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탄생
1화

이재명 시장의 탄생

성남시장 이재명은 백궁·정자지구와 대장동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재명은 부동산에서 탄생했습니다. 2000년 5월이었습니다. 이재명 변호사는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을 저격합니다. 김병량 시장이 성남시 백궁·정자지구에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도록 용도 변경을 해준 것을 문제 삼고 나선 겁니다. 당시 이재명 변호사는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이었습니다. 부동산 이슈보단 노동 이슈에 천착해 온 지역 인권 변호사였습니다. 이재명 변호사는 우연히 백궁·정자지구에 관해 듣게 됩니다. 이재명 변호사의 셋째 형인 이재선 회계사의 도움이 있었죠. 이재선 회계사와 이재명 변호사는 1998년 무렵부터 함께 성남 지역에서 시민 모임을 이끌어 왔습니다. 김병량 성남시장은 원래는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는 상업 지구의 용도를 변경해 줬습니다. 상가 분양보다 아파트 분양이 훨씬 부가가치가 큽니다. 돈이 되죠. 지금은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사건으로 불립니다.

당시엔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무명 변호사의 현직 시장 저격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아무도 지역 무명 인권 변호사의 주장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김병량 시장은 현직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완주 출신으로 관선 이리시장과 군산시장 그리고 관선 성남시장까지 내리 지낸 지역 토호였죠. 중앙 정계부터 지역 경제까지 꽉 틀어쥐고 있는 김병량 시장한텐 변호사 이재명은 상대가 안 됐습니다.

사건은 2년 뒤인 2002년 5월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으로 불리는 이야기입니다. 김병량 시장은 끝내 백궁·정자지구의 용도 변경을 해줬습니다. 1999년 백궁·정자지구의 땅 3만 9000평을 매입했던 홍원표 에이치원 회장은 대박이 났죠. 지체 없이 이 자리에 파크뷰 아파트를 지어 올렸습니다. 탄천을 끼고 청계산과 광교산이 바라보이는 위치라 파크뷰라고 이름 붙어졌죠. 1830세대나 되는 큰 단지입니다. 그런데도 최소 30평대에서 최대 90평대까지 중대형 평수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류층용 주상복합입니다. 요즘이야 중소형 아파트가 더 돈이 됩니다. 2인 가구 시대니까요. 문제의 대장동도 중소형 아파트 위주입니다. 20여 년 전엔 중대형 아파트가 더 인기였습니다. 4인 가구 시대였으니까요. 무려 10만 명이 분양 신청을 했죠.

너무 인기라 문제가 됐습니다. 분양 과정의 불공정이 사회적 이슈가 된 거죠. 홍원표 에이치원 회장은 파크뷰 분양권을 판사와 검사와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 130명한테 특혜 분양해 줬습니다. 용도 변경 과정에서 힘을 써준 관련자들에 대한 보상이었죠. 사실 에이치원의 자본금은 3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당초 쇼핑센터 부지였던 백궁·정자지구의 땅을 사들일 돈도 개발할 돈도 없는 회사였죠. 헐값에 상업용지를 사들이고 용도 변경을 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 한국토지공사 사장과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윤기 장관이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었죠. 이런 의혹은 2002년 5월 3일 김은성 국정원 전 차장의 폭로로 국민한테 알려지게 됩니다. 3기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이재명 변호사의 탄생 

이재명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성남시민단체의 주장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국민들은 법조계와 언론계 그리고 중앙 정권과 지방 정부까지 얽히고설킨 토건 비리에 분노했습니다. 특히 특혜 분양에 분노했습니다. 정작 이재명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은 특혜 분양이 아니라 용도 변경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합니다. 용도 변경을 해준 몸통 김병량 시장을 저격한 겁니다. 특혜 분양은 깃털 홍원표 에이치원 회장만 겨냥합니다. 이런 대형 비리 사건 수사에선 종종 깃털만 조사 받고 몸통은 빠져 나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국민은 언론이 경마장식으로 쏟아내는 파편화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이야기의 맥락과 인물의 실체를 놓치게 됩니다. 

