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박사하기
1화

프롤로그와 대화한 이들

프롤로그 ; 왜 대학원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한국은 대학 진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학력 사회다. 이미 1950년대부터 “소와 밭을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의미의 ‘우골탑’이란 표현이 등장했으며, 고등학교 졸업생의 고등 교육 기관 진학률이 70퍼센트 안팎에 도달한 2010년대까지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사람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1] 대학 진학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도 있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이고 별다른 전략적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이자, 식민 지배와 전쟁, 체제 경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계속해서 노출돼 온 한국 사회는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의 확보야말로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는 믿음을 공유한다. 1990년대 이래 설파된 “지식 기반 사회”나 “지식 근로자”와 같은 표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각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뛰어난 지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해야 하며, 그러한 ‘고급 인력’의 생산 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을 향한 이토록 거대한 열정 뒷면에는, 기묘하게도 그러한 대학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람직한 대학 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자리한다. 한국 사회가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리, 논문 표절, 등록금, 입시, 취업률, 노벨상과 같은 몇 가지 쟁점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간단히 말해 학생의 입학과 졸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우리의 고등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같은 주제는 한국의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국내에 고등 교육 전문 연구자는 극히 드물며, 종종 타국의 성공 사례를 이식하는 게 우리 대학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양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2]

대학원은 그러한 무관심의 정점에 위치한다. 대학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공부를 좋아하는 별난 사람들이 가는 곳’, ‘스펙에 한 줄 더하러 가는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곳’ 정도가 그나마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과 관료를 포함해 대학원 관련 제도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연구개발 R&D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도의 인식을 제외하면, 한국의 공적 기구 역시 대학원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이 지식 기반 사회가 돼야 한다는 구호가 일상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1990년에 8만 명 정도였던 대학원생의 수가 2010년대 이르러 30만 명으로 증가하는 동안, 전문성의 창출과 직결된 대학원에 대한 제도적인 고민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대학원(생) 문제”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2010년대 중반부터다. 대학원에 가면 여러 부조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씁쓸한 지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것이었으나, 2010년대를 경유하여 이는 처음으로 사회적인 의제가 되었다. 2000년대 이래 한국의 일상을 빠르게 바꿔 가던 인권 담론은 몇몇 대학의 인권센터 설치를 기점으로 대학원의 후진적인 문화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2015년 “인분 교수” 사건을 포함해 각종 인권 침해·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대학원생의 처우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표준에 미달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무엇보다도, 본 좌담회에 참여한 필진 일부를 포함하여, 폭로와 고발을 넘어 조직화를 통해 입법 및 교육 행정 등 공식적인 영역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대학원생들의 등장은 단기간에 적지 않은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소수의 방어적인 교수를 제외한다면 한국의 대학원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이제 사회 전반에 널리 공유됐다.

의제화가 해결이 아닌 출발이라는 사실은 대학원 문제에도 해당한다. 이제껏 한국의 제도와 사회는 인권 침해, 성폭력, 안전과 같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처벌과 관리라는 직관적인 해결 방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 예컨대 대학원의 교육적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며, 한국에 필요한 대학원의 모델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같이 대학원 개혁에서 피할 수 없는 까다로운 쟁점은 조용히 잊혔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요구하는 문제를 소화할 수 없는 무능력은 대학과 교수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수의 일탈적인 사례”로 인해 교수들이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항변이 횡행했으며, 외부의 압력이 들어오기 전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 대학의 모습은 대학의 자율적인 혁신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하냐는 실천적인 고민은 여전히 소수만의 문제의식으로 남아 있다.

