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푸틴 자신만이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유력한 전쟁 시나리오가 있다.
대대전술그룹(Battalion Tactical Group, BTG)은 러시아의 육군 조직을 말하는 것으로, 평상시의 병력규모는 800여 명이지만 때로는 그 이상이며, 전투에 필요한 기갑, 포격, 대공 방어 등 대부분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서 이 나라 동부의 돈바스 지역에 있는 러시아어권 주민들 사이에서 분리주의를 선동하고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에도 6개 정도의 BTG가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돈바스에 있는 친-러시아 세력들에게 도움이 필요했을 때에는 약 10개의 BTG로 대응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경 및 인근에는 56개의 러시아 BTG가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추정치에 의하면 그 수가 70개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 가장 많은 규모의 병력이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병력의 용도가 무엇인지, 또는 이 병력을 과연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직 블라디미르 푸틴만이 말할 수 있다.
지난 1월 19일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이유는 단지 “푸틴이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불이 지펴졌다는 신호이며, 군대가 동원된다는 것은 모종의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더욱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이 생각이 반드시 푸틴 대통령의 의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은 바이든 대통령과는 매우 다르며, 그는 일반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위협과 함께 협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의 진짜 의중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떠한 대상이나 목표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련의 행동방침들을 중심으로 연합체를 구축해야만 하는 (서방의) 지도자들이라면 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조금씩 축소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러시아 내부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목소리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말했듯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에게 뒤따르는 리스크는 더욱 적을 것이다.
당장에 전쟁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은 러시아 사람들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대통령은 자국 국민들에게 푸틴 대통령의 군사력 동원은 심리전의 한 형태이며, 그것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돈바스에서 몇 년 동안 병사들을 잃었던 경험은 우크라이나에게 확실한 극기심을 가르쳐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월 23일을 전후로 긴장감이 크게 고조되었다. 각국의 대사관들이 키예프에서 자국의 인력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중산층의 젊은이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키예프를 떠나거나 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가족들을 이동시키려고 계획하고 있다. 정부 당국의 판단이 오락가락한다면,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노력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1월 25일,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의 올렉세이 다닐로프(Oleksiy Danilov) 위원장은 러시아의 병력 이동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지만, 26일에는 전면적인 침공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병력 이동이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전면적인 침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전에도 군사적인 충돌을 통해서 정치적인 자산을 만든 적이 있다. 1999년에 시작된 체첸에서의 전쟁은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2008년에 조지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나토(NATO)에 반대하는 적대적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2014년의 크림반도 점령은 자국 내에서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거나 끔찍한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회피해왔다. 그리고 러시아의 많은 야당 정치인들과 정치 분석가들, 그리고 기업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지금 당장은 그러한 접근법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국경으로의 병력 이동이 전쟁의 서곡을 위한 의도가 아니라 자국 내에서의 긴장 및 위기의식을 조성하여 정권을 강화하고, 서방을 동요시켜서 그들의 내부적인 갈등을 드러내게끔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전쟁의 북소리는 인플레이션, 맹위를 떨치는 팬데믹, 부패에 대한 불평들을 잠재웠다. 러시아가 나토에게 새로운 회원국들을 받아들이려는 개방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동유럽 및 중유럽 국가들에서의 군사적 활동을 중단하며, 다양한 미사일 시스템을 제거하라고 요구하면서, 마치 냉전시기 초강대국들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고위급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러시아 스스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러시아의 언론들은 나토가 이러한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침략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푸틴 대통령은 조국의 용맹한 수호자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외교관이었던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 1946년에 미국의 냉전 전략의 기초를 구상할 때 언급했듯이, 러시아의 민족주의에서는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불가분하게 혼재”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에 더욱 많은 무기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서방의 대응은 이러한 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2020년에 푸틴 대통령이 살해하려 시도했던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는 최근 옥중에서 이렇게 썼다. “서방은 계속해서 푸틴이 파놓은 초보적인 함정에 빠지고 있다. 나는 그저 숨이 막힐 뿐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일부 관측통들은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카드를 내려놓고 테이블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카드를 나중에 다시 집어들 수 있는 권리를 남겨놓은 채로 말이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가 처하게 될 위험이나 푸틴 대통령 측근들의 자산과 러시아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그들은 만약 푸틴 대통령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그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의 개인적인 셈법은 다를 수 있다.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있으며, 예상되는 경제적 영향과 같은 일부의 사안에 대해서는 잘못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는 큰 그림을 못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히려 자신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욱 커다란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그림의 일부에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러시아어권 지역 전부를 확보하려는 계획이 널리 논의되고 있을 때 푸틴 대통령이 그걸 거부했던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에는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돈바스 지역에서의 불안정한 반란이 발생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처럼 보였다. (굳이 이곳을 점령하지 않더라도) 돈바스 전쟁을 끝내려는 목적으로 체결한 민스크 협정(Minsk Protocol)으로 인해 러시아에게는 공식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그리고 돈바스의 분리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의 한 지역에서 나라 전체가 서방 진영으로 향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스크 협정은 사실상 빈사 상태이며,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단일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이후 8년 동안 정식으로 나토의 회원국이 되지는 않았지만, 서방의 원조와 군사적인 도움 등 아주 많은 혜택을 받았으며,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교회(正敎會)를 따르는 슬라브계 독립국가가 서방의 질서에 편입한다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러시아 중심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모독이다. 