급기야 이재명 변호사는 2002년 5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병량 시장의 통화 녹취를 공개합니다. “1998년 성남시장 선거 때 홍 사장이 직원들한테 휴가를 보내서라도 나를 지원하겠다고 한 건 사실입니다. 직원들이 나가 홍보한 거지요. 아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지지하라고.” 여기서 홍 사장은 에이치원의 홍원표 회장입니다. 김병량 시장은 199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성남시장이 됐습니다. 한 마디로 김병량 시장과 홍원표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유착 관계였던 겁니다. 지역 부동산 개발권과 지자체 권력 사이의 전형적인 커넥션이었죠. 이재명 변호사는 이 검은 커넥션을 파고들었던 겁니다.

통쾌한 카운터펀치였지만 이재명 변호사한테도 데미지가 상당했습니다. 김병량 시장의 통화 녹취는 KBS 〈추적60분〉 PD가 검사를 사칭해서 얻어낸 내용이었습니다. 통화 현장엔 이재명 변호사도 있었죠. KBS PD와 이재명 변호사는 공무원 자격 사칭으로 250만 원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이재명 변호사는 KBS PD에게 검사를 사칭하도록 유도하고 질문 내용을 미리 알려준 혐의를 받았죠. 이것이 지금까지도 이재명 후보한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공무원 사칭죄의 내막입니다.

이 사건은 대장동과도 연결됩니다. 대장동 의혹을 최초 보도한 미디어는 《조선일보》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해당 보도를 한 《조선일보》 기자와 더불어 취재원인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기자뿐만이 아니라 취재원까지 고발하는 건 이례적입니다. 이충상 교수는 2002년 11월 13일 이재명 변호사에게 공무원자격 사칭으로 1심에서 유죄를 내린 담당 판사입니다. 

대장동과 연결되는 건 또 있습니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은 수원지검 특수부에 배당됩니다. 당시 부장검사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은 대장동 사건의 중심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5년 근무하고 퇴직금 50억 원을 받았습니다. 곽상도 의원은 대장동 사건의 몸통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라고 주장하고 있죠. 당시 곽상도 부장검사가 지휘하는 수원지검 특수부는 현직 대통령의 측근 김병량 성남시장을 수배하고 민주당 소속 임창렬 경기지사의 부인까지 구속합니다. 칼바람이었죠. 덕분에 2002년 5월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의 당색이 바뀝니다.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이 등장했죠. 호화 시청사를 만들고 성남시를 부채의 늪에 빠뜨린 장본인입니다.

결과론이지만 성남시 지방 정권 교체는 이제는 대장동으로 악연이 돼버린 곽상도 검사와 이재명 변호사의 합작품인 셈입니다. 김병량 현직 성남시장을 낙선시킨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은 당시 38세의 이재명 변호사가 지역 정치와 중앙 정치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2002년의 분당 파크뷰 사건은 2021년의 대장동 사건과 닮아 있습니다. 몸통과 깃털로 나뉘는 등장인물들마저도 일부분 겹치죠. 이재명의 탄생엔 분명 부동산이 있습니다.


이재명 시장 후보의 탄생 

2003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은 이재명 후보가 스스로 정치인 이재명의 오리진으로 꼽는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월 26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차담회를 가졌습니다. 지난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보름 만이었죠.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이재명보단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 이낙연을 염두에 뒀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당심은 이낙연보단 이재명이었죠.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집권당 대선후보로서 집권당 대통령의 지지를 공인 받는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정치적 통과의례였습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여전히 40퍼센트에 육박하니까요.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청와대 일정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성남으로 이동합니다. 성남시의료원을 방문합니다.

