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누구인가
2020년 12월 기준, 한국에는 203만 6075명의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전체 인구 5183만 명(2020년 11월 1일
기준)의 약 3.9퍼센트에 해당한다. 이 숫자는 코로나19로 2021년 4월 기준, 199만 228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의 비자는 이 글의 주 논의 대상인 비전문 취업, 방문취업, 결혼 이민 비자부터 환승 목적 3일 체류 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체류 자격별 현황은 다음 그래프와 같다. 1위를 차지한 재외 동포(22.9퍼센트)와 3위를 차지한 방문취업(7.6퍼센트)은 둘 다 외국 국적 동포를 대상으로 한 비자이다. 따라서 통계에 외국인으로 집계된 인구 중 다수는 에스니시티 측면에서 전형적 외국인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이 중, 중소기업 및 농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전문 취업(11.6퍼센트) 이주 노동자와 미디어에서도 자주 다루는 결혼 이민(6.6퍼센트) 그룹에 집중할 것이다. 국적별 현황을 보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국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위 통계는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가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 외국인들도 있다. 소위 ‘불법 체류자’이다. 이들 숫자는 39만 2196명(2020년 12월 기준)으로 합법적 체류 외국인 대비 비율(불법 체류율)은 19.3퍼센트다. 사상 최고치다. 코로나19 탓에 체류 외국인의 절대 숫자가 줄어든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불법 체류자 국적별 상위 5개국은 아래와 같다. 태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눈에 띈다.
국가별 불법 체류 외국인 현황
구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구성비 |
합계 |
208,917 |
251,041 |
355,126 |
390,281 |
392,196 |
100% |
태국 |
56,099 |
68,499 |
138,591 |
152,439 |
151,468 |
38.6% |
중국 |
55,831 |
62,827 |
71,070 |
70,536 |
63,549 |
16.2% |
베트남 |
27,862 |
31,691 |
42,056 |
58,686 |
66,046 |
16.8% |
몽골 |
10,146 |
12,719 |
15,919 |
17,510 |
17,006 |
4.3% |
필리핀 |
11,295 |
11,954 |
13,020 |
13,095 |
13,291 |
3.4% |
*법무부 출입국, 단위: 명
이들 불법 체류자를 포함하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42만 8271명이 된다. 한국 전체 인구 대비 비율은 4.7퍼센트로 올라간다. 하지만 원주민이 체감하는 외국인 비율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과거 외국 국적자였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자 18만 5728명(2019년 11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OECD 기준을 따르면 이민 배경을 가진 인구 비율이 5퍼센트를 넘으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된다. 이들 귀화자를 포함할 경우, 총 261만 3999명이 되면서 한국 인구의 5퍼센트에 해당한다. 귀화자 현황은 아래와 같으며 결혼 이주 여성의 국적 취득으로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자 현황
2018년 |
2019년 |
증감 비율 |
소계 |
남 |
여 |
소계 |
남 |
여 |
소계 |
남 |
여 |
176,915 |
36,657 |
140,258 |
185,728 |
37,684 |
148,044 |
8,813 |
1,027 |
7,786 |
구성비 |
20.7% |
79.3% |
구성비 |
20.3% |
79.7% |
5.0% |
2.8% |
5.6% |
*행정안전부, 단위: 명
앞선 대분류와 별개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 하위 그룹이 있다. 결혼 이주자 그룹이다. 비전문 취업 이주 노동자와 더불어 국가 프로젝트로 유입된 이 그룹은 사실상 한국 정부 다문화 정책의 유일한 대상이다. 2020년 12월 기준, 16만 8594명이 있으며 국적별 상위 5개국은 아래의 표와 같다.
국적·성별 이민자 현황
구분 |
계(명) |
구성비율(%) |
남자(명) |
남자 비율(%) |
여자(명) |
여자 비율(%) |
총합계 |
168,594 |
100 |
30,716 |
18.2 |
137,878 |
81.8 |
중국 |
60,702 |
35.6 |
13,823 |
23 |
46,249 |
77 |
베트남 |
44,058 |
26.1 |
3,195 |
7.3 |
40,863 |
92.7 |
일본 |
14,595 |
8.7 |
1,244 |
8.5 |
13,351 |
91.5 |
필리핀 |
12,002 |
7.1 |
503 |
4.2 |
11,499 |
95.8 |
태국 |
5,929 |
3.5 |
111 |
1.9 |
5,818 |
98.1 |
*법무부 출입국
중국(조선족 포함)과 베트남이 압도적이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뒤를 잇는다. 일본의 결혼 이민자는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다른 결혼 배경을 가진다. 게다가 결혼 이민자가 아시아 국가 출신일 경우 ‘한국인 신랑, 아시안 신부’ 패턴이 지배적이다. 반면, 서구 국가 출신일 경우 ‘한국인 신부, 서양 신랑’이 지배적 패턴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아프간 난민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임이 확인된 난민 숫자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이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인도적 체류 허가
[1]를 포함해 받은 난민은 총 2716명이다. 결코 많은 숫자라고 보긴 어렵다.