이러한 모욕을 피하려면, 우크라이나가 계속해서 (러시아에게) 종속된 혼란 상태에 빠진 채로 약하고 주눅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2014년보다는 덜 취약하다 하더라도, 앞으로 다시 지금처럼 취약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현재의 흐름을 최대한 빨리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현재 상당한 전쟁자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를 견디기에도 더 나은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늘 그렇듯이 국내의 적들과 외부의 적들을 한통속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서방이 러시아 국내에서는 “외국 대행기관(foreign agent)”들을 이용하고 외국에서는 (우크라이나에게 부여된 역할인) 앞잡이들을 활용하여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는 음모론은 푸틴 대통령에게 궁지에 몰린 러시아의 단호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이는 자기본위의 발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진심일 수도 있다. 조지 케넌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며, 그렇게 알아낸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비록 그러한 생각이 전혀 안심이 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비열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 내부에 있는 그의 적들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2021년 3월 17일에 방송된 ABC 뉴스 프로그램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살인자(killer)”라는 인터뷰 진행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미국 정보기간의 증거를 인용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것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푸틴 대통령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의 안위와 암살 시도에 대해서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벙커에서 고립되어 생활하면서 이러한 편집증이 더욱 가중되었을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있은 지 이틀 뒤, 푸틴 대통령과 지난 10년 동안 국방장관으로 재직해 온 세르게이 쇼이구(Sergey Shoygu)가 주말 동안 자리를 비웠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과 크림반도에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얼마 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에세이[1]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주권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교두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방어적인 조치이며, 자신의 통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음모에 맞서기 위한 생존 투쟁이라고 보는 그의 생각은 나름 그럴 듯하다.
슬픔이란 첨병은 한 사람씩 오지 않고, 대부대로 몰려온다[2]
만약 푸틴 대통령이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활용하기로 선택한다면, 그는 과연 언제쯤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정보에 정통한 동유럽의 어느 관료는 2월 중순까지는 본격적인 공세에 대한 대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키예프를 공격하기에 적당한 장소인 벨라루스에 집결한 러시아의 대규모 병력은 2월 10일까지 완전한 채비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날짜는 현재 “앨라이드 리졸브(Allied Resolve)”라는 이름의 합동 “군사훈련”의 개시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공격을 보류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우호적인 관계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중국과 훨씬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개전이 가능한 시기는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2월 20일에서 해빙기 사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약해진 지반 때문에 러시아의 기갑부대가 진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이후의 공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대공 방어 체계도 부족하고 무장병력도 열세이기 때문에, 미군이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바그다드에 들어갔을 때처럼 러시아도 키예프에 쉽게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싱크탱크인 CNA의 러시아 군사력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먼(Michael Kofman)은 러시아가 수도인 키예프를 포위한 채로 그곳에서 정남쪽에 있는 해안도시인 오데사(Odessa)를 장악하여 우크라이나의 일부만 차지하고 서쪽 지역은 점령하지 않은 채 남겨둘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워 온 더 락스(War on the Rocks)>라는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3]에서 이렇게 썼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끔찍하게 위험하고 엄청난 비용이 들겠지만, 푸틴을 러시아 역사의 많은 부분을 회복시키고 나토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완충지대를 수립한 지도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바그다드를 공격할 당시와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시나리오가 가진 문제점은 러시아가 승리한 이후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전에도 이미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던 독재자가 키예프에서 야반도주했던 사례가 있다. 2014년에 탄핵을 당한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가 그 주인공이다. 만약 침공 이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떠난다면, 이후의 부역자도 동일한 운명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하나의 국가를 둘로 쪼개거나, 결말을 열어두고 점령하는 방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열린 결말의 하나로는 우크라이나 서부에 러시아와 맞서 싸우기 위하여 게릴라들이 결집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2020년,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RAND)는 러시아가 도네츠크(Donetsk)와 하르키프(Kharkiv)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을 점령하고 장악하려면 8만 명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수도인 키예프까지 점령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할 것이며, 이는 러시아 병력의 상당한 소모로 이어질 것이다. 향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장밋빛 추정에 근거하여 그러한 분쟁에 뛰어든 강대국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덜 위험한 방법들도 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싱크탱크인 방위전략센터(Centre for Defence Strategies, CDS)는 현재의 상황이 전통적인 전시체제보다는 “혼합형 침공(hybrid invasion)”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CDS에 의하면 이러한 혼합형 침공에는 사이버 공격, 허위정보 유포, 폭발물 위협과 같은 심리전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는 학교나 관공서 등을 비롯한 비군사적 목표물을 겨냥한 수백 건의 폭파 협박이 있어 왔다.