주어진 의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제도의 무능력은 다음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원생은 교수의 노예”,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대학원은 ‘좋소기업’과 같다” 등의 표현처럼 대학원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청년 세대에게 빠르게 확산했다. 청년 세대의 고민에 늘 둔감했던 한국의 지식인·교수 집단은 이러한 상황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으며, 대학과 학계는 담론장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이 외면받는 이유는 단순히 인구 구조나 낮은 기대 소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현재 대학과 학계의 중추를 구성하는 586 및 그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생활 수준과 현재의 청년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교육 환경의 개선 없이 공동체 정신이라는 덕목과 헌신과 열정의 태도를 강조하는 기성세대 교수들의 주장은, 설령 그러한 덕목 자체에는 동의한다 해도, ‘차라리 취업을 하지 뭐 하러 그런 데를 가냐’는 학생들의 냉정한 반응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원의 문제는 대학원의 위기가 된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을 약자이자 피해자로, 혹은 반대로 열정과 패기를 상실한 나약한 이들로 부르는 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답변이다. 오늘날 대학원생의 삶은 가해와 피해, 노력과 태만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학술 연구와 지식 생산의 중요성은 급격히 커졌다. 전문 지식의 양은 과거의 어느 때와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결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그에 부응하듯 교육 연구 환경으로서의 대학원을 구성하는 장치들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1980~1990년대의 대학원생은 상대적으로 또래 집단과 학과, 제한된 종이 매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았다. 영어권 학술장을 중심으로 학술 자료의 전자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타 전공자와 교류할 가능성이 높아진 2010년대 이후의 대학원생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것을 요구받는다. 대학원 과정에 대한 기대치와 지원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지도교수 및 학과만이 아닌 학교, 학술 단체, 국가 기구, 국내외 학술장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원 역시 교육 연구 환경의 일부분을 구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대학원의 안과 밖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1990년대 이래 “인문학의 위기”, “문과의 위기”는 상존했으며, 이른바 “제4차 산업 혁명”의 전망이 사회를 뒤덮고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의 수요가 상승한 최근에는 아예 인문·사회 영역 자체를 사양 분야로 취급하기도 한다.[3] 이러한 단순한 주장이 현대 사회 및 지식 생산의 복잡성을 거의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문·사회학계가 정확히 어떤 점에서 위기인지, 어째서 그러한 위기가 지속 혹은 심화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는 소수의 문제 제기를 빼면 아직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한쪽에는 인문·사회 분야가 대표하는 가치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 다른 쪽에는 사회가 바뀌니 인문·사회 영역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그러나 양자는 방향만 반대일 뿐 명확한 근거와 성찰 없이 피상적인 믿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정작 인문·사회 분야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으며, 지금도 엄청난 팽창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사 결정권자들은 물론 학자들의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유의미한 분석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위기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의 인문·사회 대학원과 학계를 설명하는 언어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관습적인 설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출발점은 신진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자기 자신의 시선과 경험이었다. 당사자성이 피해자성의 호소에서 멈추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조건을 설정했다.

먼저 우리는 이 자리가 서로 다른 지적 배경과 연구 환경을 지닌 사람들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이 되기를 기대했다. 좌담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목차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출발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대학원 풍경, 나아가 학계의 현재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공유하도록 주문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풀어놓는 대신, 한 명의 연구자로서 스스로가 경험한 교육과 연구 환경, 나아가 그러한 장치들의 거버넌스에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선택한 형식이 한국 인문·사회 분야의 대학원 또는 학계에 관해 지금껏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던 사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책의 내용은 2022년 3월 20일 《교수신문》 ‘천하제일연구자대회’ 코너 중 〈30대 신진 연구자에게 듣는다〉 좌담회 원고를 토대로 상당한 수정과 증보를 가한 것이다. 해당 좌담회의 요약 편집본이 두 차례에 걸쳐 《교수신문》에 게재된 이후, 비판과 응원의 목소리 모두 적지 않았다.[4] 이후 북저널리즘에서 좌담회 전문을 다듬어 출간하고 싶다고 제안해 주셨고, 《교수신문》 및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회에서 흔쾌히 동의해 주시면서 출간을 진행하게 되었다. 애초에 본 좌담회 자체가 네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만큼 이미 적지 않은 분량의 녹취 원고가 있었지만, 모든 필진이 서로의 발언을 읽고 질문과 논평을 주고받는 편집 과정을 거치며 많은 수정이 이뤄졌다.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한 주제와 영역이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도한 부연이 이루어진 대목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아쉬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대학원과 학계, 지식 생산에 관해 더 많은 주제를 더 깊게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처음 출간을 제안해 주신 북저널리즘 김혜림 에디터님, 출간에 동의해주신 《교수신문》 기획위원회 및 김봉억 편집국장님, 추천사 집필을 맡아주신 박은하 기자님께 감사드린다. 지금도 각자의 연구 주제와 고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모든 동료 대학원생·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필진들을 대표하여 이우창 씀.

