의 지적에 따르면, 1950년대 한국의 명백한 ‘비교 우위’는 조선업이나 가전제품이 아닌 어업과 저급 가발 제작에 있었다. 60년 전 한국이 잘하는 일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의 삼성이 있을까? 일본에 도요타 자동차가 존재할까? 대만의 에이서(Acer, 세계 4위의 PC 제조사)는 또 어떨까?
물론 이런 교훈을 모든 저개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보호무역주의가 낭비와 부패로 이어진 개발도상국도 많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가 특정 조건하에서 수출 장려 등 다른 정책과 함께 실시될 때 경제 발전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가 있다.
사회적 거래가 깨지다
자유무역의 이면은 또 있다. 우리는 단지 경제적인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무역에 있어서 리카도식 효율성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생산 원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세계 시장에 철강을 덤핑했다. 중국의 철강 과잉 생산은 부유한 서구 국가의 제조 기업에게 더 저렴한 투입을 의미했고, 동시에 더 생산적인 산업과 더 높은 소득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철강 덤핑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철강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사회적 거래(social bargains)’가 약화되면, 국민은 합리적인 불만을 품게 된다.
기업의 해외 이전도 이와 비슷하다. 해외 생산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외국의 느슨한 보건과 안전 규정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공정성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정서를 위반하는 것이다(편집자 주: 대니 로드릭은 자유무역 만능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세계화로 인해 생산직 노동자 등 특정 계층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유무역주의라는 미명하에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등 보편적인 윤리 기준을 어기면서 부를 축적하는 세계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미국인 학살(American carnage)’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공장들은 하나씩 문을 닫고 이 땅을 떠났다. 남겨진 수백만 명의 미국 노동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열변을 토했을 때 바로 그런 사회 계약이 파기된 느낌이었다.
잘못된 교훈
그럼, 자유무역의 이런 맹점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은 과학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다. 경험 학습을 통한 개발 효과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경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회적 거래의 문제는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이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중국의 과잉 생산을 포함한 모든 덤핑에 맞서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정책 입안자들이 간과한 이 사각 지대가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은 세계무역기구(WTO·World Trade Organization)와 같은 다자 체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 경쟁은 전체 시스템을 위협하고 막대한 잠재적 경제 비용을 발생시킨다.
무역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는 불공정 덤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중상주의자들처럼 무역 수지 적자 규모를 미국이 외국에게 얼마나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긴다. 그래서 수입 전반을 막고 싶어 한다. 리카도가 무덤에서 탄식할 일이다.
다시 1929년으로 돌아가 보자. 기업가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후버 대통령에게 스무트-홀리법을 시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무역에 관한 한 현재 백악관 사람들은 포드가 남긴 많은 말 중 “역사는 엉터리다”라는 말만 떼서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