만약 그런 행위를 통하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치안병력을 지치게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정권의 변화를 초래한다면, 푸틴 대통령에게는 훨씬 더 나은 상황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욱 강력한 공세를 대비하는 단계로 돌입할 것이다.
CDS의 보고서는 또한 돈바스 지역에서의 “무장 세력 증가”를 언급하고 있는데, 현재 이 지역의 30퍼센트는 친-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 지역의 러시아어권 소수 집단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주장해왔는데, 가장 최근에는 지난 12월에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들까지 차지하려는 구실로 사용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United Russia)의 블라디미리 바실리예프(Vladimir Vasilyev) 원내대표는 지난 1월 26일에 이렇게 말했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에서 군사적 포격이 증가하고 있고, 사람들은 또 다시 죽어가고 있고 고통 받고 있으며, 그들의 재산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에 대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군수품의 공급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 그들을 지원해줄 것을 우리나라의 지도부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그는 아무런 요청 없이 그러한 호소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포격만으로는 선동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위장” 작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돈바스의 전선은 몇 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을 돌파하려면 러시아의 상당하면서도 명백한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키예프로 곧장 진격하는 것보다는 적은 노력이 들 것이며, 외부에서도 좀 더 용인하는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국무장관은 “단 한 명의 러시아 병력이라도 우크라이나를 침범한다면” 제재조치가 촉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들이 모두 강경노선을 취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으며, 푸틴 대통령은 처음부터 대규모의 전쟁을 시작하기보다는 소규모의 전쟁을 확대시키는 것이 책임을 모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바스의 장악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존재한다.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대해 쓴 글에서 “키예프에게는 돈바스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모스크바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돈바스의 장악은 단기적으로는 승리일 수 있고, 폭넓은 혼합형 전쟁의 맥락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현 정권을 몰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서방 세계로의 움직임이 더욱 공고해지거나 가속화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푸틴이 독자적으로 혹은 다른 곳과 연계하여 수행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벨라루스로 이동한 러시아의 병력을 활용하여 벨라루스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은 비록 분개하고 있지만, 2020년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광범위한 시위에 대한 탄압은 물론이고 많은 면에 있어서 그가 러시아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벨라루스를 사실상 합병한다고 해서 반드시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위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푸틴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연결하는 비좁은 지역인 수발키 갭(Suwalki Gap)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위협을 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곳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나토의 나머지 국가들과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관료들의 무례함[4]
군사적 위험성에 더해서 정치적, 경제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전쟁에 대한 가능성으로 인해 이미 증시와 루블화는 폭락하고 있다. 전쟁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새로운 제재를 촉발시켜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은행에서는 대규모의 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재산권이 확실하게 인정되는 서방과 원만하게 지낸다면 러시아의 부유층은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넘겨줄 수 있겠지만, 외부와의 단절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엘리트들에게는 매우 짜증나는 상황일 것이다.
러시아의 여론은 불협화음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긴장을 부추기고 러시아를 자극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선전선동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인들을 향해서 점점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스스로를 희생자로 보는 시각에 익숙한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노리개”라고 생각한다.
크렘린의 군국주의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여론보다는 불안감을 유발하려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러시아인들이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 센터(Levada Centre)의 레프 구드코프(Lev Gudkov)는 최근에 이렇게 썼다. “일반적인 러시아 사람들은 나라의 지도부가 벌이는 정신 나간 행보의 인질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자신의 삶과 일가족의 평안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전쟁은 우크라이나인들만이 아니라 수천 명이 죽게 될 당사자들인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서도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려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더 이상 압박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믿음이 있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