 

대화한 이들


강수영 저는 도시계획학 박사 과정이고 서울시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석사 졸업 이후에 학교 연구소에 속한 ‘SSK 연구단’에서 일했고, 작년에 서울시로 이직 후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왔는데요. 시공간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을 분석하는 일, 도시 정책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활동 중이고,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에 있어 제가 속한 분야를 딱 잡아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최근에 데이터 분석과 사회과학을 결합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석사 논문으로 아시아 항공 네트워크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요. 지역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살펴보려는 지리학의 문제를 풀기 위해 물리학의 방법론을 적용했었죠. 영미권에서는 이런 분야를 CSS(Computational Social Science)라고 많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어로는 컴퓨터 사회과학, 전산 사회과학, 계산 사회과학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사회과학에서 소위 양적 연구의 팽창과 함께 여러 학문적 계보가 뒤섞이며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중인 것 같은데요. 저 또한 단순히 새로운 방법론을 연구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유의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보경 저는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세부 전공은 현대시인데요, 언어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론, 예술론, 비평이론 등을 잡다하게 공부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또하나의문화》와 같은 무크지나 《녹색평론》과 같은 잡지를 읽으며 1980~1990년대 한국에서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 사회 문화 운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왔습니다. 요즘은 에코 페미니즘[5] 이론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육식의 성정치》의 저자로 알려진 캐럴 J. 애덤스(Carol J. Adams) 등이 주 저자로 참여한 《에코 페미니즘: 다른 동물 및 지구와의 페미니즘적 교차(Ecofeminism: Feminist Intersections with Other Animals and the Earth)》의 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2021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현대문학 전공 대학원 자치회 발족을 준비하고, 운영 위원 1기로 활동하며 자치 경험을 쌓았습니다.

제가 에코 페미니즘과 90년대 사회 문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맥락을 간단히 설명 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저는 학부 초에는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없었다가 2015~2016년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페미니스트로 성장한 세대에 해당합니다. 특히 이 시기 강남역 살인 사건부터 미투나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 등에 큰 영향을 받으며 여러 집회나 페미니즘 관련 포럼이나 소모임 등에 참여하기도 했고,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감각이 크게 바뀌었음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저의 연구 관심사에도 영향을 미쳤고요. 페미니즘이 쉽게 매도되는 흔한 방식 중 하나는 ‘여성 문제만 다룬다’는 식의 말일 텐데, 사실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은 사회 전반을 분석하는 분석틀입니다. 구체적으로 근래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페미니즘과 기후 위기, 생태학을 연결하는 공부를 이어 가고 있는데요. 저는 특정한 지식이 어떤 역사적 토대에서 출현하고 다른 지식들과의 관련성 속에서 발달하는지 살피는 데 관심이 있어요. 그러한 관심이 90년대의 여러 페미니즘, 생태 운동과 글쓰기를 공부하는 것으로도 이어진 것 같습니다.