난민 업무 현황 및 난민 인정 심사(난민법 8조)
구분 |
신청 |
난민 인정 심사 결정 |
철회 등 |
대기 |
소계 |
인정 |
인도적
체류 허가 |
불인정 |
전체 누적
(1994~2020) |
71,042 |
39,954 |
779 |
1,917 |
37,238 |
16,112 |
14,976 |
해당 연도
(2020) |
6,684 |
8,104 |
55 |
127 |
7,922 |
5,930 |
*법무부 출입국, 단위: 건
그들을 부른 것은 한국 사회다
그전까지 실질적으로 제로에 가까웠던 한국으로의 외국인 유입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다른 국면을 맞는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다른 개발 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이 노동력은 일차적으로 국내 농촌에서 충당되었다. 노동력의 국제 이주에 앞서 국내에서의 이주가 먼저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 ‘공돌이’, ‘공순이’는 우리가 현재 외노자라고 부르는 이주 노동자의 전신이자 국내 버전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 농촌은 인력풀(pool)이 고갈되고 노동력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문제에 직면했다. 한국 기업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먼저 노동력을 찾아 공장 설비 등 생산 수단을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인건비가 싼 해외로 옮기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건설업, 근교 농업처럼 생산 수단을 옮길 수 없거나, 소기업 등 경제적 타산성을 맞출 수 없는 기업들은 노동력을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런 기본적 동인 위에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수용하면서 현재와 같은 이주 노동자 유입과 이들의 한국 자본주의 편입 패턴이 형성된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적 하청 구조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 이 하청 구조에서 대기업은 노동 집약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분야를 하청 중소기업으로 넘기는 한편, 자신들은 설계, 디자인, 유통 그리고 마케팅과 같은 고부가 가치 분야에 집중한다. 정부도 이를 뒷받침해 대기업 중심 개발 전략을 실행한다. 이전까지 전투적이었던 노조도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여 구조 조정과 노동 시장 유연화라는 뼈를 내주고, 그들이 주축인 대기업 노동자의 노동 조건 개선이라는 살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이 수직적 하청 구조와 노조의 구조적 변화는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결코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청 업체가 된 중소기업은 공급가를 낮추라는 대기업의 압력에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고, 이를 위해 이주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구조화하게 된다. 노조가 사실상 대기업에 편중되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저항하는 중소기업 노동자의 투쟁은 찾기 힘들어졌다. 그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단순 임금 격차는 2001년 4배 이상까지 차이가 났고, 1993년 2.3배 차이나던 대기업(300인 이상)과 중소기업 간 노동 인력 부족률은 2003년 4.8배까지 벌어졌다.
이런 임금 격차와 3D 근무 환경 탓에 외환 위기 이후 외국인 산업 연수생을 출국시키면서까지 원주민 고용을 촉진하려던 한국 정부의 시도는 실패한다. 이후, 노동력 부족을 일시적으로 채우기 위해 의도되었던(혹은 의도된 것처럼 보였던) 외국인 노동자 수입은 ‘구조적 저임금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고착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수입의 실체는 이러한데, 한국 정부와 일부 학계 그리고 미디어에 의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제시되어 그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외국인 노동자 수입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한국 정부 다문화 정책의 대상인 결혼 이주자들의 유입 역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사회 경제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더 나은 사회 경제적 조건을 찾는 농어촌 여성의 도시 이주를 촉진했다. 그 결과 농어촌 남성은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배우자를 찾는 것이 힘들어졌다. 2007년 결혼한 농림어업 종사 남성 7730명 중 40퍼센트는 국제결혼을 했다.
