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면서
어렸을 때 동네 언니들과 집 근처 약수터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저녁 어스름할 무렵 약수터에 도착하면 꽁지에 초록 불을 달고 유영하듯 떠다니는 반딧불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내가 무럭무럭 자라 학교에 다니고 취업을 해서 집과 회사를 바쁘게 오가는 동안 반딧불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알고 보니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곤충이었고 오염되는 환경 속에 하나둘 사라져 간 것이다. 현재는 전라북도 무주에 있는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반딧불이만 그럴까.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던 동식물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생물 다양성의 파괴부터 각종 바이러스의 창궐에 기후 재난까지…. 환경 관련 뉴스가 매일 쏟아지지만, 그 심각성은 금세 잊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환경보다는 경제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나는 환경문제가 해결되려면 이 경제의 논리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한 해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코로나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평가지수일 것이다. 2020년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앞으로 환경보호, 사회공헌, 지배구조 건전성을 충족하는 기업에만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블랙록은 우리나라의 대기업에도 서한을 보내서 기업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해 4월에는 한전에 “석탄 투자는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계획”이라며 지분 매각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국전력이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석탄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 연관됐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공적 연금이 작년 2월 6000만 유로의 한전 지분을 매각하고
투자를 회수하기도 했다. 갈 길이 멀지만, 거대 자금의 움직임으로 국내기업에도 ESG 관련 팀이 생기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구에 사는 개개인들까지 바뀌려면 친환경 활동을 하는 다수의 사람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온다면 빠르게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불편을 선택했을 때 더 부유해지고 즉각적으로 얻는 이득이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무개가 쓰레기 덜 배출해서 수억을 벌었대 하는 소문이 돌면 분명 많은 사람이 움직일 것 같다.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친환경 노하우를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전략적으로 공부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왔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에코마일리지’ 제도를 통해서 에너지를 적게 쓴 세대에게 분기별로 세금을 돌려주고 있지만 큰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정책 담당자님, 전기 아껴서 쏠쏠하게 돈 좀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전기를 아낀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