유현미 저는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올해 2월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0년대 중반 학번으로, 페미니즘이 대학생의 교양이었던 학생 사회의 분위기에서 지적‧문화적 경험을 해왔습니다. 학부 때 사회학 수업을 들으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페미니즘적 접근을 깊이 있게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제가 박사에 입학하던 2010년대는 대학원 제도의 전통과 변화가 뒤섞여 돌아가던 시대였습니다. 학술지 논문과 연구 프로젝트 중심의 지식 생산이 지배적인 BK 체제 혹은 학진 체제[6]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 가는 시기였고, 특히 서울대학교는 연구 중심 대학이었기 때문에 학진 체제의 영향력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는 학생 운동적 전통과 성과주의적 변화, 그 어느 쪽에도 적절히 속하기 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 대학 공간, 특히 연구 중심 대학에서는 연구 재단의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이력을 만드는 식의 흐름이 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제 학술 대회에 자주 참여하고 미국 학계, 영어 중심의 트렌드에 익숙해지라는 소위 ‘국제화’ 의 요구도 강하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젠더 인식론[7]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성폭력, 성매매 같은 젠더 폭력과 여성 노동의 이슈를 조직이론, 사회운동론 등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식 생산 시스템의 젠더 문제에도 관심이 있고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의 역사와 실태를 다룬 공저 《불처벌》[8]을 발간했고, 대학 내 페미니즘 교육의 방향을 논의한 공저도 준비 중입니다.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여성 단체에 상근 연구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고, 여러 시민 사회 단체와의 협업, 공부 모임 등을 통해 현장의 지식 생산 방식을 체험했습니다. 대학원생 인권 정책 제안 활동에 관여한 바 있고, 2017년 학과 내 교수 갑질, 성희롱 사건의 대책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대학원생 인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송희 저는 2021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조선 후기 성리학의 도덕철학적 언어가 정치적 수사로 이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추적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문과나 국사학과 같이 소위 ‘국’자 돌림 학과들의 경우 국내 박사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요, 저도 2000년대 이후 국내 한국학의 흐름 속에서 공부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대학원에 진학한 2010년대 초반은 내재적 발전론과 같은 이전 시대의 관점은 폐기됐지만 새로운 내러티브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9]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대신 개별 작가나 지엽적인 주제로 파편화되는 경향도 있었고, 지금 50대 후반 이상 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요즘 신진 연구자들이 논쟁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하시기도 합니다. 모두가 참여하는 거대 담론이 활발히 전개되던 수십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연구자들 개개인의 관심사가 다르고, 모두가 공유하는 접근법이나 목적도 없기 때문에 큰 규모의 논쟁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꼭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 대상에 대한 접근법을 다양하게 하고 학계의 논의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의 관점과 방법론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는 의식은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박사 과정 중이던 2018년에서 2021년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학교 분회에서 활동하며 학내에서 위계형 성폭력 사건과 같은 인권 침해 사건, 강사법 시행과 관련된 구조 조정 이슈 등에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가 직면한 위기가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학원생노조 고려대 분회를 설립하고 활동을 하면서, 학계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모으고 사회에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전준하 저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현재는 IT 회사에서 산업 및 정책 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원래 공대를 다녔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에서의 공부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는데요. 막상 대학원에 진학해 접하고 보니 무척 낭만적이고 만족스러워서 뚜렷하게 무엇을 연구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로 학문을 업으로 삼고픈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이 학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학술 및 대학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포착해 연구하고 개선 활동에 힘써 왔습니다. 학위 과정 중 BK21(연구 중심 대학), LINC(산학 협력 선도 대학) 등 대학 재정 지원 사업에 대한 비판적 연구 논문을 작성했고, 교육부 정책 연구 용역 과제인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기도 했어요. 또한 졸업 이후에도 연구 평가 제도를 연구 주제로 삼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부실 학술 활동을 조사해 언론제보[10]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AI 윤리라고 통칭하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사회‧기술적 논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석사 졸업 후 대학에서 몇 발짝 떨어진 채 새롭게 찾은 연구 분야인데요. 회사 업무로, 또 개인 공부로 ‘특정한 일을 자동화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파생되는 고민들에 대한 저 나름의 답을 찾고자 합니다. 어찌 보면 이전과 전혀 무관한 주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통하는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연구 평가 제도를 통해 살펴본 전반적인 학계의 문제는 논문을 빠르게 또 많이 쓰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자 성공 공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들 논문 쓰느라 바쁜 나머지 무엇이 좋은 연구인지 평가할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기 어려워요. 다른 한편으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딥러닝이 득세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작업을 자동화할 때 왜 잘되고 안 되는지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데이터를 많이 넣으면 정확도를 비롯한 성능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있죠. 왜 성능이 좋은지 이유를 찾기보다 빠르게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더 좋은 성능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두 루틴의 문제를 거창하게 이론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연구는 결국 무언가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하는 일이고 여기에 필수적인 게 이론인데, 인공지능을 포함한 모든 분야가 이론 없이 바삐 굴러가고 있다 보니 연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요즘입니다.

