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의 발단은 2009년, 글로벌 친환경 컨설팅사 테라초이스(Terrachoice)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시장의 환경성을 조사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4705개 분야, 1만 419개의 상품 중 무려 95퍼센트가 친환경을 위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린워싱’, 이른바 위장 환경 주의의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녹색 상품에 대한 의구심은 2000년대 중후반 국내외 친환경 트렌드가 가속화하며 함께 증가해 왔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12년 발간한 〈녹색표시 그린워싱 모니터링 및 개선〉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녹색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요인으로 ‘금전적 부담(20.6퍼센트)’, ‘품질이나 성능이 염려됨(18.0퍼센트)’에 이어 ‘친환경 상품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 없음(16.2퍼센트)’을 꼽았다.
상품 경제에서 녹색의 기준과 효용은 오랜 불신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명확히 정립된 적 없다. 국가별, 단체별로 판단 규범은 상이했고 주로 기업의 자체적인 기준에 의존해 왔다. 개념의 부재는 그린워싱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고 ‘진짜 친환경’에 관한 논의는 오랜 시간 구심점 없이 지체됐다.
2017년 《환경과학저널(Environmntal Reseaerch Letters)》에 게재된 논문 〈The climate mitigation gap〉에 따르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 네 가지는 채식주의자 되기, 비행기 여행 그만두기, 차 버리기, 자녀 덜 낳기였다. 앞선 세 가지 항목의 1인당 연간 탄소 배출 절감량이 각각 1.1톤, 1.6톤, 2.4톤이었던 반면 ‘자녀 덜 낳기’의 절감량은 무려 58.6톤으로 압도적이었다. 한 명의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구에 많은 흔적을 남긴다.
존재 자체가 지구에 해가 된다는 가정하에 환경을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전면 중단하는 길일 테다. 그러나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주장하기에 우리는 성장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소비는 시장 경제 사회에서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기법이다. 자라(zara)의 비건 레더 자켓이 없어도, 스타벅스의 리유저블(reusable) 컵이 없어도 삶은 지속된다. 그러나 소비가 곧 정체성이자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취향과 편리를 포기하고 성장 경쟁의 냉철한 관조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이에 저자는 차선책을 제안한다. 소비를 중단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명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제품을 구매할 때 성분을 꼼꼼히 확인하는 성실함과, 생애 주기라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제품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현명한 소비자는 현명한 시스템 속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친환경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기업은 그에 해당하는 성과를 숫자로 보여 줘야 하며, 투자자는 그 성과가 장기간 지속하도록 기업을 감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진가(眞假)를 판가름할 기준을 만드는 것이며, 핵심은 데이터다.
‘선한 취지’라는 성역에 재무적 잣대를 대는 것에 혹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녹색 분야의 성과에 대한 요청은 엄격하거나 불합리한 추궁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현실적이고 성숙한 접근이다. ‘친환경’, ‘에코’, ‘지속 가능’과 같은 키워드에 함몰되어 냉정한 지표를 직면하길 거부한다면 예견된 기후 재난에 대비하는 여정은 또 한 번 지체될 것이다.
근사한 캐치 프레이즈보단 실질적인 변화를 고민할 때다. 성과 없는 진정성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거나 의도된 눈속임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진짜 녹색을 선별하고 실천하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다. 진심은 셈할 수 없으나, 진실은 많은 경우 숫자로 드러난다.
이다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