[3]
게다가 도시 빈민 남성도 그들의 낮은 소득 때문에 배우자 찾기가 힘들어졌다. 실제로 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 가정의 53퍼센트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족 수입을 기록하고 있다.
[4] 마지막으로, 과거 남아 선호 경향으로 말미암은 성비 불균형이 외국인 신부 수입에 일조했다. 물론 출생 성비는 변해왔다. 여아 100명당 남아의 출생 수를 가리키는 말이 출생 성비인데, 2020년 현재 출생 성비는 104.9명으로 정상적 범주에 있으며 심지어 2029년에는 99.9명으로 역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1990년에는 116.5명일 만큼 극심한 남아 선호 현상이 있었다. 문제는 이 성비 불균형이 사라져도 한국 농어촌 남성 그리고 도시 빈민 남성의 원주민 배우자와의 결혼 확률이 높아질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같은 외국인, 다른 정책
이런 유입 배경을 가진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민 정책(immigration policy)’ 그리고 ‘이민자 정책(immigrant policy)’이다. 이 둘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이민 정책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통제하는 정책 그리고 이민자 정책은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인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편의상 정의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 혹은 다문화 정책은 이민자 정책이다.
모든 외국인이 동시에 이민 정책과 이민자 정책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자 제도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단기 관광 외국인은 이민 정책의 대상일 뿐이다. 결혼 이주자는 이민 정책의 대상으로 시작해서 이민자 정책의 대상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부가 관심을 두고 관리하는 단순기능 인력 카테고리의 비전문 취업(E-9)과 방문취업(H-2) 이주자들은 원칙적으로 이민자 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영구 정착자가 아니라 일시 체류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자는 체류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원칙적으로 이민 정책의 대상일 뿐 이민자 정책의 대상은 아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민 정책
1980년대부터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노동력 부족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해외 노동력 수입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이를 위한 이민 정책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 땅에 외국인의 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주로 조선족으로 구성된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해 일하는 것을 묵인하는 형식의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으로부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강해짐에 따라 한국 정부는 1991년, 마침내 산업 기술 연수 제도(Industrial Training System·ITS)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산업 기술 연수 제도는 일본의 산업 기술 연수 프로그램을 모방한 것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지위를 노동자가 아닌 훈련생(학생)으로 규정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 고용주들이 이들에게 법정 최저 임금 미만의 급여를 주어도 노동법에 어긋나지 않게 한 제도적 장치다.
외국인 노동자 착취를 위한 잔머리의 결과물인 이 산업 기술 연수 제도는 2004년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EPS)’가 도입되며 퇴출된다. 산업 기술 연수 제도의 몰락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제도 자체가 애초 목적인 노동자의 저임금 유지를 못 하게 했기 때문이다. 산업 연수생으로 들어온 이들은 차라리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여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되면 산업 연수생 시절 급여의 두 배 이상까지도 받을 수 있는 한국 노동 시장의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2003년, 불법 체류자는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78퍼센트에 해당하는 3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불법 체류도 막지 못했고, 저임금도 유지 못한 산업 연수 제도는 버려져야 할 카드가 되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고용허가제에 이어 3년 뒤인 2007년, ‘방문취업제Visit and Employment Programme·VEP’가 도입되었다. 고용허가제가 한국 정부와 협약을 맺은 국가들로부터 단순기능 인력을 받아들이기 위한 취업 비자였다면, 방문취업제는 조선족이나 고려인과 같은 중국과 구소련 동포를 위한 취업 비자이다. 두 비자 모두 산업 연수 제도와 달리 최저 임금을 포함한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후 두 비자 카테고리는 한국의 중소기업, 농어촌 영세 기업 그리고 3차 산업이 필요로 하는 단순기능 인력의 주 공급 채널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21년 4월 기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는 22만 2492명,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는 14만 2011명으로 약 6대 4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취업 비자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이민 정책은 대부분 다른 OECD 국가들처럼 ‘전문 인력은 환영하되, 비전문 인력은 순환시켜라(Welcome the Skilled and Rotate the Unskilled)’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전문 인력을 위한 취업 비자는 한국 노동 시장 테스트(해당 인력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지 여부) 없이 승인되며, 이들 전문 인력은 영주권과 한국 국적도 일정 조건만 갖추면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단순기능 인력 비자는 구조적으로 영주권과 국적 신청 자격을 갖출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영주권이나 국적 신청을 위한 필수 체류 기간인 5년을 채우지 못하도록 비자 체류 기간을 최장 4년 10개월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나 방문취업제를 통해 입국한 단순기능 인력은 한국 원주민과의 결혼과 같은 특수한 경로를 통하지 않고는 한국에 영주할 방법이 없다.