성남시의료원은 이재명 정치가 내세우는 상징입니다. 부동산이 상징이 아니죠. 성남시엔 원래 성남병원과 인하병원이 있었습니다. 2003년 2곳 모두 한달새 줄폐업합니다. 이재명 변호사는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대표를 맡습니다. 1년 동안 성남시민 1만 8595명의 서명을 받습니다. 사실 성남시 전체적으론 종합병원이 적지 않습니다. 모두가 남쪽 분당구에 몰려 있어서 문제입니다. 분당구엔 분당서울대병원과 차병원과 제생병원까지 5개 3차 의료기관이 자리해 있습니다. 반면에 북쪽 수정구와 중원구엔 없습니다. 2020년 3월 성남시의료원이 개원하기 전까진 하나도 없었습니다. 중원구와 수정구는 성남의 구시가지입니다. 고층 고급 아파트와 벤처 기업 본사가 즐비한 분당구와 달리 중원구와 수정구는 척박합니다. 굴뚝 산업 공장들과 다세대 주택 주거지들이 밀집해 있죠. 이재명 후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살았던 성남시 상대원동이 대표적입니다. 척박한 중원구에서도 가난한 변두리가 상대원동입니다. 고향 경북 안동을 떠나온 이재명 후보는 상대원동에서 소년공으로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목걸이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공공의료에 천착하는 건 소년공 시절 당한 사고와도 연결됩니다. 소년공 이재명은 두 번의 산업재해를 당했습니다. 첫 번째 산재는 동마고무에서 입었습니다. 벨트 속으로 손가락이 밀려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산재는 더 심각했습니다. 야구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가죽을 재단하는 프레스공으로 일하다가 손목이 프레스에 눌리고 말았죠. 이 사고로 손목뼈가 부러졌지만 병원에 가지 못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부러진 뼈와 성한 뼈의 성장이 어긋나면서 팔이 휘어지고 말았죠.

병원에서 엑스레이만 찍어봤어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병원이 있었을리 없었죠. 있었다 해도 소년공 이재명한텐 돈이 없었습니다.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파는 쓰레기 장사를 했던 소년공 이재명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스스로 벌어서 팔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통증은 팔이 자랄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생활고와 통증을 견디다 못해 2차례나 자살을 시도하죠. 한번은 매형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다른 한번은 자살 낌새를 눈치 챈 약사가 수면제 대신 소화제를 팔아서 살아납니다. 이재명 후보에게 공공의료원은 숫자가 아니라 목숨의 문제였던 겁니다.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재명 후보의 큰 형도 산업재해로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대표를 맡아서 1년 동안 매달린 이유였죠.

성남시의회는 2004년 3월 주민발의조례안을 47초 만에 부결시킵니다. 적자 비용을 우려했다거나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토론조차 없었으니까요. 한 마디로 이재명이라는 무명 변호사가 대표하는 척박한 중원구 주민들의 복지에 대한 요구는 무시해도 좋았던 겁니다. 이재명 변호사를 비롯한 운동본부 대표들은 분노합니다. 특히 이재명 변호사는 울분을 터뜨리다가 본회의장에 난입합니다. 성남시의원들을 붙잡고 항의를 하죠. 더운 날에도 긴 팔만 입어야 했던 소년공 이재명의 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재명 변호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수배자가 됩니다.

2004년 3월 28일이었습니다. 이재명 변호사는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수배자 이재명은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스스로 성남시장이 돼서 성남시립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결심이었죠. 성남시의료원은 이재명 후보가 정치인이 된 이유입니다. 단지 공공의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남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은 도시입니다. 북부 중원구와 남부 분당구 사이의 격차는 어마어마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중원구 주민 5명 가운데 1명이 건강보험 하위 20퍼센트에 속합니다. 분당구는 10명 중 1명이 안 됩니다. 독거노인 비율도 중원구는 20퍼센트고 분당구는 10퍼센트입니다. 장애인 비율도 중원구가 분당구의 2배에 달합니다. 병원이 필요한 시민은 중원구에 더 많지만 병원은 분당구에 더 많습니다. 정말 공공의료원이라도 짓지 않으면 중원구는 의료공백에 놓일 수밖에 없죠. 소년공 이재명이 또 생겨나는 겁니다. 이재명 정치의 한 축인 복지 정책엔 소년공 이재명이 있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탄생 

정작 이재명 후보의 정치 입문은 패배의 연속이었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성남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현직 이대엽 시장한테 더블스코어로 대패했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쇠퇴와 한나라당의 약진이었지만 이재명 후보 자신한테도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표는 얻었지만 지역 토호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죠. 지방선거는 지역 개발권 쟁탈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성남시처럼 개발도상시라면 어마어마한 이권이 달려있죠. 이재명 후보가 내세웠던 성남시의료원 공약은 주민 복지와는 상관 있지만 지역 이권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이걸로 선거를 치르면 백전백패였죠. 

