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추석
4화

손수현 배우&신승은 감독 ; 같이 산다는 건

연기하고 글 쓰는 손수현, 노래와 영화를 만들고 글 쓰는 신승은, 비건 지향 4년차다. 비건 에세이《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를 같이 썼다. 다세대주택에 모여 살고 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
 
수현 승은의 노래를 좋아해 공연을 보러 갔다 친해졌다. 처음엔 영화를 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그러다 감독이라는 걸 알게 됐고 단편 작업도 같이 하는 동료가 됐다. 지금은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는 룸메이트이자 가족이다.
 
승은 수현을 중심으로 모인 네 명이서 살고 있다. 다세대주택 한 층에 두 명씩 살고 있다.
 
모두 비건 지향인가.
 
수현 새로 들어온 친구는 논비건이었다가 비건이 됐다. 비거니즘에 관한 책도 읽고 비건 지향 생각도 하고 있던 차라고 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비건식을 먹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우리가 어려서 육식 위주의 식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 말이다.
 
비건 에세이는 어떻게 같이 쓰게 됐나.
 
수현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 혼자 쓰기 부담스럽기도 하고 둘이 쓰면 여러 형태의 글이 나올 것 같아 승은에게 같이 쓰자고 했다.
 
승은 그런데 내가 거절했다. 같이 있으면서 대화도 많이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하는 생각을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비거니즘에 대해 어떻게 다른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수현 그래서 다른 저자를 찾아보던 중에 승은이 번복했다. (웃음)
 
같이 쓴 결과물은 어떤가. 우려와 다른가.
 
승은 글로 보니 또 다르게 느껴졌다. 나물, 김밥 등 하나의 주제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읽고 나니, 다른 비건들은 어떻게 살까 생각해보게 됐다.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전해줬나.
 
승은 비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채소가 궁금해졌다. 이런 말을 전해준 친구들도 있었다.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수현 본가에 잠깐 들렀다가 각자 음식을 해 모이기로 했다. 작은 제사상을 차려 우리만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지금의 제사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상에 엄한 사람의 노동이 들어간다. 우리는 즐겁게 모인 자리에서 음식을 놓고 각자 절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보려 한다.
 
승은 허례허식은 빼고 마음만 남기는 것이다.
 
추석 음식 추천해준다면?
 
승은 전을 추천한다. 애호박, 배추를 계란물 대신 두유에 담가서 부치면 부침가루가 흩어지지 않고 맛있다. 시판 동그랑땡도 잘 나온다. 거기에 백화수복 한 잔 하면 딱 좋다.
 
수현 비건 김치도 많이 판다. 집에 비건 묵은지가 있다. 콩고기를 넣어서 묵은지 김치찜을 해먹어도 맛있다.
 
본가에서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수현 비건 지향을 한다고 말하고나서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그래도 안 먹는다고 하니 육식 식단은 안 차려주신다. ‘뭘 먹이지? 이건 먹을 수 있구나’ 하며 고민을 하신다. 본가에 가면 엄마를 수고스럽게 하는 느낌이 들어서 잘 안 가게 된다. 가도 밥을 먹고 간다.
 
승은 언제 한번은 엄마가 잡채를 했다고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두 통이었다. 나를 위한 비건 잡채 한 통을 따로 만든 거였다.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되니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했다.
 
가족과 비건 지향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
 
수현 비건 지향을 하는 이유,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고 비건 식생활에 대해서만 가끔 나눈다. 돌이켜보니‘왜?’라는 질문은 들은 적 없는 것 같다. 충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만 설명한다.
 
승은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건강 때문에 하는 거면 괜찮은데 신념 때문이면 하지 말아라. 난 정확히 후자다. (웃음)
 
두 분 다 신념 때문에 비건 지향을 하게 된 건가.
 
수현 7~8년 전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채식을 시작했다. 동물권이랑 비거니즘이 연결되지 않았을 때다. 다른 것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 보면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이었는데, 채식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처음 먹은 음식이 오므라이스였다. 그걸 비건이라 생각했었다. 왠지 먹어도 허전한 것 같고 기력도 없는 것 같아서 3일 만에 그만 뒀다. 그러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차근차근 시작해 비건 지향이 됐다.
 
승은 그래서 정보가 많은 게 중요한 것 같다. 비건 지향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책에 완벽을 목표로 삼지 말자, 계속에 방점을 두자고 썼다.
 
수현 3일로 끝난 락토-오보 지향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했어? 그럼 다시 도전해야지. 이런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비건 지향을 하고 달라진 점이 있나.
 