결혼 이주자에 대한 이민자 정책
결혼 이주자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 이민 비자(F-6)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
[5] 대신, 그들 가족(다문화 가족) 전체에 대한 숫자를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 가족 정책 2021년도 시행계획〉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은 총 35만 가구(가구원 106만 명)로 전체 가구의 1.7퍼센트(가구원 기준 2.1퍼센트)를 차지한다. 자연 출생으로 증가세가 강화되고 있는데, 전체 출생에서 다문화 가족의 출생 비중은 2015년 4.5퍼센트에서 2019년 5.8퍼센트로 증가했다. 한국 정부는 결혼 이주자와 그들 가족의 한국 사회 정착과 융합을 위한 정책에 2021년에만 5847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177억 원 증가한 것이다.
이주 노동자와 대비되는 결혼 이주자와 그들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이런 예산 지원은 이들을 향한 한국 정부의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말하자면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을 위한 수단이다.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생산(economic production)과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재생산이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고전적인 예시지만 아침에 출근한 가장이 경제적 생산 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 외 가족은 따뜻한 밥과 휴식 제공을 통해 가장이 다음 날 또 다른 경제적 생산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활동(사회적 재생산)이 그것이다.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여성 배우자 공백이 생긴 한국 농어촌은 이 사회적 재생산 문제에 부딪힌다. 그리고 농촌 총각 자살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사회적 재생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느낀 한국 정부는 도시 여성과 농촌 총각 간 결혼을 주선해 주는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저개발국 여성과의 중매결혼에 관여하고 이후엔 다문화 가정에 대해 자상한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은 이 접근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적 재생산 위기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한 한국 정부는 한국 농어촌 남성의 저개발 국가 출신 여성과의 결혼에 대해 초기에 우호적 비간섭 정책을 유지했다. 국제결혼 중개업 등록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1999년 700여 개였던 업체가 2010년 1253개로 늘었다. 국제결혼 비율은 2005년 전체 결혼의 13.6퍼센트(2020년 현재는 7.2퍼센트)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제 중매결혼이 양산되며 생긴 부작용 역시 한국 정부에겐 사회적 문제로 인식됐다. 2014년, 한국 정부는 국제결혼 이주에 관한 새 법령을 제정하면서 관리 모드로 전환했다. 실제 한국 정부는 주요 신부 송출국에 관료를 파견하여 현지 신부 모집 단계부터 관여하기도 한다.
[6]
한국 정부는 다문화주의를 이민자 정책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는 결혼 이주자와 그 가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가족 정책(multicultural family policies)’이다. 이주 노동자는 결혼 이주자와 같은 원주민과의 연결 고리가 없을뿐더러, 일시 체류하다 본국으로 돌아갈 대상으로 간주되어 이민자 정책에서 아예 배제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이런 접근은 학계 그리고 시민 단체로부터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게 된다. 첫째, 결혼 이주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가족 정책은 이들을 도구화 그리고 타자화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의 한국 사회 융합을 막는다는 점. 둘째, 이주 노동자는 규모나 특성 면에서 한국 경제의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비전문 인력은 순환시켜라’ 원칙을 고집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40만에 육박하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장기적 대책과 비전이 없다는 점 등이다.
코로나로 절대 인원은 줄었지만, 한국에는 203만 6075명의 외국 국적자가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다. 이들 그룹의 한국 유입 배경은 같다. 1970년대 산업화 시작으로 1980년대 들어 농촌의 예비 노동력과 신붓감이 바닥을 드러낸 탓이다. 한국 농어촌 그리고 도시 빈민 남성의 결혼 대상은 신분 상승을 기대하는 동남아 국가 출신 여성이 대부분으로, 일종의 하이퍼가미(hypergamy
[7])다. 한국 경제의 저생산성 3D 분야가 필요로 하는 저임금 이주 노동자도, 본국보다 5~10배 높은 임금을 찾아온 아시아 저개발국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 결혼 이주자와 이주 노동자는 정부와 학계 그리고 주류 미디어에 의해 저출산 고령화 한국 사회의 대안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지만 이 두 그룹에게 적용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많은 면에서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