이 무렵 이재명 변호사는 조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이재명 지사 큰 누나의 아들이죠. 이재명 지사가 소년공 시절에 쓴 일기장을 모아 펴낸 책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를 보면 큰 누나와 매형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나옵니다.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하려던 소년공 이재명을 구해주고 일하던 오리엔트 시계 공장으로 데려다준 매형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냅니다. 오리엔트 시계 공장은 이재명 후보가 2017년 첫 번째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곳입니다. 이재명 지사의 조카는 2006년 5월 7일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어머니를 찾아가 칼로 난자해 살해했습니다. 전 여자친구를 19번 찔렀습니다. 엄마를 18번 찔렀습니다. 아빠는 베란다 바깥으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당시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동구 모녀 살인 사건입니다. 삼촌 이재명은 2006년 조카의 1심과 2심 변호를 맡습니다. 조카의 심신미약을 주장합니다. 조카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성남시의료원을 설립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이대엽 시장과 성남시장 자리를 놓고 다투던 때와 같은 해 비슷한 시기입니다. 

이대엽 시장은 지역 토건 세력과 밀착돼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역 여기저기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많았죠. 반면에 전임 시장의 부동산 개발 비리를 파헤쳤던 이재명 후보는 지역에선 환영 받기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액션 배우 출신 이대엽 시장의 할리웃 액션 행정이었습니다. 결국 성남시청마저 토건 세력한테 내줍니다. 무려 3200억 원을 들여서 성남시청을 다시 짓습니다. 3200억 원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지는 볼 것도 없었죠. 그렇게 지어진 호화 청사의 시장실은 초등학교 교실 4개를 합친 것보다 컸습니다. 이대엽 시장의 토건 액션은 성남시청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2009년 백지화됐던 대장동 개발을 다시 꺼내듭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를 호재로 대장동 카드를 고른 겁니다.

대장동은 오히려 패자부활전을 준비하던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한테 기회가 됩니다. 이대엽 시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한테 대장동 개발 권한을 넘깁니다. 대장동을 공공개발하겠단 얘기였죠. 이게 화근이었죠. 사실 LH는 대장동과 악연이 있었습니다. 2005년 9월에도 한국판 비벌리힐즈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대장동 개발에 나섰죠. 개발 정보가 유출되면서 직원들이 쇠고랑을 찼습니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되면서 대장동엔 개발차익을 노린 다세대주택만 즐비해졌습니다. 이른바 땅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대엽 사장이 다시 LH를 끌어들이면서 대장동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겁니다. 민간 땅작업자들와 공공 LH 사이에서 대장동을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죠. 대장동은 척 보면 금싸라기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땅입니다. 개발이 불가한 중원동 구시가지나 개발이 완료된 분당구 신시가지와도 달랐습니다. 민간 개발업자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공공개발이 필요했죠. 대장동을 택지로 개발하려면 전기도 놓고 가스도 놓고 도로도 놓고 터널도 뚫어야 합니다. 전부 세금이죠. 그런데도 개발이익은 고스란히 민간 개발업자들한텐 상납한다면 그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토건민국입니다. 애당초 2005년에 LH의 대장동 비벌리힐즈 프로젝트가 유출된 게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공공개발의 공정성이 훼손되면서 대장동은 투기 분쟁 지역화됐습니다.

대장동을 놓고 벌어진 땅작업꾼들과 LH의 오징어 게임을 결판낸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7일 이명박 대통령은 “LH가 민간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사실상 LH는 대장동에서 손을 떼라는 말이었죠. 사실상 청와대가 지역 택지 개발 사업에 개입한 꼴이었죠.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도 대장동 공공개발을 반대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성남시 수성구가 지역구인 신영수 의원이 주도했죠.