수현 요리를 좋아하게 됐다. 비건 지향하고 처음 먹어본 식재료도 많다. 당귀에 콩고기를 싸먹으면 그렇게 맛있다. 약간 씁쓸한 한약재의 감칠맛이 난다. 관심 없을 땐 몰랐는데 다 같은 풀이 아니다. 풀을 씻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이걸 먹을 생각을 했을까’ 감탄한다. 아, 냉이도 정말 맛있다.
 
승은 비건음식도 다양한 레시피가 가능하다. 토마토를 정말 좋아하는데, 토마토가 비건이라 기뻤다. 토마토 스프, 토마토 스파게티 어느 하나 고를 수 없이 다 맛있다. 그냥 토마토에 올리브유랑 와인식초를 뿌려 먹기만 해도 맛있다. 발명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같이 사는 친구 중에 비건 요리사가 있다. 두유에 타피오카, 한천을 넣고 모짜렐라 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비건 모짜렐라 치즈로 만든 카프레제는 정말 맛있다. 수현이 곤약으로 만들어준 회덮밥도 맛있었다.
 
협업을 주로 하는 직업 특성상 논비건과 식사할 일이 잦을 텐데, 어떤가.
 
승은 언젠가 회식하러 꼬치집에 간 적이 있다. 야채 꼬치를 먹으면 될 거라고 나를 배려한 거였다. 양꼬치랑 양송이꼬치를 한 곳에 구워야 하는 상황이 힘들기도 했지만, 이미 배려를 해주셨는데 그거 마저 못 먹겠다고 할 수 없었다. 괜히 까탈스럽고 유난이라고 생각할까봐 말 못 하고 먹었다. 다른 비건 욕 먹일 수는 없었다.
 
수현 다른 지역으로 촬영갈 때도 힘들다. 서울은 홍대, 이태원을 중심으로 비건 식당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 망각하는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엔 비건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 다른 지역으로 촬영 가서는 정말 굶은 적도 있다.
 
승은 난 통영에서 맛밤만 먹고 왔다. (웃음)
 
비건은 꾸준히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 말해주셨다. 삶에서 비거니즘 외에 또 지향하는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승은 누군가를 해하지 않고 사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모든 소수자성을 얘기할 수 있는 감수성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가치관 안에 담겨 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결국 동물권까지 닿는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면서 연결고리가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사는 동안 최대한 누군가를 해하지 않고 살고 싶다.
 
만들어진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으면 소수가 된다. 프리랜서라는 두 분의 정체성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수현 만약 한 건으로 100만 원을 벌면 그게 소득으로 잡힌다. 나는 한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인데 1년에 1200만 원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럼 건강보험료가 오른다. 그래서 일을 할 때마다 해촉증명서를 떼어야 한다.
 
승은 요즘은 문자로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여전히 힘든 건 마찬가지다.
 
제도의 문제인가.
 
승은 그렇다. 정규직 중심으로 제도가 되어 있어서 그렇다. 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계약 노동자들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현은 배우로 활동 중이다. 동의하지 않는 것을 연기하거나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수현 감독님과 이야기하며 대사를 바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물이 어떤 맥락으로 이런 대사를 하게 됐는지 여쭤보고, 대사가 담고 있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를 통해 맞춰나가려 한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은 영화 촬영장에서는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반영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나.
 
수현 어쩔 수 없으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 악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사랑하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수현 연기도 가치관도 나의 선택이고 내가 사는 방식이다. 연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은 일로 생각하라지만, 결국 내가 표현하는 모든 건 내 안에서 나온다. 지향하는 가치를 지향하며 살고 싶다.
 
승은은 노래도 하고 영화도 만든다. 무언가를 만들 때 중요시하는 건 뭔가.
 
승은 음악적 색깔에 대한 생각은 안 한다. 최대한 직관적으로, 누구 흉내 안 내고, 내 말투 내 것으로 하려고 한다. 가끔은 그게 구리고 별로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다. 혐오 표현도 최대한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만드는 것으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자신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혐오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미 내제된 게 많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혼자 생각도 많이 한다.
 
어떨 때 보람을 느끼나.
 
승은 감정을 솔직하게 직관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상황을 대입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내가 참 쓸모가 있구나 싶다. 예술의 쓸모라는 것을 느끼기 쉽지 않다. 내가 쓸모가 있다는 기분이 특히 자본과 동떨어진 독립창작자들에게 힘이 되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선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있으니까.
 
타협 안 하고 큰돈 벌기, 신념 있는 부자 되기는 불가능할까.
 
수현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승은 가능할까? 모르겠다. (웃음)
 
같은 신념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수현 서로 분노하고 행복해하는 주제가 같다. 서로를 가족이라 칭한다.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이 살아가는 누구든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승은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 수밖에 없다. 같이 산다는 건 어떻게든 해를 덜 끼치려는 노력하는 것이다.
 
수현 아프고 싶고 다치고 싶고 죽고 싶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걸 아는 게 같이 사는 삶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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