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지점에서 놀라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전쟁이 진짜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러시아는 평화로운 상태였고 복잡한 글로벌 경제에 얽혀 있었다. 이미 방대한 영토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정말로 땅을 더 넓히기 위해 교역 관계를 끊고 핵전쟁의 위협을 가할 것인가? 블라디미르 푸틴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여러 번 경고했지만, 그래도 이 침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인 팀 마샬(Tim Marshall)에게는 충격이 아니었다. 2015년에 발표한 자신의 인기 도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에서, 마샬은 러시아의 복잡한 지형으로 독자들을 초대했다. 러시아는 산맥과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국과의 국경은 산맥으로 막혀 있고, 이란 및 튀르키예와는 캅카스 산맥으로 분리돼 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발칸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 알프스 산맥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이 또 하나의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적어도 장벽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산맥들의 북쪽에 있는 유럽 대평원(Great European Plain)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통해서 서방의 무장한 이웃들과 러시아를 연결시킨다. 이곳을 통하면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탱크를 몰고 갈 수도 있다. 마샬은 러시아의 천연 방어벽 사이에 있는 이 틈새가 공격에 얼마나 자주 노출됐는지 언급하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푸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서쪽으로 향하는 이 평원을 막기 위해 최소한 시도라도 해야 한다.” 푸틴은 더 이상 조용한 수단으로 우크라이나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정확히 그 말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다. 마샬은 이 전쟁이 개탄스러우면서도 놀랍지는 않다며 다음과 같이 고리타분하게
설명했다. “(지리적 요소는) 지도자들을 가둬 놓고, 선택권과 운신의 여지를 생각보다 훨씬 더 적게 남겨 둔다.”
마샬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지정학(geopolitics)이라고 부른다. 지정학이라는 용어는 막연히 ‘국제 관계’를 의미하는 용도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맥, 지협(地峽)
[1], 지하수면 등의 지리적 요소가 세계정세를 지배한다는 시각을 가리킨다. 지정학자들은 어떤 지역의 사상, 법률, 문화가 흥미롭더라도 그곳의 정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세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웃한 나라들은 모두 서로의 잠재적인 경쟁국이며 성공은 〈리스크(Risk)〉라는 보드게임에서처럼 영토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지정학은 인간의 동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비슷한데,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계급 투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본다면 지정학에서는 지형이 역사의 동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정학과 마르크스주의는 1990년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여겨졌던 점에서도 서로 비슷하다. 시장의 팽창과 신기술의 폭발은 지리학을 낡은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다에는 컨테이너선이 가득하고 위성에서는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말라카 해협이나 오데사 항구 통제를 누가 신경 쓰겠는가? 저널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2005년에 “세계는 평평하다”고 선언했다. 이는 상품, 아이디어, 사람들이 순조롭게 국경을 넘어서 움직이는 세계화에 대한 적절한 메타포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계가 덜 평평하게 느껴진다. 공급망이 끊어지고 글로벌 교역이 흔들리면서, 지구의 지형이 매끄럽기보다는 좀 더 바위투성이처럼 보인다. 팬데믹 이전에도 도널드 트럼프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
[2]와 같은 인물들은 세계화에 대해 적대적인 움직임을 드러내 그 인식이 부상하고 있었으며, 팬데믹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냉전 종식 당시에 대략 10개 정도였던 국경 장벽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장벽 건설 붐이 최고조에 도달하면서 현재 74개에 이르렀고 지금도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다. 정치학자인 엘리자베스 발레(Élisabeth Vallet)는 탈냉전이 세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이었으며, 우리는 현재 “세계의 재영역화(reterritorialisation)”를 목격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적대적인 환경을 새롭게 마주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책장에서 오래된 전략 안내서를 꺼내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H. R. 맥매스터(H. R. McMaster)는 2017년에 이렇게
경고했다. “지정학이 돌아왔다. 복수심과 함께. 우리가 소위 탈냉전 시기라고 불렀던 역사의 휴식기는 끝났다.” 이러한 관점은 러시아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설명하면서 “지정학적 현실(geopolitical realitie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개방적인 교역 기반의 국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팀 마샬이나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 이언 모리스(Ian Morris),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 피터 자이한(Peter Zeihan)과 같은 독도법(讀圖法) 전문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앞다퉈 오르고 있다.
이러한 지리학 옹호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광활한 스텝 지대(steppe)와 산맥의 경계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던 13세기 칭기즈칸의 세계 이후로 무엇이 변했는지 궁금해진다. 지정학적 사고는 대놓고 암울하며, 평화, 정의, 올바름에 대한 희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암울하냐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가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기술과 지성, 제도적인 측면에서 중대한 변화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마샬이 주장하듯 여전히 “지리의 죄수들(prisoners of geography)”일까?
1. 지도 속에 갇힌 인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부끄러울 정도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생명체다. 인간은 환경적 여건이 허용하는 곳에서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사멸했다. 루이스 다트넬(Lewis Dartnell)은 자신의 역작인 《오리진(Origins)》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서로 부딪히며 마찰하는 지각판(地殼板, tectonic plate) 경계를 표시한 지도 위에 세계의 주요 고대 문명들의 위치를 겹쳐 놓으면, (둘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판(板, plate)은 서로 충돌하면서 높은 산맥과 거대한 강줄기를 만들어 내고, 그 강물은 바닥의 침전물을 낮은 곳으로 실어 나르면서 하류 지역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고대의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아시리아, 인더스 계곡, 메소아메리카
[3], 로마는 모두 판의 경계 근처에 있었다. 이집트에서 이란까지 걸쳐 있는 비옥한 농경 지역으로 농업, 글쓰기, 바퀴 등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세 개의 판이 서로 맞물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