신영수 전 의원은 지금 대장동의 몸통은 이재명 후보라고 공격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LH가 대장동에서 완전히 손을 뗀건 2010년 7월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구두 개입이 있고 1년쯤 뒤였죠. 반대로 이재명 캠프는 그 1년 동안 LH를 수술한 장본인이 신영수 의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영수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현대건설 출신입니다. 나중에 신영수 의원의 동생이 민간 개발업자들한테 2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실제로 동생의 판결문엔 이렇게 적시돼 있습니다. “신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이지송 LH 사장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면담하는 등 LH공사가 대장동 사업에 자진 철수하는 데 있어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9년과 2010년 대장동을 둘러싼 성남 지역 정치의 구도는 한 마디로 재주는 곰이 넘고 표는 이서방이 얻은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로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됩니다. 이재명 후보로선 재수 끝에 당선이었죠. 이재명 후보는 2006년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성남시장에 출마했지만 현직 이대엽 시장한테 패했습니다. 전임 김병량 시장을 낙마시킨 건 이재명 변호사였지만 성남시장 자리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이대엽 시장한테 넘어갔었죠. 이재명 후보는 사법 시험도 한번 낙방하고 재도전 끝에 붙었습니다. 이번 대선도 재수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 재수에 성공한 요인엔 대장동이 있었습니다. 2010년 선거 때의 이재명 후보는 2006년 선거 때의 이재명 후보와 달랐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2008년엔 제2의 고향인 성남시 중원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대신 성남의 강남인 분당구 갑에 공천 받았지만 당연히 낙선했죠. 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이재명 후보는 성남 지역 정치를 움직이는 원리를 깨우쳤던 셈입니다. 더 이상 교회 지하실에서 울분을 삼키는 힘 없는 노동 변호사가 아니었죠.

이재명 후보는 2010년 선거에서 대장동이라는 기회를 적극 활용합니다. 2009년 이대엽 시장은 LH를 끌어들여 대장동을 개발하려다가 역풍을 맞았죠. 지역 주민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눈 밖에 났습니다. 결정타는 성남시 호화 청사였죠. 그런 이대엽 시장이 주장하는 대장동 공공개발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그 반대편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 그리고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이대엽 시장과는 반대로 대장동 민영 개발을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주민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어냈죠. 정작 정치적 수혜는 이재명 후보가 독차지했습니다. 신영수 의원이 중앙 정치에서 대장동 민영 개발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어간 건 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였으니까요. 당시 대장동 민간개발을 추진했던 관계자들은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민간 개발을 약속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대엽 시장을 상대로 한 주민 집회에도 찾아와서 지지 의사를 피력했었다고도 주장합니다. 이 무렵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성난 성남 민심을 이재명 후보한테 전해준 창구 가운데 하나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입니다. 지금은 이른바 대장동 4인방으로 검찰에 구속기소된 상태죠. 당시엔 성남시의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자였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보 진영입니다. 대장동 민간 개발은 진보적 논리가 아니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의료원으로 선거 운동을 했습니다. 성남시 전체의 세금으로 중원구민만 혜택을 보는 정책으로 성남시장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미 중원구 진보표는 확보했죠. 그렇다면 대장동 개발 같은 보수 정책을 활용해서 성남시 남쪽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죠. 

급진적 진보 정책으로 핵심 진보층의 골수 지지자를 확보한다. 실용주의 노선을 명분으로 보수 정책을 차용해서 중도 지지층을 확장한다. 이것이 진보적 사이다 발언과 중도적 실용주의 노선이라는 이재명 정치 전략의 뼈대입니다. 2021년 여당 대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선거 전략이죠.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11월 2일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에서 1호 공약으로 전환적 공정 성장을 내세웠습니다. 성장을 선점한 것이죠. 이재명을 상징하는 기본 소득을 앞세울 거란 예상을 깼습니다. 기본 소득 지지층은 이미 집토끼입니다. 따지고 보면 성남시장 선거에서부터 다듬어진 이재명식 중도 확장 전략의 연장입니다. 시작은 대장동이었습니다.
프라임 레터 〈이재명의 탄생〉 2화는 〈이재명 지사의 탄생〉입니다.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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