조승희 저는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는 현장 연구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와 섬, 기반 시설, 비인간, 테스트 베드에 관심이 있고, 제주도와 ‘카본 프리 아일랜드 2030’이라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주제로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고 있지만, 학부 땐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매일 고된 실험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과학기술 지식은 어떻게 선택될까? 그리고 그 선택은 누가 하는 걸까?’ 과학을 직접 하기보다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 더 관심이 생겨서, 그 길로 과학기술정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인프라 정책 연구자, 섬 연구자, 현장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학 분야 연구자들은 과학기술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누가 그것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왜 그것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제가 이공계 전공을 하며 가장 가려웠던 부분이었죠. 과학기술학의 세부 주제 중에서도 인프라 연구는 우리가 매일 보는 수도, 전기, 도로, 건물 등 당연해 보이는 기반 시설에 질문을 던지는 연구 분야입니다. 기반 시설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이고, 시멘트, 플라스틱 등을 비롯한 물질들이 국가,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합니다. 기반 시설이 재생산하고 지탱하는 정치적 위계, 사회적 질서는 무엇인지, 반대로 사회 질서는 어떤 기반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지 질문하기도 합니다. 기반 시설을 이용하는 입장 중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입장을 배우기 위해선 현장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기반 시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실험 공간, 다른 말로는 테스트 베드를 공부하고 있는데요, 과학기술 테스트 베드로 자주 활용되는 섬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무엇인지 앞으로도 더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현수진 저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고려 시대 유학 정치사상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지적인 관심사 그 자체에서 출발해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전업으로 역사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학부 3학년 때 사학과 수업을 듣던 중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역사가 연도와 사건이 명확하게 고정된 사실의 집합인 줄 알았는데,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하다 보니 역사적 ‘사실’은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본질은 특정 시대의 문제의식이 존재하는 학술장에서 개별 연구가 축적되며 해석의 뭉치가 생겨나고, 그런 해석의 뭉치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제가 고등학교 때 역사적 사실이라고 배우고 외웠던 고려 시대의 귀족은 사료에는 존재하지 않고 연구사 속에서 정립된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아무래도 제 연구 주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전근대사 연구자로서 저의 정체성과 역할을 늘 회의하게 됩니다. 13세기에 활동한 무신 집권자 최충헌이 자신의 집권에 유학 정치사상을 활용했다는 걸 밝히는 게 도대체 이 현실을 이해하고 바꿔나가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요?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 전공이 고려 시대라고 해도 제 연구의 주제와 문제의식은 결코 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구 주제를, 문제의식을 꺼내고 생각하고 다듬는 사람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신진 역사 연구자 단체인 ‘만인만색연구자 네트워크(이하 ‘만인만색’)’에서 2017년 말부터 활동했습니다. 국가의 일률적인 역사 해석을 반대하고, 역사학의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시민 사회와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른바 ‘역사 대중화’ 활동인 셈이죠. 동료들과 함께 팟캐스트 ‘만인만색 역사공작단[11]을 5년째 제작하고 있고, 교양서인 《달콤 살벌한 한·중관계사[12]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13]의 기획자 및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2017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인문계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연구와 삶에서의 문제의식을 탐색하고 대학 내 풀뿌리 조직과 대학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우창 이번 자리를 기획하고 사회를 맡은 이우창이라고 합니다. 2022년 8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고요, 학위 논문에서는 18세기 잉글랜드의 초기 여성주의와 근대 소설의 관계를 다루었습니다.[14] 저는 현대 한국의 연구에도 깊은 관심이 있는데, 예를 들어 비교적 널리 읽힌 글로는 2016년 발간한 〈헬조선 담론의 기원〉[15]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에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만, 당시 진보와 보수 논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전개되는 맥락을 무시하고 헬조선 담론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광경이 불만스러웠죠. 마침 여기에 관해 글을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논리가 한국 사회에 유통되던 기존의 역사적 담론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용하는지를 지성사적 접근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때 서구 지성사 연구, 특히 ‘근대성(modernity)’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가 만들어지고 활용되는 방식을 고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18세기 잉글랜드를 다루는 박사 논문의 문제의식은 2010년대 한국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엄청나게 커지던 2015~2016년, 일부 웹툰에서 로맨스를 묘사하는 방식에서의 변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유통되는 페미니즘 담론의 영향하에서 남자 주인공이 문제적인 남성 문화를 기피하거나 비판하는 식의 특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거죠. 문득 이제까지 읽었던 18세기 영국 소설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17세기 후반부 이래의 거대한 문화적 변화 속에서 영국 사회가 바람직한 남성, 또는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 또한 바뀌게 됩니다. 그런 담론적 맥락이 당대의 소설 쓰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고드는 게 박사 논문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영국의 근대 초기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동시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비평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같이 가져가려 합니다. 현대 한국을 보기 때문에 18세기 영국에서 새롭게 깨닫는 게 있고, 반대로 18세기 영국을 계속 보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도 있죠. 두 가지 작업 모두에서 저는 케임브리지 학파 혹은 언어맥락주의 지성사 연구의 방법론[16]이 매우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한국 인문학계에서 지성사 연구의 방법론과 성과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알려진 상황이다 보니, 이를 한국 학계에 소개하는 일도 제가 할 일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성사란 무엇인가?》라는 입문서를 직접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고, 지성사 연구에 관심이 있는 동료 연구자들이 그 성과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교류의 장을 만들기도 하는 중입니다.

[1]
인용 문구는 김정인, 《대학과 권력: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8, 112쪽.
[2]
배소현, 〈대학평가에 매달리기보다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경험을〉, 《교수신문》, 2022.8.17.
[3]
2022년 7월 발간된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의 미래 비전(1장 3절) 및 교육 혁신(2장 1절) 부분은 이러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4]
강일구, 〈“각자 하고 싶은 말만…이해로 묶인 관계는 ‘쪽방’이 됐다”〉, 《교수신문》, 2022.4.11.
강일구, 〈“명문대 대학원, 은마아파트 같은 곳”〉, 《교수신문》, 2022.4.19.
[5]
에코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과 자연, 동물에 대한 억압이나 착취가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는지 사유하고, 돌봄과 상호 의존, 공생에 기반을 둔 시스템을 지향하고자 하는 인식방법론이다. 최근에는 가부장제와 종차별주의뿐 아니라 인종, 이성애, 비장애 중심주의 등, 힘의 교차 양상을 살피는 작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6]
BK 체제 혹은 학진 체제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 사업 지원 정책에 영향을 받아 구조화된 학술 문화와 제도 전반을 통칭한다. 1999년 대학원 집중 육성을 표방한 BK21(두뇌한국)사업이 시작됐고, 소위 ‘학진 체제(학술진흥재단 체제)’라 불리는 연구 문화와 시스템이 형성됐다. 재단이 지원하는 연구 사업 수주 실적과 학술지 논문 실적이 학적 능력 평가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7]
젠더 인식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서 성별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는 노동·역할·가치·정체성 등의 특성을 밝히고자 하는 관점이다.
[8]
김대현 외 11인, 《불처벌》, 휴머니스트, 2022.
[9]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조선 사회도 자생적인 근대의 경로를 밟고 있었음을 증명하려는 역사 서술이다.
[10]
전준하, 〈대학원에 상식을 묻다: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뒤켠의 고민들〉, 《과학뒤켠》, 2018.
전준하,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2018. 
[11]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은 역사학의 다양한 시선과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다. ‘팟빵’과 애플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다.
[12]
만인만색연구자 네트워크 시민강좌팀, 《달콤 살벌한 한·중관계사》, 서해문집, 2020.
[13]
만인만색연구자 네트워크 미디어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서해문집, 2021.
[14]
이우창,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2.
[15]
이우창, 〈헬조선 담론의 기원: 발전론적 서사와 역사의 주체 연구, 1987-2016〉, 《사회와 철학》, 32, 2016, 107-158쪽.
[16]
지성사에서 ‘케임브리지 학파(Cambridge School)’는 1960년대 이래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과를 중심으로 활동한 역사학자와 이들의 접근법에 찬성하는 연구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과거의 문헌을 해석할 때 해당 문헌이 속한 언어적 맥락에 비추어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세한 설명은 리처드 왓모어(이우창 譯), 《지성사란 무엇인가?》, 오월의봄, 20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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